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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08화 (108/233)

108화. 추궁의 밤

“…….”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나의 어깨를 안으며 키얼스틴이 깔깔 웃었다.

“사야~ 먼저 겪어보고 우리한테 꼭 추천해 주기다?”

“사이나가 우리의 결혼 선배가 되다니.”

“나한테도 꼭 말해주기야?”

다들 짓궂은 얼굴로 사이나를 놀려댔다.

“이 속옷, 사이나한테 너무 잘 어울리겠는데?”

“공작 각하도 미쳐서 덤벼드실까?”

짓궂은 화제는 끝도 없이 이어져서 사이나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개졌다.

“영애님, 나중에 혹시 더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종류별로 배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건 부끄러운 게 아니랍니다. 부부 사이의 일도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거예요.”

사이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상자를 덮어 한쪽으로 치웠다.

그렇게 윌레프 부인의 강연은 끝이 났다.

* * *

“자기이~ 정말 이런 콧소리를 남자들이 좋아할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더라고.”

“그러니까 평소에 하는 게 아니라 싸웠을 때나 남편의 기분을 풀어 줄 필요가 있을 때 하라잖아.”

다섯의 영애들은 강연이 끝난 이후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모인 참이다.

살짝 물을 타 가볍게 만든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밤새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황녀 및 4인방은 아까 들었던 윌레프 부인의 노하우에 대해 이것저것 의견을 나누었다.

“그건 맞아. 평소에 안 하다가 한번 하면 효과가 크지.”

“맞아, 그럴 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유용한 강연이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화제는 곧 사이나에게로 넘어왔다.

“드디어 기다리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왔군!”

“사이나! 다 털어놔!”

“그래!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우릴 버리고! 결혼을! 할 수 있냐고!”

“…….”

갑자기 등 뒤로 식은땀이 샘솟는 기분이다. 사이나는 맹렬한 네 쌍의 눈빛을 받아내며 무슨 이야기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 황도에 어떤 소문이 도는 줄 알아?”

“응? 무슨…….”

“속도위반으로 서둘러 결혼하는 거다?”

“뭐?!”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속도위반이라니…….

“아니야! 전혀 아닌데…….”

“그렇지? 아니지? 후. 그분이 우리 순진한 사야를 벌써 홀랑 잡아드신 줄 알고 걱정했지 뭐야.”

“…….”

그럴… 위기가 좀 있기는 했지만…….

멀지도 않은 낮의 기억이 떠오르자 사이나는 얼굴을 붉혔다.

“아니면 그건가?”

“뭐? 크레이머 각하께서 몸이 달아서 얼른 채갔다고?”

“응. 맞아. 그런 소문도 있었어.”

“사이나, 그래? 각하께서 일찍이 너한테 반해서 다른 놈이 채가기 전에 얼른 채가시는 거라던데?”

“…에?”

사이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대체 어디에 근거한 소문들이야……?

“하긴, 좀 징조가 있긴 했잖아.”

“데뷔탕트에서 춤 신청하셨지.”

“종막 연회에서 파트너로 오셨지.”

“공작이 이리 황도에 오래, 자주 머무른 적도 없지 않았나.”

“맞습니다. 전하. 이례적이었지요.”

다들 지난 여러 사건들을 되짚으며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아, 그때! 병문안 때도 갑자기 등장하셨잖아!”

“그때 카이언이랑 물밑에서 하핫. 맞아, 엄청 흥미로웠지.”

“하아…. 불쌍한 내 동생.”

카이언 이야기가 나오자 사이나는 더 움찔했다. 그 애매한 고백 직전 사건 이후로 한 번도 못 만났으니…….

“그래서, 첫 키스는 언제야?”

“풉.”

와인을 마시다가 뿜을 뻔한 사이나가 황급히 냅킨으로 입을 막았다.

“어머, 하긴 했나 봐.”

“그러네.”

“흥미롭구나.”

반짝반짝한 눈 네 쌍이 뚫을 듯이 대답을 요구했다.

“언제, 언제, 언제야?”

“어디서?”

“고백은 누가 먼저 했어?”

“야, 첫 키스 먼저 듣고.”

“그래. 첫 키스 먼저 듣고 싶군.”

사이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상황을 모면해 보려 했으나, 다른 대답은 전혀 듣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눈빛들에 쭈뼛하게 입을 열었다.

“그… 분의 저택에 초청받아 갔다가…… 음.”

“어머, 어머!”

“언제 서로의 집까지 드나드는 사이가 된 거래?”

“세상에, 이런 거 비밀로 하기 있기? 응?”

“어땠어? 좋았어?”

사이나는 이런 화제를 입 밖으로 막 꺼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키스만 해봐도 어느 정도 궁합을 추측할 수 있다던데.”

“설마?”

“키스도 하기 싫은 남자가 있잖아.”

“음. 하긴.”

“그런가 하면 막상 해보니 의외로 좋은 사람도 있지.”

누가 들어도 경험담이 분명한 에비앙의 말에 키얼스틴이 홱 고개를 돌리며 눈을 빛냈다.

“야, 너 그거 누구야?”

“…….”

“얼른 싹 말 안 해?”

갑자기 에비앙을 추궁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에비앙이 입을 꼭 다물자 키얼스틴이 그녀의 허리춤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하아하핫! 아, 그만! 꺅!”

“이래도 말 안 해?!”

“꺄하학!”

아무래도 에비앙은 옆구리가 약점(?)인 듯했다.

“말, 말할게! 으흑, 악!”

에비앙은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진위를 털어놓고 말았다.

“대니.”

“……뭐어? 야, 야! 이 미친 것아!”

대니? 애칭인 것이 분명한 이름인지라 사이나는 누굴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는데, 키얼스틴은 듣자마자 아는 듯했다.

“소꿉친구랑 왜 입을 맞춰! 그러고 싶냐?”

“어머, 어머! 에비앙 언니! 다 털어놓아!”

“설마 하퍼가(家)의 소후작을 말하는 겐가?”

허얼. 하퍼가면…… 설마 다니엘스 하퍼 후작 영식?!

사교계에서는 앙숙 파벌인 메릴린 하퍼 영애의 오빠와 에비앙이 친한 친구 사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도 엄청 신기했는데.

‘키, 키스라니…….’

사이나는 방금 전만 해도 자신의 첫 키스를 추궁당하던 상황이었다는 것마저 까맣게 잊고, 에비앙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그러니까 어떻게 어쩌다 그리되었느냐고!”

“그 미친놈이 먼저-”

“꺄악! 어떡해!”

술술 풀리는 에비앙의 사연에 플로리아의 눈이 심하게 반짝거렸다. 곧 그 반짝임이 형체를 가지고 별이 되어 뜨기 직전처럼 말이다.

“……그래서 요즘 피하는 중이지 뭐.”

“그럼 아예 연 끊게?”

“흠, 그건 생각 중.”

“왜?”

“그 자식이 키스를 너무 잘하잖아. 자꾸 생각나서 열 받아!”

“어머, 언니! 그럼 다시 해보면 되지!”

프, 플로리아……?

“암튼 그렇게 됐어.”

“아, 그렇구나. 다 끝났지?”

“응.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에비앙의 사연이 끝나자, 그 심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방향을 스르륵 바꿔 사이나 쪽으로 돌아왔다.

그녀 외에 다른 세 쌍의 눈 역시 함께.

“…….”

결국 사이나는 황실의 이야기를 섞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편집을 거쳐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했다.

“……난 사실 결혼 안 하고 그냥 살려고 했는데.”

“응? 왜?”

“사교도 잘 못 하고.”

“어머, 우리 사야. 사교 충분한데?”

“…사실 아를어 연구나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었거든.”

“허.”

“근데 그분은 그런 거 상관없어하시고, 날 받아주셔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황자 이야기를 빼고 편집을 하며 이야기하려니 연애 결혼 같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머, 완전 뜨겁네. 뜨거워.”

“…….”

“공작님도 의외고 말이야.”

“크레이머 공작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군.”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사이나한테 몸이 달았다는 건 확실하네요.”

“아하하.”

“…….”

더 이상한 결론도 추가로 나왔다.

키얼스틴은 사이나를 향해 어딘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물었다.

“널 행복하게 해줄 남자라고 생각하는 거지?”

행복이라.

망할 황자 때문에 엉겁결에 하게 된 결혼이기는 하지만…… 콘스탄틴과 하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분이야.”

차마 남편 후보로도 생각지 못했을 만큼, 자신에게 과분하고 좋은 남자다.

“하긴, 결혼에서는 서로 좋은 사람인 게 엄청 중요하지.”

다섯은 도란도란 소소한 화제들을 바꿔가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새벽이 가장 깊어진 시각.

모임이 끝났다.

다들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해가 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암. 사이나. 잘 다녀와.”

“우린 좀 잘게.”

“응. 다녀올게.”

평소 취침 시간을 한참 넘긴 탓에 다들 피곤해 보였다. 침대에 머리를 대자마자 금세 잠이 들 것 같았다.

사이나 역시 자고 싶었지만, 그녀는 아직 할 일이 있었다.

“드보프 영애. 내 미리 시종에게 일러두었으니 따라가면 되네. 일출 장소로 안내할걸세.”

“배려에 감사합니다. 전하.”

“뭐, 별일이라고. 잘 다녀오게. 그저 정경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네. 분명 그럴 것입니다. 편히 주무시길.”

일출 장소는 사이나가 모르는 곳이었다. 황녀가 어디쯤인지는 설명을 해주었으나 황궁 지리를 모르는 탓에 감이 잘 안 왔다.

사이나는 방으로 돌아가 스밀라의 시중 아래 미리 정해두었던 드레스로 갈아입고, 찬 새벽 공기를 막기 위해 외투를 걸쳤다.

그녀를 일출 장소로 안내하기 위해 미리 대기 중이던 시종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뒤로는 스밀라가 따랐다.

겨울의 끝자락.

게다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많이 쌀쌀했다.

사방이 어두웠다. 시종과 스밀라가 든 등불이 길을 밝히고 있기는 했지만, 몇 걸음만 벗어나도 그저 깜깜하기만 한지라 약간 으스스하기도 했다.

시종은 사이나의 걸음 속도를 살피며 능숙하게 어두운 길을 따라 이동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종이 걸음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는 갈 수 없습니다.”

“음?”

“귀인 외에는 출입이 금지된 지역입니다. 그저 길을 따라 끝까지 가시면 탑이 나올 텐데 그 앞에 서 계시면 크레이머 각하께서 계시거나 곧 오실 겁니다.”

“아, 알겠네.”

시종은 스밀라가 들고 있던 등불을 사이나에게 넘기며 말했다.

“저희는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혼자 걸음을 옮겼다.

하필 이 앞으로는 높은 관목들이 늘어선 지역이라 마치 숲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더 어두웠고, 더 으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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