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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66화 (166/233)

166화. 결국, 털어놓아야 해

그제야 콘스탄틴은 그녀의 몸을 떼어내며 이마와 목덜미 등을 손등으로 짚어 보았다.

발갛게 볼이며 눈가가 달아오른 것이, 분명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히 살피자 어제 마지막으로 본 차림새 그대로다. 그리고 제 몸의 상처는 어지간히 다 치료된 상태였으니, 기본적인 추론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그를 찾아와 처치를 하고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도 못하고 잠들어 감기에 걸린 듯 보였다.

콘스탄틴은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설렁줄을 당겼다.

하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복도로 나가 의사를 데려오라고 외쳤다.

“의사! 당장 의사를 불러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레이머가의 주치의가 도착했다.

사이나의 생각과 달리 크레이머 가에는 주치의가 존재했다.

콘스탄틴이 단지 그에게 진료를 받지 않는 것뿐.

“가벼운 감기 몸살이십니다.”

“…가벼운?”

냉랭한 그의 반문에 의사가 흠칫하더니 말을 바꿨다.

“…감기 몸살이시긴 하나 그리 심한 것은 아니니, 처방 약을 드시고 푹 쉬시면 금방 쾌차하실 겁니다.”

“금방이면 언제?”

“이틀에서 사흘… 정도면 아마도…….”

“얼른 약을 가져와.”

“예! 각하.”

의사는 그가 약을 짓는 동안 환자에게 취해야 할 조치들을 말하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거기에는 미지근한 물로 적셨다가 짠 수건으로 전신을 닦은 다음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콘스탄틴은 잠시 고민하다가 사이나의 측근 하녀 셋을 불렀다. 그리고 지시했다.

그는 그녀의 맨몸을 닦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몸을 닦는 과정이 끝나고 도톰하고 편한 잠옷으로 갈아 입혀진 사이나를 콘스탄틴이 안아서 공작부인의 방으로 옮겼다. 물론 맨살은 닿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사이 제조가 끝났는지 주치의가 시종 편에 약을 보내왔다. 약을 하루 몇 번,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은지의 방법과 계속해서 열이 난다면 이마에 물수건을 꾸준히 갈아줄 것을 알리는 말과 함께였다.

콘스탄틴은 간만에 방문한 그녀의 방에서 사이나를 간병했다.

벗은 몸을 닦는 것은 할 수 없었으나, 물수건을 갈고 약을 먹이는 것은 충분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접촉을 줄이기 위해 긴소매 옷을 입고 장갑까지 끼고 있었음에도 본능적으로 그가 서늘하다는 것을 아는지, 열 오른 몸을 자꾸만 붙여오는 사이나였다.

그 모습이 왜 이리 사랑스럽게 보이는가.

맨 피부가 닿지 못하는 것이 서러울 정도로.

그의 손길에 오롯하게 자신을 맡긴 채 누워 있는 사이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만족스러우면서도, 괴로웠다.

약의 효과가 좋았던 것인지, 그녀가 생각보다 건강한 것인지는 몰라도, 의사가 말했던 이틀에서 사흘이 아니라 하루 만에 열이 내리며 차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자 기쁘면서도 아쉬웠다.

그리고 콘스탄틴은 자신의 그런 양가적인 감정에 또한 양가적인 감상을 느꼈다.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콘스탄틴?”

하나 그녀가 아픈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이나. 깨어났군요.”

아직 몽롱한 눈이 그를 바라보며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것 같았다.

“몸살감기입니다. 열도 꽤 났었고요. 하루를 꼬박 앓았습니다.”

“아…….”

“어지럽지는 않습니까?”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요.”

“다행입니다.”

그녀가 깨어났으니 식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콘스탄틴은 설렁줄을 당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올라왔다.

환자가 먹기 편한 음식들로 구성된 식단을 사이나 곁에 차리며 콘스탄틴은 그녀의 수발을 들었다.

폭설 때가 생각난다. 아기 새처럼 그가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던 그녀가.

식사를 끝낸 사이나에게 약까지 먹인 그는 그녀의 잠자리를 봐주며 이불을 여며주었다.

문득 사이나의 이마 쪽 머리카락이 젖어 엉킨 것이 보였다.

이게 아까 물수건을 올려두었던 탓인지, 아니면 열로 인한 식은땀 때문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직 열이 나는 것 같습니까?”

그래서 물었다.

하나 사이나는 묘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더니 대답했다.

“짚어 보시면 알겠죠?”

“…….”

“아, 저를 만지기 싫어하셨던가요.”

한숨처럼 내뱉어지는 사이나의 말투에 그는 당황했다.

“저, 지금 꼴이 말이 아니죠?”

“…아닙니다. 여전히, 예쁩니다.”

“그럼… 키스해줄래요?”

그리고 더 당황했다.

대체 방금의 대화에서 왜 ‘키스’라는 요구가 나오게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므로.

한데 사이나의 표정이 의외로 진지했다.

“싫으세요?”

“……그게 아니라.”

“우린 정말, 가망이 없는 거군요?”

체념 같은 씁쓸한 비소가 그녀의 입가에 그려지는 것이 보였다.

심장이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날 미워할 겁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왜 비소를 그리는 그 입술에서 이렇게나 눈을 떼기가 힘든 것인가.

“잠깐의 키스와… 무엇을 바꾼 것인지 알게 된다면…….”

“뭘 바꾼 건데요?”

“…….”

그대의 건강, 그대의 생명, 그리고 수명.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그는 입만 벙끗거렸다.

그런데 사이나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게 엄청난 거라도, 당장은 후회할 것 같지 않으면…….”

그러더니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잡힌 부분이 움찔했으나, 콘스탄틴은 가까스로 그녀를 뿌리치지 않는 것에 성공했다.

“어떻게 하죠?”

사이나가 그의 어깨를 잡고 바로 코앞까지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입술만 달싹거려도 서로의 숨결이 스칠 만한 거리까지.

“…….”

‘그대는… 이러면 안 돼.’ 하지만 이 역시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이었다.

결국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열감기로 인해 살짝 부르튼 입술의 거스러미가 그의 것에 닿아 표면을 긁어오는 느낌에 정수리가 쭈뼛해졌다.

척추를 따라 폭력적일 정도로 강한 욕구가 지나갔다. 몸의 중심을 따라 저릿함이 퍼질 정도로 강한 충동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잡아채어 제 밑에 깔아뭉갤지도 모르겠다는 충동이 들었다.

콘스탄틴은 필사적으로 그 충동을 참으려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으나, 차라리 그게 나았다.

폭렬하다시피 한 충동감에 뇌가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그는 참아냈다.

입맞춤은 길지도, 깊지도 않았다.

그저 그가 피하는지 아닌지를 알려는 목적이었던 것처럼 담백하게 닿았다가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웠고, 기꺼웠기에 또한 절망스러웠다.

‘난…….’

결국 그는 깨달았다.

‘난, 못 해.’

스스로의 의지만으로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는,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 닿으면, 그녀가 닿아올 때면, 그는… 모든 것에 그저 항복하고만 싶어진다.

개새끼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다.

그녀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꺼림칙한 눈으로 보는 것을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미안해요. 괴롭혀드리려는 건 아니었는데, 자꾸…….”

사이나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하아…….”

그러나 보라.

그녀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더 혼란스러워하는 것이, 괴로워하는 것이 누구인지.

그는… 입장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상처는 좀 어때요?”

그 와중에도 사이나는 그의 부상을 걱정했다.

“어제… 부상을 입으셨다고 들어서 제멋대로 들어왔거든요. 나름 약을 바르기는 했는데…….”

“…고맙습니다.”

콘스탄틴은 감사를 표했다.

‘내가 다치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만질 필요도 없었을 테지만…….’

또다시 녹각 마수가 출몰하는 바람에 다치고 말았다. 심지어 세 마리가 동시였다.

저번에 두 마리 동시 출몰로 인해 모레프와 칼리고를 분리해 다루는 것을 미리 훈련해두지 않았다면, 정말로 위험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해치우기는 했으나, 그 역시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근 몇 년간 마수를 잡으며 입은 부상 중 가장 심하게 다친 터라 약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으나, 그의 자존심이 높다고 상처를 낫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등 쪽 상처가 아닌지라, 칼리고의 흡혈은 피할 수 있었지만 피 냄새에 광분해서 머릿속에서 날뛰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주인아! 기왕 다쳐서 흘리는 피 나 좀 먹여줘라! 응? 제발! 제바알~ 제바아아아아알~!

그런 상태로 귀환했다.

그리고 돌아오자마자 호위기사의 품에 안긴 사이나의 모습을 보았고…….

-오, 주인아! 네 부인 머리카락 젖은 것 봐라! 기사랑 분위기 묘한데? 이번에야말로 바람인가?!

칼리고의 개소리임을 알면서도 약해진 상태 때문인지 망할 상상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몸에 감겨진 기사의 망토.

젖은 채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얀 피부와 대조되게 약간 홍조가 오른 볼 언저리와 입술.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잠식해 갔다.

“경… 남편이 절 외면해요.”

“내 아가씨. 슬퍼 마십시오. 제가 아가씨의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이젠 쓸모없어진 그를 제쳐두고, 사이나가 다정한(?) 그녀의 기사에게 위로를 얻는… 불온한 상상을.

그의 머릿속에나 일어나는 쓰레기 같은 상상임을 알면서도 기이하게 살기가 솟구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폭주라도 할 것 같아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할 생각도 못 하고 재빨리 그 자리를 떠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그녀를 품에 안고 깨어난 상황이라니.

어째 다칠 때마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 같다.

부상의 대가로 그녀와 함께 아침을 맞을 수 있다면, 더한 부상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의 온몸이 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는 이제 믿을 수가 없다.

결국… 털어놓아야만 한다.

그녀가 그를 꺼려…… 스스로 그와의 접촉을 멀리할 수 있도록.

차라리… 그를 미워하도록…….

콘스탄틴은 먹먹해지는 것 같은 심경을 가까스로 갈무리하며,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결론을 결국 받아들여야만 했다.

“사이나.”

콘스탄틴은 온몸에 힘을 주며, 자세를 일으켰다.

“할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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