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침대 위에선 마치 다른 사람
하얀 침대보에 비단처럼 펼쳐진 검은 머리카락. 그 머리카락이 감싼 하얗고 작은 얼굴이 그가 주는 쾌락에 흐려져 야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만족스러우면서도 있는지도 몰랐던 그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하, 미치겠군.’
그녀와 닿는 느낌은 오싹할 정도로 좋았다.
“읏, 거긴 싫어요… 흐윽!”
그녀는 지나치게 강한 감각점을 자극하는 것을 싫어했다. 너무 느껴지면 그 감각에 잡아먹히는 것 같아서 무서워지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는 그럴수록 더 그 부분을 공략했다.
“너무 거기만…….”
“몸은 반대로 말하는 것 같은데…. 정말 싫어?”
“흣! 싫, 싫어요. 제발…!”
“흠. 난 왜 그대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음험하게 웃으며 그가 그녀의 귓바퀴를 핥았다.
“그만, 아…! 싫……. 아아!”
파르르 떨리는 몸. 곧 끝이다.
“흐아앙!”
“큭.”
그의 시야가 순간 까맣게 물들었다.
“하아, 하아…….”
마치 잡아먹히는 기분이다. 아직도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다.
한번 이렇게 감각이 끌어올려졌다 떨어지면 마치 산에 올랐다 굴러떨어진 것처럼 몸이 노곤해져서 그녀는 매번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침대에서의 콘스탄틴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매사 다정한 남자가 밤만 되면 약간 강압적으로 변해서는 그녀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는 했다.
조지 홀랜더도 강압적이었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다. 조지 홀랜더는 제 욕심을 차리기 위해 강압적이었다면, 콘스탄틴은 어떻게든 그녀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강압적이랄까.
‘…물론 횟수나 이런 부분에서도 좀 강압적이기는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조지 홀랜더에게는 어떤 순간에도 진심으로 거절하고 싶었다는 거고, 콘스탄틴에게는 몸이 힘들기는 해도 그가 은근슬쩍 그녀를 벗겨오면 어째선지 딱 잘라 거절이 안 된다는 거였다.
‘한 달에 한 번이나, 후계자가 필요할 때만 하자고 말했으면… 큰일 났겠어.’
문득 첫날밤을 치르기 직전, 자신이 그에게 하려고 했던 제안이 떠올랐다.
그땐 콘스탄틴도 자신처럼 어쩐지 밤일에 큰 관심이 없을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만큼 금욕적으로 보였던 사람이다.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지만…….
“으앗.”
한참 숨을 몰아쉬며 상념에 빠져 있는데 콘스탄틴이 자세를 바꾸었다. 등을 대고 누우며 반대로 그녀를 그의 위로 끌어올렸다.
“자, 잠깐요.”
몸의 떨림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인데…!
“쉬이.”
그녀가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그가 허리를 감아 당기며 무너뜨렸다.
했다 하면 한 번에 끝난 적이 없기는 하지만 오늘은 너무 빨랐다.
“읏, 또?”
“그대가 너무 매력적이라 그렇습니다.”
“흑, 거짓말…. 으응.”
그가 느른히 웃었다.
“거짓말이라니요. 지나치게 진심인데요.”
“으응.”
“그 증거로, 그대 곁에만 있어도…….”
“흣.”
“이리… 하아… 매번, 짐승같이 굴게 되지 않습니까.”
“아읏! 자꾸 거기만…….”
지나친 자극에 사이나의 눈가가 달아오르며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이리 어두운 속에서도 그는 시야가 남다른 모양인지 그녀가 울자마자 그녀의 눈가를 핥으며 속도를 늦췄다.
“예뻐요.”
“흐윽, 읏.”
그렇다고 멈추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또 이리 밤이 길어질 모양이다.
사이나는 점차 쾌락에 잠식되는 의식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다음 날.
사이나는 아주 느지막이 깨어났다.
역시나 공작은 없었다.
일하러 간 걸까…….
“으…….”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사이나는 지끈거리는 허리를 붙잡고 누워 끙끙거렸다.
“마님? 깨어나셨습니까?”
때마침 깨어난 줄 어찌 알고 다리엘이 노크하며 물어왔다.
“…응. 들어오렴.”
사이나는 애써 태연한 척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상태였지만 ‘내가 지난밤 이러저러해서 온몸이 아프다.’ 알리는 것이 더 창피했다.
침대에서 내려서는 순간 부들거리는 다리 때문에 순간 큰 위기가 찾아왔으나, 다행히도 넘어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다.
“식사부터 하시겠어요? 아니면 뜨끈한 물에 몸을 좀 푸신 다음 전신 마사지를 받으시고 식사를 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전신 마사지?
“얼마 전에 고용한 하녀인데 귀부인들 마사지 쪽에 조예가 깊다고 하더라고요. 뜨끈하게 몸을 풀었다가 매끌매끌한 향유를 뿌리고 전신에 지압을 한 번 쫘악 받고 나면 찌뿌둥한 게 싸악 사라지고 너무 너무 시원하다고 합니다.”
다리엘은 손으로 크게 제스처를 취해가며 열심히 설명했다. 다리엘이 마사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받고 나면 정말 시원할 것처럼 잘도 표현했다.
문제는 뭘 알고 묻는 것 같아서 굉장히 민망하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마사지를 받아야 할 것 같은 상태라는 게 그리 티가 나나?’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다.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몸 상태가 이렇다 보니 다리엘의 영업(?)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좋은 생각이네.”
“아, 그럼 마사지를 먼저 받으신 다음 식사를 하시겠어요? 얼른 준비시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셔요!”
넘치는 열정이 약간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게 언제냐 싶게 다리엘은 엄청난 속도로 사이나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대체 나디아가 왜 걱정한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저리 유능한데 말이다.
사이나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끄덕였다.
그녀의 수락을 듣자마자 다리엘은 얼른 돌아섰다.
공작부인의 방을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바로 앞에 콘스탄틴이 떡하니 서 있었다.
“각하?”
때마침 들어오려던 참이었나 보다.
“…다리엘? 네가 왜 여기 있느냐?”
“시녀로 자원했습니다.”
“시녀? 네가? 물류 관리는 어찌하고?”
물류 관리? 창고지기 업무를 말하는 건가?
크레이머가 정도로 큰 가문의 물류 관리를 할 정도면 여러 가신 가문 중에서도 꽤 대우받는 가문의 일원일 텐데 왜 시녀를…?
사이나도 나름 홀랜더 가문을 이끌어본 입장인지라 물류 관리는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게다가 가주인 콘스탄틴이 다리엘의 이름을 알고 직접 아는 척을 할 정도인 것만 봐도 굉장히 긴밀한 가신 가문인 것이 분명했다.
“둘 다 할 수 있습니다.”
“굳이?”
그러게. 굳이?
아무래도 다리엘이 이중 업무를 떠맡은 듯했다.
물류 관리 쪽 업무량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정말 자원한 걸까? 혹시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겠지.
뭔가 이상해서 어리둥절해졌다.
“마님의 시중인데, 제가 들어야지요.”
“흠?”
여전히 이상하다는 콘스탄틴의 표정.
“제가 하고 싶어서 지원했어요.”
“그렇더냐? 사람이 더 필요하면 나디아에게 요청하도록.”
“옙!”
호쾌한 대답을 끝으로 다리엘이 방을 나갔다.
업무가 과중할 텐데 굳이 시녀 일을 추가로 지원했다고?
‘시녀를 다른 아이로 바꿔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이미 유능한 다리엘의 손길에 상당히 길이 든(?) 상태인지라 애석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이나가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동안 콘스탄틴이 슬며시 다가왔다. 상당히 멋쩍은 표정이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그래도 양심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사이나는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흘깃, 시선을 날렸다.
“크흠. 어제는 내가… 약간 제어가 잘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쯤 제어가 될까요?”
공작은 과했다. 그것도 매번 과했다. 그리고 과해도 너무 과했다.
“흐음.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만……. 부인께서 지나치게 매력적인 탓이 아닐는지?”
“…….”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저건 이유가 아닌 것 같다.
“굳이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원래 좀 왕성하신 편인 것 같은데… 체력까지 남다르시니…….”
“…….”
“또 잘하시고…….”
그냥 눈 꼭 감고 참아 넘기려고 했던 첫날밤이 얼마나 격렬했던가.
갑자기 또 그 밤의 치태들이 낱낱이 떠올라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덕분이랄까. 사이나는 자신이 불감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조지 홀랜더 그놈이 문제였다는 것도.
이제는 콘스탄틴의 두툼한 팔과 너른 가슴에 안기는 느낌이 좋기까지 했다.
그의 욕구가 너무 강해서 다 받아 주려다가는 그녀가 죽을 지경이라는 것만 빼고 말이다.
“…….”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던 콘스탄틴은 짧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사야, 내가… 잘했습니까?”
“…네?”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큼?”
“…….”
콘스탄틴이 씨익 웃으며 다가왔다. 허리를 감싸며 당기더니 어느새 그는 침대에 앉아 있고, 그녀는 그의 허벅지에 앉은 상태가 되었다.
“대답이 없군요. 만족스럽지 않다는 뜻입니까? 흠… 그럼 그대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다시 노력해 보겠습니다.”
스리슬쩍 그녀의 몸을 다시 침대 쪽으로 밀며 콘스탄틴이 말했다.
“네?! 아니, 저기! 충분히 만족스러워요!”
사이나는 식겁해서 그를 만류하며 소리쳤다.
“흠. 만족스럽다니 다행이긴 합니다만.”
“네, 네.”
“솔직하게 더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
여기서 더 원하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예 침대 밖으로 못 나가는 거 아니야?
“횟수라든가, 자세 등. 더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
“어딘가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부인?”
게다가 아무리 봐도 이건 해가 중천인 시간에 나눌 대화는 아닌 것 같다.
“아뇨. 충분… 아니, 좀 과한 것 같아요.”
“과해요? 어느 부분이 과합니까?”
사이나는 이 민망한 대화를 어떻게든 끝내고 싶었으나 콘스탄틴은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자꾸 대답을 요구했다.
“음… 횟수라든가…….”
그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이나는 갑자기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대답을 하다 말고 사이나는 순간적으로 그 기억에 매몰되었다.
그것은 전생에 그녀가 결혼 7년 차에 들어선 어느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겨우 견뎌내고 있던 그녀의 결혼 생활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던 날.
억지로 참석한 파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