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02화 (102/233)

102화. 다 털어놔

“왜! 뭐! 뭐?”

사이나의 울상에 나머지 세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집중해왔다.

“그때 찾은 인형들… 다 잃어버렸어…….”

종류별로 다 찾느라 그 고생을 했는데…… 정신없이 이리되면서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시무룩해진 사이나를 어이가 없다는 듯, 3인방이 쳐다보았다.

“지금 그게 중요하니!”

“하지만… 에렌혼 찾느라 너무 힘들었단 말이야.”

“왜 잃어버렸는데?”

“왜겠어. 공작 각하께서 갑자기 청혼을 하시면서 너무 기뻐서 방방 뛰느라 그런 거 아니야?”

“…….”

그런 게 아니라 여기엔 다 사정이…….

자초지종을 다 설명하기엔 장소가 좋지 않았다. 황실과 관련된 사정이라 함부로 말하기도 그렇고.

사이나는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애매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부끄럽지만 맞아.’의 뜻으로 비쳐졌다.

“에렌혼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크레이머 공작님이랑 결혼하는 거야! 우리 오빠랑 결혼하면 매일 볼 수 있었을 텐데!”

“…프, 플로리아?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에 사이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는 그녀에게 공작부인 자리를 노리느냐며 뭐라고 하지 않았었나?

“아니, 플로리아. 너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그렇지 않아도 우리 집 멍청이 때문에 화나는데.”

그런데 더 뜬금없이 키얼스틴이 갸름한 눈을 하며 플로리아에게 추궁하는 말투로 물었다.

“아니 언니, 그게 아니고. 기왕 맹약자랑 할 거라면 좋아하는 수호령의 주인이 낫지 않겠느냐는 거지…….”

“근데 왜 난 사심이 느껴지지?”

“흐, 흠. 오해야.”

내가 수호령을 좋아한다지만, 아무렴 그것 때문에 결혼까지 할 사람은 아닌데…….

서로의 오해가 깊어지고 있었다.

“호호. 그럼 시작해 볼까요?”

다행히 다과가 새로이 차려지며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래. 우선 이곳에 온 목적부터 해결하자.”

“좋은 생각이야.”

마담 샤를리즈는 손뼉을 짝짝 두 번 쳐서 직원을 부르더니 준비한 것들을 들이라 일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 북 여러 권과 원단 샘플, 기본 디자인이 입혀진 몇 개의 마네킹이 줄줄이 들어왔다.

“우선 여기 마네킹들을 보시고 기본 형태를 먼저 정하시고 나서, 세부 디자인을 정하시면 어떨까 싶어 준비해 보았어요.”

“오. 좋은 생각이야.”

머메이드 형태, A라인 형태, 엠파이어 형태, 긴소매, 민소매, 오프숄더 등 여러 기본 디자인을 볼 수 있는 마네킹들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마담은 웨딩드레스에 적합한 원단들을 펼쳐 이런저런 조합을 보여주며 결정을 유도했다.

모인 네 명은 사이나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으면서도 참석자들의 입을 떡 벌리게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찾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단해….’

나름 자작부인 자리를 거치면서 스타일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음에도, 나머지 셋에 비하면 그녀는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수준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따금 그들이 말하는 단어들에서 같은 제국어를 구사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착실하게 완성되어가는 디자인은 누가 보아도 아름다울 것이 분명했고, 찰떡처럼 자신에게 어울리리라.

엘리자베스가 도왔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몇 시간에 이어지는 과정이었으나 그 누구도 지루해하거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당사자인 사이나가 가장 지친 것 같았다.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네.”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더 좋은 생각이 나면 그때 추가하자고.”

“호호. 추가 사항 있으시면 최대한 빨리 알려주시길 부탁드릴게요~. 세부 장식이야 상관없지만요.”

혼자 왔다면 마담 샤를리즈가 권하는 디자인 중에서 골라서 몇 가지만 세부적으로 정하고 말았을 텐데 다들 존경스러웠다.

“그래요. 마담. 잘 부탁해요.”

“최선을 다해 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걱정 마시어요.”

4인방은 마담에게 양해를 구하고 응접실에서 짧은 담소를 조금만 더 나눈 뒤 떠나기로 했다.

“어머, 물론이죠. 얼마든지 계시다 가시도 됩니다. 식은 차만 교체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직원이 들어와 차를 교체하고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사이나. 축복의 밤은 어떻게 할 거야?”

“응? 축복의… 밤?”

“어쩐지 여태 물어보질 않더라니… 설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

침묵으로 긍정을 표현한 사이나를 보더니 에비앙이 피식 웃었다.

“내가 이겼다.”

“아니, 어떻게 생각도 안 해 볼 수가 있어?”

키얼스틴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사이나를 보았다.

“…….”

맥페이든 제국에서는 결혼식 일주일 전에 신랑과 신부가 각자의 친구들과 모여 밤을 지새우며 파티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를 ‘축복의 밤’이라고 한다. 줄여서 ‘축야’라 부르기도 했다.

이미 결혼한 부인을 메신저로 초청해 결혼에 관한 가르침을 받고, 신랑과 신부에 대한 덕담과 선물을 나누는 과정이 포함된다.

“음, 요즘 정신이 없어서… 생각 못 했어.”

사실이기는 하다. 한 달 만에 결혼을 하려니,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 준비를 콘스탄틴 쪽에서 다 알아서 한다고 했어도 여자 쪽에서 신경 써야 하는 문제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오히려 다행이지 않아? 준비를 했으면 바꾸기가 쉽지 않잖아?”

그런데 플로리아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뭘 바꿔?”

“실은 황녀 전하께서 우리 쪽에 제안하신 게 있거든.

“황녀 전하께서?”

“응. 축복의 밤 행사를 황궁에서 하면 어떠냐고. 자신의 궁을 빌려 주시겠다고 말이야.”

축복의 밤은 신랑, 신부와 의논을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양측의 친구들이 준비하는 행사였다. 그래서 황녀 전하 역시 사이나가 아니라 친우들 쪽에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감사한 일이긴 한데, 너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닐까?”

“전하께서도 참석하고 싶으신데 궁 밖에서 숙박을 하실 수 없으니 우리가 들어오길 원하시는 눈치였어.”

“아…….”

그렇다고 해도 의외였다.

황녀와 약간의 친분을 쌓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호의를 베풀어주실 줄이야.

황자가 좀 걸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황녀를 거절하는 것도 못 할 일이다.

각각의 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니 황녀궁 영역을 아예 벗어나지 않으면 될 일.

“일출을 보기에도 아주 안성맞춤인 곳이 있다며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던데.”

신랑과 신부는 떨어져서 각자의 친구들과 밤을 보내지만 그 밤의 마지막은 함께 해야 했다.

신랑과 신부 둘이서 일출을 같이 보는 것이 축야의 마무리였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부부로서의 밝은 앞날을 기원하는 것이다.

‘일출이라…….’

전생에 결혼할 때 축복의 밤 행사는 하는 시늉만 했다.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가 있기는 했지만 한 명뿐인지라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에 들었다.

그래도 일출은 봐야 할 것 같아 약속된 장소로 갔는데 조지 홀랜더가 나타나질 않았다.

나중에 술에 절어 어느 술집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었지.

그리고 더 나중에 그 술집이 단순히 술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결혼식을 올린 이후였다.

“싫어? 궁이 부담되는 거면 정중히 거절하고 우리 저택도 괜찮아.”

잠깐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나가 흠칫 깨어났다.

“어,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놀라서…….”

“그렇긴 해. 나도 놀랐으니까.”

키얼스틴이 길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진행해?”

“응. 따로 이쪽에서 연락드리기는 할 건데, 너무 감사드린다고 전해줘.”

“알았어.”

먼저 서신을 보내고, 선물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우리 넷이랑 황녀님까지 다섯. 하녀들은 한 명씩만 데려 오라셨어. 혹시 추가하고 싶은 인원이 있어?”

“음, 아니. 우리만으로도 넘치는걸.”

정말로 그랬다. 더할 사람도 덜할 사람도 없이 사이나는 만족했고, 진심으로 기뻤다.

“고마워, 정말.”

배시시 지어지는 미소로 사이나는 다시 한번 고마움을 표했다.

“어우! 우리 사야, 왜 이렇게 일찍 결혼하는 거야!”

“으이(언니)?”

키얼스틴이 갑자기 다가와 또 불쑥 사이나의 볼을 꼬집었다.

“맞아. 뭐가 그리 급하다고…. 우리 오빠도 미혼인데…….”

플로리아가 작게 투덜거렸다.

“크레이머 공작이 이리 기회주의자일 줄이야.”

에비앙도 한소리 보탰다.

“…공작님은 아무 죄도 없어.”

“그럼 그분이 서둘러서 이렇게 빨리 결혼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건 맞는데.”

한 달로 시간을 잡은 건 그지만, 그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니까…….

“순진한 너를 정신없이 꾀어 몰아쳐서 이리하는 거 정말 아니야?”

“에? 아니야! 그분은 아주 정중하게 물어보셨고… 나도 동의했어.”

그저 곤란한 나를 도와준 것뿐인데 자꾸만 이상한 취급을 받고 있는 콘스탄틴에게 미안해졌다.

“흠. 사야? 그럼…….”

듣고 있던 키얼스틴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사르르한 말투로 물었다.

“공작님 얼마나 좋아해?”

“…….”

좋아하냐고? 싫어하지는 않지만……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다.

“반응이 묘하네?”

“흠. 그러게?”

“…그래도 싫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셋은 집요하게 사이나를 관찰하며 의견을 나누었다.

사이나는 어쩐지 갑자기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서 얼굴을 숨기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아 애매하게 웃으며 눈을 슬쩍 굴렸다.

“때와 장소가 좋지 않네.”

“그래. 오늘은 이 정도로 넘어가지만… 축야 때 죄다 털어놓을 생각하라고?”

“크레이머 공작님이 얼마나 파렴치한인지 듣고 말겠어!”

“…….”

깊어지는 오해에 사이나는 그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짐승, 맞습니다.’

파렴치한이라는 단어에 왜 갑자기 이 기억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누었던 입맞춤과 짙어졌던 그의 눈빛이 떠오르자 볼 언저리가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날. 기대할게?”

하지만 그런 사이나의 표정을 그저 당황해서 그런 줄로 생각한 친우들은 짓궂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남기며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 * *

타운 하우스로 돌아간 사이나는 콘스탄틴에게 서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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