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실은 손만으로 부족했어
그녀가…… 제 품에 완전히 안겨 들어 있지 않은가.
긴 소파 팔걸이에 상체를 대고 반쯤 누운 그의 위로 사이나는 콘스탄틴을 덮치듯 엎드려 그를 감싼 채였다.
꿈이 분명했다. 실제라면…… 절대 둘이 이런 포즈로 누워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 되지 않는 상황에 잠시 망연해 있던 틈을 타고,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팍에 한쪽 볼을 대고 누워있던 그녀가 뭔가 자세가 불편했는지, 꼼지락대며 더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요철을 맞추듯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콘스탄틴의 한쪽 어깨에 턱을 맞춰 내려놓고 나서야 멈췄다.
“으음. 좋아…….”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좋다니, 뭐가 좋다는 것일까. 잠자는 것이 좋다? 지금 자세가 편해서 좋다? 아니면…….
온갖 망상이 머릿속을 치달았다.
그 와중에도 사이나는 계속 그의 품을 파고들더니 고개를 틀었다. 그러자 바로 눈앞에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몸 위로는 보드라운 여체의 감각이 선명했다.
‘이 여자는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 그녀의 바르작거림을 따라 몸의 한 부위가 매우 불편해지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이리 무방비하게…….
꿈이니까 뭐, 상관없나?
만져도… 되나? 깨울까?
깨우고 싶으면서도 깨우고 싶지 않은, 양극단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며 그는 갈등했다.
‘하아……. 돌겠군.’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런데 그 숨결이 너무 셌던 걸까.
사이나가 흠칫하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
아. 이런, 제길.
이 상황을 무어라 설명해 줘야 하나.
아니,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애당초 꿈속인데 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굳어 있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눈… 파란색… 예뻐…….”
몽롱해 보이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야말로 꿈결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의 눈이 예쁘다 평해주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손이 올라갔다. 예쁜 말을 하는 예쁜 얼굴 위로.
아니, 아주 예전부터 실은 이리 만져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으나, 어째서일까.
의식의 수면 아래 진심은, 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던 것이 분명하다. 다른 곳도, 더 많이, 더 깊게, 만지고 싶었던 것 같다.
사이나, 가만히…….
그의 손이 보드라워 보이는 볼을 감쌌다가 흐르듯 움직였다.
관자놀이에 흘러내린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훑고, 동그란 귓바퀴를 따라 선을 그렸다.
“읏.”
그녀의 입에서 예쁜 소리가 나왔다. 목소리에도 맛이 있다면, 단맛이 날 것 같은 그런 소리였다.
콘스탄틴은 홀린 듯 그 얼굴을 보았다.
경계심 강했던 고양이가 마침내 길이 들어 곁을 허락하는 것처럼, 그녀는 그의 품에 얌전히 있었다.
손에 닿는 보드라운 그 느낌을 음미하며 그는 이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되기를 바랐다.
제 손이 간지러운지 움칠하던 사이나가 갑자기 해사하게 웃었다.
그리 웃으면…….
꿈속의 그녀는 방벽 없이 허물어진 채 온통 귀여운 짓만 골라 해댔다.
전에도 설핏 보았으나, 그녀의 미소는 사람을 홀리는 면이 있었다.
평소 접근하기 어렵도록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무심함이 일시에 사라지고 갑자기 만방에 찾아든 봄이 자신을 초대하는 것 같은 분위기.
예쁘게 둥글려진 입술 역시 자신을 초대하는 듯했다. 유혹하듯 발갛게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 예쁜 입술로 그리, 웃으면…….
그는 홀린 듯이 그 입술에 다가갔다. 베어 물었다.
목울대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예쁜 목소리마저 그가 삼켰다. 그녀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당기며 더 깊게, 깊이 삼켰다.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기꺼이 입술을 열어주었고, 달콤한 목소리를 내주었다.
달고, 달다.
단맛은 별로인데. 매우 싫었었는데.
그녀가 주는 달큼함으로부터는 혀를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무아지경이 된 감각으로 그 입술을 탐하며 그 몸을 꽉 당겨 안았다.
만족스러운 꿈.
설탕 단지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의식이 만족감을 표했다.
나른하게 퍼진 몸에서 불면의 여파가 빠져나가며 따뜻하게 지펴졌다. 그리고… 그 따스함 안에서 그는 점차 의식을 내려놓으며 가라앉았다.
할 수 있다면, 이 상태로 영원히 머물고 싶을 정도로… 이 꿈이 기꺼웠다.
* * *
“으악!”
의식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순식간의 일.
품 안의 따뜻한 것이 자꾸만 빠져나가려 하는 감각에 슬슬 깨어나던 의식이, 비명에 완전히 깨어났다.
“…영애?”
그럼에도 그 경계가 모호하여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무실. 소파에 누워있는 자신. 소파 아래에 이상한 자세로 쓰러져 있는 사이나.
“…왜 바닥에…….”
그가 내려서는 움직임에 사이나가 고개를 들어 콘스탄틴의 얼굴을 보았다가 획 돌렸다.
붉어져 자신을 의식하는 저 표정은 아무리 봐도…….
“…….”
그저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아……. 꿈이, 꿈이 아닌가 보군.”
그래서 마음껏, 제멋대로 굴었는데 그게 꿈이 아니었다니.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민망하고 난감해져서 그는 이마를 짚었다. 항상 냉랭함이 도는 피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나는 것이 생소할 정도다.
대체 이 상황은 어찌 수습해야 할까.
“…불쾌, 했습니까?”
그는 방금 제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던 사이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물었다.
되도록, 정중한 느낌을 풍길 수 있도록 말투를 조심했다.
“미안합니다. 내 실수입니다. 나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그대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굴었으니.”
그녀를 절대로 함부로 하고자 아님을 말해주고 싶었다. 진심이 전해지면 좋으련만.
“앞으로는 오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
“부디, 내가 그대를 함부로 하려고 그랬다고는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그의 사과에 사이나가 무어라 대답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콘스탄틴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입술로 향했다. 그 붉은 과실 같은 입술을 보자, 그것을 베어 물며 빨았을 때의 느낌이 갑작스레 떠오르며 심장을 쳤다.
“…….”
제길. 변명이고 사과고 경어고 다 무슨 소용인가.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 저 입술을 맛보고 싶다는 욕구만이 가득 들어찼고, 다른 생각은 모두 사라졌다.
그것도 모자라 사이나가 작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적시는 것을 보게 되자, 그의 이성이 살짝 끊겨나갔다.
몸이 반동처럼 앞으로 기울어지며 그녀를 가두듯 등받이를 잡았다.
실수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그녀와 닿고 싶고, 그녀를 삼키고 싶었다.
“아니, 취소하지요.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그 생생한 촉감. 지금 생각하니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더 말이 안 될 정도로 새겨진 감각이다.
아예 몰랐을 때보다 그 맛을 알게 된 지금, 더더욱 참기가 힘들었다.
“싫으면… 밀어내도록 해요.”
아니, 제발 밀어내지 말아요.
그는 그녀를 감아 당기며 그 보드라운 입술을 크게 삼켰다.
달달한 살덩이가 혀에 온통 감겨왔다.
* * *
이후의 시간은 말 그대로 다디달았다.
설탕 인형을 핥듯이 그녀의 입술과 입 안을 샅샅이 탐험하고 탐구해도 모자랐다. 몇 시간이고 맛보았으나 모자랐다.
밤새도록, 하루 종일도 그 입술에 맞대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키스를 하며 반나절을 보내긴 했다. 사이나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에야 정신이 들었으니까.
그녀의 입술이 퉁퉁 부어올라 그 시간을 가늠케 했다.
문제는 그렇게 통통해진 입술을 보고서도 더 탐스러워 보이는 게 문제였지만.
그녀와의 키스는 감촉이 주는 감각 외에 좀 더 다른 종류의 안온함이 있었다.
그녀와의 접촉만으로도 고요는 찾아온다. 그런데 키스를 하자, 그 고요가 더 깊어지는 기분이다.
정확히 뭐라 설명할 수는 없으나, 겉이 아니라 속까지 고요해지는 기분이랄까.
마치 그녀가 주는 습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깊은 곳까지 촉촉하게 해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칼리고의 목소리는 깊이깊이 숨어들어 잠시 입술을 떼고 있어도, 그의 뇌리를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행복은 짧은 법이다.
녹아내린 줄 알았던 철벽은 다시 살아나 굳건히 섰다.
“저 비혼주의자예요.”
비혼주의자라니. 특이하다 못해 생소하기까지 하다.
여태 살면서 그는 자신이 비혼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말 처음 만나본 것이다.
콘스탄틴 그 자신도 결혼을 해서 후손을 보고 이 쓸데없는 수호령을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결혼에 대한 마음이 싹 사라지고는 했지만, 스스로 비혼주의자라고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결혼의 여부나 가부에 관해 아예 생각하는 것을 밀어두고 살았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
어쨌든, 그는 그저 말문이 막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본인의 매력을 폄하하질 않나, 키스 좀 했다고 콘스탄틴이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말해주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무엇이든 책임을 져달라고 했으면 좋겠군.’
그간 온갖 책임을 그에게 물릴 수 있도록 애쓰려 했던 여자들이 그리 많았는데, 반대 입장에 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여태껏 사이나를 알아온 바대로라면.
‘여기서 물러서면 끝이라고 봐야지.’
물러서 있는 동안 철벽은 더 높아지고 두터워질 것이고 접점은 사라질 것이다. 그는 절대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연애도 싫은 겁니까?”
“싫다기보다는…….”
그는 조금씩 조건을 낮춰나갔다.
“시도를 해 볼 마음도 없습니까?”
그녀가 그를 멀리하지만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관계건 용납할 생각이 있었다. 그가 가졌던 평소 기준이나 관계의 선은 전혀 유념에 두지 않았다.
다시 몸을 낮추고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노려보리라.
“손, 잡아드릴게요. 필요하실 때마다. 그런 건 친구끼리도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결국 친구 정도로 결론이 났다.
친구라면, 손을 잡는 것 정도가 최대한이겠지. 저 달콤한 입술을 다시 베어 물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콘스탄틴에게는 그 자리가 뭐든 간에, 우선 그녀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는 명목이 더 중요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 노력했다.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깃을 잔뜩 펼치고 뽐을 내려 애쓰는 공작새의 심정이 이해되는 시점이었다.
* * *
“……?!”
갑자기 눈이 쏟아지기 시작한 어느 날, 그 감각은 불현듯 찾아왔다.
콘스탄틴은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