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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51화 (151/233)

151화. 대체 지난 밤 무슨 일이

‘내 베개 아니야?’

아까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베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는 아기들이 곰인형을 안고 자는 것처럼 사이나의 베개를 꼭 안고 있었다.

‘왜 내 베개를…….’

사이나는 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냉랭하게 굴 때는 언제고, 몰래 그녀의 베개를 가져다가 이리 안고 잔단 말인가.

‘이상한 남자.’

도무지 그 속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그는 피투성이였고, 그 피의 진원지를 찾아야 했다.

사이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툭. 바닥으로 떨어진 재킷 외에 안쪽에 셔츠가 하나 더 남았다. 다시 가위를 들어 셔츠마저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다 잘린 셔츠를 들추자 등판에 빼곡한 문양이 드러나는 것이 보였다.

전에 보았던 것보다 어쩐지 색이 진한 것처럼 느껴졌다.

‘…착각인가?’

벽난로의 불길이 일렁이며 벽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이나는 그에게 닿지 않게 조심하며 셔츠를 뒤에서 앞으로 천천히 벗겨냈다.

그런데 재킷과 달리 셔츠는 팔꿈치 아랫부분에 난관이 있었다. 피가 엉겨 피부와 눌어붙어서인지 잘 떨어지지 않았다.

사이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팔에 감았다.

가져왔던 탕파도 침대 곳곳에 배치해 묻었다.

물기를 흡수해서 녹아내린 핏자국을 닦아낸 뒤 사이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셔츠를 팔에서 빼내었다. 다행히 피부에서 떨어지며 벗겨낼 수 있었다.

“…세상에.”

하지만 옷을 벗기자 드러난 상처는 참담했다. 팔목과 팔꿈치 사이. 문양이 있는 부위를 누가 칼로 직직 그어놓은 것처럼 살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다친 게 언제인데 아직도…….

설마 지혈이 잘되지 않는 병이라도 있는 걸까.

지독한 상처를 보니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왔다.

이 남자는 겉으로 보기에나 그럴듯하지, 알면 알수록 일개 자작보다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동안 이런 상처를 무수히 많이 입었겠지?

잘 살펴보면 오래된 흉터는 있는데, 그것과 문양을 빼면 피부가 깨끗했다.

거의 전장에서 살다시피 하는 삶의 비율을 따져볼 때, 이건 아마도 그 포션 덕분 아닐까.

공작이 그녀에게 주었던 그 녹푸른 물약. 그게 없었다면…….

‘그러고 보니 그걸로 치료했으면 금방 했을 텐데.’

잠시 약을 바를 시간도 없이 쓰러져 기절한 건가. 그렇다면 실은 지금 굉장히 위험천만한 상황?

사이나는 잠깐 그를 심각하게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괜히 그의 코밑에서 숨결이 오가는 것을 확인해 보았다.

하아. 어쩐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치료를 위해서니까…….’

그가 그녀와 닿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지금은 별수 없다. 최대한 직접적인 접촉이나마 피하는 수밖에.

사이나는 그의 팔뚝에 엉긴 핏자국을 뜨거운 물을 적신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냈다.

‘……?’

그러나 결국, 핏자국이 지워진 상처에 그녀의 손이 닿고 말았다. 상처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누가 일부러 상처를 벌리고 있는 것처럼 벌어져 있어서 무심코 손을 댔는데 갑자기 상처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

깜짝 놀란 사이나가 얼른 수건으로 감싸며 피를 흡수했다.

어떻게 하지?!

그녀가 만져서 상처가 악화가 된 것처럼 보인다.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심장이 서늘해졌다. 이래서 그가 자신과 닿으면 안 된다고 한 걸까.

사이나는 조심스럽게 수건을 떼어냈다. 그런데 아까와 달리 상처가 닫혀 있었다.

‘…악화된 게 아닌가?’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닫힌 상처에서는 아직도 방울방울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사이나는 그 상처에 제 혀를 가져댔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상처를 길게 핥았다.

그리고는 스스로 흠칫했다.

‘미쳤나? 내가 왜 그랬지?’

얼굴이 홧홧해지는 기분에 얼른 얼굴을 뗐지만 그렇다고 제가 한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날카로운 종이에 손가락이 베여 피가 날 때면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입 안에 넣고 쪽쪽 빨던 기억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

그런데 다행인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정말 피가 멎고 있었다.

‘한 번 더?’

길게 그어진 상처마다 살짝살짝 핥았더니 묘하게 일그러져 있던 자상들이 예쁘게 붙기 시작했다.

피맛은 비릿했지만, 육안으로 괜찮아져가는 것을 보니 충분히 먹을 만했다.

한쪽 팔을 끝낸 사이나가 콘스탄틴을 밀어 눕혔다.

정자세로 눕도록 한 뒤 반대쪽 옷도 벗기기 시작했다. 누운 등 쪽의 옷이 깔려서 아까보다는 벗기기가 힘들었다.

아까보다 가위질을 더 여러 번 해야 했다.

겨우 드러난 상처를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낸 뒤 마찬가지로 슬쩍 핥았다.

“……?”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 걸 그가 몽롱한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코, 콘스탄틴. 깼어요?”

하필 해괴한 부분에서 딱 걸리고 말았다. 핥는 느낌이 이상해서 깬 건가?

‘지혈만 얼른 끝내고 약을 찾아 바르려고 했는데…….’

뭔가 설명이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상처가 심해서…….”

이러저러해서 당신이 닿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알지만, 만져야만 했어요. 핥기까지 한 건 미안하지만,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머릿속을 맴돌던 구차한 변명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앗!”

그가 그녀를 당겨 품에 안은 것이다.

“콘스탄틴?”

“사야, 사야…….”

“치, 치료를…….”

“……사 …야.”

“괜찮아요? 몸 어때요? 정신 들어요?”

“사야…?”

그는 어째서인지 질문에 대답을 않고 자꾸 그녀의 이름만 불렀다.

“미안해요. 당신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아 손을 댈 수밖에 없었어요. 그 물약 어디 있어요?”

“…사야. 사야…….”

그가 그녀를 더 깊게 당겨 안았다. 탕파를 곳곳에 두었음에도 그의 품 안에서는 한기가 확 끼쳐 들었다.

산 사람이 어찌 이렇게 차가울 수가 있단 말인가. 체온이 이렇게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뭔가 이상했다.

이리 안기고 보니 그의 피부는…….

그래. 아까도 너무 차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아프면 차라리 열이 나지 어찌 이렇게 차갑단 말인가. 마치 시체처럼…….

사이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은 감상에 콘스탄틴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 보았다. 마찬가지로 차디찼다.

그녀의 손길을 느낀 것인지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얼른 손을 떼어 냈으나, 탁. 그녀의 손목을 붙잡는 힘이 있었다.

“……!”

흔들리는 파란 눈동자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무언가를 쏟아 내놓고 싶은 것 같기도 하면서, 욕망에 잠식된 것 같기도 했다. 굳게 닫혀 고집스러워 보이면서도,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기도 했다.

“아직 팔에 이렇게 힘주면 안 될 텐데…….”

그 와중에도 그의 팔뚝 근육에 힘이 들어간 것이 보여 걱정스럽다.

“더는… 못…….”

“네?”

콘스탄틴은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그녀를 훅 당겼다. 순식간에 입술을 점령해왔다.

“흡?”

그의 피부와 달리 입 안은 또 뜨거웠다. 엄청 뜨거워서 그의 숨결에 덩달아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침입한 혀가 그녀의 입속을 데우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열이 몸 안에서 배출되지 못하고 가두어진 듯한, 이상한 느낌.

다른 것은 몰라도 괴로운 것만은 분명해 보여, 사이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고 그의 손길을 받았다.

이리 닿아 있는 동안 제 체온이라도 조금 그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며 그를 꼭 안아주었다.

* * *

엄청 달콤한 꿈을 꾼 기분이다.

콘스탄틴은 모처럼 달게 잤고 말도 못 하게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깨어났다.

분명 그럴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으응.”

귓가에 연한 음악 같은 칭얼거림이 파고들었고, 비강으로는 달짝지근한 살 내음이, 손안으로는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탐스러운 살덩이의 느낌이 그득 찼다.

반사적으로 손안에 들어찬 그것을 일그러뜨리며 느낌을 음미했다.

“응…….”

또다시 들리는 예쁜 신음 소리.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한데…….

제 하반신이 어느새 지독하게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그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뺐다. 눈을 부릅뜨고 제 품 안에 있는 것을 살폈다.

분명… 사이나.

제 침실. 제 침대에 그녀가 있었다.

‘……왜 사이나가 여기 있지?’

그의 상념이나 의문과 별개로 어느새 힘을 잔뜩 받고 일어나 있던 그의 또 다른 자아가 그녀의 엉덩이를 열심히 찔러댔다. 그것이 불편했는지 몇 번 몸을 들썩거리더니, 사이나가 돌아누웠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폭 안겨서 허리를 감아왔다.

“음…. 이제 괜찮아요. 더 자요.”

잠결에 그를 토닥이는 것 같다.

“…….”

그러니까… 이게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대체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애버딘령에 있어야 할 그녀가 왜 여기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그녀의 모습은 도무지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든 상태였다.

목덜미 여기저기 난 잇자국부터, 하얀 피부에 번진 손자국 들. 부풀어 발개진 입술, 흐트러져 속살을 다 내보이는 언더드레스.

침대 밑에 떨어진 천 조각으로 보아 그녀가 입고 있던 드레스를 아예 찢어버린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미치겠다. 설마 자신이 또 강제로…… 그녀를 어찌하기라도 한 것일까?

심지어 방금 전까지 그의 손이 만지고 있던 몽글한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더 환장할 노릇이다.

미친 새끼. 미친놈. 정신 나간 자식.

제 자신에게 온갖 욕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차마 벗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이렇게 있고 싶었다. 그녀와 닿아 있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고…….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하아…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나.’

그를 향한 그녀의 호불호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한때는 그녀가 그를 향해 일말의 호감이라도 품어주기만을 바라고 바랐던 때가 있었지만……. 이젠 알고 있다.

그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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