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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88화 (88/233)

88화. 최초의 열망

콘스탄틴은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고, 상처를 빌미로 다시 손을 보여 달라고 하며 반응을 살폈다.

비록 장갑을 낀 손이기는 하지만, 싫으면 뭔가 불쾌함이 얼굴에 스쳐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며 말이다.

하나 별거 아닌 상처라고 사양할 뿐, 불쾌감은 보이지 않았다. 딱히 표정 관리에 능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랬다.

그가 그리 보고 싶어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헤어져 저택으로 돌아오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칼리고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주인아! 영지에 언제 돌아갈 거냐! 황도는 정말 재미가 없다! 얼른, 얼른 떠나자아!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녀가 자신의 입을 막은 뒤부터 머릿속이 내내 조용했다는 사실을.

그 조용함…. 너무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라, 오히려 현실 같지 않았던 그 기분.

‘…착각인가?’

아주 강하게 정신력을 집중하면 목소리를 차단할 수 있기는 하기에, 순간 착각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좀 달랐다.

아주 자연스럽게 스며든 적막과 고요.

평온함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적요함…….

‘확인…, 확인을 해보아야 한다.’

평소에도 잠을 잘 자지는 못했지만, 그날 밤 콘스탄틴은 유독 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입술에 닿았던 작은 손의 감촉과 잠시 누렸던 그 평온함에 대한 갈망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다.

밤새 지껄이는 칼리고의 수다가 극렬해질수록 그 갈망은 더더욱 그를 물들였다.

결국, 그는 참지 못했다.

며칠 뒤 방문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음에도, 그 며칠을 참아낼 인내조차 없었다.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바로 다음 날 드보프가를 찾았다.

약을 빌미로 말이다.

갑작스러운 그의 방문에 당연하게도 드보프가는 매우 당황했다. 집사장의 얼굴에서 의문과 당혹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드보프 영애와의 만남을 청하자 그 의문과 당혹스러움은 더 커졌다. 금세 표정을 수습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응접실로 안내를 받은 그는 자리에 앉지도 않고 서성였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표정은 무감해 보였으나, 내면에서는 온갖 풍랑이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으아! 이 집에는 그 여자 냄새가 더 진하잖아! 주인아! 나 여기 기분 나쁘다!

드보프 영애는 의외로 매우 금방 왔다. 두세 시간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콘스탄틴으로서도 놀랐다.

게다가 혼자서 들어왔다. 당연히 누군가 동반해서 들어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잘되었군. 더, 확실히 알아볼 수 있겠어.’

속으로 그런 계산적인 생각을 하며 콘스탄틴은 집요하게 그녀를 살폈다.

연회 때와 달리 꾸미지 않은 간편한 실내 드레스 차림에, 머리는 가볍게 빗어 흘러내린 채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자 한결 어려 보였다.

그게 또 약간 그의 양심을 자극해 왔으나, 조심스럽게 외면했다.

‘내가 당장 무얼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합리화는 훌륭했다.

그는 그저 어제 느꼈던 그게 무엇인지, 다시금 느껴보고 싶은 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손.”

콘스탄틴은 그녀에게 손을 요구해 잡으며 잠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는 동시, 그녀의 표정을 기민하게 살폈다.

장갑을 낀 채라 그런지, 별다른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아, 너는 왜 이렇게 내 말을 맨날 무시하는 거냐! 정말 서운하구나. 우리가 얼마나 오래된 사이냐. 서로 함께한 세월이 벌써 몇 년인데, 이리해서야 되겠냐. 주인아!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칼리고는 점점 더 말이 많아졌다. 당장에라도 닥치라고, 소리치고 싶어질 정도로.

그는 자꾸 닥치라는 말이 나올 것 같아 조용히 이를 악물며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도 잘 벗지 않는 장갑을 벗는 동안 콘스탄틴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고서 사이나를 직시했다.

그녀의 숨결 하나, 스쳐 지나가는 반응 하나 놓치지 않을 정도로 집중해서 살폈다.

이내 품에서 포션 병을 꺼내어 마개를 열고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속도는 속이 터질 만큼 느렸으나, 그로서도 별수 없었다.

뭔가 달라질까? 저 보드라운 손에 비밀이 있을까?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어지지 않는 심정.

-분명 기분 나빠할 거다! 만지지 않는 게 좋다니까? 주인아, 너는…….

톡. 작은 손이 결국 그의 손에 잡혔다.

제 것과 달리 그 손은 따뜻했고, 보드라웠다.

콘스탄틴은 천천히, 그녀의 손바닥을 문지르며 펼쳐지게 했다.

느릿하게 쓸어 올리는 동안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이나가 살짝 숨을 멈추었다가 몸을 떠는 모습에, 아랫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그는 몸이 굳었다.

‘…역시나인가.’

어제는 그저 테라스 위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려 그가 차가운지 아닌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건가?

사연은 몰라도 빚쟁이를 피해 도망치듯 다급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과 별다르지 않은 반응을 확인했음에도 콘스탄틴은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에 약을 붓고는 문질러 흡수되게끔 했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약을 바르며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애쓰는 중이었다.

‘이 고요는 진짜야.’

칼리고는 입을 닥치고 숨어들었다.

그녀와 닿아 있는 동안만큼은, 칼리고는 어떤 속삭임 하나도 그에게 밀어 넣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이 바람 없는 날의 잔잔한 호수만큼이나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아, 이를 어찌할까.

이 손을 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놓아야 함을 안다. 그 양극 사이에서 그는 어딘가에 소리라도 치고 싶어졌다.

약간의 절망감마저 띠며 그는 뽀얀 손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볼 언저리에 약간의 홍조가 든 그녀의 얼굴은…….

‘…홍조?’

콘스탄틴은 눈을 몇 번 깜박이고는 다시 그 얼굴을 보았다.

홍조… 가 맞는 것 같다.

그리고 홍조라고 생각하고 보니, 입술을 베어 문 그 표정은… 싫어서가 아니라 뭐랄까, 부끄러워하는 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느릿하게 손바닥의 예민한 부분을 더 문질러보았다.

움찔, 하며 발개지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흠…?’

불쾌감이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던 건가.

다시금 그의 마음속에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더 이상 그 손을 붙잡고 있을 명목이 없어 놓아주어야만 했는데, 그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따뜻한 손을 떠나 장갑 안으로 자신의 두 손을 가두는 과정이 씁쓸했다.

그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람을 향한 강한 소유욕을 느꼈다.

‘그녀를… 가지고 싶다.’

당장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당장 무어라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일말의 빛살인 것은 확실했다.

‘조금 더….’

그녀를 만질 수 있는 사이가 되고 싶어.

콘스탄틴은 생전 처음으로 한 여자와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생애 최초로 제 안에서 발견한 어떤 열망이었다.

* * *

그러나…….

희귀하게 발현한 그의 열망이 무색하게 콘스탄틴은 그녀의 철벽에 매번 튕겨져 나가는 중이었다.

전문적인 전시회를 무색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정성을 들인 드보프가의 역사적 물품들을 보고 그는 감탄했다.

자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다니- 라고 생각하며 착각을 하자마자,

“…전, 없는데요.”

그녀는 제게 흥미가 없다며 밀어냈다.

조곤조곤하게 말하지만, 은근히 할 말은 다 했다.

그것뿐이 아니다.

억지를 쓰다시피 하여 종막 연회에 파트너로 참석을 했지만, 그녀는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사람들은 죄다 그녀에게 선망과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데 그녀는 되레 피하고 싶어 했다.

파트너로 참석을 했으니 어쩔 수 없이 함께 첫 춤을 추는 동안에도 너무나 눈에 빤히 보였다. 얼른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도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공작이고 뭐고 하등 쓸데가 없군.’

권리에 비해 의무가 지나치게 큰, 할 일만 더럽게 많은 공작 작위다. 여성에게 어필용으로나마 쓸모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당대에 대를 끊어버릴까 고민하던 심정 쪽에 한층 더 무게가 실리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의 지위에도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고(그러니 공작부인에도 관심이 없겠지), 그의 외모에도 그리 크게 동요되지 않는 것 같고…… 그럼 뭐가 있을까.

그가 아는 정보를 뒤지니 남은 선택지가 나왔는데 그녀가 <아를-프로메사> 시대의 팬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끼를 던졌다.

“그거 아나?”

“…네?”

“크레이머 영지에 아직 발굴 안 된 유적지가 남아 있는 거?”

“…네?”

“<아를-프로메사> 시절의 유적이다.”

“…진짜요?!”

…오호라? 그녀의 반응이 달랐다.

보라색 눈동자가 반짝거리며 그를 똑바로 바라봐 오는데, 갑자기 심장이 지끈거리는 기분이다.

“관심이 있다면, 구경시켜 주겠다.”

얼른, 미끼를 물어요, 영애.

그는 조바심을 가지고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역시나 쉽지 않았다.

“흥미… 롭긴 한데…. 너무 멀고….”

“원한다면 마차와 호위대 일체를 보내도록 하지.”

“…괜히 소문도 무섭고요.”

“…….”

또 이렇게 금세, 발을 뺐다.

‘음악이 끝나 가는데…!’

결국 그는, 그녀를 놓아주지 못하고 연속으로 춤을 추었다.

“모레프, 를 보고 싶지는 않은가?”

“…네?”

“가까이서.”

또 다른 미끼를 던졌다.

그녀는 수호령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그 누가 수호령을 지척에서 보고 만질 수 있겠나.

자, 영애…. 얼른 고개를 끄덕여. 응?

“보여주신다면, 저야 정말… 감사하고 좋을 것 같지만…….”

반짝거리며 타올랐던 호기심은 금세 또 사그라들었고 그녀는 또다시 그에게 방벽을 세웠다.

이 여자는 왜 이리 경계심이 강한 거지?

‘내 흑심을 눈치챈 건가?’

내심 찔리기도 하고, 무얼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더 좋은 미끼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사이나와 가까워져 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그는 깨달았다.

실상 우습게도…… 여자를 꼬셔본 적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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