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첫날밤까지 어찌 기다릴지
“코, 콘스탄틴?”
하지만 어느새 파티션 바깥으로 나온 그가 짙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콘스탄틴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으로 몸이 바르르 떨려왔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거지?’
그가 그녀에게 위협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가 저런 눈을 할 때면 매번 몸이 굳었다. 뭔가 몸의 신경들이 죄다 곤두서는 느낌?
“침대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지금 내게 어찌 보이는지 알긴 하는 겁니까?”
“…네?”
그저 언더 드레스 차림이라 몸을 가리기 위해 그런 것뿐인데……?
사이나는 당황한 눈으로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흡.”
순식간에 입술이 먹혔다. 뜨거운 숨결이 입속을 태울 듯이 밀고 들어왔다.
“읏, 으음.”
허둥지둥 감은 시트째로 몸이 뒤로 넘어갔다. 졸지에 시트에 속박된 채로 사이나는 그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의 키스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쫓기기라도 하듯 다급하게 들이친 혀가 무언가를 찾아낼 것처럼 입안 곳곳을 쑤석였다.
그의 혀가 예민한 점막 여기저기를 자극할 때마다 사이나의 등줄기가 움찔거렸다.
숨이 차올라서 그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시트에 휘감긴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으응, 흐….”
한껏 벌어진 입술 새로 잔뜩 고인 타액이 흘렀다. 흐르는 타액을 따라 그의 혀가 따라 내려가더니 귓바퀴를 삼켰다.
“아!”
동그란 부분을 따라 쓸며 올라온 혀가 습기를 남기며 안쪽으로 이동했다.
귓바퀴 안쪽을 더듬는 혀의 움직임이 주는 소리가 천둥처럼 귓가로 파고들었다.
“읏-”
그저 귀일 뿐인데. 지나치게 느낌이 이상했다.
그것도 모자라 그의 혀가 외이도의 좁은 구멍을 넓히기라도 하겠다는 듯 집요하게 파고들자 사이나는 몸 한중간으로 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흐아! 코, 콘스탄틴!”
사이나는 움찔거리는 몸을 바동거리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 사야…….”
그의 혀가 외이도를 막으며 잠기듯 먹먹해졌던 청각이 열리자마자, 그가 한숨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어넣었다.
“으, 읏.”
어느새 그는 목덜미를 핥기 시작했다.
민감한 목 줄기의 연한 살을 그가 잘근잘근 씹으며 내려오더니 동그란 어깨를 길게 핥아 올렸다가 쇄골의 패인 부분에서 그 깊이를 가늠하듯 혀로 쓸었다.
그의 손은 어느새 그녀의 몸을 감싸던 시트와 언더 드레스를 어깨 아래까지 끌어내렸고, 그의 입술은 동그란 둔덕을 따라 그 말랑한 살덩이가 눌리는 감촉을 느끼며 더 높은 곳을 향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응…….”
사이나는 목 안 깊은 곳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 끝이 점점 곤두서는 감각이 선명해서 숨을 할딱였다.
“사야…….”
드러난 살결에 그가 숨결처럼 그녀의 이름을 바르며 움직였다. 오소소 돋는 얕은 소름 같은 감각이 퍼져나가더니 아랫배가 조여들었다.
전에 결혼도 해보았고,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물론 이 몸은 아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사이나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었다. 잠시 후면 하녀가 들어올 거라는 상황도 잊었다. 완전히 그에게 휩쓸렸다.
“콘스… 흐윽…….”
“하아…….”
그 역시 그런 듯했다.
농염하게 짙어지던 둘 사이의 분위기는 어지간해서는 깨기 힘들 것 같았다.
자의로는 말이다.
뺙뺙.
하지만 방해꾼이 있었으니.
뺙?
그의 품 안에서 부시럭 소리를 내며 갑작스레 튀어나온 무언가가 입을 빠끔빠끔거리며 포로록 그녀의 가슴팍 위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사이나와 콘스탄틴의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침묵도 함께 불러왔다.
“…….”
“…….”
아까 조각 공원에서 날아가 버렸던 검은 새였다.
“……제길.”
콘스탄틴이 난감한 듯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몇 번 박박 쓸고는, 새를 잡아 한쪽으로 치웠다.
뺙!
진짜 새가 아니라 소리가 나지는 않으나 어쩐지 저런 소리를 낼 것 같은 입 모양을 하며 부리를 뻐끔대더니, 침대 위에 펼쳐진 사이나의 검은 머리채 위로 뾱뾱 걸어 올라가 거기에 몸을 비비고는 알을 품듯이 앉았다.
사이나는 한껏 흐트러진 제 모습을 인지하며 벌떡 일어나려던 참에, 새가 제 머리채 위에 앉아버리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여전히 그가 짙은 그늘을 드리우며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탓에 사이나는 얼굴이 발개졌다.
“…보, 보지 말아요. 나 손이…….”
몸이 결박된 것과 다름없이 잔뜩 살결을 드러낸 상태라 그런지, 포식자 앞에 놓인 군침 도는 먹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이나는 계속해서 시트에 휘감겨 빠져나오지 않는 두 팔을 빼려 끙끙댔지만, 새가 신경 쓰여 크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작게 바동거릴 뿐이었다.
저항도 못 하는 모양새로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채 잔뜩 흐드러진 모습이라니. 콘스탄틴의 턱이 팽팽해졌다.
“이성이… 끊어질 것 같은데…….”
“그, 그만 보고 나 좀 풀어 주세요.”
거의 울듯이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콘스탄틴은 마치 석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없었다. 턱을 보면 이를 악무는 것처럼 더 팽팽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코, 콘스탄틴.”
한참 후에야 그가 느릿하게 눈을 감더니 크게 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떴다.
“후…….”
아까의 아슬아슬하던 눈빛은 겨우 지워진 상태였다.
콘스탄틴은 검은 새를 치우고 그녀의 언더 드레스를 끌어 올려 주었다. 시트를 추슬러 상체에 잘 감아준 다음 그녀를 일으켜 똑바로 앉혀 주었다.
몸에 잔열감이 남아 찌르르 흘렀다. 어쩐지 그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어 사이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미안합니다.”
“네?”
“자꾸…… 때와 장소도 못 가리고 이성을 놓게 되는군요.”
“…….”
“절대 이러려고 온 게 아니었습니다만.”
“…….”
“정말입니다.”
차마 더 손을 대지는 못하고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변명했다.
그녀는 그녀대로 점차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맞아. 여기… 황녀궁이지.’
새삼스러운 깨달음에 사이나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가 그의 침입을 눈치채고 들이닥치기라도 할까 봐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쩐 일이세요?”
콘스탄틴은 말없이 검은 새를 가리켰다.
“어, 그렇지 않아도 날아가 버려서 걱정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요. 그저 조각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는데 새가 갑자기 날아가 버렸어요.”
“갑자기, 말입니까?”
“좀 이상한 조각품을 구경하던 중에…….”
아마도 에렌혼일 것이 분명한…….
그래서였나? 근데 그렇다고 검은 새가 왜 날아가 버려야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상한 조각품… 이요?”
“네. 아마도 에렌혼을 만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조각인 줄 알았는데, 움직여서 깜짝 놀랐거든요.”
“……흠.”
콘스탄틴이 그녀의 말을 듣더니 한쪽 눈썹을 잠깐 들썩였다.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했다.
“혹시 무슨 일 없었습니까?”
“무슨 일이요?”
“기분 나쁜 일이라든가…….”
기분 나쁜 일?
“아, 뭔 일이 있기는 했네요.”
“무슨, 일이요?”
“다른 맹약의 주인을 뵈었어요.”
“혹시 애버딘… 공작 말입니까?”
“어찌 아셨… 아, 에렌혼 봤다고 했죠. 네.”
“…어땠습니까?”
콘스탄틴은 어딘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으나, 사이나는 낮의 만남을 회상하느라 그런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냥 뭐…….”
“…….”
“생각과 많이 다르신 것 같았어요.”
예를 표하는 것을 잊었을 만큼 많이 생각과 달랐다.
그러면서도 전에 봤을 때처럼 여전히 이상한 사람 같기도 했다.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까?”
“네?”
무슨 생각을 많이 했냐는 거지?
“흠. 그… 생각과 다르다는 건, 생각을 했다는 거니까…….”
“아, 딱히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에요.”
“그럼…….”
“그냥, 아무래도 같은 맹약의 주인이시니… 막연하게 근엄하고 진중한? 그런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근엄’이나 ‘진중’ 등의 단어가 나오자 콘스탄틴이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되는 표현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애버딘 공작이요?”
“네. 근데 좀…….”
같은 맹약의 주인 앞에서 ‘한량 같더라.’ 혹은 ‘시정잡배인 줄 알았다.’ 등의 평을 하기는 좀 그래서 사이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하나 사이나의 표정에서 그녀가 말하고 싶은 바를 눈치챈 콘스탄틴의 얼굴이 사르르 밝아졌다.
“그렇군요. 그대는 역시 사람 보는 눈이 훌륭합니다.”
“네?”
신종 자화자찬 수법 같은 건가?
분명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콘스탄틴은 너무 당연한 말이라 반론조차 듣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새를 다시 데려왔으니, 꼭 데리고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건지, 검은 새가 뽀르르 날아오더니 사이나의 정수리 위에 살포시 앉았다.
뺙.
사이나는 제 머리 위에 자리 잡은 새 때문에 깜짝 놀라 또 굳었다.
“꼭 데리고 다닌다고 대답해 줘요.”
“어, 네. 알겠어요.”
손을 올려 새를 집어 들자니, 시트 바깥으로 몸을 빼야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만 정수리 쪽으로 굴렸다.
그 모습을 본 콘스탄틴이 귀엽다는 듯 길게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지금 내가 시트를 헤집고 더 아래까지 파고들어도… 그대는 못 움직일 것 같은데.”
“…….”
지, 지금 무슨 말을…….
사이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쪽. 가볍게 그녀의 눈가에 입술을 찍고 난 그가 몸을 물리며 덧붙였다.
“하녀가 돌아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마부터 목 아래까지 잔뜩 빨개진 사이나를 보며 그가 더 깊게 웃었다.
“첫날밤까지 어찌 기다릴지.”
“…….”
“후, 걱정이군요.”
난데없는 첫날밤 이야기에 사이나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내일, 일출 때 봅시다.”
그는 길게 웃고 나서, 테라스 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사이나의 살결 위에 발긋하게 남은 붉은 기운만이 그가 다녀간 증거가 되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