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21화 (121/233)

121화. 시녀 뽑기

“욜리?”

왜 이러나 했더니 벌컥, 현관 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온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하녀가 없는 것 같은데 외출했다가 돌아온 걸까?

“언니? 오늘은 좀 어떤… 어?!”

“…나디아?”

집사장 나디아였다.

“마님? 마님께서 어찌 이곳에 계십니까?”

나디아가 왜 여길?

“음, 산책을 하러 나왔다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이분이 청해주셔서 함께 차 한잔을 하던 참인데, 나디아는 어쩐 일이에요?”

“아, 그러셨군요…….”

나디아는 어딘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 들어오면서 ‘언니’라고 하지 않았나?

‘이 여인과 나디아가 자매지간이란 말이야?’

집사장이면 보통 대대로 가신 가문일 텐데, 그럼 이 여인도 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생각의 흐름에 사이나는 눈을 크게 떴다.

“……마님? 이 아가씨가 마님이시라고? 그럼 이분이 우리 도련님께서 결혼하신 그분이란 말이냐?!”

여인은 여인대로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는지 갑자기 사이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다가와 손을 덥석 붙잡고는 울기 시작했다.

“다행입니다. 다행이오. 우리 도련님께서 이리 고운 아가씨와 결혼을 하셨군요. 이 유모, 더는 여한이 없소.”

갑작스레 눈물짓는 모습에 놀라 사이나가 당황하여 말을 잊지 못하는 동안, 나디아가 여인을 달래며 사이나로부터 떨어뜨렸다.

“제 언니이자 각하의 어린 시절 유모입니다. 공작부인을 만나 뵙게 되어 기뻐서 그러는 것이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마님.”

“아, 그랬군요. 난 괜찮아요.”

그에게도 어린 시절이 존재했구나. 당연한 일인데 왜 이리 생소한 느낌이 들까.

콘스탄틴에게도 여리고 약했던 시절이 있어서 유모가 돌보아주었다는 것이 어쩐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부터 그녀에게 강건하고, 굳게 서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리 도련님이…, 도련님이…….”

유모는 울었다가, 웃었다가를 반복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다가 의자에서 스르르 쓰러졌다.

“…유모님?!”

놀란 사이나가 벌떡 일어나 다가갔지만 나디아는 생각 외로 평범한 표정이었다.

“기진하여 그런 것이니 걱정 마세요.”

“기절한 것이 아닌가요?”

“예. 몸이 약합니다.”

정말 요양이었던 건가. 사이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유모의 파리한 안색을 살펴보았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언니를 침대에 뉘여야 될 것 같습니다.”

“도울게요.”

“아닙니다. 저 혼자-”

“돕게 해 주세요.”

사이나는 유모를 함께 부축했다. 앙상한 유모의 몸은 나디아 혼자서도 충분히 가눌 수 있을 만큼 가벼웠지만, 워낙에 약해보이는 탓에 최대한 무게를 분산하여 침대까지 부축했다.

유모를 잘 눕히고 난 뒤 나디아는 침대 옆 협탁 서랍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유모의 상체를 슬쩍 세우고 조심스레 먹였다.

자주 있는 일인지 아주 익숙해 보였다.

유모가 깊게 잠에 드는 것을 본 둘은 붉은 벽돌집 밖으로 나왔다. 본성을 향해 함께 걸었다.

욜리도 어쩐지 조용해져서 타박타박 뒤를 따랐다.

“저리 혼자 두어도 괜찮나요?”

“예. 괜찮습니다.”

“하녀를 몇 명 배치하지 않고요?”

한때 가주의 유모를 했던 사람이면 분명 귀족일 거고 입지가 낮지도 않을 텐데 어째서 하녀도 없이 혼자 지내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마는 언니가 워낙 강경하게 거부를 하여 어쩔 수가 없습니다.”

나디아도 걱정이 되는 모양인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가 틈틈이 들여다보고는 있습니다만…….”

집사장 자리가 얼마나 바쁜 직책인지 뻔히 아는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모님은 하녀를 왜 거절하는 건데요?”

“제 생각에는…….”

나디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본인이 멀쩡하다는 것을,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네? 어디다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요?”

“…각하께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누가 보아도 병색이 완연한 사람인데, 건강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 한다고?

설마 건강하지 않다고 콘스탄틴이 유모를 쫓아내기라도 한 걸까?

‘그런 사람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데…….’

근데 영주의 유모라는 사람이 내성에 살지 못하고 이렇게 외따로 떨어져 살아야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물었다가는 캐묻는 양상이 될 것 같아서 묻기도 애매했다.

‘물어도 되는 사항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콘스탄틴에게는 남은 직계 가족이 없지 않나?

형제도 없고, 부모님도 일찍 돌아가셔서 없다고 들었으니, 유모가 매우 소중한 존재여야 맞는 게 아닌가?

‘사이가 나쁜 것만 아니면 좋으련만.’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린 날의 그를 키워주신 분이다.

몰랐으면 몰라도 알게 되었으니, 자신 역시 틈틈이 붉은 벽돌집을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똑똑.

“네. 들어오세요.”

당일 오후, 누군가 찾아왔다.

“마님.”

“나디아?”

또다시 나디아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들어오너라.”

나디아는 사이나에게 인사를 하고나서 바깥쪽에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네 명의 젊은 영애들이 줄지어 들어와 섰다.

‘……?’

이 무슨 상황인가.

“그간 성의 안주인 자리가 공석인 채 오래 운영되어 온지라, 체제 개편이 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배치가 늦어졌습니다. 그동안 불편하셨지요?”

뭐가 불편했느냐는 건지 모르겠어서 사이나는 말없이 추가 설명을 기다렸다.

“이 아이들은 크레이머 공작가에 충성해온 유서 깊은 가신 가문들 중에서 고르고 고른 영애들로서, 마님을 보필할 시녀 후보들입니다.”

아, 시녀…….

공작부인이 되어본 것은 처음이라, 하녀도 아닌 시녀를 수족으로 부리게 생겼다.

반짝반짝 기대가 가득 찬 네 쌍의 시선이 사이나를 향해 열렬한 구애를 던지고 있었다.

“…넷이나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지위가 지위이다 보니 시녀를 거절할 수야 없겠지만 사이나의 기본 성향 자체가 지나친 수종을 즐기지 않았다.

게다가 사이나는 사교 활동이나 연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단장에 그리 큰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아니라 주변에 많은 고용인이 필요 없기도 했다.

“넷을 다 부리셔도 되고 이 중에서 고르셔도 됩니다.”

고르라고 한들 저 영애들의 자체 성격이나 가신 가문의 성향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사이나는 입을 열었다.

“가장 좋아하는 수호령이 뭐지?”

뜬금없는 질문에 네 명의 시녀 후보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왼쪽부터 대답하기 시작했다.

“모레프입니다.”

“저도요.”

“흑사자 모레프죠.”

크레이머 가의 가신 가문 아니랄까 봐 대답이 일괄적이었다.

한 명만 빼고.

“전 동남의 카니스요!”

우렁차게 터져 나온 대답은 가장 우측의 영애였다. 강렬한 주홍빛 머리색을 가진 발랄한 인상의 키가 큰 영애였다.

“…카니스?”

카니스는 동남의 로즈데일 공작가의 수호령이다.

나머지 셋이 뜨악한 표정으로 그 영애를 바라보았으나, 주홍 머리카락의 영애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포악함과 은빛 털의 우아함이 공존한달까요? 모레프도 멋있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취향이랑은 좀 안 맞더라고요.”

혹시 혼나는 것 아니야, 하는 얼굴을 하고 세 명의 영애가 사이나의 눈치를 보았으나, 주홍 머리카락의 영애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흠.”

사이나는 참지 못하고 슬쩍 웃고 말았다. 콘스탄틴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이나의 개인 취향 역시 모레프는 아니었으니까.

“이름이 뭐지?”

사이나는 카니스라고 대답했던 영애에게 물었다.

“다리엘 지그먼트입니다. 다리엘이라고 불러주세요, 마님.”

“흠. 그래.”

사이나는 나디아를 보며 말했다.

“당장 많은 시녀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으니 한 명이면 충분할 것 같네요. 유일하게 다른 답을 한 저 아이만 남겨줘요.”

“와아! 감사합니다!”

너무 기쁘다는 듯 함박웃음을 짓는 모양을 보며 사이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공작부인을 모시는 게 그리 큰 영광인가? 남의 시중드는 것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기뻐할 일인지 그녀로서는 잘 모르겠다.

“…한 명만 더 고르는 게 어떠신지요? 마님을 모시기에 부족하지 않을까요?”

반면, 나디아는 어딘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뭔가 골칫덩이를 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다리엘을 보더니 사이나에게 넌지시 제안했다.

‘크레이머의 가신이면서 모레프가 아니라 카니스라고 대답해서 그런가?’

사실 가신 가문이라고 무조건 모레프를 좋아하라는 법은 없지 않아?

사이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필요할 것 같으면 추후에 더 뽑도록 할게요.”

“…예.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언제든 개의치 마시고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

뭔가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나디아의 언질에 사이나는 다리엘 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거리끼는 것이 없다는 듯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뭐지.’

자격이 모자라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애당초 후보에 안 넣었으면 될 일 아닌가? 왜 후보에 넣어놓고서는 저리 불안한 기색인지.

“걱정 마세요. 제가 정말 성심을 다해 마님을 모실 테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다리엘은 나디아와 사이나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의 다짐을 어필했다.

나디아의 태도는 미심쩍은 기색이 있었으나 사이나는 여태까지의 다리엘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으므로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하는군요.”

“예.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리엘, 마님을 모심에 있어 소홀함이 없도록 해라.”

“네! 걱정 마세요!”

나디아는 사이나를 향해 인사를 남기고는 나머지 영애 셋을 데리고 물러갔다.

여전히 뭔지 모르게 못 미더워 보이는 눈빛을 다리엘에게 남긴 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