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정신 좀 차려요
똑똑.
“…….”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공작님?”
이번에는 그를 부르면서 한 번 더 노크했다. 여전히 답이 없다.
‘…설마 나인 줄 알고 일부러 대답을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아까 그가 돌아서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돌아가야 하나 싶어졌다.
‘그래도 혹시, 혹시 모르니까…….’
결국 사이나는 문을 열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웬걸.
“…….”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아주 굳게 잠겨 있었다. 갑자기 엄청나게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런 상황까지 다 예상하고 문을 잠근 걸까? 안에서 이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열어주지 않는 거고?
‘그럼, 물러…… 가야겠지?’
다시금 판단력을 상실한 사이나가 어찌할 바 몰라 망연히 서 있는데, 익숙한 짖음이 들렸다.
“컁.”
“…욜리?”
아까 그녀가 이곳으로 직행할 때 따라 들어왔나?
신경이 온통 콘스탄틴에게 쏠려 전혀 몰랐던 듯했다.
녀석은 이제는 꽤 커진 몸을 자랑했다. 뒷발로 서서 몸을 일으키니 앞발이 문손잡이에 닿고도 남았다.
욜리는 그 곰발로 문고리를 어찌어찌 밀었다. 그러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분명 잠겨 있었는데?’
근데 문이 열렸다.
“너…… 어떻게 한 거야?”
“컁?”
욜리는 ‘내가 뭘?’ 이런 표정을 지으며 딴청을 부리더니 욕실 안쪽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큐…….”
그리고는 털레털레 걸어 나가버리고 말았다.
마치 정말… 문이나 열어주러 온 것처럼.
마음 같아선 당장 욜리의 멱살(?)을 붙잡고 ‘너 정말 정체가 뭐냐.’고 추궁을 하고 싶었지만, 더 급한 것이 있었다.
사이나는 욕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콘스탄틴!”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씻다가 정신을 잃었는지 욕조 턱에 젖은 빨래처럼 걸쳐진 상태였다.
얼마나 과하게 다쳤기에 씻다가 말고 기절을 했단 말인가.
‘지혈도 안 된 상처를 가지고 욕조에 들어간 거야?’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어찌 보면 기절을 하는 게 당연했다 그의 커다란 몸은 상처에서 배어나온 피 때문인지 마치 핏물에 담긴 듯한 느낌이었다.
욕조 바깥으로 한쪽 팔이 나와 있고 욕조 턱에 그의 겨드랑이 부분이 걸쳐져 축 늘어진 상태였다.
그 광경은 보기에 좋지 않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여 사이나는 목뒤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콘스탄틴!?”
허겁지겁 맥박을 짚었다. 느릿하기는 하나 분명히 뛰는 것이 느껴졌다.
“정신, 정신 좀 차려 봐요!”
과다출혈로 정신을 잃어서인지 잠귀 밝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자임에도 이 정도 부름으로는 깨어날 기미도 안 보였다.
그렇다고 누굴 부르기엔 그의 문양 때문에 걸리고…….
‘…우선 상처부터 찾아 피를 멈추게 하는 게 낫겠어.’
물에서 먼저 빼내는 것이 당연히 좋겠지만, 저 커다란 덩치를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들어 꺼낼 능력은 없었다.
‘그러니 우선 가능한 곳부터라도 치료를 하자.’
협탁 서랍에서 빼온 녹푸른 물약 포션을 한쪽에 잘 놓고 사이나는 몸에 휘감겨 있던 망토를 풀었다. 승마 재킷도 벗어 한쪽에 놓은 뒤 사이나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녀와의 접촉을 반기지는 않겠지만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호불호도 정신이 들어야 고수할 것 아닌가.
우선 제일 먼저 보이는 팔뚝의 상처부터 약을 바르기로 했다.
사이나는 해면을 물에 적셔 상처 부분을 살살 닦아낸 뒤 깨끗한 물에 빤 새 수건으로 한 번 더 잘 닦았다.
상처는 검이나 무기로 인한 것이 아니라 묘하게 뭉개진 것이 무언가에 꿰뚫린 것 같은 모양이었다.
딱 보기에도 꽤나 아파 보여서 얼른 물약을 열어 손바닥에 덜었다.
상처에 물약이 잘 배이게 슬슬 문지르다가 사이나는 약간 놀랐다.
‘왜 이렇게… 피부가 차갑지?’
아플 때면 더 차가워지는 건가? 저번 부상 때도 피부가 상당히 차가웠던 게 생각났다.
더 이상한 것은 그가 꽤 높은 온도의 온탕에 들어간 상태라는 것이다.
그런데 몸이 이렇게 차다니…….
사이나는 아까보다 더 심각한 표정이 되어 그를 뜯어 보았다.
손바닥으로 그의 등과 팔 등의 곳곳을 쓸어보며 온도를 체크했다.
등의 문양 때문에, 그리고 물에 잠긴 부위라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자잘한 상처들이 피부를 손으로 쓸어내리는 감촉을 따라 손가락에 걸렸다.
사이나는 그 위치를 일일이 기억하며 온도를 체크했다.
‘…묘하게 문양이 있는 곳이 더 차가운 것 같아.’
이 서늘함은 역시… 수호령과 연관이 있나 보네.
‘맹약의 주인을 부러워했던 마음을 가졌던 것 자체가 미안해질 지경이야.’
알면 알수록 좋은 점보다 어째 나쁜 점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다른 공작들의 수호령도 이런지는 모르겠으나, 특히 이 ‘칼리고’라는 녀석은 특히 더 그래 보였다.
‘에렌혼도 이상하기로 치면 절대 지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거긴 그래도 이상한 거지 괴이하지는 않잖아.
사이나는 그의 체온이 매우 신경 쓰였으나, 그것보다는 상처가 더 시급함을 깨달았다.
아까 기억해뒀던 자잘한 상처들 위로 다 물약을 발라 치료했다.
‘…보이는 곳은 다 발랐는데.’
문제는 아직도 물색이 더 붉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물에 잠긴 어느 부위에 큰 부상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사이나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쉰 뒤, 그에게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서 욕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콘스탄틴의 덩치가 워낙에 큰 탓에 한 곳에서는 그의 몸을 다 둘러 만질 수도 없었다.
아까는 등 부위를 주로 살폈으니, 이번에는 앞쪽을 살필 차례다.
사이나는 천천히 손바닥의 감각에 집중했다. 그가 엎어지듯 욕조에 걸쳐져 있는 탓에 손만 비집듯이 넣어 만져야 했다.
가슴팍부터 복근까지에는 상처가 없는 듯했다. 우측 옆구리부터 장골뼈가 도드라진 부위를 지나, 허벅지까지 손이 내려갔다.
어쩐지 아까보다 그의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으나, 사이나는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대체 어디지…….’
욕조 옆 벽면과 맞닿은 좌측 옆구리부터 좌측 허벅지 측면 부위에는 손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쪽 부위인 듯한데, 문제는 이 상태로 치료할 수가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결국 그를 깨워야 할 것 같았다.
사이나는 욕조에 걸쳐져 바깥으로 뻗은 그의 팔 아래로 몸을 집어넣었다.
어찌어찌 그녀의 어깨 위로 걸쳐 힘을 주자 그의 몸이 조금은 섰다. 덩치가 워낙에 큰 탓에 그것만으로도 사이나는 진땀이 나는 기분이었다.
“콘스탄틴.”
사이나는 기울어진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이름을 불렀다.
“일어나 봐요. 네? 잠깐만 정신 좀 차려 봐요.”
“…….”
이번에는 다행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일까.
하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파란 동공을 보여주었다. 어딘가 모르게 몽롱해 보이는 눈빛이기는 했으나 그녀를 알아보기는 하는 것 같았다.
“…사야.”
“침대로 가요.”
“침대… 안 되는데…….”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응…….”
묘하게 한 박자씩 느린 반응이었으나, 그래도 다행이었다.
사이나 홀로는 절대 그를 이 욕조에서 빼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욕조에서 빠져나온 그의 나신을 타고 주르륵 물줄기가 따라 흘렀다.
사이나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붉어지는 제 얼굴을 느꼈으나,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 주었다.
몸 한중간에서 지나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부위가 신경 쓰여 그쪽은 대충 닦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 역시 이쪽이야.’
하지만 상처는 발견했다. 역시나 왼쪽 옆구리였다. 팔뚝보다 더 심하게 꿰뚫린 것 같은 상처였다. 허벅지 쪽에도 길게 뭉개진 상처가 있었다.
거대한 뿔이 달린 황소가 들이받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프겠다.’
사이나는 얼른 그를 침실로 이끌었다.
콘스탄틴은 얌전히(?) 그녀가 시키는 대로 침대에 앉았다.
“아차, 물약.”
물약병을 욕실에 두고 왔다.
그걸 가지러 돌아서는데 갑자기 손목이 잡혔다.
“…콘스탄틴?”
“…….”
“잠깐만 다녀올게요.”
하나 그는 그녀를 더 당겨서 제 품에 안았다.
홀딱 벗은 그의 품 안으로 당겨지자 손에 닿는 부위에서 부적절함이 느껴졌다.
그의 맨 가슴의 감촉에 놀라 손을 뗐다. 그런데 다시 그가 그녀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균형을 잡기 위해 허우적대다가 짚은 부위가 이번엔 맨 허벅지 위였다.
아주 곤란했으나 그가 휘감은 팔이 약한 듯, 강해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코, 콘스탄틴? 잠깐 놔줘요.”
그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녀를 들여다보았다.
“왜, 왜 그래요?”
아직도 몽롱해 보이는 눈을 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 눈 안에 나름의 복잡한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는 것이 보여 묘했다.
절박함 같기도 하고 애절함 같기도 하면서 집요함 같기도 한.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손바닥에 닿은 그의 허벅지에서 질척한 액체의 느낌이 나자 사이나는 다시 번뜩 정신이 들었다.
‘피!’
또 딴 데다 정신을 팔다니…….
치료부터 해야 했다.
“잠깐만 있어요. 금방 돌아올게요. 네?”
“…돌아, 올 거야?”
“네. 약만 가지고 금방요.”
사이나는 천천히 몸을 떨어뜨렸다.
다행이랄까. 이번에는 그가 그녀를 놓아주었다.
사이나는 얼른 욕실에 가서 약병을 챙긴 뒤, 침실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금방 돌아오기는 했으나 콘스탄틴은 정말 방금 침대에 앉아 사이나에게 시선을 주던 그 형태 그대로 있었다.
아까부터 심히 부각된 하반신까지 똑같았다.
“…….”
사이나는 그의 전면부 바닥 쪽에 천천히 앉았다.
허벅지와 옆구리를 살피기 위함이기는 한데 다리 사이가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는 위치라 도무지 시선 둘 데가 없었다.
어떻게 좀 가려야 할 것 같아 사이나는 침대 위에 시트를 잡아 당겨왔다.
그가 앉아 있는 부분의 시트는 빠지지가 않아, 다른 쪽을 끌어다 대강이라도 하체에 둘러주었다.
사이나야 상처 쪽만 살짝 들추고 보면 되니까.
“어, 어…….”
그런데 웬걸. 그가 갑자기 또 그녀를 당겨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