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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46화 (46/233)

46화. 손이 예쁜 남자

붉은 입술 사이 잇새로 빠져나온 장갑을 그가 다른 손으로 천천히 벗기 시작했고, 맨살이 드러난 손이 나머지 장갑을 또 벗겨냈다.

사이나는 그 일련의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드디어 드러난 그의 맨손.

공작의 손은 오랜 검술로 단련되어 마디가 단단하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굉장히 우아한 자태를 그리고 있었다.

곧고 긴 손가락, 단정한 손톱, 손등에 뾰족하게 솟은 첫 마디 뼈부터 손허리뼈를 따라 흐르는 핏줄까지. 다 예뻤다.

그 예쁜 손을 그가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잡아 보게.”

어딘가 어둑해진 눈빛으로 공작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가 한 질문의 답을 알 수 있을 테니.”

질문이라고 하면, 왜 항상 장갑을 끼고 있냐는 그거?

그 이유를 손을 잡아보면 알 수 있다고?

“…….”

답을 알고 싶다는 호기심과 이러면 안 된다는 망설임 사이에서 사이나는 고민했다.

그냥 해답을 알려고 하는 것뿐 의미가 있는 스킨십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 손을 잡는 순간, 어쩐지 많은 것이 변하고 말 것이라는.

‘근데 손이 너무 예쁘잖아….’

사이나는 자신이 예쁜 손에 이렇게 약한 사람인지 몰랐다.

그의 손이 마치 고양이 앞에서 흔들리는 낚싯대처럼 보였다. 도무지 그 유혹을 참기가 힘들었다.

결국 홀린 듯 그의 손을 잡았다.

둘의 손이 닿는 순간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그의 눈빛이 매우 짙어졌다.

공작의 손은 단단했다. 확실히 여자인 제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제 손에 비해 크기도 엄청 커서 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답이 뭐지?’

그가 말한 대로 그의 손을 잡았지만, 사이나는 아직 해답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약간 서늘한 것 빼고는 평범했다.

좀 더 만져야 하나?

사이나는 단순히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손바닥을 맞닿게 했다가 손등을 엄지로 쓸었다.

그 잡은 손을 통해 그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손이 너무 예뻐서 자꾸 여기저기 만지고 싶어졌다.

‘아, 혹시 손이 너무 예뻐서 가리고 다니시는 건가? 그게 비밀?’

전에 변태라도 만난 적이 있는지도 몰라. 손만 보면 달려드는……. 나만 해도 홀린 듯 이렇게 잡고 말았잖아? 근데 공작 각하라면 변태라고 해도 가만히 안 두셨을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나를 묘한 눈으로 보던 공작이 낮게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나?”

“네?”

“아무렇지도 않아?”

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질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안 괜찮아야 하는 건가요?”

너무 남자 손을 스스럼없이 만져대는 거 아니냐는 뜻인가?

찔린 사이나가 슬그머니 그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자 다급하게 공작이 그녀의 손을 옭아매듯 잡아 왔다.

“…차갑지 않아?”

“약간 서늘하기는 한데… 공작님은 북방 쪽 분이니까 그런 거 아니에요?”

공작은 더 묘해진 눈으로 사이나를 보았다.

“…글쎄. 남들은 내 피부가 지나치게 차갑다 못해 닿았을 때 오싹하다고 하더군.”

오싹하다고?

제 손에 닿은 그의 맨손 피부에서 딱히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사이나는 갸웃했다.

“정말 괜찮은 거군?”

공작이 사이나를 보며 갑자기 매우 해사하게 웃었다.

‘웃었어…….’

공작이 웃는 걸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그냥 웃다 못해 농밀하기까지 한 미소. 그 희귀한 광경에 사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도 될까?”

“…….”

“난 체온이 낮은데 그대의 손이 따뜻해서…….”

“…….”

“조금만 더……. 안 되겠나?”

이제는 어쩐지 애절하기까지 한 눈빛이라 사이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기뻐하는 미소와 함께 그가 눈을 감으며 몸을 소파에 기댔다.

“하…….”

그리고 그의 입에서 묘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소파에 느른하게 늘어져 앉아 살짝 벌린 입 사이로 신음처럼 앓는 소리를 내며 감각에 집중하는 그 표정은, 묘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보는 사람이 더 부끄러워지는 이상한 느낌이랄까.

뭔가 굉장히 내밀한 사이에서만 지어야 할 것 같은 표정. 공작이 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그 표정. 이상하게 색기가 느껴지는 그 표정에 사이나는 왠지 지나치게 술렁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그의 손을 놓고 말았다.

하지만 툭, 소리와 함께 떨어져버린 그의 손을 보자, 괜스레 또 무언가 잘못을 한 기분이라 우왕좌왕했다.

“아, 손이 따뜻해지니 기분이 좋아서…. 내가 무례했나?”

공작은 눈을 뜨더니, 되레 자신이 사과하며 사이나의 의중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찔리는 것 같다.

혼자서 이상한 상상이나 하며 빨개지고, 지레 찔려서는 이게 뭐람.

사이나는 고개를 붕붕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각하의 손을 너무 거침없이 만져댄 것 같아서…….”

약간의 과장을 더하면 그의 손을 거의 주물럭대다시피 했다. 불순한 생각은 추가 옵션이었고 말이다.

“…난 괜찮으니, 한 번씩 이렇게 내 손을 데워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공작은 더 만져달라고(?) 역제안을 해왔다.

“물론, 그대가 불쾌하지 않다면 말이야.”

“…….”

“다른 이상한 의도는 아니고… 흠, 정말 손끝만 잡아주어도 되네. 그, 따뜻함이 느껴지니 뭔가 안정되는 기분이 들고, 쉬는 기분이 들고, 그렇군.”

보기 드물게 말수가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약간 당황한 것도 같고……. 착각이겠지?

그러나 아까 공작의 표정을 떠올려보자, 마치 뜨끈한 난로 앞에 자리 잡은 고양이처럼 만족한 표정이기는 했다. 한겨울에 한참 동안 바깥을 외출하고 돌아와 뜨끈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들어가 몸을 딱 뉘었을 때의 표정 같기도 하고.

“…그럼, 네. 손만이라면.”

“중간에 이렇게 잠깐 차 한잔하는 시간에 5분, 아니 잠깐만 닿아주면 되네.”

“네.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고맙군.”

공작이 아주 길게, 지그시 웃었다. 그 미소를 사이나는 홀린 듯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남자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차갑기만 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

둘의 사이가 어디로 흘러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로, 그렇게 손끝이 닿았다.

* * *

오늘은 엘리자베스를 만나는 날이다.

그녀는 사실 방문했던 바로 다음 날, 만나길 원했다.

그런데 사이나가 선약이 있다고 거절하자, 그다음 날에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뭔지는 몰라도 시간을 다투는 화급함이 느껴지는 대처였다.

그리고 약속 당일.

사이나가 어디 도망을 가는 것도 아닌데 엘리자베스가 이른 시간부터 들이닥쳤다.

“대체 어딜 가고 싶어서 이래? 나 어디 안 가.”

“…그게 아니라. 그냥 이른 아침부터 눈이 떠졌어. 그래서 그래.”

상냥하게 웃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약간 금이 간 미소를 띠고 있었다.

“흠…….”

뭔가 이상했지만 어차피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 것은 자신 아닌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저번에 그 짐승, 진짜 확실하게 가둬놓은 거 맞지?”

“응. 문 잘 닫고 나왔어.”

“아니, 목줄이라도 매든가, 케이지 같은 데에 좀 넣으면 안 돼?”

저번에 욜리가 이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던 것이 충격이었는지 엘리자베스는 자꾸만 문가를 흘끔거리며 불안해했다.

“그러게 밖에서 보자니까.”

“…….”

욜리가 그렇게까지 적의를 대놓고 드러낸 것은 그때밖에 없었기에, 엘리자베스에게는 미안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케이지에 넣고 가둬두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고 말이다.

그래도 문이 잘 닫혔는지 두 번이나 확인하긴 했다.

“근데 어디 가는 건데?”

“어, 어?”

“어디 가는 건지 알아야 내가 옷을 맞게 차려입지.”

“그, 나랑 비슷하게 이 정도로 입으면 돼. 파티에 갈 건 아니니까! 나랑 수다도 떨고 뭐,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그럴 거야!”

“…어디 모임 가는 거야?”

“아, 후후. 가보면 알아. 얼른 옷 입고 와! 이러다 한나절 걸리겠어!”

뭔가 미심쩍은데…?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구석이 느껴졌으나, 사이나 생각했다. 조지 홀랜더만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넘어가겠노라고.

어쩌면 이번 생엔 조지 홀랜더와 자신이 결혼하지 않게 됨으로써 그 희생양이 엘리자베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다 보니 이렇게 관대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어지간하면 넘어가리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철회하고 싶어지는 이 심정은 무어란 말인가.

조지 홀랜더만 아니면 된다고 했다고, 일레인 반즈 앞에다 데려놓으면 어떻게 해?!

여긴 황성이 아니었다. 마차가 귀족지구의 한 저택으로 들어가기에 그냥 어느 모임에 가는가 보다 생각했던(전생에도 이런 일이 꽤 있었다) 사이나는 매우 놀라고 말았다.

“드디어, 왔군.”

…드디어? 사이나를 매우 기다렸다는 말투다.

일레인 반즈는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서는 사이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 사람 좀 이상한데.’

일레인 반즈는 뭔가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다지 세력이 강하지 않은 하위 귀족 집안에서 자라나 헤베타가 될 기회를 잡았을 때는, 나름의 야심이 분명 있었겠지.

어떻게든 황태자비가, 그리고 훗날 황후가 되고 말리라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황성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임신이라는 것은 혼자만의 의지로는 이루어내기 힘든 목표다.

‘저번에 보니 황자와의 사이에 큰 애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황자가 그녀를 아낀다면 몸소 기간을 더 늘려 어떻게든 노력해 보았겠지. 하나 그런 것 같지도 않으니 정말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기분이리라.

압박감이 심할 테니 될 임신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날 대체 왜 부른 거지?’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안녕하세요. 헤베타 님.”

그녀가 원하던 대로 황태자비를 향한 예우는 취할 수 없었지만, 헤베타도 나름의 지위이다.

백작 영애라는 신분 외에는 없는 사이나에 비하면 당연히 높은 신분. 사이나는 먼저 예를 표했다.

“너, 이리 와서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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