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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47화 (147/233)

147화. 그녀를 핥은 범인은 누구?

“음? 아니. 병을 다 비운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그러고 보니 나 언제 잠들었어?”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 한 병 다 비우자마자 갑자기 픽하고 쓰러졌어. 얼굴색이 너무 멀쩡해서 취한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쓰러져서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에…? 내가?”

“밖에서도 그러면 큰일이니까, 확실한 주량을 알고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면 밖에서는 조금만 마시든지.”

“아… 그래서 오빠가 그런 거구나.”

플로리아는 갑자기 제 이마를 짚으며 인상을 썼다.

“그럼 이거 숙취인가? 아침엔 괜찮더니 어째 온천에 들어오니까 사실 아까부터 머리가 아프더라고.”

“그래? 그럼 너무 오래 담그고 있으면 안 좋을 것 같은데?”

“으으…. 그러게.”

“충분히 담갔으니까 얼른 나가자.”

“아니야. 사야, 넌 조금만 더 있다가 와.”

“응? 괜찮은데…….”

“사실 한 십 분 정도만 더 있으면 저기 중앙에서 기포가 올라올 거야. 매일 이 시간쯤 되면 올라오거든. 그때 물색이 엄청 진해져.”

“그래? 신기하네.”

“그때 꼭 담그고 있어야 해. 그게 진짜거든.”

“하지만…….”

“난 자주 오니까 안 해도 돼. 사야, 넌 꼭 그때까지 담갔다가 가. 피부에 엄청 좋아.”

“알았어.”

플로라의 당부에 사이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가기로 했다.

“난 조금만 쉴 테니, 이따 맛있는 저녁 같이 먹자!”

“응.”

둘 중에 한 명이 떠나가자 갑자기 지나치게 조용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있으니 나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물속에 들어앉아 멀리 보이는 나무들이 이따금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는 게 운치가 있었던 것이다.

뽀그르르르.

그렇게 얼마간 있자 플로리아의 말처럼 온천 중앙에 기포가 엄청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렇지 않아도 뽀얗던 물이 정말 우유처럼 진해졌다.

사이나는 그 현상이 신기해서 물 안으로 손을 휘적거려 보며 뭔가 다른 점이 있나 살폈다. 아까보다 더 미끌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미묘하게 온도가 조금 더 올라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아까와는 약간 다른 냄새가 물에서 났다.

유황 냄새와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심신을 안정시키는 그런 냄새였다.

사이나는 나른해졌다. 조용한 데다 평화롭고 뜨뜻하니, 약간 졸게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음…….”

얼마나 그리 졸았을까.

사이나는 기묘한 감각 때문에 깨어났다. 누군가 제 목덜미를 핥는 것 같은…….

‘…콘스탄틴?’

대부분 그녀를 이리 지분대오던 사람은 콘스탄틴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약간의 의식이 돌아오자 콘스탄틴일 리는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요즘은 그러지 않기도 하고, 여긴… 콜도라니까…….

‘……그럼 대체 누가?’

그런 자각이 들기가 무섭게, 다시금 그녀의 목뒤를 핥는 혀의 느낌에 사이나는 순간 소름이 끼쳐서 순간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꺄아아아악!”

희끗한 게 보였다. 뭔지는 몰라도 허둥지둥 피하려다가 균형을 잃은 사이나가 온천 안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완전히 풍덩 물에 빠진 것은 그다음 일.

“어푸!”

지나치게 당황하자 그녀의 키보다 낮은 깊이에서도 경황없이 허우적거리게 되었다. 말 그대로 패닉 상태였다.

“-캬아아앙!”

그런데 그때. 익숙한 포효가 허공을 울렸다.

“꺄악! 고, 공작부인!”

누군가 허우적대는 사이나를 부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아가씨!”

“사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이나는 누군가의 손에 건져졌다.

“숨, 숨 쉬세요!”

“으흑… 콜록! 콜록!”

순간 등에 큰 압박이 왔고, 사이나는 순간적으로 울컥 토했다. 허우적대느라 잔뜩 마신 온천수가 쏟아졌다.

“크와아아아앙!”

“푸륵?! 푸르르르륵!”

한참 기침을 하며 숨을 가누고 있는데, 또다시 익숙한 포효가 사방을 울렸다.

그 소리가 귓가로 박혀 들자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허윽, 윽.”

사이나는 매운 눈가를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시선을 들었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욜리?’

거기에 욜리가 있었다.

하얀색 말의 뿔을 물어뜯을 듯이 문 채로.

‘-뿔?’

뿔이 있다니……. 말일 리가 없었다.

뿔과 날개, 이마의 문양.

세상에, 에렌혼이었다.

근데 욜리가 왜 에렌혼을……?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이나는 벌떡 일어났다.

“야! 야아! 콜록! 욜리!”

당장에 욜리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방금 자신이 왜 놀라서 탕에 빠졌던 건지도 잊었다.

“야! 너 그거…! 얼른 놔! 얘가 또 왜 이래!”

“푸르륵!”

에렌혼은 욜리를 떨구어내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고 있었지만, 그 작은 체구에 치악력이 어찌나 좋던지,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뿔에도 감각 기관이 있는 걸까. 어째서인지 에렌혼은 매우 괴로워 보였다.

“욜리야! 착하지… 이리 와, 응?”

에렌혼이 날뛰고 있어 어느 선 이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사이나가 대신 욜리를 설득하려 애썼다.

“크르르르르르!”

어쩐지 더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둘 사이의 공방은 예기치 않게 끝이 났다. 갑자기 에렌혼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크와아앙!”

욜리는 아직도 분이 덜 풀린 듯 마구 짖어댔다. 짖으면서 사이나에게 달려왔는데, 그 기세가 어찌나 맹렬하던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주인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였다.

“컁! 컁!”

그런데 욜리가 사이나를 비껴갔다. 순간 의아해진 사이나가 뒤를 돌았는데 거기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있었다.

“…공작님?”

애버딘 공작이었다.

팔락. 그때 사이나의 몸에 커다란 망토가 둘러졌다.

젖어서 축 처진 망토가.

“아? 루퍼트 경?”

이 젖은 망토는 뭐람?

주변을 살펴 대강 따져보니 아무래도 아까 그녀를 물에서 건져준 이가 그인 듯했다. 망토뿐 아니라 기사복도 잔뜩 젖어 있었다.

“캬아아앙!”

욜리의 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친 듯이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커다란 수건 하나를 입에 물고 질질 끌고 왔다. 사이나 앞에 놓아주고는 ‘컁!’ 짖는다.

“어…….”

그제야 제 모습이 자각이 되었다.

완전 푹 젖어 해초처럼 엉겨붙은 머리카락은 그렇다 치고, 망토 안의 차림새가 가관이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느라 가운이 마구 풀어헤쳐지다시피 해서 그 용도를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운의 두께가 도톰한 데다 속옷을 벗지 않고 들어가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주 큰 사고(?)가 되었을 것이다.

루퍼트는 욜리가 끌고 온 수건을 들어 머리에 둘러주며 말했다.

“얼른 몸을 말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애버딘 공작을 보자 그는 어느새 몸을 돌린 채였다. 귓가가 발간 것이 그도 꽤 당황한 것 같았다.

“미, 미안합니다. 비명 때문에 급한 상황인 것 같아 들어왔는데…….”

“…….”

괜찮다고 말하자니 상황이 아주 어수선했고,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엔…… 그것도 이상했다.

“사이나!”

그때, 누군가 급히 소식을 전했는지 플로리아까지 뛰쳐 들어와 합류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비명이 들렸다던데?!”

“아, 플로리아.”

“아니, 오빠는 왜 여기 있어?”

“…….”

“…….”

“무슨 일이냐고! 그 비명이 설마 오빠가 사야 목욕하는데 몰래…….”

“야!”

애버딘 공작이 순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넌! 네 오라비가 그리 파렴치한으로 보이냐!”

“지금 이 광경만 봐도 충분히 파렴치한으로 보이거든?”

“그건……. 하아….”

“그리고 오빠가 콜도라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설마…… 우리 따라온 거야?”

“…아, 아니거든?!”

“왜 말은 더듬는 건데?”

“…….”

음. 콘스탄틴은 설마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그렇게 말했던 걸까?

여태 애버딘 공작이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소문은 들은 적 없는데, 설마 그녀가 가십에 밝은 편이 아니라 몰랐던 건가? 아니면 엄청 주도면밀한 타입이라 소문조차 안 났던 것이거나?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설마 당신도 그런 의심을 하는 건 아니겠죠?”

“…….”

미심쩍은 사이나의 눈매를 읽었는지 애버딘 공작이 펄쩍 뛰었다.

“절대 아닙니다! 제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난 비명에 놀라 들어온 거라고요!”

“…그럼 공작님께서 제 목을 하…….”

핥았다는 표현을 하기가 좀 힘들어 사이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목이요? 목이 아픕니까?”

“음…. 핥으신 게 아니라는 거죠?”

“…핥……. 하아…….”

갑자기 애버딘 공작이 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두 눈을 다 가린 모습이 어떻게 보면 긍정도 같고, 어떻게 보면 어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듯한 부정 같기도 했다.

“목을 핥았다고?”

“응. 뒤에서…….”

“하! 이 말 새끼! 오빠!”

분개한 것은 오히려 플로리아였다. 그리고는 대뜸 에렌혼을 지목했다.

애버딘 공작은 천천히 손을 떼더니 사이나를 향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 변태 말 새끼 제대로 관리 못 하냐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마도 제 목덜미를 핥은 건… 에렌혼인가 보다. 게다가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닌, 아무래도 전과가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왜?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장난기 엄청 심하고 변태 끼도 있어. 아무튼… 하, 그냥 별로야. 궁금해하지 않는 편이 나을걸.’

‘에렌혼 같은 경우는 사람 사이의 접촉… 이랄까. 그런 것에 관심이 많죠.’

변태 끼가 이런 걸 말하는 거였나…….

수호령…. 정말 알아 가면 갈수록 하나같이 이상한 것 같다. 정상인 수호령은 없는 것일까…….

“아무튼 오빤 얼른 나가!”

예상치 못했던 범인이 밝혀졌다.

어쨌든 그날의 변태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 * *

크게 놀랐을 테니 쉬라며 오후 일정이 취소되었다.

뭘 하지도 못할 정도로 크게 아프거나 피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짝 놀란 것은 사실이라 알겠다고 했다.

“근데 욜리 넌 어떻게 알고 왔어?”

갑자기 난입해 에렌혼을 물고 늘어졌던 모습을 떠올리며 사이나가 신기해서 물었다.

그렇다고 욜리가 대답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큐…….”

깨어나서 활동 좀 했다고 피곤해졌는지 또 하품을 하고는 자려는 폼이나 잡느라 바빴다.

“크레이머 공작부인. 지금 방문객을 받을 수 있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그리고 욜리가 잠에 들자마자 하녀가 찾아와 누군가의 방문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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