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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01화 (101/233)

101화. 친구의 가격

“남녀 사이에 능통한 거라니까요. 결혼해도 남녀는 그대로잖습니까.”

“그게 바람둥이…….”

“아니라니까요. 전-”

“…푸흡.”

결국 사이나는 웃어버렸다. 그것도 크게.

“하, 절 놀리신 거군요.”

맑은 웃음소리가 로하튼 거리에 울려 퍼져 시선을 끌었다.

“아가씨께서 설마 그러실 줄은 몰라서 속았네요.”

“흡. 그 문제는… 조율해보고 알려줄게요. 근데 정말 저 따라와도 되겠어요? 멀 텐데.”

“예. 제가 할 일을 할 뿐이지요. 거리는 문제가 안 됩니다.”

“고마워요. 그 마음.”

“제 일이라니까요.”

단순히 일을 떠나 날 위한 배려가 느껴지니까요.

전생에는 왜 호위기사를 감시자로만 여겼던 건지 의아할 정도다.

“스밀라 오면 대신 말 좀 해줘요. 있지도 않은 손수건을 찾으러 갔으니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예.”

“들어가죠.”

사이나는 걸음을 옮겼다.

“드보프 영애님.”

입구에서 직원이 그녀를 알아보며 인사했다.

“어머, 어머. 이게 누구신가요~ 어서 오세요~ 드보프 영애님!”

직원의 안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응접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마담 샤를리즈가 나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해왔다.

“그간 잘 지내셨나요?”

“네.”

“웨딩드레스를 저희 부티크에 맡겨주셔서 너무 기뻐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

“마담의 실력을 믿으니 온 거죠.”

저번과 매우 달라진 마담의 태도가 좀 웃기기는 했지만 어떤 의미로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 사이나는 그저 담백하게 대응했다.

“뭐하니, 얼른 얼른 차를 내오렴! 최고급으로! 영애님은 이쪽으로 모실게요.”

마담은 심지어 사이나를 직접 안내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저번에 들어갔던 일반 응접실이 아니라, 안쪽의 귀빈용 응접실이었다.

‘…크레이머의 이름이 대단하긴 하네.’

귀빈용 응접실은 확실히 달랐다. 저번에 들어간 곳에 비해 배 이상 넓었고 딱 봐도 엄청 비싼 가구들과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비어 있었다. 서점을 먼저 들르려 좀 이르게 나온 탓에 친우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나가 앉자 어느새 직원이 들어와 차를 세팅했다.

“로즈데일 고산차예요. 영애님께서야 물론 드셔 보셨겠지만, 저희로선 얼마 전에 어렵게 구했답니다. 호호. 드셔 보세요.”

와. 귀빈 응접실에는 나오는 차부터가 다르구나.

로즈데일 고산차는 로즈데일령의 동쪽, 고산지 일부 지역에서만 키울 수 있는 종자. 수량이 많지 않아 꽤 비싼 차였다.

“음. 좋네요.”

칼루아도 맛있었지만, 꽃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고산차를 더 좋아할 것 같다.

“호호. 입맛에 맞으시니 저도 기쁘네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는 사이나에게 이어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혹시 미리 생각해 오신 디자인이 있나요?”

웨딩드레스 디자인? 음… 딱히 없는데…….

‘절대 하기 싫은 디자인이야 있지만.’

자연스럽게 딱히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생엔 엘리자베스가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걸 도와주었었다.

‘신부가 가장 아름다워야 하는 날이잖아! 당연히 이 정도는 화려해야지!’

보석도 너무 많이 달리고 지나치게 화려한 것 같아서 우려를 표하자 엘리자베스가 했던 말이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딱히 좋은 기분으로 결혼하는 것도 아니고, 별 의욕도 없어 엘리자베스가 하자는 대로 했다.

그랬는데 결혼식 날. 별 장식 없이 심플한 신랑의 복장과 자신의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너무 겉돌았다.

심지어 사이나와 어울리지도 않았다. 화려한 것도 모자라 살을 지나치게 많이 드러내는 디자인이라 마치 혼자서 무도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화려함에 신랑도 신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로지 드레스만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고 조지 홀랜더는 또 잘난 네 가문이 우리 가문보다 돈이 많다는 걸 결혼하는 날부터 그리 과시하고 싶었느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리 난리 법석을 쳐놓고 막상 식이 끝난 뒤 웨딩드레스를 홀랑 가져가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분명 낱낱이 분해해서 다 팔아버렸겠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그때는 조지 홀랜더가 워낙 별것도 아닌 걸로 매사 길길이 날뛰는 이상한 성격이라 그저 그 상황을 얼른 무마하려고만 했었지, 그 드레스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못 했었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엘리자베스는 상당히 미적 감각이 뛰어난 편이고 이런 쪽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고심하는 편이었다.

‘근데 그런 드레스를 하필?’

드레스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사이나와는 지독하게 안 어울렸고, 당시 상황과도 안 어울렸다.

돌아오고 나니 엘리자베스와 관련해 찜찜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생각난 김에 사이나는 물었다.

“발데즈 영애가 다녀갔죠? 청구서가 왔던데.”

그녀가 사이나를 골탕 먹이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 당시 분위기를 좀 알고 싶었다.

근데 사이나의 말을 듣자마자 마담 샤를리즈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공작부인. 제 체면도 좀 생각해주세요.”

때 이른 공작부인이라는 호칭을 정정할 새도 없이 마담이 다다다 한탄을 늘어놓았다.

“저희 부티크 아시잖아요. 까다로운 고객분들도 많고 귀한 분들이 많이 드나드셔서 매사 조심하는데… 저번에 발데즈 영애가 오시는 분들께 자꾸 말을 거시고…. 여기가 사교의 장은 아니잖아요. 사실 그 영애는 공작부인의 지인이라는 거 빼면 저희 부티크와는…….”

“…….”

“제 말 아시죠?”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람.

그니까 저번에 엘리자베스가 드레스를 맞추러 와서는 오는 손님들마다 알은체를 하며 교제를 시도했다는 건가?

“…혹시 많이 친하세요?”

대답 없이 듣기만 하는 사이나의 반응을 보고 혹 기분이 상했다고 생각했는지, 마담이 사이나와 엘리자베스의 친분의 거리를 재차 확인해왔다.

“나도 발데즈 영애가 여기서 드레스를 맞출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다섯 벌이나.”

망가진 제 드레스 대신이니 기껏 해봐야 약간 더 비싼 것이나 사리라 생각했지. 샤를리즈 부티크에서 다섯 벌이나 맞추리라 생각이나 했겠나.

“드보프가에서 지불을 책임져 주고 돈 벌었으니 좋은 거 아니냐 하실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제 명성도 있고…….”

드보프가에서 지불을 책임진다고?

저번 드레스야 내 개인 인장 카드를 이용해 청구했으니 굳이 가문 차원으로 설명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뭔가 이상했다.

“데뷔탕트 한정이라고 생각해서 저도 막지 않은 건데, 앞으로 계속이라면… 사실 매우 곤란하답니다. 부디 제 입장도 좀 헤아려 주세요, 공작부인.”

실컷 접대를 잘하다가 갑자기 한탄을 쏟아놓는 것을 보니 이 일이 마담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겠다.

“…우선 전, 아직 공작부인이 아니고요.”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그게 그거죠!”

“그래도 아직은 아니니… 그런 호칭은 삼가 주세요.”

“알겠어요, 영애님.”

“마담의 말은 잘 알겠어요. 근데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 인장 카드를 줄 생각이 없거든요.”

잘은 몰라도 발데즈 백작은 엘리자베스가 샤를리즈 부티크에서 드레스를 맞추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엘리자베스가 이 부티크에 올 일도 없을 것이다.

“저도 그건 알죠. 인장 카드가 문제가 아니라…….”

개인 인장카드는 일회성이라 청구서를 보낼 때 반환하는 것이 절차이기 때문에 당연히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마담은 자꾸 이상한 질문을 했다.

“그럼 앞으로는 드보프가에서 지불을 안 하실 거라는 뜻인가요?”

“…네? 드레스를 샀으면 지불을 당연히 해야죠?”

왜 지불을 안 해? 우리 가문을 뭐로 보고…….

“그럼 여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발데즈 영애님 몫을 지불하신다고요? 그니까 그게 문제라서 제가…….”

“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 그럼 드보프 가문에서 엘리자베스의 드레스값을 여태 내줬다는 말이야?

‘대체 왜?’

나도 모르게 대체 왜?

똑똑.

노크 소리에 달싹 열리던 입이 멈췄다.

“실례합니다. 드보프 영애님의 친우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이쪽으로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친우들이 온 모양이다.

사이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담 샤를리즈 역시 하던 말을 멈추고 지시했다.

“얼른 모시렴. 차도 새로 내오고.”

“네, 마담.”

우선 우즈에게 먼저 물어봐야겠다.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본 다음에…….

“마담.”

“네, 영애님.”

“무슨 말인지 잘 알았어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거에요. 마담이 원치 않는 손님은 받지 않아도 돼요.”

“…그리해도 괜찮으세요?”

마담 샤를리즈의 명성은 뛰어난 드레스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고급화와 희소화에 있었다. 그리고 그 고급화와 희소화의 가장 큰 베이스는 곧 신분과 재력이다.

마담의 부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죠.”

엘리자베스가 나의 죽고 못 사는 절친도 아니고, 상관없는 일이다.

“이해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후후.”

한숨 놓았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마담이 일어났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들을 마중하기 위해서다.

“사야!”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 갑자기 결혼이라니!”

키얼스틴, 에비앙, 플로리아가 줄줄이 들어오며 사이나를 살폈다.

하나같이 쉬이 대할 수 없는 영애들이 줄줄이 들어오자 마담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곧 미소가 되었다.

“호호. 어서 오십시오, 영애님들.”

“어서들 와.”

친우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사이나가 미소 지었다.

“당장 무슨 일이 있었는지 털어놓아야 해!”

“그러게. 우리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하는 사람이 사야일 줄이야.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니까.”

“정말 하는 거야?”

성격 급한 키얼스틴이 쪼르르 사이나의 옆에 붙어 앉으며 재촉했다. 에비앙과 플로리아는 맞은편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음… 그렇게 되었어.”

“그러니까 정확하게, 어떻게, 어쩌다 보니 그랬는데?”

“청혼은 언제 받았는데?”

여기저기서 다다다 몰아붙이듯 말을 붙여 와서 사이나는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

“그, 수호의 주간 마지막 날…….”

“허억! 보물찾기한다고 나가서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보물 찾았지?”

“보물 찾고 그다음에는?!”

“……앗!”

이럴 수가!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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