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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79화 (79/233)

79화. 크레이머 저택의 보물 창고

“사이나?”

“…네, 네넷?”

아무리 생각해도 번역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에, 콘스탄틴이 그녀를 부르자 깜짝 놀랐다.

자신의 낙담이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한 걸까?

“너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해요.”

“…….”

“잠시 쉴까요?”

“네…….”

현재로선 아무리 들여다본들 갈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 사이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차를 한잔하겠습니까? 아니면, 잠시 걸을까요?”

사이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후자를 골랐다.

생각이 막혔을 때는 몸을 움직여주면 오히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크레이머가의 집 구경을 해본 적 없지요. 어디, 오늘 한 번 해보겠습니까?”

“어, 정말요?”

집 구경이라니. 맹약자의 유서 깊은 저택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사이나는 매우 반색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런 그녀를 보고 콘스탄틴이 씨익 웃으며 그녀를 이끌었다.

“특별히 그대를 위해, 크레이머 저택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여 주겠습니다.”

와아.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사이나의 얼굴은 분명 지금 엄청나게 반짝거리고 있을 것이다.

기대에 찬 얼굴을 들여다보는 콘스탄틴의 표정이 부드러웠다.

둘은 아래로 내려가 건물을 나섰다.

꽤 거리가 있는 모양인지 콘스탄틴은 이런저런 말을 걸며 발이 아프지는 않은지 틈틈이 물어왔다.

그리고 어딘가에 도착했다. 일종의 별채로 보이는 건물의 입구가 보였다.

“……?”

그런데 위치나 주변 경관으로 보아 손님용 별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방치된 건물이라고 하기에는 또 관리가 잘된 것처럼 보였고 말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의 용도는 금세 밝혀졌다.

“…여긴…….”

“납골당 건물입니다.”

집 구경을 시켜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납골당 건물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태였으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기다렸다.

“실은 납골당인 ‘척’ 하는 건물이지요.”

“…네?”

그럼 실은 이게 진짜 관은 아니라는 건가? 사이나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여긴 왜…….”

가짜 납골당을 왜 만들어둔 건지도 의문이지만, 여길 왜 왔는지는 더 의문이었다.

그런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유를 알게 되었다.

쉬리리릭-!

공작이 건물 안에 있는 한쪽 벽면 앞에서 수호령의 힘을 개방했다.

검은 기류가 벽면에 쏘아지더니 관이 놓여있던 선반이 위로 들리며 통로가 드러난 것이다.

“…….”

사이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굳었다.

세상에…. 수호령의 힘으로 여는 문이라니. 공작이 아니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아닌가.

눈을 동그랗게 뜬 사이나의 손을 콘스탄틴이 잡았다.

드러난 통로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콘스탄틴이 수호령의 힘을 한 번 더 부리자 계단을 따라 빛이 주르륵 밝혀졌다.

또 한 번 놀란 사이나가 공작을 따라 아래로 발을 디뎠다.

“공작님 아니면 절대 열 수 없는 곳이니… 보물을 넣어놓기에는 딱이겠네요.”

농담이랍시고 한 말인데, 콘스탄틴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알아챘습니까?”

“그럼, 진짜 보물창고예요?”

“사실 보물이라기보다는 음… 아를-프로메사 시절의 물품들을 모아놓은 창고 같은 곳입니다.”

“정말요?!”

그게 보물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사이나는 갑자기 쿵쿵 뛰기 시작한 심장을 부여잡으며 내려가는 속도를 높였다.

무덤이라고 초반에 느꼈던 꺼림칙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하 아래 공간은 바깥에서 보았던 건물의 크기에 비해 훨씬 넓었다. 아무래도 위장용이라 그런 듯했다.

내부는 복도식이었고, 복도를 따라 또 다른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안에 있는 문들이 2중 보안 장치로서 역할을 하는 것인지, 콘스탄틴은 수호령의 힘을 한 번 더 사용해 여러 문 중 하나를 열었다.

“이리로.”

“네!”

사이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내부로 들어섰다.

그 안은 보물창고라고 하면 얼핏 상상되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사방에 금은보화가 가득하고, 사방이 휘황한 그런 모습 말이다.

얼핏 보면 고물 같은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버려진 물건들의 무덤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흥미를 식게 하지는 못했다.

아를-프로메사 시절의 물품이라면 당연히 골동품처럼 보이겠지. 본래 그런 거 아니겠어? 자체 납득이 될 정도로 말이다.

“이 방에 있는 것들은, 봉인물들입니다.”

“…봉인물이요?”

“지금은 수호령이 몇 남지 않았으나, 종류가 많았을 때는 아주 다양한 성향의 수호령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네.”

“그중 어떤 수호령은 마수를 공격하는 것보다 봉인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리 와 이것을 자세히 들여다봐요.”

공작은 한쪽에 세워진 네모난 물품에서 덮개 천을 치웠다. 드러난 것은 나란하게 겹쳐 세워진 그림들이었다.

사이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제일 앞에 있는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풍경화처럼 보였다. 산맥이 그려져 있고, 숲길도 보이고…….

그리고 한쪽에 무언가 짐승 같은 게 있었다. 소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데, 정확히 뭐지 모르겠어서 사이나는 고개를 숙여 가까이 다가갔다.

“헉!”

그런데 그림 속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

사이나는 순간 깜짝 놀라 물러섰다.

‘……?!’

아니, 눈이 마주쳤다고? 지금 내가 제대로 본 것일까? 그림과 어찌 눈이 마주친다는 말인가.

스스로의 감상이 의심스러워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것’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움직이는 것 같다는 기분까지 느껴질 무렵, 사이나는 움츠러든 마음을 가지고 콘스탄틴을 올려다보았다.

“맞습니다.”

“…네?”

“저 검은 것이 마수예요. 그림 안에 봉인된 것이죠. 느껴집니까?”

“…….”

세상에. 이런 농담 같은 일이 정말이란 말이야?

“그림 외에도 많습니다. 이 조각상도 한번 살펴보세요.”

콘스탄틴이 그 옆에 놓인 흑요석 같은 재질의 조각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정확히 무슨 형태인지는 모를, 그저 짐승이구나 싶을 정도로 거칠게 조각된 석상이었다.

그런데 집중해서 보자 무언가 묘했다. 눈동자가 움직여 그녀를 바라보는 듯했고, 뭔가 기운이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다.

“…….”

신나 하던 기분은 어디 가고 점점 등 뒤가 싸해지는 것 같다고 느낄 즈음, 공작은 그녀를 다른 방으로 이끌었다.

“여긴 수호령의 힘을 이용한 무기들이 모인 방입니다.”

“…무기요?”

“현 4대 공작의 수호령은 다들 공격형이라 지금은 사실 쓸모없는 물건들이지요. 하지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수호령마다 특성이 달라, 공격력이 없는 수호령의 맹약자인 경우는 이러한 무기를 이용해 공격력을 갖출 수 있다, 이 말인가요?”

“그래요. 금방 알아채는군요.”

“…신기할 따름이에요.”

수호령의 힘을 이용한 무기라니, 맹약자 아닌 사람이 대부분인 요즘 세상의 기준으로는 너무 신기할 뿐이다.

“음, 하나 작동시켜 볼까요.”

“우와. 보여주실 수 있으세요?”

사이나의 얼굴에 기대에 찬 표정으로 기쁨이 가득했다. 그 얼굴을 들여다보던 콘스탄틴이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입 맞춰 주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공작이 자신의 입술을 검지로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그도 모자라 눈을 감고 얌전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사이나는 얼굴이 발개져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만 꼴깍 삼켰다.

이 남자, 은근히 이렇게 저돌적이고 능글거린다. 그런데 싫지 않다.

사이나는 혼자서 괜히 안절부절못하다가 발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가에 재빨리 입술을 댔다가 땠다.

쪽. 짧게 닿았다가 떨어진 입술이지만 말캉한 느낌은 선명하게 남았다.

천천히 눈을 뜬 콘스탄틴의 눈이 그녀가 귀엽다는 느낌이 가득한 표정으로 휘어지며 그녀의 이마를 다정하게 한 번 쓸었다.

그 정도로 충분한 건지 콘스탄틴은 별말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뭔가를 하나 집어 들었다.

생김새를 보아 석궁 같은데, 크기가 지나치게 작고 중앙에 원통 같은 게 달린 뭔가 좀 이상한 형태였다.

“한 손 석궁입니다. 화살이 필요 없는 석궁이지요. 호신용으로 가볍게 들고 다니던 용도로 보입니다.”

“화살이 필요 없다고요?”

콘스탄틴은 석궁을 가볍게 한 손으로 쥐어 들더니 벽면을 향해 겨누었다. 그가 기운을 풀어 수호령의 힘을 석궁에 불어넣자 원통 부분에 줄무늬가 생겨났다.

쉬익-!

그리고 그가 겨누었던 벽면에 보이지 않는 화살이 쏘아지더니 팍, 하고 박히는 소리가 났다.

“와아…….”

진짜 신기하다. 화살이 없는데 정말 무언가 쏘아져 나갔다. 이런 무기가 있다니……. 신세계가 열린 기분이다.

“아를-프로메사 시절엔… 이런 게 아주 흔한 것들이었던 거겠지요?”

“그랬을 겁니다. 남아 있는 물건들이 아주 많으니 말입니다.”

사이나의 표정은 여전히 넋이 나간, 하지만 여전히 신기함을 유지한 반짝거리는 얼굴이었다.

그때, 쿠당탕! 큰 소리가 났다.

아까 쏜 화살의 여파가 남았는지 뒤늦게 벽에 걸려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리며 아래 진열되어 있던 다른 물건들을 덮쳤다.

한쪽에 쌓여 있던 물건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쓰러지며 흩어졌다.

“이런.”

사이나는 얼른 다가가 다시 물건들을 주워 올렸다.

“두십시오. 내가 하지요.”

“아니에요. 여긴 공작님 외에 누가 들어올 수 있는 곳도 아닌데, 혼자 하시는 것보다는 같이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흠. 근데 자꾸 공작님이라고 부를 겁니까?”

“…….”

“…….”

“…콘… 스탄틴.”

그제야 공작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쪽 것들은 날카로우니, 저쪽 물건들만 부탁하지요.”

“네.”

이름을 부르는 게 왜 이리 부끄러운 건지 모르겠지만, 사이나는 눈길을 피하며 물건들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

‘……?’

그런데 주워 든 물건 중에 어쩐지 눈에 익은 것이 하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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