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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31화 (131/233)

131화. 결벽 너머의 비밀

지긋지긋하다는 말투에 순간 사이나의 몸이 굳었다.

‘……꺼지라고?’

흠칫하며 손의 힘이 풀리는 바람에 약간이나마 일으켰던 그의 몸이 다시금 바닥으로 떨어졌다.

콰드득. 유리 조각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려와 또 반사적으로 움찔하게 되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위축된 상황에서 꺼지라는 말까지 들으니 다시 그에게 손을 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피 냄새…. 어쩌지…….’

아무리 술에 취했다지만, 아프지도 않은 걸까.

찰나간 상반된 생각이 엄청나게 스쳐 지나갔으나…… 별수 없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별개로 치료가 우선이니.

사이나는 그를 깨우기 시작했다. 대신 손은 대지 않고 목소리로만.

“콘스…, 공작님.”

이름을 부르려다가 말았다.

“일어나 봐요.”

한껏 찌푸려져 있던 얼굴이 그녀의 목소리에 차츰 완화되는 것이 보인다.

일그러진 미간이 펴지고 이를 악문 것 같은 턱선이 느슨해지더니, 스르르 눈꺼풀이 떠올랐다.

“…사야?”

“네. 이리, 좀 일어나 보세요.”

“사야. 사야, 사야아…….”

깨어날 줄 알았더니 뭔가 이상하다. 흐릿한 눈을 하고는 괜한 그녀의 이름만 중얼중얼 반복해댔다.

“여기, 다친 거 같으니까… 얼른, 헉!”

깨진 유리 파편으로부터 몸을 좀 일으키길 바랐더니, 그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 왔다. 그것도 모자라 그가 허리를 감아 당기더니 그녀의 복부에 안겨들었다.

“미안, 미안합니다. 난, 그저…….”

“…….”

“사야. 나는…….”

갑작스러운 포옹과 사과에 몸이 굳어 있는데, 여전히 그가 중얼거렸다.

“나는…….”

나는?

“…칼리고……. 이 개… 새끼…….”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더니, 갑자기 욕설을 지껄였다.

아까는 꺼지라더니 이번에는 욕까지?

칼리고는 또 누구야. 저번에 분명 들어본…….

그녀에게 한 말이 아닌 건가?

깨어난 줄 알았더니 실은 아직 비몽사몽이었나?

그 커다란 덩치로 그녀에게 매달리듯 붙어오자 사이나는 자신의 몸인데도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이러다가는 같이 쓰러질 것 같아 그의 몸을 붙잡아 떨어지고자 입을 열었다.

“자, 잠깐 떨어…….”

그랬다가 그녀는 손에 엉기는 흥건한 느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피?’

다친 것은 분명한 듯했다. 어깨 아래 팔뚝 쪽과 날개뼈 위쪽으로 셔츠가 붉게 번진 것이 보였으니.

‘얼마나 다친 거야?’

피가 꽤 흥건한데 옷 위로는 잘 모르겠다. 사이나는 그의 셔츠를 젖히려 손을 가져가다 잠시 멈칫했다.

낮에도 그 결벽증 같은 증세 때문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손을 댔다가 갑자기 또 깨어나서 돌변하면 어쩌지.

두려운 마음이 들어 약간이라도 그의 속살을 들추어볼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냥 깨우자.’

“콘스탄틴.”

다치지 않은 쪽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일어나 봐요.”

“음.”

“치료하고 다시 자요.”

그녀의 허리를 한껏 감고 있던 몸이 서서히 경직되는 것을 보니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저러면 베인 곳이 벌어져서 피가 더 날 텐데.

사이나가 저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예?”

“잠시 그대로 있으라고요.”

“…….”

경직된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기색이었으나, 콘스탄틴은 그녀의 말대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의 눈치를 매우 보는 것이, 분명 낮의 일 때문이리라.

사이나는 약간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유리가 박혔을지도 몰라요. 저 위로 쓰러져서.”

깨진 파편들의 흔적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가 금세 상황을 파악한 것 같았다.

“상처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

그녀의 말에 심각하게 굳어진 표정을 한 콘스탄틴이 시선을 내리더니 그녀의 눈을 피했다.

“내가 닿는 것은 싫어하시죠.”

방금도 먼저는 그렇게 안겨들면서, 그녀의 손이 닿는 것은 싫어하다니…….

착잡하달까. 낮의 일로 인한 불쾌감과 별개로 기분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의사는 괜찮은가요?”

약간은 냉소적이기까지 한 느낌으로 내뱉어진 그녀의 말투와 말에 그가 몸을 굳히며 움츠러들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어물거렸다.

“등 쪽이라 혼자서는 안 될 거예요. 유리가 박혔을 수도 있어서 자세히 살펴야 해요.”

“…….”

“누구든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을 불러 치료를 받으세요.”

“그…….”

콘스탄틴은 난감하다는 듯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리며 이마를 쓸어 올리더니, 크게 숨을 들이켰다.

“하아. 그대가.”

잠깐의 공백 후 그가 말을 이었다. 무언가를 결심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가, 봐 주겠습니까?”

…만지지도 못하게 할 땐 언제고, 갑자기?

사이나는 그 의도를 알기 힘들어 콘스탄틴의 눈을 보았다.

“그대가 닿는 것이 싫은 게, 아닙니다. 다만…….”

그는 뭐라고 더 설명을 하려다가 말보다는 직접 보여주겠다는 듯이, 입고 있던 셔츠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눈을 내리깔고 약간 허둥대는 손놀림으로 자신의 앞자락을 풀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묘한 느낌을 풍겼다.

마치… 첫날밤 신랑 앞에서 수줍게 탈의를 하는 새신부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허무맹랑한 감상을 치워내며 사이나는 점차 드러나는 맨살을 좇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서울 정도로 선명하게 쪼개진 가슴팍과 복부의 근육들이었다. 만지면 분명 울룩불룩할 것이 분명한 뚜렷한 윤곽의 근육을 보며 사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거울 앞에서 어느 각도로 돌며 살펴도 제 몸에서는 찾아낼 수 없을 골격과 형태였다.

보기만 해도 단단해 보이는 그 모양을 보자 어쩐지 손을 내밀어 쓸며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해서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내 그가 셔츠를 젖혀 어깨를 드러내자 반듯한 빗장뼈가 길게 도드라졌다. 너른 어깨와 마찬가지로 굴곡지고 단단해 보이는 팔뚝이 드러났다.

사이나는 지나치게 빤한 시선으로 그의 알몸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하고, 그저 눈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상반신을 살폈다.

‘…예뻐.’

거대하고 건장한 몸이지만 역삼각형으로 빠지는 허리라인 때문에 둔해 보이지는 않았다. 되레 날렵하면서도 강건하게 보였다.

근데 대체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거지?

감상과 별개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윽고 툭, 소리와 함께 셔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콘스탄틴은 약간 머뭇거리는 느낌으로 돌아섰다.

“……어.”

“…….”

그가 돌아서며 너른 등이 시선 앞에 펼쳐지자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당연하게도 벗은 앞판과 같은 색을 기대한 그녀에게 드러난 등은…….

세상에. 달랐다.

거대한 등판. 그 너른 등을 보자마자 사이나는 우선 그 색에 압도되었다.

살색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긴 문양으로 빼곡하게 덮여 있었다. 등판이 넓은 만큼 피부와 이질적인 색이 시각을 덮쳐오는 느낌이 지나치게 강했다.

대체 저게 뭐란 말인가.

우선 색에 대한 압박감이 연해지자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형의 진이 여러 겹 겹쳐 있는가 하면 물결 문양 같기도 하고, 온갖 기하학적인 형태가 지독히도 복잡한 형태로 거기 새겨져 있었다.

‘……사람의 등에다 저런 걸 왜 새겼을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랬다.

의문점을 가지고 그 등판을 바라보는데 복잡한 문양에 초점이 꼬여서인지, 갑자기 그 문양이 뭔가 움직이는 기분이 들어 사이나는 흠칫했다.

‘아니, 등불 그림자 때문인가?’

등불 그림자가 등에 맺히며 일렁일렁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아니야. 정말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 등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어쩐지 거기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말이 안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사이나는 그 쪽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갔다.

그녀의 발걸음을 느낀 그의 등이 살짝 수축되었다. 그러자 또 등에 드리운 그림자가 묘하게 일렁거리는 기분이다.

‘단순히 문양의 형태가 아니야…….’

혹시…….

‘수호령의 일종인가?’

전에는 대외적인 수호령의 모습만 알았기에 상상도 못 했겠지만, 콘스탄틴과 알고 지내면서 이면에 더 다양한 형태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터라 그런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자세히 살피자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그 등에서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신이 어찌 이 기운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수호령의 일종이 맞는 것 같다. 수호령 그 자체인지, 아니면 잔재된 힘의 일부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매우 집중해서 그 기운을 살피자 이 느낌을 언제 느꼈는지 기억이 났다.

그때. 그녀의 데뷔탕트 때 그의 등 뒤로 솟아올랐던…….

또 공중정원에서 허공에 뜬 그녀를 받아내던 검은 기운.

그리고 크레이머 저택에 방문했을 당시, 갑자기 그의 등 뒤로 뛰쳐나왔던…….

‘칼리고!’

그래. 그때, 그는 분명 그리 불렀다. 모레프가 아니라 칼리고라고.

당시에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뭔지 몰랐는데… 만약 그에게 숨겨진 힘이 있고, 그 이름이 따로 있다면, 나름 말이 되지 않는가.

이런 형체가 딱히 없는 것이 그의 진짜 힘이라면, 부러 숨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이나는 서서히 손을 올려 그의 등 한가운데, 움푹 파인 기립근 부위에 손가락을 대었다.

가벼운 터치이건만, 그의 자잘한 등 근육이 죄다 움직일 정도로 그가 몸을 굳혔다.

스르륵.

어쩐지 그녀의 손을 피해 문양의 짙은 부분이 흩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문양 자체도 검었으나, 저 일렁거리는 기운 때문에 더 검게 보였다.

그렇게 보니 문양이 저것을 가두는 감옥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끊임없이 일렁거렸으나 문양 바깥으로는 움직이지 않으니 말이다.

기묘하고 이상했다.

아, 그래서인가.

그의 결벽에 가까운 옷차림은 사실… 남에게 이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인가?

여태껏 보였던 그의 반응들이 그런 이유였다면 다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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