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응?
“잠깐만 욕조에 들어가 있어요. 약을 가져오겠습니다.”
“…네.”
온몸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벗은 몸을 물속에 숨기고 싶기도 해서, 사이나는 얼른 욕조로 들어갔다.
쓰라린 부위도, 얻어맞은 것 같던 근육들도, 따듯한 물이 감싸자 그 정도가 감해지는 것 같았다.
나직하게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며 사이나는 손에 닿는 부위들을 주물렀다. 팔도, 허벅지도, 종아리도, 심지어는 옆구리와 등까지 쑤셨다.
그녀는 그저 누워서 시달린 게 다인 것 같은데 왜 온몸의 근육이 다 아픈 건지 모르겠다.
힘쓴 사람은 도리어 멀쩡하고…….
불만족스러움에 입술을 삐죽대고 있는데, 콘스탄틴이 돌아왔다.
“사야.”
물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그저 그를 바라만 보고 있자 콘스탄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약 바르고 다시 들어가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그녀를 보더니 콘스탄틴은 물속으로 팔을 넣어 그녀를 안아 들었다.
“으앗.”
물속으로 거침없이 파고든 팔이 손쉽게도 그녀를 건져 올렸다.
후드득. 물기가 바닥으로 마구 쏟아졌다.
젖은 몸을 수건으로 꼼꼼하게 닦아주고는 커다란 새 수건을 욕조 턱에 여러 겹 깔아 그 위에 그녀를 앉혔다.
슬며시 안쪽을 살피는 손길에 사이나가 더듬거렸다.
“제가, 제가 할게요.”
“보이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있어요.”
각도가 안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약도 못 바르겠는가.
사이나는 열심히 혼자 할 수 있음을 어필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이나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대낮이었다.
사이나는 차마 그를 볼 수 없어 손등으로 눈가를 가리며 시야를 차단했다.
“…흣.”
하지만 그의 손길로 인한 감각까지는 차단할 수 없었다. 잇새로 제어하지 못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가 손끝으로 물약을 바르는 것이 느껴졌다. 스멀스멀 약을 바르던 손끝이 점차 파고들기 시작했다.
“으…!”
약을 바르는데 대체 왜…….
사이나는 깜짝 놀라 그를 보았다. 콘스탄틴이 들고 있는 물약 병이 어쩐지 익숙했다.
“…아, 코, 콘스탄틴! 그거….”
엄청 비쌀 것이 분명한 포션, 그거잖아요. 녹푸른 색을 보니 분명 그 포션이었다.
며칠 지나면 나을 텐데 거기다 굳이 그 포션을…….
익히 알고 있던 대로 효능은 끝내줬다. 쓰라리던 느낌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다 싶은 것은 그다음.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몸이 수건째로 들려 바닥에 눕혀졌다.
“다… 다 나은 것 같은데!”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사이나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는 대답 없이 웃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얼굴에 그려진 미소가 짙었다.
잠시 그 미소에 정신이 팔린 사이, 천천히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나더니,
“아…?”
그가 그녀의 몸을 열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나의 얼굴 위로 그의 얼굴이 드리워지더니 키스해왔다.
실컷 약을 발라주더니, 이럴 줄은 몰랐다.
단정한 얼굴을 하고서는 달려들기 시작하면 마치 다른 사람 같아진다. 친절한 듯 보이지만 막상 시작하면 고삐 풀린 짐승처럼 정도가 없었다.
“아흑!”
콘스탄틴은 말랑말랑한 그녀의 몸을 쥘 때마다 힘이 잔뜩 들어가려는 악력을 조절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제멋대로 여기저기 쥐었다가 부서지기라도 할까 봐 무서울 정도로 그녀는 가느다란 뼈대를 가지고 있었다.
‘미쳤군.’
대낮에. 그것도 욕실에서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녀와 닿아있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를 벗겼을 때 일말의 사심도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끝까지 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런데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대강 허리춤만 풀어 허겁지겁 그녀의 안으로 침입했다.
“하…….”
빌어먹게 좋다.
본래 여자의 몸이 다 이런 느낌인 걸까. 유독 그녀의 안이 이렇게 좋을 걸까.
반복되는 질문. 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그녀와 손만 잡아도 좋았다.
그러나 점차 다른 곳도 만지고 싶었고, 더 깊이 닿고 싶어졌다.
드디어 제 부인이 되었으니 당연하게 그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마음껏 만질 수 있다는 것에,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 제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리고 순진한 그녀가 무서워하지 않게 잘 달래어 상냥한 초야를 치르려 했다.
하지만 어땠나. 지난밤 미친놈처럼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았나.
제 안에 그리 짙게 있는지도 몰랐던 들끓는 감각.
어제는 아마도 시럽의 효과일 것이라고 얼버무리려 했건만, 지금 자신의 꼴을 보라지.
잠깐을 참지 못하고 욕실 바닥에서 허겁지겁 이 작은 몸에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하….”
그녀와의 밤은 그에게 새로운 사실을 여럿 알려주었다.
미친놈처럼 불타오르는 욕구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고 또 해도 만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단잠.
끝내주게 깊게 들었던 단잠.
완전히 숨어버린 칼리고의 존재감.
심지어 낮에 그녀와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녀석은 자신의 머리에 속삭임을 밀어 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힘을 끌어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응? 사이나.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사이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가 잠시 광폭함을 띠고 번들거렸다.
“흐아, 앗….”
하지만 초점이 흐려진 예쁜 보라색 눈동자가 그를 향해 울먹이자 그 기색은 금세 숨어들었다.
“흐윽! 코, 콘스탄… 아앙!”
숨이 넘어갈 듯 새어 나오는 다채로운 신음이 만족스러워서 그는 더 다양하게 자극을 주기 위해 애썼다.
“왜. 어떻게 해줘?”
“으흣, 읏. 너무, 흑…. 아앗! 거긴….”
그러면서도 왠지 마구 울려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싫어?”
“…으, 읏. 살살.”
살살해달라는 요구를 묵살하며, 더 깊고 세게 움직이자 사이나가 탄식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흐윽……!”
사이나가 그의 어깨에 달린 견장을 뜯을 듯이 움켜잡았다.
지나친 쾌감을 감당하기 힘든지 조금이라도 감각을 줄여보겠다고 바들바들 떨며 몸을 웅크려오는 것을 보고, 콘스탄틴은 비릿하게 웃었다.
그리 놔두고 싶지 않았다.
“아아…, 흑! 그, 그만!”
머리꼭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 이 감각을 자신만 느끼며 안달하고 싶지 않았다.
“괜찮으니, 울어.”
내 밑에서만.
아무래도 그대는 내게 무슨 짓을 한 건지도 모르는 모양이니.
콘스탄틴은 그녀가 제 아래에서 정신 줄을 놓을 정도로 흐느끼기를 바라며 가차 없이 사이나를 몰아붙였다.
숨결을 조절하려 학학거리는 호흡조차 삼켜버렸다.
* * *
사이나는 기시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보지 않아도 해가 중천이겠지. 아니 중천 수준을 지나 오후에 가까울 시간일 테다.
“윽, 삭신이야…….”
며칠 지나고 보니 첫날밤에 벌어진 일은 양반이었다.
초야를 치르러 들어온 이후로 사이나는 침실에서 도통 벗어나지 못했다.
그와의 밤은 지독할 정도로 길고 집요해서 말 그대로 꼬박 밤을 새우고 나서야만 그녀를 놓아주었다.
해가 지면 시작되어서 해가 뜰 기미가 보일 때에야 끝났다.
도중에 지치고 나른해져 잠이 들려 하면 콘스탄틴은 그녀를 일으켜 제 위에 앉혔다.
그러면 가물가물했던 의식이 강제로 또 깨어나 목이 쉴 때까지 울다가, 밤의 끝자락이나 아침의 첫 자락 즈음에야 잠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해가 있는 동안에는 기절하듯 잠에 빠져 잠이 들고, 깨어나면 식사를 하고 씻고 그러면 또 금세 저녁.
콘스탄틴과의 밤이 반복된다.
결혼 피로연이 일주일간 열린다고는 하지만 보통 사흘에서 나흘 정도가 지나면 신방을 나가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사이나는 내내 침실에만 머무르다가 끝났다.
‘…오늘은 나가서 인사를 해야 할 텐데.’
근래 매번 기절하듯 잠이 드는 데다 밤낮이 바뀐 채 자다 깨다 보니 날짜 개념이 살짝 희박했지만, 아마도 오늘이 연회 마지막 날일 것이다.
벌써부터 민망해졌다.
얼마나 좋았으면 일주일을 꼬박 채웠느냐. 대놓고 묻는 사람들은 없을지 몰라도 분명 알 만하다는 표정을 하며 살필 테지.
“…미쳤어, 정말.”
그래도 오늘은 그나마 조금 일찍 깨어난 것 같으니 다행이다.
사이나는 이불을 젖히며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렸다. 일주일 내내 혹사당한 허벅지건만 근육이 붙어 튼튼해졌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후들거리기만 했다.
사이나는 설렁줄을 당겨 시중 하녀를 부르고 욕실을 준비시켰다.
“사야.”
그런데 욕실에 미처 도착도 하기 전에 콘스탄틴이 들어왔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군요. 몸은, 괜찮습니까?”
“…어, 네에…….”
며칠 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시감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몸이 불편해요? 데려다줄까요?”
“…아뇨!”
또 그와 함께 욕실에 들어갔다가는…….
사이나는 열심히 거절했다.
“데려다만 주려는 겁니다. 걱정 말아요.”
알 만하다는 듯 웃는 낯에 사이나가 면구한 표정을 짓는 사이 그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인형이라도 든 것처럼 너무도 쉽게 기색으로 그가 욕실로 향했다.
욕조에 물을 받아 입욕제를 풀고 있던 하녀가 둘을 보고는 얼굴을 붉히더니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물은 다 받아졌습니다. 저는… 이만 나가볼까요?”
그러더니 저리 묻는다.
“아니, 아니야! 안 나가도 돼!”
사이나는 공작의 눈치를 보며 나갈까 묻는 하녀를 만류하며 대신 콘스탄틴을 흘겨보았다.
“이런. 매정하게 내쫓는군요.”
“…어차피 혼자 다 차려입고 계실 거면서.”
그와 둘이 남겨진다고 한들, 민망한 건 그녀뿐이다.
그는 언제나처럼 가지런하고 올바른 차림새를 하고 그녀를 몰아붙이고, 잔뜩 흐트러져 흐물거리게 되는 건 그녀뿐이겠지.
“혼자서만 낯부끄러워지게 되는 건 사양이라구요.”
사이나는 투덜거렸다.
“…….”
그런데 콘스탄틴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