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워프 게이트를 타고
“나중에 필요한 것이 생각나시면 요청하십시오. 언제든지 보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워프 게이트를 통해 보내준단다. 사이나의 약간 달뜬 얼굴이 걱정으로 비쳤는지, 집사가 덧붙였다.
그 게이트는 공작 외에는 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부러 부탁을 해야 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 먼 거리를 무슨 옆방 오가듯 이동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 분명했다.
사기적인 능력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딱히 먼 지역에 간다는 느낌은 안 드는걸?’
황성에서 크레이머령까지 가는 시간보다 황성에서 델본까지 가는 게 더 오래 걸리니 말 다 한 것 아닌가.
사기적인 능력이기는 하지만 제한은 있었다.
수호령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보니 수호령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동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또한 워프 게이트의 크기를 넘어서는 물건은 보낼 수 없으며, 한 번에 다량, 다수의 이동은 힘들다고 했다.
사람의 경우에는 맹약자와 닿아 있는 상태에서만 함께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네. 그간 세심하게 챙겨줘서 고마워요, 로이터.”
“저의 영광입니다.”
“또 황도에 오면 보도록 해요.”
“예. 마님. 본령에서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콘스탄틴과 사이나는 마차를 타고 황성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성문을 통과했고, 또 얼마간 달려 마차에서 내렸다.
“……와.”
황성에 올 일이 많지 않아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은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지역으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사이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성탑 아래에 워프 게이트가 있었구나. 신기하다…….’
마수 때문에 급히 이동하는 거라 다급한 상황임에도 여기저기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구경할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생소해서…….”
사이나가 두리번거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공작이 말했다. 약간 민망해져서 사이나는 열심히 공작을 따라 걸었다.
보통이라면 전혀 들어와 볼 일이 없을 성탑에 들어온 것도 신기한데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탑의 지하라면 어쩐지 음산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동그랗게 빈 홀이 꽤 넓은 형태로 있고 그 벽면을 따라 몇 개의 문이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문이라기보다는 문의 형태를 띤 조각에 가까웠다. 손잡이를 잡고 열 수 있는 문이 아니라 문틀 몰딩만 장엄한 문양의 부조로 조각된 형태랄까.
문들은 각각 형태가 조금씩 달랐는데 콘스탄틴은 가장 좌측에 있는 아치형의 문틀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힘을 개방했다. 그의 등 뒤로부터 검은 기류가 뻗어 나가더니 아치 중앙으로 스며들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냥 벽에 불과했던 부분이 검게 물들며 일렁거리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게 워프 게이트구나…….’
검은 영역이 문틀 내부를 꽉 채우며 형태가 완성되자 콘스탄틴은 마차에서부터 들고 온 짐가방을 먼저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잡아요.”
사이나는 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욜리를 품에 더 꽉 안았다.
“큐…….”
답답한지 작게 칭얼거렸지만, 녀석도 지금은 얌전히 있어야 하는 타이밍인 줄은 아는지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다.
“먼저 들어가겠습니까?”
한밤에 들여다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의 수면처럼 일렁거리는 벽면을 향해 몸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자, 신기함은 사라지고 약간의 불안함이 찾아왔다.
사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았다.
“켁!”
갑자기 그와 그녀의 사이에 끼이게 된 욜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생각지도 않은 상태에서 폭 안겨 온 사이나의 모습에 콘스탄틴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같이 갈까요?”
“…네.”
“그래요.”
콘스탄틴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찍고는 허리를 감으며 문을 향해 걸었다.
수면에 잠겨 드는 것 같은 서늘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더니.
“…….”
잠시 정신이 부유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다른 장소에 있었다.
묘했다.
“아…….”
순식간에 몸은 이동했으나, 느낌상으로는 어딘가를 오래 지나온 것 같다. 약간 곤한 감각이 든 달까?
어쨌든 참 사기적이다.
사이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황성 성탑의 지하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기는 했으나 형태가 달랐다.
원형의 공간인 것은 같았으나 벽을 따라 문이 여러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중앙에 단이 있고 그 위에 아치형의 문틀 하나가 조각상처럼 놓여 있었다.
이동이 끝나 그가 힘을 거두었는지 검은빛의 수면 같은 것은 사라져서 문틀 안은 그저 비어 있을 뿐이었다.
어찌 여기서 내가 나왔을까 신기하여 사이나는 문틀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보았으나 말 그대로 허공이었다.
“다음에 또 태워줄게요.”
“아, 네.”
“갑시다.”
그녀를 귀엽다는 듯 보고 있던 콘스탄틴이 웃으며 말했다.
“각하! 오셨습니까!”
지상으로 올라와 건물 바깥으로 나가자 경비병 둘이 절도 있게 인사했다.
“그래.”
콘스탄틴은 게이트 앞에서 집어 들고 온 짐가방을 경비병에게 넘겼다.
“크림성으로 가져오도록. 마님의 것이니 조심히 다루도록 해라.”
“옙! 충성!”
짐을 넘긴 콘스탄틴이 모레프를 꺼냈다.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 정도로 형상을 이룬 모레프가 공작을 바라보더니 등을 보이는 자세로 돌아섰다.
“사야, 이리 와요.”
왜 모레프를 갑자기?
“타고 갑시다.”
“……네? 지금요?”
“그래요.”
갑작스럽게 대면한 모레프 탑승 기회에 얼떨떨해진 사이나가 쭈뼛쭈뼛 다가갔다.
“모레프. 안녕. 잠시 신세 좀 질게.”
사이나는 모레프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작게 속삭였다. 그 소리를 들은 모레프가 어쩐지 몸을 슬쩍 떨더니 딴청을 피웠다.
“…모레프가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아요?”
콘스탄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설사 그렇다 해도 신경 쓸 것 없어요. 내가 주인이니.”
“그래도요.”
콘스탄틴은 전혀 문제 될 것 없다는 듯 그녀의 허리를 잡고는 너무도 쉽게 그녀를 들어서 모레프의 등 위에 앉혔다.
“으앗.”
“꽉 잡기나 해요.”
어느새 그녀의 뒤에 올라탄 콘스탄틴이 그녀의 배를 안아 자신에게 바짝 당기며 귓가에 속삭였다.
“출발합니다.”
“…앗!”
“캿!”
갑자기 화살처럼 쏘아진 모레프의 속도 탓에 순간적으로 몸이 쏠린 사이나와 욜리가 짧게 비명을 내질렀다.
웅장한 성이 점차 가까워졌다. 둘 아니, 셋을 태운 모레프가 어느새 성문을 넘어서서 달렸다.
“영주님과 마님이시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와아! 마님이 오셨다아!”
그들이 도착한다는 것을 어찌 알고 있는 것인지 거리에 영지민들이 그득하게 나와 꽃비를 뿌려대며 소리쳤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 영주님께서 드디어 결혼을 하셨어!”
“와아!”
영주가 결혼한 것이 이렇게 기쁠 일인가.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사이나는 뭐라도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반겨 주어서 고마워요.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와아아!”
당장 축제를 열어도 무방할 것 같은 분위기를 뒤로하고 모레프는 가차 없이 내성으로 향했다.
“크림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님!”
“환영합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공작각하!”
바깥뿐 아니라 내성 입구에서도 고용인들이 주르륵 서서 환영 인사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
성이 크다 보니 고용인들의 수만 해도 매우 많아서 나란히 선 그 모양새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나디아.”
콘스탄틴은 사이나를 내려주고는 모레프를 회수하며 한 이름을 불렀다.
“각하.”
고용인들 중 포치 가장 중앙에 서 있던 사람이 나와 공작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였다. 흰머리가 살짝 섞이기 시작한 나이대의 여성이었다.
“크레이머 공작부인이다. 귀히 모시도록.”
“마님. 크림성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디아가 사이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크레이머령에 있는 저택은 말 그대로 성이었다. 유서가 깊은 만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사이나. 이쪽은 크림성을 총괄하고 있는 집사장, 나디아입니다.”
콘스탄틴이야 워프 게이트를 통해 황도를 쉽게 오고 간다지만 황도와 크레이머령의 실제 거리는 매우 멀었다.
4대 공작령은 죄다 국경 쪽에 자리 잡고 있었고 제국은 말 그대로 제국답게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크레이머가의 타운 하우스와 본령의 고용인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오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근무한다고 한다. 본령의 총괄 집사장이 따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가워요. 집사장님.”
“나디아라고 불러 주십시오, 마님.”
집사장을 맡고 있는 여성이라니. 흔치 않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차림도 스커트 차림이기는 한데 드레스가 아니라 남성형 턱시도를 변형시킨 형태의 정갈한 제복형 디자인이었다.
단정하게 틀어 올린 머리에 큰 키, 절제된 몸가짐.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멋진 여성이었다.
“네, 나디아. 사이나예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말 편하게 하십시오, 마님.”
사이나는 로이터에게 했던 설명을 반복하며 경어를 고수했다.
“난 급히 나가 봐야 할 것 같으니, 나디아. 부인을 부탁하지.”
“예, 각하.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사이나, 다녀오겠습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바로 나가야 하나 봐. 괜찮을까.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런 부분은 걱정 마십시오. 최대한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그간-”
“제 걱정은 마시고요.”
낯선 곳에 오자마자 그녈 두고 가려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급한 와중에도 콘스탄틴의 말이 길었다.
“다치지나 않고 오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쪽. 관자놀이에 짧게 입술을 찍고는 콘스탄틴이 멀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