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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43화 (143/233)

143화. 기대해도 좋아

차마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한편에서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었던 다리엘이 급히 다가왔다.

“바구니 줄래?”

“아, 네. 여기요.”

욜리도 데려가려고 바구니에 챙겨온 참이다. 평소 같으면 벌떡 일어나 새로운 얼굴을 경계했을 녀석이 여전히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럼, 다녀올게.”

“마님… 잘, 다녀오세요.”

다리엘은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으로 사이나를 보았지만, 들으나 마나 콘스탄틴에 관한 말일 것 같아 묻지 않고 돌아섰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로 내려가자 애버딘 공작이 짝다리를 짚고 있다가 게이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치형의 문틀 안으로 점차 일렁임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수호령이 달라서인지 문틀 안, 표면의 색이 다른 것이 신기했다.

“잡아요.”

애버딘 공작은 사이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장갑 낀 손을 뻗어 그를 맞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이끌려 문 안으로 들어섰다.

우선 황성의 워프 게이트로 이동했다가 다시 애버딘령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 * *

애버딘 공작령은 많은 부분에서 크레이머령과 달랐다.

일단 첫인상부터가 완전 달랐다.

크레이머령은 겨울이 지났음에도 서늘한 데다 백색의 암석이 많은 것에 비해, 서북쪽 땅인 애버딘령은 전체적으로 지반이 붉고 유황 냄새가 났다. 기온 자체도 크레이머령보다 높았다.

“저기 엄청 큰 산 보이죠? 저게 그 유명한 ‘이그니 화산’입니다.”

애버딘령의 어디를 가도 보일 것 같은 정말 커다란 산.

‘아, 저게 이그니 화산이구나.’

이그니 화산은 그녀도 들어보았다.

저 화산 때문에 불의 기운이 너무 강해 마수 외엔 살 수 없던 땅을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초대 애버딘 공작의 수호령이라지.

애버딘령은 화산 지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약간 건조한 느낌을 풍겼다.

“여기 온천이 엄청 유명한 건 알죠? 온 김에 꼭 담갔다가 가요. 피부가 아주 맨들맨들해집니다.”

활화산은 아니라는데 완전히 활동을 멈춘 것은 아닌지, 곳곳에 온천이 많다고 했다.

“아, 온천이 유명하군요.”

플로리아의 피부 비결이 온천이었나. 정말 곱고 뽀얗던데.

“리아가 자주 가는 곳이 있으니 함께 가면 될 겁니다.”

콘스탄틴과 성향이 다른 건지, 나름 손님 대접을 해주느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애버딘 공작은 수호령을 탈 것으로 쓰지 않고, 함께 마차로 이동 중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바깥으로 나오자 거대한 4두 마차가 이미 대기 중이었는데 그것을 함께 탄 것이다.

그리고는 이동하는 동안 바깥 여기저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마치 관광 가이드라도 된 것처럼 설명이 장황했다.

“사이나~!”

한창 이동 중에 바깥에서 높은 톤으로 그녀의 이름이 들렸다.

“어, 누가 절 부르는 것 같아요.”

“앗. 이 녀석이 그새를 못 참고 여기까지 행차했나 보네.”

플로리아의 목소리였다. 성내에서 기다려도 충분했을 텐데, 직접 여기까지 나온 모양이다.

사이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격한 환영에 얼른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플로리아?”

“꺄악! 어서 와, 어서 와!”

마차가 아니라 말을 타고 온 플로리아는 가벼운 승마 경장 차림이었다. 색다른 복장을 한 그녀를 보니 새삼 또 귀여웠다.

뒤로는 호위인지 기사들이 두엇 따르고 있었다.

“오빠! 나랑 자리 바꿔!”

말을 타고 온 것은 저런 이유가 있었던 건가.

애버딘 공작도 그것은 생각 못 했는지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뭐, 갑자기. 왜.”

“오빠야말로 뭔데. 오빠 친구야? 내 친구지? 얼른 나와.”

“너 게이트 때문에 부탁하던 때랑 태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니냐?”

“헤헤. 그건 그거고!”

정말 남매사이 같은 대화를 보니 애버딘 공작이라는 느낌보다 플로리아의 오빠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지고 있었다.

“성에 들어가기 전에 ‘거기’에 들를 거란 말이야! 오늘 꼭 봐야 해!”

“아, 거기? 설마…….”

“응! 언제 져버릴지 몰라.”

‘거기’라니……. 대체 무얼 하는 곳이기에 저런 반응일까.

이유는 모르지만 플로리아는 오늘 그곳에 사이나를 꼭 데리고 가고 싶은 듯했다.

“거기가 어딘데?”

“비밀! 하지만 기대해도 좋아!”

그리고는 기대하라며 해맑게 웃는다.

“하긴, 작정하고 작정해도 이런 때에 맞춰오기는 힘들 텐데. 아가씨는 운이 좋네요.”

이런 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호칭이 걸렸다.

“이제 아가씨 아닌데요.”

“아, 그렇지…….”

근데 애버딘 공작이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잠깐 허공을 보던 시선이 다시 돌아왔다.

“이름 불러도 돼요?”

사이나는 잠시 고민했다. 아가씨는 틀린 호칭이고, 이름은 지나치게 친밀했다.

결국 한 가지만 남는다.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공작부인으로 불러주세요.”

“……그러는 게 낫겠죠? 알겠습니다.”

“아, 빨리 나오라니까?”

그 틈을 타고 성질 급한 플로리아가 재차 재촉했다.

“그냥 너도 올라타. 넓잖아. 뭐가 문제야?”

“뭐? 오빠도 가게?”

“희귀한 광경인데 나도 봐야지.”

“에? 그럴래?”

플로리아는 말에서 내려 뒤따라왔던 기사에게 말을 맡기고는 마차에 올라탔다. 사이나의 옆자리이자, 공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자, 출발!”

* * *

“사이나가 온다고 해서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제랑 그제 갑자기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지 뭐야?”

“비 왔어?”

“응. 너무 많이도 와서 혹시 취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정말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어제 오후쯤에 그쳤어.”

“그랬구나. 크레이머령은 맑았는데.”

같은 제국인데도 거리가 있어서인지 날씨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원래 이 시기에 이 지역은 비가 안 와요. 이례적인 일이었어요.”

애버딘 공작이 덧붙여 설명했다.

“근데 그 비 때문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뭐야!”

“뭔데?”

“이건… 말보다 직접 봐야 해!”

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는 것인지 꽤나 궁금했지만 곧 볼 수 있다고 하니 참았다.

마차는 한참을 달려 어딘가에서 멈춰 섰다.

셋은 마차에서 내렸다. 사이나는 내리자마자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직까지는 특이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저… 황량한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저 언덕을 넘어야 해서 조금 걸어야 하는데 괜찮아? 아님 말 타고 갈래? 마차로는 못 가거든.”

말을 타도 애매한 거리처럼 보였다. 승마복 차림이 아니기도 하고.

다행히 편한 드레스를 입은 데다 신발도 낮은 것을 신었으니, 걷는 것도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언덕도 그렇게 높지 않아 보였다.

“걸을 수 있어.”

“좋아. 그럼 가자!”

셋은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뒤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호위기사들이 따랐다.

막상 걸어보니 눈으로 보았던 것보다 거리가 있었지만, 못 걸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어?”

언덕의 정점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사이나는 바람을 타고 날아온 묘한 향기를 느꼈다.

“왜?”

“뭔가… 특이한 냄새가 났는데.”

이 지역 특유의 건조한 공기와 구별되는 진득한 냄새가 순간 코를 스쳤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아. 바람 타고 날아왔나 보구나. 곧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언덕을 넘었다.

“…….”

사이나는 순간 말을 잊었다.

세상에.

“어때? 끝내주지?”

“…….”

사람의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자연은 그 기대를 훌쩍 뛰어넘고는 했다.

지금처럼.

사이나는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언덕을 넘어가자 내려다보이는 분지.

분명, 사막인데. 사막이나 다름없는 광야인데…….

말도 안 되게 광활한 꽃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며칠 전 내렸던 유례없는 폭우 때문에 땅속에 묻혀 있던 씨앗이 일제히 발아한 것 같습니다.”

“몇십 년에 한 번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나도 말만 들었지, 본 것은 처음이야.”

확실히, 흔하지 않다 못해 불가능에 가까운 정경이 아닐까.

여러 요소요소가 겹치고 겹쳐서 다 맞아떨어져야 발현될 수 있는, 지독히 아름답지만 또한 지극히 까다로운 풍경.

“사이나, 너의 방문을 이 땅도 환영하는 모양이야. 꽃이 딱 네 눈동자 색과 같잖아.”

광활한 지역을 뒤덮은 꽃의 향연은 보랏빛이었다.

분지라 그런지 향기가 갇혀서 시각뿐만 아니라 엄청난 꽃향기가 사이나를 압도했다.

마치 향기로 사람을 압사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향기였다.

“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름답다? 엄청나다?

어떤 단어로도 지금 사이나가 느낀 압도된 감상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디서도 이런 광경을 또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

사이나는 말없이 이 모습을 눈 안에 새겨 넣었다.

* * *

“그러고 보니 그때 그 책은 읽었어요?”

신비한 사막의 꽃밭을 보고 나서 일행은 애버딘 성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약간의 휴식 후 함께 만찬을 드는 중이었다.

“네? 무슨 책이요?”

“그때 서점에서 샀던 책이요. 에렌혼에 관한 거였는데.”

“아.”

[에렌혼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고서점에서 애버딘 공작과 처음 마주쳤을 때 구매했던 그 책.

그리고 보니 이후 엄청나게 몰아친 여러 사건들로 정신없어서 잊어버렸다.

‘어디다 뒀었지?’

델본에 뒀는지 타운 하우스에 뒀는지조차 헷갈린다.

“아뇨. 어쩌다 보니 읽지 못했어요.”

“사실 읽어봐야 진짜 정보도 아닐걸요. 차라리 나한테 물어봐요.”

“아, 맞아. 오빠. 사야가 가장 좋아하는 수호령이 에렌혼이래.”

“뭐? 정말입니까?”

“…네.”

그때 그가 에렌혼은 자신이 더 잘 안다고 했던 말이 진짜가 되어서 약간 멋쩍었다.

“허어. 근데 어쩌다 크레이머랑?”

“내가 내 친구 좀 만나보라고 할 때는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이제 좀 아쉽니?”

“…리아. 그땐…….”

뭐? 방금 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애버딘 공작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공격적으로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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