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한때 고자로 불렸으나
어정쩡하게 있던 상태에서 그가 당겨 안는 바람에 몸의 균형이 콘스탄틴 쪽으로 훅 쏠렸다.
졸지에 그를 침대에 눕히며 그를 덮치듯 쓰러지게 된 사이나였다.
“읏.”
그녀의 얼굴이 대번에 발갛게 달아올랐다.
배를 찌르는 무언가의 감각이 적나라했다.
“사야….”
그는 그녀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되뇌는 작업이라도 하는 건지, 아까부터 그녀의 이름만 반복해서 불러대고 있었다.
아니, 이름을 부르다 못해 그 입술이 이번엔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사야, 사야…….”
그리고 목덜미로 내려왔다.
목과 어깨 사이의 오목한 부분을 파고든 그가 크게 호흡했다.
“하아.”
거기에 숨구멍이라도 숨겨놓은 사람처럼 한껏 숨을 들이쉰 콘스탄틴은 이내 입술을 사이나의 빗장뼈에 짓이기더니 그녀를 더 강하게 안아왔다.
“코, 콘스탄틴…!”
약부터 발라야 하는데, 아프지도 않은가?
그녀를 옭아맨 팔의 힘은 설렁한 것 같으면서도 강력해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어쩌지…….’
그나마 너무 그에게 체중을 싣지 않기 위해 나름 애썼다.
그녀가 그의 위에 온몸의 무게를 다 싣는 바람에 상처가 두 배 크기로 터져버리는 몹쓸 상상이 머릿속을 자꾸만 휘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머리가 투욱 떨어졌다.
그녀를 감고 있는 팔은 풀리지 않았으나, 살짝 헐거워진 느낌이었다.
천천히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감고 있던 팔마저 침대로 떨어졌다.
잠이, 든 것이다.
‘오래… 못 잔 모양이네.’
출혈로 인해 파리한 안색은 그렇다 치고 눈 밑이 매우 거뭇거뭇한 것이 근래의 불면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와 닿아 따뜻해지니 바로 잠이 든 모양이다.
사이나는 이때다 싶어 물약병을 집어왔다.
그리고 얌전히 누워 잠든 그의 몸에 열심히 물약을 발랐다.
문질문질 약을 바를수록 그의 근육이 묘하게 움찔움찔했다. 잠든 상태임에도 어쩐지 이불로 가리어진 중앙 부위의 고도가 점차 높아지는 것 같아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치료에 집중(?)했다.
그러기를 한참.
앞판(?) 치료는 완전히 끝난 것 같다. 뒤에도 얼마간 남은 상처들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더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뒤집어서 살피기도 그렇고.
‘아, 찝찝해…….’
그의 처치를 끝내고 나니 제 상태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외출하고 들어온 데다 호숫물에 담갔던 몸이다. 욕조에서 나온 그를 부축하느라 전체적으로 축축함이 배가된 데다 핏물로 얼룩덜룩하기까지 했다.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을까?’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곤히 잠든 것 같기는 한데, 자다가 깨진 않겠지? 겉일망정 상처는 그래도 치료가 끝났으니까…….
옆구리와 허벅지 상처는 좀 심한 편이라 며칠에 걸쳐 약을 발라주어야 할 것 같다.
‘좀, 춥기도 하고.’
젖은 옷과 머리카락 때문인지 할 일이 끝나자 몸이 식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젠 온탕이 필요한 것은 사이나였다.
“앗!”
하지만 갑자기 또 허리가 잡혔다.
분명 잠들어 있었는데 그녀가 침대 모서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그가 그녀를 낚아채듯 몸을 감아오더니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콘스탄틴?”
보니 깨어난 것은 아니다. 뭔가 본능적으로 그녀를 잡아챈 듯했다.
온기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몸도 꽤나 식은 상태였다. 그러니 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인 행동인 것 같았다.
요즘에야 드문 일이지만, 콘스탄틴이 적극적으로 그녀를 탐하던 때엔 항상 이랬기에 어떤 의미로는 금세 적응이 되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약간만 더 그가 깊이 잠들 수 있게 곁에 있다가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잠든 틈을 타 그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 행위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가 제정신일 땐, 못 하는 행동이니까…….’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바닥을 스치는 것이 꽤 즐거운 일이었다.
“…….”
그러나, 그녀 역시 그 상태로 잠이 들어버렸다.
오랜 외출, 승마, 수영, 거기다 콘스탄틴의 수발까지. 사실 사이나도 당장 쉬어야 할 만큼 매우 피곤한 상태였던 것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녀의 의식이 까무룩 잠겨 들었다.
* * *
콘스탄틴 크레이머.
칼리고의 맹약자.
이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승계 과정을 견뎌낸 사람이란 뜻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인내심이 이렇게 얄팍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니, 인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의 성장기는 참고 견디는 것에 치중되어 있었으며, 거기엔 생존이 기본 전제로 깔려 있었다.
그리고 성장기를 지나고 나자 생존이라는 의미에 그 자기 자신의 것뿐만 아니라 거대한 크레이머령 영주민들의 것이 추가로 붙었다.
마지못해 사는 삶. 지나치게 많은 목숨을 손에 쥔 맹약자의 의무감.
할 것은 많으나 재미라고는 없는 그런 삶을 사는 남자였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환장해 마지않는 어떤 욕구도 그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삶에 재미가 없으니 쾌락에라도 흥미를 붙여볼 만한데, 그건 시도도 해보기 전에 바로 식었다.
-우와! 저 여자는 어떠냐? 가슴이 매우 크구나! 아니 저쪽 여자도 좋은 것 같다. 네 조상들이 말하길 저런 엉덩이를 가진 여자가 애를 숨풍숨풍 잘 낳는다 했다!
칼리고 때문이다.
칼리고가 머릿속에서 품평하는 것을 듣고 있자면 천 년의 발정도 식고 말 것이 분명했다.
-주인아! 너 정말 이렇게 살다 죽을 거냐?! 진짜 결혼 안 하냐? 짝짓기 안 해? 후계자 안 만드냐, 응? 인간들은 짝짓기하는 거 엄청 좋아하던데 주인아, 너는 무슨 문제냐?
다행스럽게도 그의 성욕은 그다지 큰 것 같지 않으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주인아? 혹시 너…….
성욕은 물론 남들이 일반적으로 환장하는 명예욕, 권력욕이나 재물욕 등, 그 무엇도 그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그건가? 인간들이 말하는 고자? 주인아 너, 고자냐?!
아, 그나마 수면욕에 대한 열망은 조금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 봐야 남들 만큼도 아니고 ‘하루에 두어 시간이라도 제발 조용하고 깊게 좀 자고 싶다.’의 수준이지만.
-정말로 고자?! 아이고오! 내 주인이 고자라니……!
사이나를 만나기 전에는 칼리고가 아주 빈번하게 주인이 고자인 것을 한탄하며 울부짖고는 했으니 말 다 했지 않은가.
“…….”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콘스탄틴은 따끈한 몸을 품에 안은 채 깨어났다.
간만의 꿀 같은 단잠.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듯 최상의 컨디션.
머릿속은 고요함 그 자체다.
지극한 이 평화로움.
얼마나 그리웠던가.
그리고 그것은 다 그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또.’
무심코 이렇게 그녀에게 엉겨 붙어 수혜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경각심을 가지려고 애썼건만.’
그래. 경각심.
그가 정상이라면 재빨리 다시 물러나면 될 일이다.
어쩌다 맛본 이 평화로움에 자족하면서 미안해할 일이다.
예의를 차리며 정중한 감사 인사와 사과를 남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는 이제 얄팍하다 못해 종잇장 같은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사이나를 만난 뒤로 그의 예전 삶의 기준은 모두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뿐해진 몸의 컨디션을 자랑하듯 품 안의 여체에 지독할 정도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 잠깐의 달콤한 접촉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뻔히 알면서도 자제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쓰레기가 따로 없군.’
그는 지독하게 노력했다. 나름대로는 말이다.
물론 자신과의 접촉이 그녀의 수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아예 그녀에게 접근 자체를 하지 않았겠지만…….
‘아니, 정말 몰랐나…?’
제 체온에 대한 반응이 괜찮으니, 그 부분도 괜찮을 것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은 아니었나?
사실 할 말은 없다.
깊이 따지고 든다면, 그의 양심 깊은 곳 어딘가는 분명 흔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
하나 그는 절박했고, 그녀의 체온은 그를 안정시켰다.
그를 녹이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이끌었다.
그녀의 보드라운 피부가 닿는 감촉, 체온, 체향. 그녀의 안에 들어갈 때 그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것 같던 감각들.
마치 그녀는 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빠져들던 그 순간에는 어떻게든 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그녀를 곁에 두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욜리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도 그랬겠지.
‘유모가 나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을 알아도… 그녀가 내게 웃어줄까?’
욜리가 죽음처럼 잠들었던 것이, 콘스탄틴이 유모에게 선사한 죽음의 병에 감응해서 그런 것 같다는 것을 알아도?
그 상상만 하면 그는 딱, 숨이 막혔다.
그녀가 그를 피하고, 두려운 눈빛이나 혐오에 찬 눈빛으로 보리라는 가정을 하면…….
숨이 막히다 못해 손이 떨려오는 것이다.
“하…….”
밀어내야 함을 알면서도 매몰차게는 못 하겠다.
필사적으로 거리를 둔 상태에서도 그의 눈은 끊임없이 그녀를 찾곤 했다.
그리고 틈틈이 이렇게 스스로의 통제를 잃거나 하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를 품에 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마치, 그녀에게 기생해 살아가는 거머리처럼.
‘이만 떨어져라, 이 새끼야.’
스스로에게 욕을 하며 콘스탄틴은 제 품 안에 있던 여체를 천천히 잡아 떨어뜨렸다.
“으…….”
뜨끈한 몸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다시 엉겨왔다. 콘스탄틴은 심장이 덜컥거림을 느꼈다.
‘……뜨끈한?’
잠깐, 뭔가 이상하다.
그의 서늘한 체온도 비정상이지만, 이 정도로 뜨끈한 것도 정상은 아닌 듯한데?
언제나 그녀가 그보다 체온이 높고 따끈했기에 바로 눈치채지 못했으나, 지금 사이나의 체온은 그저 따끈한 수준을 넘어 뜨거운 것 같았다.
“…사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