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 남자, 왜 이리 손이 빨라?
공작의 말에 사이나는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그 모습을 공작이 귀엽다는 눈을 하고 바라보아서 사이나의 얼굴은 더 붉어졌다.
“근데 왜 아까부터… 경어를 쓰시는 거예요?”
여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는데, 계속 그가 공대를 하니 너무 이상했다.
“내 사과가 진심으로 그대에게 가 닿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아.”
“또 다른 이유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단 말인가?
“혹시라도 또 그대를 덮칠까 봐… 존중의 거리를 두고 싶었습니다만.”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사이나의 입이 떡 벌어졌다. 공작은 그 벌어진 입술 새에 지긋한 시선을 주더니 말을 이었다.
“경어를 써도… 사실 자제가 되지는 않는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다시 입술을 베어 물었다.
“으응!”
입술이 닳아서 없어져 버릴 것 같았다. 그는 키스를 못 하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끊임없이 그녀의 숨결을 탐했다.
문제는 거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녀에게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다시 맞붙은 입술은 한참 후에나 떨어졌다.
“더 부었습니다.”
“…으잇.”
그가 입술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돌린 사이나가 거울을 찾아 일어났다.
집무실인지라 거울이 없어서 공작이 하녀를 시켜 작은 거울을 가져오게 했다. 차가운 수건과 얼음 역시.
사이나는 그것들로 입술을 식혔다. 거울로 확인하니 정말 눈에 띄게 부어 있었던 것이다.
사이나가 흘깃 공작을 살피자 그의 입술은 멀쩡해 보였다. 색이 전보다 좀 진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리 부어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 왜 나만…….’
그녀가 그의 입술을 흘깃거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가 사이나를 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그렇게 보면… 더 해달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데.”
손 빠르게 다가온 그의 엄지가 사이나의 아랫입술을 쓸며 하는 말에 그녀는 파드득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에요!”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는군요.”
공작이 웃으며 손을 떼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쓸어낸 부위가 화끈거리는 느낌인데 이게 지나치게 의식이 되어서 그런 건지, 그의 말대로 부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건 뭡니까?”
공작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생소한 물품을 가리키며 물었다.
사이나가 준비해온 선물이다. 그녀가 의뢰했던 가죽 장갑은 다행히 시간 안에 잘 완성이 되었고, 그것을 들고 온 것이다.
편지도 있었다.
얼마 전, 병문안을 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썼고, 공작의 것도 있었다.
공작에게는 전령을 통하지 않고 직접 들고 왔다는 것이 좀 다르다면 달랐지만, 의례적인 내용을 넘지는 않았다.
한데, 반나절 만에 의례적인 사이를 벗어나 버렸다.
이리되고 나니 저 편지를 도로 수거하고 싶어졌다. 틀에 박힌 문구가 잔뜩 쓰인 편지를 읽는 모습을 볼 것을 상상하자 이상하게 민망하고 부끄러워졌다.
사이나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선물을 주는 척하며 서신을 빼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아, 선물이에요. 일전에 방문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요.”
“갈 때 분명 선물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로 따로 준비했어요. 너무 좋은 약을 주신 것도 감사해서…….”
사이나는 얼른 선물상자를 들고는 상자 아래에 있던 봉투를 밑장 빼기 해서 등 뒤로 넘기며 다른 손으로는 선물을 내밀었다.
“이런… 실은 상처가 남았던 건가? 돌아와서 약을 썼던 모양이지요?”
“…네? 아니, 그게.”
쓸데없이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고운 피부에 자국이 남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고운 피부’를 굳이 만져봐야 고운지 알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목 줄기를 쓸었다.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한 감각이 타고 흐르는 탓에 사이나는 목을 움츠렸다.
“아, 읏. 저기, 선물! 안 열어 보세요?”
이 남자, 뭐랄까. 손이 굉장히 빠르다. 잠깐만 긴장을 놓고 있으면 언젠지도 모르게 닿아 있었다.
“감동해서 감사를 먼저 표할까 하고 말입니다.”
“네? 자, 잠깐- 으응! 읍!”
어느새 커다란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책상 위에 앉히고는 입술을 물어왔다.
감사를 표한다면서, 대체 왜 남의 입술을 삼킨단 말인가.
숨이 버거울 정도로 입 안을 가득 채우며 남자가 등을 쓸었다. 등을 쓸던 손이 날개뼈를 더듬더니 어깨를 따라 팔을 매만지며 내려갔다.
그리고 손목까지 내려온 그의 손이 잡고 있던 편지를 빼간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것도, 내 것이 아닙니까.”
“…….”
“고맙군요.”
코끝을 마주 댄 채 그가 웃었다.
뻔히 다 눈치챈 사람을 두고 혼자서 쇼를 한 기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손이 빠른 사람답게 어느새 서신을 열어 읽는 중이었다.
“글씨체가 예쁩니다.”
“…….”
“근데 내용이 너무 딱딱합니다. 다음엔 좀 더 내밀하고 다정한 내용으로 부탁하지요.”
아니, 그 편지를 쓸 때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잖아요!
“애정을 가득 담은 연애편지가 좋겠군요.”
진지하면서도 따뜻한 표정으로 하는 말은 왜 이리 느물거리는가. 사이나는 공작이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에 계속 놀라는 중이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공작을 보는데 이번에는 상자를 열었다.
이 선물을 들고 올 때, 사이나는 그가 이것들을 자신의 바로 앞에서 열고 확인하는 모습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작이 지금 그러고 있다. 선물이 보낸 당사자에게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드는 대로, 들지 않으면 들지 않는 대로, 그 반향을 바로 보게 되는 것이 이리 쑥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나, 나중에 열어 봐요!”
얼른 다시 상자를 닫으려 했지만, 그가 훨씬 빨랐다.
어느새 내용물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
그는 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에 들린 것을 보더니 이내 착용해보기 시작했다.
흰색 가죽 장갑. 오염이 쉬워 실용성은 떨어질지도 모르겠으나, 어차피 선물이라는 것이 실용성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기에 골랐는데 갑자기 후회가 되는 기분이다.
‘너무 흔한 걸 골랐나?’
그래도 흰 가죽은 흔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울리기도 하고…….
그는 별말 없이 두 손을 들어 착용을 시작했다. 장갑 끝부분까지 손을 밀어 넣은 그가 손가락을 좌악 폈다. 팽팽하게 손 사이가 벌어졌다가 자리 잡은 장갑은 다행히도 그의 손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전에 그의 장갑을 관찰해본 적이 있어 대략적인 사이즈나마 알기에 공방에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확한 사이즈를 알고 맞춘 것은 아니라서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잘 맞는군요.”
그가 자신의 양손을 들어 살피며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말아 웃었다.
“흠. 이 고마움을 어찌 표한다?”
그가 짙어진 눈으로 그녀를 들여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이미, 이미 하셨잖아요.”
사이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내가요? 언제?”
“아까 저 여기 앉히… 암튼 하셨어요!”
“그건…….”
그가 장갑 낀 양손으로 사이나 좌우를 짚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편지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거고.”
“아니…….”
점차 가까워지는 상체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를 제지하기 위해 사이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그의 가슴팍을 짚었다.
공작은 자신의 가슴팍에 올려진 사이나의 손 위를 자신의 손으로 덮더니 손가락 사이로 제 것을 깍지 꼈다.
손등 위로 느껴지는 서늘한 장갑의 감촉과는 별개로 얽혀든 부위가 점차 달아오르는 것 같아 이상했다.
“다시 말하지만, 싫으면….”
이렇게 밀면 된다는 듯이 덮은 손으로 사이나의 손을 가슴 쪽으로 더 눌렀다.
손바닥 아래로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의 느낌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밀어내요.”
아주 낮아진 목소리는 허공에 퍼질 새도 없이 사이나의 입 안으로 숨결을 타고 들어왔다.
그녀의 속눈썹과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깃털처럼 가볍게 닿기만 한 입술이건만,
그녀의 목을 잡아당기는 손길도 없건만,
사이나는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아….”
그가 입술을 댈 때마다 뇌가 기능을 멈추는 것 같았다. 사이나는 그저 눈을 감았다.
무언의 허락과 같은 눈감음에 그가 입술 사이를 길게 쓸었다가 벌리며 들어왔다.
책상 위를 짚고 있던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허리를 잡았다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이내 목의 뒤쪽을 붙잡았다.
방금 착용한 아직 길이 덜 든 가죽이 살갗에 닿는 느낌은 꽤 차갑고 거칠었다.
낯선 촉감에 목덜미가 움츠러들었으나, 그 느낌은 어느새 잊혔다.
다른 감각이 그녀를 장악하기 시작했으므로.
* * *
가라앉았던 입술은 다시 부어올랐다.
그래서일까. 식당으로 갈 때, 식당 안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입술만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히 약간 안면이 있던 로이터의 얼굴을 보기가 굉장히 민망했다.
공작저에 도착했을 때 차를 올리겠다고 했었으니 분명 집무실에 찾아왔을 텐데, 그럼 둘이 이상한 각도로 엉켜 잠든 모습을 보았을 거고, 평소보다 늦게까지 머물고 있는 그녀를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할는지.
“이만, 가야겠어요.”
후다닥 저녁을 먹고 이만 가겠다고 일어섰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나올 때 저녁을 먹고 간다는 말이 없었기에 분명 유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분명 이것저것 물어볼 텐데, 이 부은 입술을 하고 만날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뒷골이 땅겼다.
“저… 아직도 티 나요?”
“뭐가 말입니까?”
“흠… 여기, 부어서 티 나느냐고요.”
손가락으로 얼른 입가를 가리키며 살짝 말했다.
그녀의 질문에 그의 눈가가 슬쩍 휘었다.
“그래요. 부어서 아주 탐스러워 보입니다.”
사이나는 파드득 그로부터 떨어졌다.
“고, 공작님, 이렇게… 이런….”
…분인 줄 몰랐어요, 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차마 뒷말이 나오질 않았다.
“이런 놈인지 몰랐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
‘놈’이라는 표현까지는 쓰지 않았지만 그녀의 속말을 다 맞혀버린다.
그 정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느른하게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