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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58화 (158/233)

158화. 근육이 난무한 축제

어쩐지 그 심각할 정도의 진지함이 상황과 맞지 않게 너무 웃겨서, 사이나는 푸흡,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요, 그런 거 싫어하세요?”

싫어하고 말고가 있을까. 그런 분야(?)에 대한 호불호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긴, 주인님 자체가 워낙 훌륭하시니… 보나마나긴 하겠네요.”

“…….”

갑자기 콘스탄틴이 왜 나와…….

‘물론 그의 근육은 훌륭하지만…….’

훌륭하기 짝이 없지만…….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호출된다.

가운 너머로 선명하게 드러나던 굴곡. 꽉 짜인 형태로 조금만 힘을 줘도 움찔거림이 분명하던 그 형태들이…….

“…….”

어쩐지 광대 근처가 달아오르는 기분이라 사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부릅뜨며 잔상을 털어버렸다.

‘어차피 만지지도 못할 거……!’

심적으로 더 해롭기만 하다.

“좋은 의견이네. 참고할게.”

“네. 근처에 훌륭한 근육이 있으셔서 감흥은 크게 없으시겠지만, 바람이라도 쐴 겸 구경 가시는 것 추천드립니다.”

“…….”

어딘지 모르게 므흣한 표정으로 다리엘이 끄덕거리며 편지 봉투를 품에 안아 들었다.

“그럼 전 이 편지들 보내러 가볼게요.”

“음, 그래.”

아무래도 모레는 다리엘에게 꼭 휴가를 줘야 할 것 같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즐거운 축제를 꼭 즐길 수 있도록…….

* * *

일주일간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바깥 축제와 별개로 크림성 내부는 조용했다.

사이나는 축제와 상관없는 사람처럼 일상의 일들을 소화했다.

공작부인의 소관인 결재 서류들을 검토하고 번역에도 매진했다.

저녁엔 공작의 방으로 건너가 등짝을 관찰하고 옮겨 적었다.

나름 알찬 일과였다.

머릿속이 자꾸만 살색으로 점령되는 것만 빼면.

‘……하아.’

매일 밤 일어나는 등판 관찰기(?)의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게 혹시… 사람들이 말하던 욕구 불만이라는 건가?’

사이나는 본인에게 이런 쪽으로 욕구가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이제는 그게 ‘불만’인가 의심까지 하고 있으니…….

탁!

확실히 ‘불만’ 어린 태도로 사이나가 손에 쥐고 있던 깃펜을 집어 던졌다.

‘바람. 바람을 쐐야겠어.’

답답한 마음이 가슴에 꽉 들어차는 기분에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뭐가 좋을까. 산책? 승마? 외출?

그러다 갑자기 떠올랐다.

‘축제는 야시장이 진리 아닙니까!’

아직 바깥은 축제 기간이라는 것을.

‘오늘은 외출이다.’

사이나는 당장 하녀를 불러다 루퍼트에게 전언을 보내도록 했다.

얼마 뒤 사이나는 최대한 평범해 보이는 차림새를 하고 크림성을 나섰다.

“경. 검을 그렇게 대놓고 차면 너무 호위 기사 티가 나잖아요.”

저 상태로 같이 다녔다가는 영지민들이 그녀의 정체를 다 알아채고 말지도 모른다.

“전 기산데 그럼 검을 어떻게 찹니까.”

“오늘만 안 차면 안 돼요?”

“검사가 검 없이 어떻게 싸우라고요?”

“축제라고 해봐야 영지민들이 대다수일 텐데…….”

“그래도 안 됩니다. 이건 제 일이고, 사이나님의 안전에 관한 사항에 도박을 걸 수는 없습니다.”

하긴, 검사에게 검 없이 나가면 안 되냐고 물은 자신이 잘못이다.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말이니까.

자신의 안위에 대한 문제는 전처럼 굴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 사이나는 납득했다.

“알았어요. 대신, 나란히 말고 좀 떨어져서 와요.”

“엣, 아가씨…!”

“하녀 한 명 더 데려갈게요.”

적당한 하녀가 누가 있을까 고민하며 다시 성으로 들어가려는데, 때마침 다리엘을 만났다. 하녀 둘을 대동하고 나오던 중으로 보였다.

“마님! 이렇게 단출하게 나가세요?”

“응? 아니, 하녀 데려갈 거야.”

“혹시 축제 구경 가시는 거예요?”

“어? 응.”

“안 가신다더니? 그럼 저랑 같이 가요!”

다리엘이 꼭 구경 가야 한다고 하던 날이 혹시 오늘이었나?

어쨌든 마침 잘되었네.

“수행인도 없이 이렇게 나가시면 안 되죠!”

안 그래도 부르러 가던 참이야…….

“그리고 혼자 구경하는 것보다 여럿이서 봐야 재밌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저랑 나가는 거 싫으신 건 아니죠?”

“응. 나도 좋아.”

다리엘이 배시시 웃었다.

“후드는 잘 챙겨 입으셨네요.”

다리엘이 사이나가 입고 있던 후드 망토의 모양을 반듯하게 잡아주며 말을 덧붙였다.

“저번에 낮 행차로 분명 마님 얼굴을 알아보는 주민들이 있을 거예요. 마님의 머리색이나 눈 색은 이쪽 지역에서는 흔하지 않기도 하고요.”

황도 쪽도 완전히 검은 머리는 그리 흔치 않았다. 희귀성만으로 미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알았어. 그럼 가자.”

사이나는 루퍼트를 뒤로 달고 다리엘과 함께 외성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천천히 거리로 나섰다. 등롱들이 잔뜩 달려 해가 진 이후에도 사방을 밝히고 있는 활달한 곳으로 진입하자, 사이나의 기분도 점차 들뜨는 것 같았다.

“저건 뭐야?”

그렇게 걷고 있는데 한쪽에 사람이 길게 줄을 서서 북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뜨였다. 보아하니 길거리 좌판 같았다.

“아, 저거 영주민들이 좋아하는 간식이에요. 하나 드셔 보실래요?”

사이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가 약간을 기다려 꼬치 한 뭉치가 든 봉투를 사서 가져왔다. 다리엘이 그것을 받아 하나는 사이나의 손에 쥐어주고 자신도 하나 먹었다. 나머지는 하녀들이 먹었다.

“와, 이거 맛있다.”

영지에서 나는 구황 작물을 얇게 썰어 구운 뒤 꼬치에 꽂고 알 수 없는 소스를 바른 것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먹을 만했다.

“네. 포만감도 있고 맛도 괜찮죠? 약간 맛이 자극적이기는 하지만 이럴 때나 먹을 수 있는 거니까요.”

다리엘은 킥킥거리며 꼬치 하나를 얼른 해치웠다.

“마님, 이제 저쪽으로 가요!”

“응?”

꼬치를 다 먹기가 무섭게 다리엘이 사이나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었다.

“우와아아-!”

“토미 멋있다아!”

다가가는 방향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뭔가 큰 행사가 열리는 중인가 보다.

“아, 벌써 시작했나 봐요!”

가까이 가서 보니 이쪽 구경꾼들은 다른 곳에 비해 여성의 비율이 좀 더 높았다.

“꺅, 마님! 얼른 이쪽으로 오세요.”

다리엘은 ‘마님’이라는 글자를 작게 말하기는 했지만 얼른 오라는 말에 조급함이 실려 있는 것을 보니, 전에 보고 싶다고 했던 행사가 이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전체적인 말투나 과하게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봤을 때 엄청난 기대감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이 대회인지 경합인지가 열리는 전면 쪽을 보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 크림-테이머 타운 최고의 상남자는 누구인가! 다음 우승 후보는 방앗간 집 둘째 아들입니다! 듬직한 한스으! 저 두툼한 팔뚝을 보십시오!”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한 남자가 한 걸음 나와 자신의 이두박근과 복근에 힘을 주어 선명한 굴곡을 드러내면서 씨익 웃었다.

“꺄악! 한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들렸다.

무대 위 남자들은 죄다 상의 탈의 상태였다.

‘음……. 이런 거였구나.’

잘은 몰라도 한 근육(?) 하는 남자들만 나온 것 같았다.

기사들과 달리 평민들이라 그런지 생활 근육 쪽으로 단련된 형태가 많은 것 같았지만, 확실히 영지민 전체의 영양 상태가 나쁘지 않음을 보여주는 반증처럼 보였다. 상당히 몸 좋은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 좋은 것을 군마의 크기라든가, 갑옷의 거대함 등으로 넌지시 알리는 귀족 세계와 달리 평민 쪽은 직설적이었다.

직설적이기에 적나라했고, 적나라하기에 확실히 자극적인 면이 있었다.

“어때요? 볼 만하죠?”

소곤소곤 물어오는 다리엘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마님께서야 물론 백배는 훌륭할 것이 분명한 우리 주인님의 몸을 매일 밤 보셔서 별로 감흥이 없으시겠지만…….”

“…….”

다리엘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자꾸 자동적으로 특정 이미지들이 호출되고는 했다.

콘스탄틴이 가운을 벗으며 제게로 몸을 기울이던 모습이라든가, 침대 위에서 잡을 곳이 없어 그를 붙잡을 때마다 손바닥 밑에서 꿈틀대던 근육의 형태 같은 것들이.

자신의 제어 영역을 벗어나 갑작스레 재생된 은밀한 기억들이 매우 불만족스러우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것도 재밌잖아요.”

다리엘은 웃으며 입을 가렸다.

“오, 저기 무두장이 집 남자가 생각보다 빠르네요.”

“그러게. 발이 빠른가 봐.”

어느새 대회 참가자들의 소개가 끝나고 경합이 시작되었다.

“한스와 토미가 막상막하입니다! 오! 토미가 조금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와아!”

“자자! 들어온 참가자들은 이쪽 술통을 들고 저쪽까지 들고 뛰는 겁니다! 아이고, 이런! 토미가 술통을 들다 삐끗한 사이에 다시 한스가 치고 올라오는군요!”

커다란 술통을 들고 참가자들이 정해진 구획을 열심히 돌았다.

불끈불끈한 근육들 위로 땀이 흐르기 시작하자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환호성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나름 흥미진진하잖아?’

살색이 난무한 대회의 모습에 민망했던 것도 잠시, 사이나는 어느새 몰입해서 앞을 주시 중이었다.

근육도 근육이지만 경합 자체만으로도 꽤 볼거리가 되었다. 어느새 사이나는 나름 우승자를 점치기까지 하며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자자! 힘내세요! 마지막 바퀴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바퀴는 여성 안아들고 뛰기입니다! 평소 마음에 든 처녀가 있습니까? 남자다움을 어필하고 싶었던 여성이 있습니까? 이때가 기회입니다!”

“와아아아-!”

“어머! 세상에!”

이번엔 남성과 여성의 환호성이 비등했다.

“수잔! 수잔!”

보아하니 저 앞쪽에 수잔이라는 여성이 인기가 좋은 모양이다.

여러 명이 다가가 그녀에게 구애하기 시작했다.

“오늘 처음 본 여성인들 뭐 어떻습니까! 용기를 내어 다가갑시다! 다만 여성이 허락을 해야만 안고 뛸 수 있으니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요청에 유의하세요!”

1등으로 들어왔어도 여성이 거절해버리면 순식간에 꼴등이 될 수도 있는 구조였다.

상상도 못 했던 과제에 사이나가 입을 벌렸다.

여성을 안고 뛰다니. 평민들은 자유 연애를 많이 한다더니 이런 것도 가능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어머, 주점 막내아들이에요.”

등 근육이 예쁘다며 다리엘이 아까부터 눈여겨보았던 참가자다.

어째서인지 그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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