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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62화 (162/233)

162화. 비범한 짐승

“컁?”

하지만 왜 안 들어오냐는 듯 재촉하는 욜리의 물음에 수상함은 금세 희석되었다.

사이나에게는 욜리가 이상한 곳으로 자신을 이끌 리가 없다는 묘하지만 확실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투명한 듯 안 투명한 묘한 수질은 이내 사이나의 내면에서 장점으로 변화했다.

옷을 벗고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장점 말이다.

어차피 젖은 옷이기는 해도 승마복을 입고 온천욕을 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야, 욜리. 너 고개 돌리고 있어.”

“큐앙?”

“나 옷 벗을 거야.”

“……큐후.”

녀석이 헤엄치는 척하면서 몸을 돌려 가장 반대쪽 기슭으로 헤엄쳐갔다.

사이나는 승마복을 벗어서 주변에 있던 바위 위에 널었다. 바위가 뜨끈한 것이 젖은 옷을 말리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그래도 완전히 벗고 들어가기에는 좀 그래서 속옷에 슬립은 입은 상태였다.

사이나는 앞쪽으로 발을 잘 디뎌가며 적당히 몸을 다 담글 수 있는 깊이까지 들어가 앉았다.

“으, 따뜻해.”

막상 들어가니 너무 좋았다. 따끈한 물이 온몸을 감싸며 서늘하게 식어가던 피부의 온도를 단숨에 올려주는 것 같았다.

어딘가 쌓여있던 근육 내 피로까지 싸악 풀어주는 느낌.

아, 이래서 온천을 하는 건가?

저번에는 온천의 묘미를 알기도 전에 소름 끼치는 핥핥(?) 사건이 일어났고, 콘스탄틴의 부상으로 난리 법석을 떠느라 여운이고 뭐고 없었기 때문이다.

사이나는 나른하게 몸의 긴장을 풀고 팔을 휘적거렸다.

확실히 특이한 수질이다.

‘냄새도 없고…….’

물 안에 뭔가 알 수 없는 입자가 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

물이 묘하게 반짝거렸는데 수면이 빛에 반사되어서 반짝거리는 느낌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물속에 어떤 입자가 있어서 그것이 반짝거리는 느낌이다.

보고만 있어도 예쁜 기분이랄까?

그래서인지 투명한 느낌인데도 물속의 몸이 비치질 않았다.

색만 옅게 그 형태를 드러낼 뿐, 깊이도 정확한 모양도 알기 힘들었다.

‘이런 투명도라면 속옷까지 다 벗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아냐. 그래도 역시 거기까지는 망설여진다.

사람은 없지만 홀딱 벗고 나가다가 욜리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아주 민망할 것 같으니까.

‘저 녀석은 분명 인지력이 있어.’

저번 잠옷 파티 때도 분명 부끄러움을 타지 않았느냔 말이지?

사이나가 눈을 새초롬하게 뜨며 욜리를 바라보았다.

“꺄항?”

다시 이쪽으로 헤엄쳐오다가 사이나의 눈빛을 보고는 욜리가 외쳤다.

뭔가 항의를 하는 것 같은 짖음새다.

“내가 홀딱 벗고 온천욕을 해도 될까 고민 중이었거든. 너 때문에.”

“…큐, 큐?”

“분명 너는…… 어?!”

사이나는 하던 말을 잊고 욜리에게 다가가 녀석을 덥석 잡았다.

이젠 꽤 커져서 몸을 덥석 들어 올리긴 힘들어, 양 볼을 꽉 잡고 정면으로 얼굴을 맞댔다.

“캬우?!”

또다시 그 색이었다.

욜리의 눈 안에 피어난 제비꽃 색.

“유리?”

“캬, 컁?”

유리와 꼭 같은 눈동자 색 말이다.

“변했어, 또!”

“캬항?”

“너 정체가 뭐야?”

“캬하앙?”

얼른 고개를 뾱 빼더니 욜리가 물속으로 퐁당 잠수해버렸다.

녀석은 사이나의 추궁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쪼르르 몸을 빼내 멀리 떨어져 나갔다.

‘어휴. 언젠가는 뭔지 알 날이 올까?’

정말 궁금하다. 그나마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상관은 없으나, 매일 궁금함은 줄지 않고 점점 커지기만 하고 있었다.

사이나는 욜리 녀석과 아주 만족스러운 한낮의 온천욕을 한참이나 즐기고서야 샘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태양에 달궈져 있었던 바위 덕분인지 널어두었던 옷도 생각보다 많이 말라서 완전히 축축하지는 않았다.

돌아가는 동안 추위에 떨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니지. 호수에 또 빠져야 하잖아?’

그러면 도로 젖을 텐데…….

낭패다. 사이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겉옷을 입지 않고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호수는 아름다웠지만 그녀 외의 인적을 발견한 적은 없다. 그러니 호수를 건너 옷을 입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혹시라도 사람이 보이면 다시 복귀해서 옷을 입는 거로 하고.’

나름의 그런 계산 후에, 사이나는 행동으로 옮겼다.

다행히도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한 손으로 빠듯하게 옷을 공중에 들고 한 팔 헤엄을 쳐서 호수를 빠져나온 사이나가 얼른 주변을 살폈다.

‘말을 묶지도 않고 갔었구나! 와, 큰일 날 뻔했네.’

아까 급히 욜리의 뒤를 쫓느라 경황이 없었다.

그런데도 말이 어디로 도망가지도 않고 근처를 거닐며 풀만 뜯고 있는 것을 보니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훈련이 잘된 순한 말이기 망정이지. 안 그랬다가는 젖은 옷을 입은 채 수 시간 동안 벌판을 걸을 뻔했다.

허약한 편은 아니지만 그랬다가는 분명 크게 앓고 말았을 터.

사이나는 늦었지만 말을 끌어다 한 나무에 묶고는 나무와 말을 파티션 삼아 옷을 갈아입었다.

축축한 속옷과 슬립을 벗고 손수건을 꽉 짜서 몸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나마 마른 승마복을 입었다.

바로 겉옷이 맨 피부에 닿는 느낌이 생소했지만, 물이 줄줄 흐르는 옷감을 입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이나는 벗은 속옷을 대충 안장주머니에 쑤셔 넣고, 나무에 묶었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는 말에 올라탔다.

“욜리!”

욜리의 탈수(?)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몸을 부르르 몇 번 터는 것으로 금세 털이 보송해져 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눈동자 색도 평상시처럼 돌아와 있었다.

“돌아가야겠어, 가자!”

생각보다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원래 잠깐만 근처를 돌려고 했던 건데.

루퍼트가 지금쯤 미친 듯이 그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자 갑자기 조급해졌다.

“그리고 보니 여기가 대체 어디야? 욜리! 너 길 알지?”

“컁!”

“그럼 안내해!”

“컁!”

알겠다는 것 맞지?

앞서 뛰어가기 시작한 욜리의 뒷모습을 보며 사이나가 말을 박찼다.

반쯤 젖은 검은 머리 타래가 바람에 휘말렸다. 수분을 머금어 묵직했던 타래는 점차 가벼워지며 바람을 타고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쯤 저 멀리서 한 인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멀리서 외침 같은 것이 들려와 시야를 집중했다.

“……경?”

아마 루퍼트 경인 것 같다.

“……이나 님!”

“루퍼트 경!”

다급한 표정으로 루퍼트가 말을 달려 다가왔다.

“대체 어디까지 가셨던 겁니까!”

“아, 미안해요. 달리다 보니 너무 먼 곳까지 가버려서…….”

돌아오는 데에 한참 걸렸지 뭐예요. 사이나는 변명했다.

“제가 얼마나…… 하아……. 다행입니다. 진짜 성으로 돌아가서 수색대를 차출하기 직전이었어요.”

“…….”

“낯선 곳인데 호위도 없이 나가시면 안 되죠.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혹시라도 그녀가 잘못되면 아랫사람들 여럿이 경을 칠게 뻔한데, 아까는 당장 속이 너무 답답해서 뵈는 게 없었던 게 사실이다.

욜리가 그녀를 위험한 곳으로 데려갈 리가 없어서 사실 별로 걱정스럽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은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진짜 수명이 반으로 주는 줄 알았습니다. 각하께서도 부재중이신데…….”

진짜 다급하게 헤매긴 한 모양이다. 주홍색 고수머리가 엉망으로 땀에 젖어 흐트러져 있었다.

“걱정을 끼쳤네요. 앞으론 경을 꼭 부를게요.”

“예. 꼭이요.”

둘 아니, 욜리까지 셋은 크림성을 향해 달렸다.

* * *

호수에 숨겨진 비밀 온천은 근래 사이나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스트레스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든다거나, 마음속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할 때면 그녀는 그곳을 찾았다.

지리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나름의 준비물을 챙기기 시작했음은 물론이다.

기름을 먹여 방수가 되는 주머니에 여벌의 승마복과 속옷, 수건을 챙겨서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이따금 간단한 간식도 챙겼다. 전에 플로리아가 가르쳐 준, 온천욕을 하면서 먹는 간식은 꽤 즐거운 맛이었기 때문에.

“진짜, 크레이머 기사단의 기사들 장난 아니에요.”

“왜요?”

“저도 실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긴 아예 차원이 달라요.”

“아, 전에 그런 얘긴 들었어요. 공작령의 기사들은 마수를 상대하기 때문에 전술이나 검술 형태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예. 저도 머리로는 알았는데……. 나중에 꼭 마수 토벌에 참가해 보고 싶더군요.”

루퍼트는 다행히 큰 텃세 없이 크레이머 기사단에 잘 녹아든 모양이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강한 기사단 수준에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음번 토벌에는 그럼 한번 나가볼래요? 공작님께 말씀드리면 될 것 같은데.”

“그럼 사이나 님 호위를 못 하지 않습니까.”

“그땐 다른 기사님이 해주시겠죠, 뭐.”

루퍼트 경보다야 편하지는 않겠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는 일이다.

“크레이머령에서 제대로 된 호위를 하려면 마수 상대하는 법도 배우긴 해야 맞는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려나요?”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언제나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 좋으니까요.”

“캬앙, 컁!”

갑자기 욜리가 달리던 몸체를 돌리고는 그들을 향해 짖었다. 눈을 매우 빛내면서…….

근데 이번 건 해석이 잘 안 되는데?

“욜리?”

“컁! 캬아앙!”

“만약을 대비해야 하는 게 맞다고?”

“캬옹!”

“이거 아니야? 음, 빨리 가기나 하라고?”

“캬옹!”

“……이번 건 너무 어렵다. 모르겠어.”

“캬악!”

이건 알겠다, 이 자식아.

뭔지는 몰라도 마구 짜증을 낸다는 것만큼은.

“저 녀석 진짜 희한하네요…….”

“…….”

온천행 몇 번에 루퍼트는 욜리의 비범함을 엄청나게 많이 경험하고 말았다.

“저기 드나들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아, 다 왔네요.”

호수에 도착했다.

루퍼트의 호위는 여기까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이상의 호위가 불가능했다.

처음에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호수 중앙 비밀의 섬에 사이나와 욜리는 들어갈 수 있는데 루퍼트는 가능하지 않았다.

“진짜 안에 아무런 인기척이나 생물체의 흔적이 없는 거 맞죠?”

“네. 그냥 오래된 유적이에요.”

“저는 왜 못 들어가는 걸까요, 근데?”

처음에 사이나는 섬으로 들어서는 경계에 있는 보이지 않는 막이 그저 눈가림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루퍼트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출입 가능한 기준이 있는 일종의 결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크레이머 공작부인이 된 거랑… 관련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크레이머령에 남은 유적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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