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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57화 (157/233)

157화. 황도로부터 온 놀라운 소식

갑자기 그런 의문과 걱정이 든다.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같아서는 크레이머가에 다음 후계자가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바깥에서 애를 봐올 생각인가?’

아니다. 그럴 사람은 아니다.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성향도 그렇고, 맥락 없이 부인을 그렇게 배신할 만한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양자?’

양자를 들여도 계승이 되나?

황가만 해도 혈통을 통해 맹약의 특성이 계승되는데, 공작가라고 해서 다를까?

대대로 내려온 저 백색의 머리카락 자체가 크레이머가의 상징이나 다름없으니, 혈통은 분명 중요할 것이다.

‘그럼 대체 어쩌려는 거지?’

대를 끊어버릴 생각인가?

4대 공작가가 그럼 3대 공작가가 되겠네. 북동 지역은 완전 아수라장이 될 거고. 제국의 지도가 바뀌겠는걸?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이어가며 사이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사이나?”

어느새 그녀 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콘스탄틴과 눈이 마주치자 사이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네, 네?”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에요. 잠시 딴생각을 했어요.”

“…….”

사이나는 몸의 자세를 바로 잡으며 주변을 진지하게 다시 돌아보았다.

공작 내외를 향한 주민들의 환영 어린 얼굴에 조금이나마 가짜의 기색은 없나? 단순히 축제 분위기에 취해 지금만 밝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공작 부부를 옹위한 기사단의 존재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있지만 꽃비를 뿌려대며 환하게 웃는 얼굴들은 아무리 봐도 가짜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콘스탄틴 한 사람이 저 많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울게 할 수 있다. 절망에 빠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나는 아니다. 한때 홀랜더령의 주민들을 전혀 나아지게 하지 못했던 것처럼, 여전히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같은 시간을 두 번 산다고, 능력이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미숙했고, 순간 대처 능력이나 사교성에 있어서도 전혀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성향은 사실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깊은 뿌리 같은 것이라, 같은 시간을 반복해 산다고 해서 많이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니 고민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저 웃는 얼굴들을 위해서라도.’

환영에 보답하는 것.

지금 사이나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것.

그녀는 슬쩍 그의 손을 잡았다.

물론 둘 다 장갑을 꼭꼭 낀 손이라 서로의 체온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오랜만의 접촉. 그의 몸이 움찔 굳는 것이 느껴졌다.

“영주민들에게 이 정도는 보여줘야죠.”

잡은 손을 위로 들어 보이며 사이나가 미소 지었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영주 부부의 모습에 주민들이 더 큰 함성으로 보답했다.

옅은 그녀의 미소를 콘스탄틴이 뚫어져라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한동안 사이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열심히 손을 흔드는 데에 열중했다.

* * *

퍼레이드가 끝났다.

한 거라고는 마차에 앉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 것이 다인데, 묘하게 피곤했다.

사이나는 영지 중앙령을 다 돌고 크림성에 복귀하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졌다.

“아니, 이 녀석은 또 어디 간 거야.”

욜리는 또 외출하고 없었다.

밤이 되면 꼬박꼬박 돌아오기는 해서 그러려니 하는데, 매일 대체 어딜 그리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러다 또 어디서 잠들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전적이 있다 보니, 괜한 걱정이 자꾸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마님, 잘 다녀오셨어요?”

“아, 다리엘.”

“욜리 녀석은 왜 안 보여요?”

전에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다리엘은 욜리의 안부를 철두철미할 정도로 챙기기 시작했다.

녀석이 낮마다 안 보인 지는 꽤 되었음에도 다리엘은 매일매일 같은 질문을 했다.

“음. 평소처럼 낮 마실 갔어. 밤 되면 오겠지.”

“매일같이 어딜 가는 건지 궁금하네요.”

그러게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미행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 날쌘 녀석을 몰래 따라가는 것이 성공할 리가 없었다.

그러니 별수 없다. 그저 궁금해하며 녀석의 무사 귀환을 매일 비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황도로부터 서신이 잔뜩 왔어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기분에 잘되었다. 지인들의 편지라도 읽으면 좀 나아지겠지.

사이나는 다리엘이 전해준 편지 꾸러미를 반색하며 받아들었다.

“황녀님이시네.”

가장 앞에 있는 황금색 봉투를 보며 사이나가 옅게 웃었다.

황녀로부터 꾸준히 서신이 도착할 때마다 사이나는 새삼스레 놀라웠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사적으로 친교를 다질 수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단발성 서신의 교류 수준은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우리 친해요.’라고 말해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편지를 주고받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이나는 웃음을 숨길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는 황녀가 점점 덕심을 대놓고 드러내곤 했기 때문이다.

[……아니지, 뭐니 뭐니 해도 할콘이 날개를 펴며 날아오를 때 그 모습에는 비할 수 없다네.

내가 그 모습을 처음 보았던 열다섯을 생생히 기억하네. 숨이 멎는 듯했지 뭔가.]

그러면 사이나는 이렇게 응대하고는 했다.

[할콘이 날아오를 때, 맞아요. 정말 멋있죠.

하지만 에렌혼의 우아함에 빗대면 또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하이얀 갈기가 사르르 날리듯 움직이며 날개를 펼쳐 올릴 때면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물론 이것은 에렌혼의 진면목을 알게 되기 전에 썼던 표현으로, 이제는 저렇게 맹목적으로 칭송할 수 없었다.

‘…변태일 줄은 몰랐지.’

지금도 그녀의 목뒤를 핥던 느낌을 떠올리면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그 밖에도 집에서 온 편지와 키얼스틴, 에비앙, 플로리아의 편지가 있었다.

플로리아는 그렇게 사이나가 급히 떠나고 나서 요즘 괜찮냐는 안부를 물어왔다.

사이나는 남편이 걱정되어 급히 귀성했으나 지금은 괜찮다고 답장했다.

그러고 보니 먼저 편지를 썼어야 하는 건데…….

무례했다는 생각에 더 미안해졌다.

그리고 다음 편지.

에비앙은 현 황도와 사교계 근황을 많이 적어서 보내는 편이었는데 이번 편지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적혀 있었다.

[……이번에 헤베타가 거의 정해졌나 봐. 아직 발표는 안 났는데 전에 너랑 친분 있던 발데즈가의 삼녀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 같아. 발표가 나면 의견이 분분할 것 같…….]

엘리자베스가… 헤베타?

“이게… 말이 돼?”

발데즈가가 세가 약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황도를 기반으로 하는 중앙 귀족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헤베타라고?

아직 발표는 안 났다지만 에비앙이 서신에 적었을 정도면 확실한 내용일 것이다.

이전 생에서 엘리자베스는 황자와 아무런 연고도 없지 않았나? 어째서?

왜 흐름이 이런 식으로 변한 거지?

‘…설마 엘리자베스의 남편이었던 남자와 내가 결혼해서?’

그래서 미래가 뒤틀린 건가?

갑자기 전에 얼핏 보았던 엘리자베스의 눈빛이 떠올랐다.

쭈뼛할 정도로 차갑던 그 눈빛. 얼핏 생각하면 자신을 증오한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대체 왜? 혹시 그녀는 사실 이맘때부터 이미 콘스탄틴을 알고 마음에 두었던 걸까? 갈 곳 없는 마음이 틀어져서 황자에게로?

단순한 계약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뭔가가 더 있었던 걸까?

‘거기다 황자…….’

마지막 만남을 생각해보면 사이나에게 좋은 감정이 남아 있을 리가 절대로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둘이 부부가 되면…….

심지어 황제와 황후가 되기라도 한다면…….

“…….”

하아. 인생이란 알 수가 없다.

뭐 하나 해결했다 싶으면 다른 게 터진다.

미래를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사이나의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소식이었다.

결국 거기에 남은 것은, 미약한 한 사람일 뿐이다.

여러 정보를 가지고서도 자신의 삶의 방향 하나 틀기 어려운.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그런 사람.

“답신 다 쓰시면 저 주세요.”

상념에 붙잡혀 가라앉던 중에 다리엘이 말했다.

“아, 응. 알았어.”

다리엘의 환기 덕분에 사이나는 겨우 자괴감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머지 서신들을 다 살핀 후 답장을 쓰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 후, 서신 작업을 끝낸 사이나가 봉투 여럿을 다리엘에게 넘겼다.

다리엘은 그것들을 잘 갈무리하고는 바로 밖으로 나가는 대신 사이나에게 물었다.

“마님, 저녁때는 안 나가 보실 거예요?”

“음?”

저녁때? 어딜 나가?

“축제는 야시장이 진리 아닙니까!”

외출복을 벗고 슬슬 퍼지기 위해 준비하는 사이나에게 다리엘이 의견을 표출했다.

“아까는 공무 목적으로 한 바퀴 돌고 오신 거니까 당연히 재미없겠지만, 따로 나갔다 오심은 어떠세요?”

“으응?”

“저희 영지 봄 축제 나름 알차고 재밌어요.”

무의식적으로 이번 축제는 ‘영주 부인을 소개하는 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그랬는지, 자신이 가서 놀 수도 있는 자리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뭐가 재밌는데?”

“신기한 주전부리도 많고- 아, 마님은 안 드시겠지만요.”

나 그렇게 입맛 까다롭지 않은데?

델본령에 열리는 축제에도 아버지 몰래 유리랑 나가서 온갖 것을 다 사 먹고는 했었다.

“방랑극단도 오고 재밌는 내기 대회 같은 것도 많이 열려요.”

음? 다른 곳의 축제랑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특히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행사가 있죠.”

절대 놓치면 안 되는 행사라…….

봄 축제면 보통 꽃과 관련된 이벤트가 많던데, 여기도 그런 종류일까?

“음…. 다리엘?”

그런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사이나의 예상이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리엘이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굉장히 음흉하게 웃었다.

“헷. 오늘은 아니고 마지막 날에 열리는 행사인데, 크림-테이머령 최고의 상남자를 뽑는 대회예요.”

드보프가의 중앙령이 ‘델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크레이머의 중앙령 또한 ‘크림-테이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상남자? 그건 무슨 기준이래?”

“그건 약간, 흥행성 기준이 커요.”

다리엘이 다시 킥킥거리며 덧붙였다.

“얼굴도 좀 잘나야 하고, 몸도 좋아야 해요. 웃통을 다 벗고 통나무 매기, 오크통 옮기기 등을 하는 거라서 볼거리가 상당하거든요.”

“…….”

“오크통 다 옮겨도, 근육 부실하고 못생기면 절대 우승 못 해요. 그게 바로 ‘상남자’죠.”

마지막 말은 사이나에게만 특별히 알려준다는 듯, 귓가에서 속삭이기까지 했다.

“마님.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다리엘의 표정은 정말로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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