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첫날밤에 기름 붓기
나란히 소파에 앉게 된 그에게 사이나는 잔을 쥐여주고, 그녀 역시 제 몫의 잔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네.”
“저도 그렇습니다.”
콘스탄틴의 말에 사이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겉보기에 그는 전혀 그리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키스도 잘하고, 여유 있어 보였다.
와인 잔을 잡은 그의 손등 위로 불끈 솟은 핏줄들을 보았다면 생각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이나가 보기엔 그는 요동도 없고 그녀만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는 사람에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사이나는 그저 곤두선 신경이 좀 누그러지기를 바라며 와인 잔을 기울였다.
시럽도 있으니, 그 효과도 좀 기대어 볼 만하지 않겠는가.
‘부과 효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처럼 이리 긴장한 사람의 신경을 누그러뜨리는, 뭐 그런 용도가 아닐까?
사이나는 그리 추측했다.
물론 잠시 후에 전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말이다.
사이나가 와인을 마시는 것을 보며 그는 제 몫의 와인을 마시고는 빈 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본격적인 초야의 시작을 늦추고 싶어서 천천히 와인을 홀짝이며, 괜히 테이블 위의 핑거 푸드들을 조금씩 떼어 먹으면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콘스탄틴은 딱히 재촉 없이 그런 그녀를 계속 바라보기만 했고 말이다.
“…후우.”
그런데 갑자기 그가 소파 손잡이를 꽉 쥐며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등의 뼈가 하얗게 도드라질 정도였다.
“사야.”
“공작님? 왜, 왜 그러세요?”
그는 짧게 호흡을 몇 번 들이켰다 내쉬고는 나직하게 물었다.
“…혹시, 여기에 뭔가를 탔습니까?”
“어, 네. 뭔가 느껴지세요?”
“…….”
콘스탄틴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혹시 이상한 거였나?
사이나는 갑자기 괜한 일을 했다 싶어 걱정스러워졌다.
“초야 때 부부가 나눠 먹는 시럽이라고 했는데…….”
“시럽이요? 어디서 난 겁니까?”
“윌레프 부인이라고……. 그, 혹시 아세요?”
“뭔지, 알 것 같군요.”
“혹시 이상하거나 나쁜 건 아니죠?”
“……후.”
“…역시 나쁜 거예요? 어쩌지…. 의, 의사를…!”
벌떡 일어나 의사를 부르러 가려는 그녀를 콘스탄틴이 잡아챘다.
“의사…는 필요 없습니다. 와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럼… 어떡하죠?”
“이리 와요.”
안절부절못하는 사이나를 그가 제 품으로 당겨 안으며 한숨처럼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제가 잘 안 되는데, 어찌 기름을.”
“…네?”
“오늘, 책임지고 나를.”
“…….”
“잘, 감당해 봐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전환됐다.
훅 들이밀며 다가온 그가 숨결을 헤치며 입술을 맞붙여 왔다.
“…흐, 읏?”
커다란 손이 그녀의 목뒤를 잡아 받치는 동시에 그가 더 깊이 파고들 수 있게 각도를 비틀었다.
“으, 응.”
오싹.
온몸의 살갗이 곤두서는 느낌에 사이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금 전에도 잔뜩 키스했는데 그때와 뭔가 달랐다.
지나치게 몸이 예민한 느낌이 들어 사이나는 두 손을 꽉 쥐며 그에게 매달렸다.
“읏, 하읍, 응.”
아, 이상해. 왜 이러지.
혀끝이 찌릿했고, 목을 휘어 감는 그의 손가락과, 옆구리를 붙잡은 그의 손바닥이 주는 압박감이 미치도록 신경 쓰였다. 어째서인지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흐윽!”
예고도 없이 그가 그녀의 앞섶을 쥐어 왔을 때 사이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튕겼다.
마치 누군가 번개를 몸에 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아니, 경직됨과 동시에 사지는 흐물흐물해졌다. 도무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만져오는 그의 손길에 사이나가 움찔대며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반응에 그가 닿은 입술 사이로 웃음을 흘려 넣었다.
“예민해졌네요. 여기, 옷 위로도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흣, 시, 싫어요, 거기.”
자극이 심해 사이나는 몸을 비틀었다. 지나치게 살갗이 예민해져서 그가 만질 때마다 눈물이 솟으려 했다. 아랫배 역시 이상하리만치 점점 뜨거워졌다.
‘이상해…….’
온몸이 간질간질하면서 몸 안에 있는 심지에 불이 붙은 기분이다. 어느새 붕 뜬 몸이 침대 위로 누여지는 것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사이나는 정신이 없었다.
성급한 손길이 그녀의 허리께에 매여 있던 리본을 풀며 가운을 젖혔다. 얇은 실크 잠옷에 감싸인 여린 몸이 그의 시야 아래 드러났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가는 뼈대가 그리는 부드러운 곡선, 그를 미치게 하는 체향까지.
더 깊게 침잠한 그의 눈빛이 음험하기까지 한 기색으로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녀를 일으켜 잠옷을 벗기는 그 짧은 시간조차 참지 못하고 콘스탄틴이 얇은 천을 찢었다.
“으흑! 아! 거긴-!”
바로 콘스탄틴의 머리가 아래로 내려갔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는 행위에 사이나가 몸서리를 치며 바동거렸다.
“흑! 아, 세상에!”
어떻게든 몸을 뒤로 빼려 하던 필사적인 그녀의 움직임은, 그의 간단한 손길에 너무도 손쉽게 가로막혔다.
사이나는 기겁을 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윽, 윽.”
그리고 그녀의 안으로 무언가 파고든 것이 바로 이때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사이나는 몸서리쳤다.
“으으응! 이상, 이상해요.”
그곳에 외부의 것이 들어오면 언제나 아프기나 했지, 이렇게 홧홧하면서도 간지럽고,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풀어줘야 합니다. 너무, 좁아서.”
“흑, 으… 읏.”
점차 더 고조되는 감각에 사이나가 눈을 감으며 제 손등을 물었다.
콘스탄틴이 그 손을 떼어 잇자국이 남은 손등 위로 키스하며 빨개진 부위를 핥았다.
“상처가 나지 않습니까.”
“흐읏.”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습니다. 조금 더 참아 봐요.”
“…으, 으읏!”
그가 침대 위쪽으로 올라와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할딱거리는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그 모습에 사이나가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얼굴이 달듯이 뜨거웠다.
콘스탄틴은 가린 그녀의 손을 잡아 내리는 동시에 다른 손을 더 집요하게 움직였다.
“으읏! 아, 시, 싫어요!”
사이나가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 도리질에 콘스탄틴은 잠시 손을 멈추고 물었다.
“…싫습니까?”
사이나는 눈물을 글썽거림과 동시에 학학, 숨을 몰아쉬었다.
“아파요?”
너무 세게 움직였나 싶어 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흑…. 너무 밝은데 빤히… 보시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부끄러웠나.
콘스탄틴이 씩 웃으며 상체를 일으키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모레프.”
휘리리릭-
방 안으로 그림자가 바람처럼 삽시간에 휘돌더니, 불이 죄다 꺼졌다.
“이제.”
콘스탄틴이 속삭이듯 물었다.
“괜찮습니까?”
학, 하며 그녀의 작은 입술이 벌어졌다.
사실, 조명이 있든 없든 그는 시야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았다. 어둠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없다면 그림자를 어찌 부리겠는가.
불을 끄는 것은 오히려 그가 바라던 바다.
콘스탄틴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 얼굴을 내렸다. 벌어진 바알간 입술을 빨듯이 핥으며 손목을 조금 더 거세게 놀렸다.
“아, 학. 읏!”
그녀가 콘스탄틴이 입은 목욕가운을 꼬옥 쥐고는 몸을 뒤트는 바람에 그의 가운이 풀리며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진작 불을 끄길 잘했다.
콘스탄틴은 천천히 그녀의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녀는 사방이 어두워 안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뽀얀 나신이 시트 위에서 하얗게 빛났다. 장인이 인생을 바쳐 섬세하게 빚어낸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러운 곡선이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두운 중에도 그의 시선이 느껴져 부끄러운지 사이나가 슬그머니 손으로 제 몸을 가렸다.
콘스탄틴은 슬쩍 웃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아 머리 위로 고정시키며 입술을 내렸다.
습윤한 피부의 느낌이 좋다.
“고, 공작님….”
사이나가 그의 머리채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이건 무슨 뜻일까. 하지 말라고? 아니면 더 해달라고?
그는 당연하게도 그 해답지를 후자에 놓았다.
예민하기도 하지.
시럽의 효과가 상당했다.
뭔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그런 걸 마시다니, 그것도 모자라 제게도 마시게 했다.
귀엽기는.
그렇지 않아도 자제하기 힘든 마당에, 정말 불 위에 기름을 퍼부은 격이었다.
순식간에 치미는 욕정에 앞뒤 없이 그녀를 눕히고 일을 치를 뻔했다.
“이름.”
슬슬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며, 그가 말했다.
“부르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으으.”
빠듯하게 벌어지기 시작한 몸이 아픈지, 사이나의 미간이 접혔다.
그가 힘을 더 주자 사이나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몸에 비해 그는 매우 컸다. 충분히 풀었어도 처음은 아플 것이 자명했다.
예상했음에도 아파하는 모습을 보자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상상만 했던 그녀의 몸은, 상상 이상으로 그를 빨아들였다.
말 그대로 더럽게 좋았다.
그는 왼손으로 그녀의 턱을 슬며시 잡으며 슬쩍 예민한 부위를 자극했다.
“학.”
놀라 벌어진 잇새로 그가 검지와 중지를 밀어 넣었다.
“이 상하니까 대신 물어요.”
“읍.”
입안으로 들어온 그의 손가락에 당황한 그녀가 애매하게 혀를 놀리는 감각에 콘스탄틴의 뒷머리가 바짝 서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그녀 대신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빛이 순간 난폭한 빛을 비췄다.
“으으응!”
그녀의 허리가 휘며 그의 손가락을 꽉 깨물었다. 그는 손가락이 아픈지도 모르고 눈을 꽉 감았다.
“하.”
여자의 몸이 원래 이런 걸까. 아니면 그녀라서 이런 걸까.
그간 누구와도 살을 닿지 않고 살았기에 알 수는 없지만, 이런 감각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 것 같다.
‘…미치겠군.’
몸 안에 겨울을 품고 살아가는 것 같던 감각이 그녀 안에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뜨겁게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척추를 따라 흐르는 이 열기는 진짜였다.
“사야.”
제 품에 떨어진 사랑스러운 이 여자를 어쩔까.
그의 눈빛에 음험한 소유욕이 치솟았다.
보나 마나 시커멓게 일렁거리고 있을 속마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는 사이나의 목덜미로 제 얼굴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