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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03화 (103/233)

103화. 요즘 내 인내심이 꽤 얄팍한지라

신부 측 축야야 무얼 하든 어디서 하든 신랑 쪽에서 관여하지 않지만, 일출 장소에 관한 것은 양측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결혼식에 관한 공식 서신의 일종이라 내일쯤 회신이 올 것으로 예상한 사이나는 답장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톡톡.

그런데 웬걸. 테라스 창을 뭔가가 두들기는 소리에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설마?’

사이나는 테라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포르륵. 익숙한 검은 새가 그녀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밤에?”

급한 일도 아닌데 왜 이리 서둘러 회신을 한 걸까?

사이나는 새가 내려와 앉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었다.

파드닥, 날갯짓을 한 새가 천천히 사이나의 검지 위로 내려앉으려던 차.

화아- 약한 바람과 함께 커튼이 휘날렸다.

‘……?’

검은 새가 다시 허공에 뜨더니 무언가를 토해놓지도 않고 도로 테라스 쪽으로 날아갔다.

“어? 새야, 어디… 로…….”

검은 새가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몸을 돌리던 사이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야.”

거기엔 콘스탄틴이 있었다.

“…공작님?”

검은 새를 위해 열어둔 테라스 문을 넘어, 사이나의 방에.

“또, 그 호칭이군요.”

“어찌…….”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괜찮겠습니까?”

“여긴… 3층인데!”

사이나는 정말 놀랐다.

“야밤에 레이디의 방에 찾아온 게 놀라운 게 아니라, 그게 놀랍습니까?”

“아.”

그도 그러네. 사이나는 멋쩍어서 애매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리 몰래 찾아올 수 있는 것도, 3층인데 쉽게 올라올 수 있는 것도, 모두 그가 맹약자이기 때문이겠지.

“그대답군요.”

콘스탄틴이 피식 웃으며 팔을 뒤로 돌려 테라스 문을 천천히 닫았다.

시선은 계속 그녀를 향한 채로 말이다.

작게 테라스 문이 탁,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사이나의 어깨가 약하게 움찔했다.

밤바람 소리가 차단되며 묘하게 적막해진 분위기에 어쩐지 침이 꼴깍 삼켜진다.

“…고, 공작님?”

그가 그녀의 시선을 붙잡은 채로 갑자기 목 근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이름.”

쉴 새 없이 단추를 풀어 내리는 그를 보며 사이나는 입을 달싹댔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겨, 결혼하기로 한 사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느새 단추를 다 푼 그가 재킷을 벗었다. 재킷을 벗기 위해 한껏 펼쳐진 상체에 안쪽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보였다.

팽팽한 윤곽 너머로 꽉 짜인 근육의 형태 역시.

“불러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지, 지금 뭐 하시는…… 아!”

풀썩. 커다란 그의 재킷이 그녀의 어깨 위로 둘러지며 바람을 일으켰다.

“잠옷이 너무 얇군요.”

“…….”

으아앗!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렇지! 저 예의 바른 공작님이 그럴 리가 없는데!

혼자서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던 자신의 망상을 질책하며 사이나는 민망함으로 침묵했다.

“…돌아갈까요?”

묘한 침묵이 이어지자 콘스탄틴이 물었다.

“내가 너무 무례했습니까?”

“네?”

“아무래도 한밤중인데 마음이 앞서서 그만.”

“그,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나?

말하면서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마음이었다.

무례함으로 느껴서는 아니고, 뭔가 민망하고 부끄럽고 숨고 싶고 그런 거니까.

“그… 재킷 감사합니다.”

재킷에서는 뭔가 좋은 향기가 났다. 남성적이면서도 청량한 향기가.

마치 그의 품에 안긴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해진달까.

“근데 저 춥지는 않아요. 괜찮은데…….”

다시 돌려드릴까요, 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보는데, 어쩐지 표정이 애매했다.

“…그게 아니라.”

“……?”

“속이 비칩니다.”

순식간에 ‘그 눈빛’으로 변한 콘스탄틴이 사이나의 시선을 옭아맸다.

“요즘 내 인내심이 꽤 얄팍한지라.”

그녀의 입술을 삼킬 때면 나오던 그 눈빛. 입술뿐 아니라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리고 싶다는 느낌의 눈빛이었다.

“아…….”

그리 얇은 재질도 아니고, 살을 많이 드러내는 디자인도 아니라 잠옷을 입은 제 모습이 자극적이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손 좀 잡아 달라 하려 했는데, 괜찮을지 모르겠군요.”

“네? 괘, 괜찮아요.”

“그대가 아니라 내가.”

“…….”

이런 상황에서는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우선, 앉지요.”

멋쩍은 표정으로 있자 콘스탄틴이 제안했다.

약간 발긋해진 볼 언저리를 한 채, 사이나가 침대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근처에 놓인 안락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

콘스탄틴이 약간 암담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착각인가?

그는 매우 천천히 자리에 앉더니 손잡이를 꽉 쥐었다.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지? 피곤해서 그런가?

“손잡아 드릴까요?”

아무래도 요 며칠 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사이나가 말했다.

그런데 손잡이를 잡고 있던 그의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그가 악력을 높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가 보다.

‘모레프는 대체 왜 그런 부작용이 있는 걸까? 다른 수호령들도 다 그런 부작용이 있을까?’

자연스럽게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피곤하시면 여기서 잠깐 주무실래요?”

부작용의 원인이 뭐든 매우 피곤해 보이니 의논도 하고 한숨 자기도 할 겸, 직접 온 게 아닐까. 사이나는 그리 추측하고 권했다.

그녀가 제 침대를 가리키며 묻는데 콘스탄틴의 어깨가 굳었다.

“하아…. 아닙니다.”

‘왜 그러지.’ 침대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그런가? 베개나 시트 디자인이 남자가 눕기에는 좀 그렇긴 할지도.

“그럼… 이야기부터 할까요?”

“그래요.”

사이나는 마담 샤를리즈 부티크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그에게 해주었다. 황녀궁에서의 축복의 밤 행사와 일출 장소에 관한 이야기까지.

“공작님도 친구분들이랑 축복의 밤 하실 거죠?”

“흠. 글쎄요.”

“안 하세요?”

“모여 봐야 술이나 마시겠지요.”

술……. 설마 그도 그런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걸까?

“…마농 거리에 있는 술집에서요? 신랑 쪽은 축야 때 거기 많이 간다던데.”

그런데 사이나의 이야기를 들은 콘스탄틴의 표정이 매우 매섭게 변했다.

“지금 마농 거리가 뭔지 알고 하는 말입니까?”

“…….”

마농 거리에 있는 술집들이 술 말고도 다른 것들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접대부, 평범하지 않은 성벽에 대한 맞춤 서비스, 갖가지 약물 등.

조지 홀랜더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다. 마농 거리의 엄청난 단골이었으니 말이다.

“누가 그딴 낭설을 보편적인 일인 양 헛소리를 늘어놓았습니까?”

그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며 아주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나를 못 믿겠습니까?”

“아니,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순간 의심을 한 것은 사실이라 사이나는 민망해졌다.

“미안해요. 그냥…….”

그런 사람이 있었거든요. 실제로…….

“사야.”

그가 갑자기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앞에 와서 섰다.

거대한 상체가 그녀에게 그늘을 드리운다. 역광이라 그늘진 그의 얼굴에서도 찌를 듯한 눈빛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본디 타인과 닿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건, 알고 있을 텐데요.”

맞다. 그랬지.

얼굴 외엔 드러난 맨살 하나 없이 장갑까지 꼭꼭 착용하고 다니던 그니까.

요즘 장갑을 거의 끼고 있지 않아서 잠시 잊었더랬다. 아무래도 그녀를 만날 때는 끼지 않는 것인 듯했다.

“그대 외에는…….”

천천히 그의 손가락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귓가에 꽂아 주었다.

귓바퀴가 간지러워 어깨를 움츠렸는데, 이번에는 귓불을 엄지와 검지로 잡더니 가볍게 문질렀다.

“읏.”

귀를 만지는 것뿐인데, 어째서 이리 야릇한 느낌이 나는 거지?

사이나는 당황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흡!”

그가 덮치듯 상체를 내려 그녀의 입술을 삼킨 것은 순식간이었다.

콘스탄틴이 내리누르는 힘에 밀려 몸이 뒤로 넘어갔다. 털썩. 매트리스가 두 사람의 무게만큼 눌렸다.

삽시간에 그녀의 입을 열며 밀고 들어온 그의 혀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혀를 감았다가 쓸어 올리며 연구개를 자극하는 그의 혀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적나라해서 사이나는 몸을 떨었다.

숨결까지 삼킬 듯 입술을 밀봉한 탓에 사이나는 정말로 숨이 가빴다.

그의 어깨를 팡팡 치며 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그가 떨어져 나갔다.

“하아, 하…….”

사이나는 모자란 호흡을 메꾸려 가쁘게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했다.

“참지 못할 것 같아서 손 안 대려 했는데… 왜 자꾸 날 자극합니까.”

제, 제가 언제요?

“…읏.”

스윽. 그의 손이 그녀의 정강이를 쓸며 위로 올라와 무릎을 감쌌다. 그러더니 더 위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 공작님?”

“이름을 부르라니까, 고집이 세군요.”

“코, 콘스탄틴. 저기….”

“조금만… 조금만 더 만지게 해줘요.”

갑자기 농밀해진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고 사이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그녀를 삼킬 듯 바라보는 표정에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거절의 말을 꺼내지 못하고 머뭇대고 있던 그 순간.

“크아아아아앙-!”

철푸덕!

어디선가 욜리가 날듯이 뛰어와 그의 얼굴에 정면으로 부딪치며 짜부라졌다.

“…….”

“…….”

스르륵, 떨어진 욜리가 몸을 다시 일으키더니 곰 발로 그의 볼때기를 마구 쳐댔다.

“하아…….”

어느새 그가 욜리의 등줄기를 잡고 허공에 들었다.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욜리가 울부짖었다.

“캬앙! 컁! 컁컁!”

욜리의 울음소리는 카랑카랑했으나 불쌍하게도 녀석의 모습은 바동바동 귀엽기 짝이 없었다.

“욜리. 어, 어디서 있다 지금 나타났니?”

당연히 유모가 데려왔겠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기분인지라 그저 아무거나 물은 것뿐.

“크아앙!”

공작에게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건지 계속해서 욜리는 짧은 앞발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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