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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52화 (152/233)

152화. 자각의 순간

‘그녀는 괜찮은 게 아니었어.’

그러니 그녀의 목숨을 걸고 제 이기심만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을 미워할지라도(그건 정말 괴로운 일일 테지만), 그녀가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또 이렇게 제 품에 있고…….

‘칼리고, 이 새끼…….’

콘스탄틴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피를 하도 빨려서 몸이 으슬으슬했었다. 냉골에서 죽어가는 것 같은 느낌으로 기절했던 것이 마지막 남은 기억.

잘은 모르지만 그녀가 또 그를 도와준 것 같았다.

그간 피를 보지 못한 것을 이때다 싶게 만회라도 할 참이었는지, 제 피를 아주 쪽쪽 빨아 흡수해대던 칼리고 새끼의 탐욕스러움에 소름이 끼쳤다.

아예 상처까지 비틀어가며 피가 멎지 못하게 수작을 부리던 새끼였으나, 문제는 그 새끼를 제지할 기운이 없었다.

아주 작정하고 한껏 처먹던 모습이 탐욕스럽기 짝이 없었다.

평소라면 더 신나서 지껄여대고 난리도 아니었겠지.

하지만 칼리고의 목소리는 잠잠했다. 사이나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닿아 있는 시간이 자신의 수명을 깎아 먹는 짓이라는 것을 그녀가 알면…… 과연 제 곁에서 이렇게 평온하게 잠이 들어 있을 수 있을까.

콘스탄틴의 얼굴에 깊은 자괴감이 어렸다.

“헉.”

상념 중 그가 깜짝 놀라 흠칫 몸을 굳혔다. 품 안에 있던 그녀가 자신의 허리를 감아 더듬어 당기며 제 가슴팍에 입술을 묻은 것이다.

뜨거운 숨결이 가슴을 간질이고, 작은 손이 제 등을 더듬는다. 아찔한 감각에 온몸의 털이 삐쭉 솟는 기분이었다.

겨우 죽여 놨던 하반신이 다시금 벌떡 일어난 것은 물론이었다.

“으응.”

돌겠다. 이 대책 없이 착해빠진 여자는… 항상 그를 돌게 만들었다. 의도 없는 손길이나 눈빛에도 항상 미쳐서 달려들게 되곤 했다.

그런데 이리 굴면…….

저도 모르게 뻗어 나갈 것 같은 손을 제어하기 위해 콘스탄틴은 있는 힘껏 아귀에 힘을 주며 주먹을 쥐었다.

투둑. 팔뚝 뒤쪽에서 상처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래. 어제 치료를 안 했…….’

콘스탄틴은 팔을 들어 상처를 살피려다 멈칫했다.

머릿속에 이상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사이나가… 제 상처 위로 발간 혀를 내어 핥던…….

‘…꿈인가?’

아니면 망상? 정말 돌아버린 걸까? 설마 진짜 있었던 일은 아니겠지.

하아. 진짜든 망상이든. 방금 그 장면은 또다시 그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품 안의 여체를 열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부채질했다.

‘한계야.’

조금만 더 자극이 더해졌다가는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콘스탄틴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허리를 감은 얇은 팔을 잡아 빼냈다. 손바닥 안에 닿는 피부의 느낌이 좋아 그 행동은 매우 속도가 느렸지만, 이대로 계속 있을 수는 없다.

결국 놓아 주어야 할 감촉이다.

“…야아악!”

그런데 갑자기 사이나가 벌떡 깨어 일어나서는 외쳤다.

“…….”

아직 그녀의 팔이 자신에 손안에 잡힌 상태. 둘은 그 묘한 대치 상태를 인지하며 서로의 시선을 마주했다.

“……놓아 주려던 참입니다.”

“네? 아, 제 팔이요?”

콘스탄틴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슬쩍 그녀의 팔을 놓았다.

툭. 떨어지는 그녀의 팔이 마치 그와 그녀의 단절처럼 느껴진다. 그는 침음을 삼켰다.

“약! 약을 바르고 잤어야 하는데!”

아까 단말마를 외치면서 깨어난 것이 약 때문이었나. 이런 상황에서조차… 참으로 성실한 여자가 아닌가.

“어디 있어요? 그 물약 있잖아요. 녹푸른 색 포션이요.”

“…침대 옆 협탁 서랍에 있을 겁니다.”

사이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더니 물약을 가져왔다.

“팔 들어봐요.”

“…예?”

“얼른요. 대체 뭘 어쨌기에 이런 상처가 난 거예요? 마치 누가 일부러 그은 것 같던데. 마수에게 다친 거 맞아요?”

상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녀가 보아도 이상하긴 했나 보다. 하긴 양 팔뚝에만 길게 그어져 있으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할 테지.

직접 약을 찾아와 발라주려는 배려는 고맙지만, 더 이상 그녀와 닿아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가느다란 이성의 끈을 겨우 잡고 있는데, 지나친 자극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이 상처만 보면 떠오르는 그녀의 혀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는 동안은 더더욱.

“…이리 주십시오.”

“네?”

“내가 하겠습니다.”

묘하게 경직된 자세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그를 보더니 사이나의 표정이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시… 나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라도 들었나 보죠?”

“…….”

“어젯밤엔 완전 반대였으면서.”

…대체 내가 뭔 짓을 했을까.

기억이 없는 게 안타까우면서도, 알아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미안합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공작님은 제정신이 아니실 때만 절 찾으시네요.”

“…….”

현실이라면 일어날 리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만성적인 불면의 여파는 상당했다. 특히 어제는… 진짜 큰일 날 뻔했으니.

“그럼… 저한테 고백한 것도 기억 안 나세요?”

…뭐? 순간적으로 그는 얼음처럼 굳어졌다.

고백? 무엇을? 내 입으로 다 털어놓았다는 건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자신의 모습을 사이나가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도무지 표정을 필 수가 없었다.

끝이다. 끝이야.

마치 누군가 몸을 굳혀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콘스탄틴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저한테…….”

“…….”

“털어 놓으셨잖아요.”

대체 뭘? 칼리고를? 비밀을?

차마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 없어 침음을 삼켰다.

“당신이 저를…….”

죽이고 있다고?

“좋아한다고요. 사랑스럽다고.”

“…….”

좋아…… 뭐, 뭐? 사… 랑?

고백이 그 고백이었나? 내가, 사이나에게?

콘스탄틴은 호흡초차 멈추는 것 같았다.

석상처럼 굳은 상태의 그를 뭔가 이상한 눈으로 보던 사이나가 내뱉듯이 말했다.

“어휴. 농담이에요.”

“…….”

“우리가 닿으면 안 된다는 거, 충분히 납득했으니까 이거 가지고 날 세우지 않을게요.”

“…….”

“약은, 등도 아니고 팔이니까, 그래요. 혼자 바르실 수 있죠?”

“…….”

“그럼 저는 이만, …콘스탄틴?!”

투두둑.

“…왜, 왜 그러세요?”

사이나의 손이 자신의 얼굴 근처까지 왔다가 멈칫했다.

그의 눈에서 갑자기, 굵직한 눈물방울들이 쏟아져 내렸기 때문에.

“노, 농담이 심했죠? 미안해요. 그냥… 기억을 못 하시는 것 같아서, 심술이 나서….”

아아. 그렇구나.

그저 자신을 사람답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 곁에 있고 싶다고 생각한 줄 알았다.

칼리고를 잠재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소유욕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했다.

안달이 나고, 보기만 해도 조급해지고, 자꾸만 닿고 싶어지는 모든 감정들이…… 그저, 처음인 여자라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알아버렸다.

덕분에, 제 마음을.

앞으로 닿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을 이 마음을.

절대로 전해서는 안 될 이 마음을.

자각의 순간은, 기쁘다기보다는 괴로웠다.

* * *

“하아.”

사이나의 한숨에 또다시 사용인들이 조용히 움찔하며 눈치를 보았다.

그녀는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다가 회상에 잠긴 참이다.

콘스탄틴이 울었다.

파르란 눈동자에서 알알이 쏟아지던 눈물은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을 처연하게 만들며 그녀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왜. 왜 울었을까.

그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솔직히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상냥할 때는 상냥하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매우 냉랭하고 남자다운 사람이니까.

‘…내가 너무 괴롭게 했나.’

기본적으로 비밀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너무 압박을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인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콘스탄틴에게 비밀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이나는 이미 꽤 많은 사실을 추측하고 있었다.

칼리고의 존재라든가. 또 그가 왜 자신을 밀어내는지…….

후자는 사실 어젯밤 그가 중얼거리던 독백으로 추측하게 된 거긴 하지만 말이다.

‘나와 닿으면 안 돼…….’

‘아니, 가지 마……. 아니, 가야 해. 아니, 이러면 안 되는데…….’

콘스탄틴은 어젯밤 그녀가 치료를 하러 들어왔다가 있었던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

비몽사몽간이라 기억을 못 하는 것이거나, 기억을 하더라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어젯밤 그가 약해진 틈을 타서 이것저것 물었다. 반칙성으로 정보를 캐내는 느낌이라 매우 찔리기는 했지만, 도무지 그 유혹을 이기기가 힘들었다.

‘왜요? 춥잖아요. 이렇게 안고 있어요.’

‘그대가 있으면 안 추워…….’

‘나도 안 추워요.’

‘정말? 하지만 다들 춥다고 했는데…….’

‘괜찮은걸요.’

‘유모도 처음엔 괜찮았어…….’

유모 이야기가 나오자 대충 무슨 사정인지 알 수 있었다.

콘스탄틴은 자신 때문에 유모가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나는?’

의도적으로 속인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가 뭔가 계기를 통해 생각이 바뀐 것 같다.

그의 태도가 변한 것이 대략…… 욜리 실종 사건 이후인 것 같으니, 잘은 몰라도 그즈음에.

‘그가 말하는 게 진짜라고 가정해 보자.’

최악의 상황으로 볼 때 그녀 역시 유모처럼 아프게 되는 거겠지.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유모가 지금 당장 세상을 뜬다고 해도 전생의 사이나보다는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유모라는 직책상 콘스탄틴의 어린 날부터 함께한 것일 테니, 그래도 꽤 긴 세월을 이미 살아오지 않았는가.

반면 사이나는 어떤가.

‘만약 내가 죽었던 그 이름 모를 병에 또 걸린다고 치면…….’

그때의 그 병은 당시 사이나가 워낙 고생을 많이 했고 스트레스 역시 심했으니 걸렸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이번 생엔 안 걸릴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사이나도 장담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 가정이 틀렸다면…….’

사이나의 수명은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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