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처음이시라고요? 정말?
“으…….”
죽겠다.
뭐랄까. 대리석 바닥에 크게 나자빠지고 나서 깨어난 다음 날의 기분이다.
사이나는 아직 떠지지 않는 눈을 찡그리며 끙끙댔다.
몸 상태와 별개로 날은 좋았다. 햇살은 커다란 창을 통해 강하게 스며들었고, 방 안의 공기는 따뜻하다 못해 훈훈했다.
쪽.
감은 눈가 위로 누군가의 입술이 닿은 것은 그때.
깜짝 놀라 눈을 뜨니, 공작이 한껏 미소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 잤습니까?”
아직 명징하지 않은 상태로 사이나는 몇 번 눈을 꿈벅거리다가 슬그머니 이불 아래로 파고들었다.
‘…아니, 뭐야. 나 지금 어떤 상태지?’
정확히 지금 몇 시쯤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작은 혼자서 아주 청량한 얼굴을 하고, 이미 옷도 외출 준비가 다 끝난 것처럼 차려입고 있었다.
자신은 밤사이 그가 입혀준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만 딸랑 하나 걸치고 있었다.
기절하듯 잠이 들어서 얼마나 잔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그가 자신보다 일찍 잤을 리는 없다.
그리고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해도 저보다 많이 잔 것은 아닐 텐데 그는 왜 저렇게 상큼한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을 내색하기보다는 숨고 싶었다. 팅팅 부은 것 같은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왜, 다시 들어갑니까?”
“…….”
“초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엑?”
그건 안 될 말이다.
“아뇨…! 으윽!”
놀라서 벌떡 일어나다가, 사이나는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지끈거리는 허리를 부여잡은 채였다.
허리부터 온몸의 근육이 아주 성한 데 없이 욱신거리는 게, 마치 전생에 온 저택을 혼자서 청소하고 나서 몸살로 쓰러졌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런. 많이 아픕니까?”
“네. 마치 마차에 치인 것 같아요…….”
사이나는 끙끙거렸다. 약간의 엄살이 섞여 있기는 했으나, 예상치 못했던 근육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괜찮아요.’라는 말은 예의상으로라도 나오지 않았다.
“마차에……. 흠, 심각하군요. 왜일까요. 자세가 좀 무리였던 걸까요?”
자세도… 횟수도… 다 문제인 것 같은데요.
사이나는 잠시 지난밤을 떠올리고는 다시금 망연해졌다.
‘진짜, 저런 사람일 줄 상상도 못 했어.’
아니, 무슨 얼음덩이처럼 생겨서는…….
자신이 큰 착각을 했음을 깨달았다. 차가운 건 피부뿐이고… 아니, 자칭 차갑다는 그 피부도 처음에나 약간 서늘한 편이지 시간이 지나니까 그런 느낌도 전혀 안 느껴졌고… 아무튼…….
‘…그만 생각해야지.’
“정말 많이 안 좋습니까?”
공작이 침대 한편에 걸터앉는 느낌에 지레 놀란 사이나가 상체를 바짝 세웠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 안 괜찮지만, 괜찮아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
그러나 콘스탄틴은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쿡, 하고 미소 짓고는 한쪽에서 뭔가를 들고 왔다.
“일어날 필요 없습니다.”
콘스탄틴은 사이나가 편히 상체를 세울 수 있게 등 뒤 베개들을 모아 돋아 준 뒤, 이불 위로 베드 테이블을 놓아 주었다.
“어, 이건…….”
“같이 먹지요.”
아침 식사인가. 아니, 햇살의 강도로 보아 거의 점심 같기도 하고.
아무튼 부인을 위해 직접 침실까지 식사를 손수 챙겨온 남편이라니……. 사이나는 처음 접한 세계에 잠시 몸 둘 바를 모르고 멍을 때렸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듭니까? 다시 준비 시킬까요?”
“아뇨. 그게 아니라…. 음, 생각지도 못해서…….”
폭설이 내려 저택에 갇혔던 때도 이렇게 소소하게 챙겨주기는 했었지만, 뭔가 느낌이 다르다.
‘…조지 홀랜더도 결혼 전에는 나름 잘 해줬단 말이지.’
이렇게 비교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그랬다. 결혼하면 원래 다 그렇게 변하는 게 남자라고,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
뭐, 첫날이기는 하지만.
“힘들어하는 부인을 위해 이 정도도 못 할까요. 직접 먹여 줄 수도 있습니다만.”
“네? 아니에요.”
그땐 손이 다쳤다는 명목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멀쩡한데… 아니, 팔다리가 후들거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사이나는 양손에 커틀러리를 부여잡고 열심히 움직였다.
뭘 먹는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첫술을 떴으나, 먹다 보니 입맛이 돌았다.
“음.”
진하고 부드러운 스튜의 맛에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맛있습니까?”
그걸 본 공작이 또 눈가를 접어 웃으며 물었다.
“맛있어요.”
사이나는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다가 눈앞에 그림자가 지는 느낌에 흘끗 고개를 들었다.
할짝.
그가 왼쪽 입가를 짧게 핥고는 떨어져 나갔다.
“묻었습니다.”
“…….”
크흠. 사이나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같이 세팅되어 나왔던 냅킨을 들어 입가를 얌전히 찍었다. 정말 뭔가 묻었던 모양인지 약간의 얼룩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고는 더 꾹꾹 눌러 닦아냈다.
볼이 약간 달아오르는 느낌이 났지만 모르는 척하며 다시 식사를 했다.
공작 역시 침대 옆 탁자에서 언제 차린 지도 모르게 차려진 식사를 시작했다.
다 먹고 나자 콘스탄틴이 손수 다시 트레이를 치워 밖으로 내갔다.
하녀가 할 일을 하면서도 거리낌이 없는 모습에 좀 신기했다.
당장 황성에 들어가도 괜찮은 차림새를 하고서는 말이지.
‘나는 아직 눈곱 뗄 틈도 없이 이러고 있는데 말이야.’
뭐, 초야 다음 날 남편이 침대까지 가져다주는 식사가 싫은 건 아니지만…….
“…….”
생각의 흐름이 잠시 멈췄다.
‘…잠깐, 눈곱?!’
사이나는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가,
“흑!”
다시 욱신대는 허리와 흐물거리는 다리 때문에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겨우 몸을 추스른 사이나가 다리를 움직여 조심스레 걸었다.
그리고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가 좌절하고 말았다.
눈은 부었지, 입술도 부었지. 머리는 산발이지. 안색은 백지장 같고, 눈 밑은 퀭하다.
“…….”
이 꼴로 남편과 첫 아침을 맞았단 말인가.
사이나는 한숨을 포옥 쉬고는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브러시를 집어 들고 빗질을 시작했다.
부은 건 당장 어찌할 수 없고, 혈색도 어찌할 수 없지만, 빗질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팔뚝이 후들거려 빗질도 쉽지는 않았다.
‘…씻자.’
빗질을 하며 사이나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욕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멈춰 섰다. 정지된 사이나의 얼굴이 발긋하게 달아올랐다.
“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부위가 매우 아팠다.
지난밤의 기억이 떠오르며, 갑자기 미치도록 부끄러워졌다.
“사야?”
두 손을 펴서 얼굴을 묻고 있는데 콘스탄틴이 다시 들어온 모양이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사이나는 차마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른 욕실로 가려 몸을 틀었다.
“앗.”
그러나 애석하게도 순식간에 그에게 허리가 감겨 멈춰 서야 했다.
“왜 그래요. 어디 아픕니까?”
“아뇨, 씻으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여전히 눈을 피하며 말을 해서인지 그가 놓아주질 않았다.
“그게 다가 아닌 건 같습니다만….”
“…….”
“말을 해주십시오. 내가 어제 그대를 아프게 한 거라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여인의 몸을 만진 것이 처음이라, 힘 조절을 잘 못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이 불편합니까?”
뭐? 사이나는 잠시 잘못 들었나 싶어 그를 보았다.
“…처음이요?”
그럼 어제가 처음이란 말이야?
“그렇습니다만…….”
믿기지 않아 되묻는 질문에 그는 여상히 대답했다.
저 얼굴에, 저 지위에. 어젯밤으로 추정해볼 때 욕구도 매우 넘치던데… 처음이라고?
사이나의 눈에 어린 의심을 그도 눈치챘는지 덧붙였다.
“안 믿깁니까?”
“…너무 능숙하셔서…….”
“내가 능숙한지는 어찌 알 수 있습니까?”
“…….”
사이나의 비교 대상이라고 해보아야 전생의 거지 같던 남편 한 명뿐이기는 하지만, 굳이 비교할 사람이 없어도 콘스탄틴이 잘한다는 건 알겠다.
여태 불감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저를 그렇게,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
“흠, 어제 좋았나 보군요?”
화르르 타오르는 자신의 얼굴을 느껴져서 사이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는, 그가 웃으며 더 세게 허리를 감아왔다.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대도 알지 않습니까. 내가 타인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것을.”
하지만… 그건 체온 때문 아니었어요?
막상 겪어 보니 그의 체온 문제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나 좀 서늘하지 살을 계속 맞닿고 있으면 금세 괜찮아지는 것 같았으니까.
근데 왜 그는 옷을 꼭꼭 껴입고 결벽증 환자처럼 구는 걸까. 아니, 실상은 정말 결벽증이었나. 그럼 나한테는 왜…….
“그래서, 내가 잘한 겁니까? 아니면 잘 못 해서 어디가 아픈 겁니까. 아직, 대답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온몸이 아파요.”
너무 잘하기도 하셨구요.
사이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여전히 마차에 치인 것 같아요…….”
“…….”
“따뜻한 물에 담그면 좀 나을 것 같네요.”
이만 욕실로 가겠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몸이 번쩍 들렸다.
“으앗!”
너무도 가볍게 그녀를 안아 올린 그가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디 가세요?”
“몸 담근다면서요.”
도착한 곳은 본래 사이나가 가려던 곳, 욕실이었다.
“호, 혼자 할 수 있어요!”
“걷지도 못해 서 있었지 않습니까.”
그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니까요!
사이나는 어떻게든 그의 손길을 막아보려 했으나, 어느새 홀랑 벗겨지고 말았다.
아니, 애초에 얇은 가운만 하나 입고 있었으니 사실 벗기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완벽하게 차려입은 상태로 개의치도 않는지 콘스탄틴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접어 앉았다.
“코, 콘스탄틴?”
갑자기 또 왜 이러는 걸까.
당황한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진지한 표정을 하며 그녀의 민망한 부위를 살폈다.
“부었군요. 아픕니까?”
“……네.”
그렇지 않아도 처음인데, 그는 유독 컸다. 거기다 밤새 시달리기까지 했으니, 아프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