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수상한 시녀
“…수호령? 아를어? 정말이오?”
“예.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행사가 수호령 퍼레이드일 정도로요.”
가장 최근에 보았던 수호령인 모레프를 떠올리며 사이나는 슬쩍 웃었다.
아마 이어질 황녀의 반응은 ‘특이하오.’라든가, ‘좀 남다르군.’ 등이 아닐까. 키얼스틴 등을 제외한 대부분은 다 저런 반응이었으니까.
저것도 실은 굉장히 순화된 것이다. 보통은 ‘진짜 이상하다.’ 혹은 ‘그런 걸 공부해서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말을 돌려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럼 그대는 어느 수호령이 제일 좋소?”
“예?”
“나는 남서의 프랜시스, 할콘을 가장 좋아하오!”
사이나가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황녀는 이해가 안 된다 싶을 정도로 반색하며 자신의 수호령 취향(?)을 밝혔다.
떨떠름하다 못해 놀라기까지 한 사이나가 할 말을 고르는 사이 부연 설명까지 추가했다.
“할콘이 프랜시스 공작의 어깨를 떠나 창공으로 날아오를 때 생기는 그 기류 있잖소? 마치 파란 하늘을 발톱으로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것 같달까! 본 적 있소? 너무 멋지지 않은가?”
황녀의 은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무리 봐도 저건 진짜배기였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사이나의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떠올랐다.
“후훗. 아하하.”
미소를 짓다 못해 소리를 낸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맑은 웃음소리가 서재 안으로 퍼져나갔다.
창백하리만치 하얗던 사이나의 얼굴 위로 웃음으로 인한 홍조가 피어오르면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질리도록 보았을 황녀조차 잠시 넋을 빼고 그 미소에 시선을 뺏겼다.
“아, 죄송합니다. 전하께서도 수호령을 좋아하신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요.”
신비한 존재이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수호령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특히 귀족들일수록 말이다.
경외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혹은 질시의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관상용이 아닌, 실질적인 힘. 보통의 귀족들에게는 없는 힘이자, 4대 공작가의 권력의 근간이기 때문인 듯했다.
“전, 애버딘가의 에렌혼을 가장 좋아한답니다. 사실 얼마 전 퍼레이드가 애버딘가의 순서인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사이나 역시 취향을 밝혔다.
“아니, 영애는 정말 말 못 할 정도로 웃음이 예쁜 편이군?”
“…예?”
그런데 황녀가 뜬금없이 받아쳤다. 그리고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자신의 뒤에 있던 샤피로 경을 살폈다.
샤피로 경의 얼굴 위로 당황이 물들었다.
“경도 보았지? 분명 보았어.”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영애가 햇살처럼 미소 짓는 모습을 보지 않았느냔 말이야. 잠시 넋을 빼는 것 같던데?”
“……넋을 빼지는 않았습니다.”
“하! 보기는 한 것이 맞군?”
“…….”
무표정이 본래 얼굴일 것 같은 샤피로 경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전하께서 호위기사를 놀리시는 건가?’
무뚝뚝한 얼굴에 난색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나름의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소가 예쁘다느니, 햇살 같다느니 하는 지나친 칭찬도 그런 맥락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나저나, 에렌혼이라고? 유니콘?”
하지만 샤피로 경이 이렇다 할 반응을 더는 보이지 않아서인지 황녀는 다시 사이나 쪽으로 몸을 돌리며 대화를 이었다.
“예.”
“맞아, 애버딘가의 수호령이 아름답기로 치면 제일이지.”
“네, 아름답죠.”
“근데 모레프라고 답할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틀렸군.”
“…예? 왜…….”
“크레이머 공작과 꽤 친밀하지 않은가.”
“치, 친밀이요?”
사이나는 당황했다. 생각도 못 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그, 키스 사건이 있었다 보니 친밀이라는 단어가 유독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간 크레이머 공작이 조금이라도 사적으로 가까이 지낸 영애가 있었어야 말이지. 그 기준으로 치면 매우 친밀한 걸세.”
“…….”
“황도에 이리 오래 머무르는 것도 처음이고 말이야. 뭐, 매주 영지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지만.”
“예? 왔다 갔다요?”
“그러하다네. 매주 워프 게이트를 쓰더군. 주말이 지나면 다시 황도로 돌아오기에 나는 그게 다 자네와 약속이 있어 그런 거라고 예측했다만?”
“…….”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아닙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기도 하다.
사실 사이나도 공작이 이리 계속 황도에 있어도 되는 건가, 라고 몇 번 생각했던 적이 있어서 더 놀라웠다.
‘점차 피로가 누적되어 가는 것 같던 안색은 그래서였던 건가.’
매주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니. 아무리 워프 게이트를 이용한다고 해도 말이다.
‘워프 게이트라니…….’
워프 게이트가 아직 실재한다는 것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를-프로메사>의 역사 사료에서 본 적은 있으나, 일종의 오래된 유적처럼 설명했기 때문이다.
“근데 워프 게이트가… 아직 남아 있어요? 작동도 하고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장치가 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실.”
“예?”
“황제와 공작들 외에는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알려져 있지 않은 걸세.”
그렇구나.
황녀는 설명을 이었다.
맥페이든 제국에는 딱 5개의 워프게이트가 있단다. 황도인 페이즐에 하나, 나머지 4개는 모두 4대 공작령에.
워프 게이트는 <아를-프로메사> 시절에 만들어진 장치들이다. 엄청난 장거리를 순식간에 오갈 수 있는 어마어마한 장치이니만큼, 그 가치가 실로 환산할 수 없지만, 기반이 되는 동력이 문제였다.
정령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수호령이 없는 자는 사용이 불가했다.
현재에 남아 있는 워프 게이트가 있으나 마나 한 이유도 그래서라고 했다.
‘근데 이거 비밀 아닌가…….’
왜 이렇게 술술 다 말해주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정령력이 없으면 사용이 불가하다네.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공작들의 요청 때문이오.”
“비밀로 하는 편이 나으니까요?”
“아니오. 자신들이 이리 쉽게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귀찮다나.”
“…….”
그런 이유라니…. 하지만 생각해보니 또 수긍이 된다. 유명인은 피곤한 법이니.
사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로열 로즈 티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녀는 그 외에도 황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사이나는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황녀가 의외로 아를-프로메사와 수호령 등에 관심이 많고 아는 것도 많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끝이 없었던 것이다.
“다음엔 영애의 친구들과 함께 초대하도록 하지. 부디 응해주길 바라네.”
“그리해 주시면 영광이지요, 전하.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살펴 가시게.”
사이나는 황족을 향한 축언 인사를 다시금 주고받은 뒤 서재를 나왔다.
나오니 바깥에 시녀로 보이는 한 여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이 사이나를 이리로 안내했던 시종장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의아한 기분이 들었으나, 마중과 배웅이 꼭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법은 없으니 그러려니 했다.
“돌아가시는 길을 모시겠습니다.”
어딘가 경직된 인상의 시녀였다.
그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려니 하고 사이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를 따랐다.
다만, 한참 가다 보니 올 때와 방향이 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차 타는 곳은 저쪽일 텐데?’
황성이 아무리 넓고 초행이라 해도, 온 길을 그대로 따라서 나가는 것 정도는 사이나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왔던 길이 아니었다.
사이나는 시녀를 불러 세워 물었다.
“저, 이봐요. 이쪽 길이 맞나요?”
“…….”
앞에 가던 시녀의 어깨가 굳더니 몸을 반만 틀며 말했다.
“드보프가의 사이나 영애 맞으시죠?”
“네.”
“그럼 맞게 가고 있습니다.”
“……?”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마차 타러 가는 게 이쪽 방향이라고요? 아까는 저쪽에서 왔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맞게 가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시녀는 기계처럼 한 말을 또 할 뿐, 정작 정확한 대답은 해주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사이나는 걸음을 멈췄다.
‘황녀궁에서 붙여준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가 좀 이상했다. 주변을 돌아보며 혹시 다른 사람이 있을까 살폈다.
“영애님?”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 않는다면, 난 여기서 꼼짝도 하지 않겠어요.”
“…….”
시녀가 처음으로 표정을 드러냈다. 약간 곤란하다는 얼굴이었다.
“……영애님을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따르시지요.”
“네? 전 황녀 전하를 뵈러 온 건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황녀 전하 외에 다른 분이 절… 기다리신다는 건가요?”
“예.”
“…….”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 심장 한쪽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황녀 전하께서도 이 일을 과연 알고 계셨을까?’
갑자기 의심이 도졌다.
즐겁게 보냈던 시간조차 의혹으로 바랬다.
“…하아.”
어찌 되었건 선택의 여지는 없다.
앞뒤 정황을 보아 사이나가 거절을 할 수 있는 상황이나 신분이 아닌 듯했으니 말이다.
‘별일이야 있겠어. 참자…….’
심정상 불편한 일이 벌어질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죽을죄를 진 것도 아니고 끌려가는 것도 아니니 잠시만 참으면 될 것이다. 애써 그리 위안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사이나는 시녀가 걸음 하는 뒤를 따라 걸었다.
하지만 불안함은 점점 커졌다. 어째서인지 길을 가는 동안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어떻게 되는 건 아니겠지…?’
황성에서 오래 기거한 자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을 것 같은 내밀한 길들을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 드디어 시녀가 멈춰 섰다.
“…여긴, 어디죠?”
“곧 알게 되실 겁니다.”
끝까지 불친절한 여자였다. 그 시녀는 자신의 일은 끝났다는 듯 사이나를 세워두고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