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되돌려진 것
눈을 뜬 사이나가 제일 먼저 인지한 것은, 온기였다.
‘따뜻해…….’
그녀는 각혈로 토해낸 자신의 피가 어는 것을 볼 수 있을 만큼 차디찬 골방에서 죽어가던 중이었다.
한번 시작되면 몇십 분이고 지속되는 기침 때문에 성대는 끊어질 것 같았고 들썩거리는 흉곽은 너덜너덜하게 느껴졌다. 피를 동반한 구토증세 역시 근래의 일상이었다.
냉골이나 다름없는 방에서, 까무룩 어둠에 잠겨 들면서 분명 ‘아, 죽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다시 의식이 돌아왔다.
그게 끝이 아니다.
‘몸이… 나았어?’
약간 뻐근한 감이 있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가뿐하다. 이런 몸 상태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설마, 의식을 잃은 사이 누군가 자신을 치료해준 것일까?
‘집안에… 그럴 사람이 없는데…….’
슬프지만 사실이다.
자신이 결혼한 남자의 집안에는 사이나가 죽든지 말든지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남편마저도 오히려 죽으라고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보였으니, 누가 자신을 걱정하랴.
결혼 이후의 삶은 사이나에게 고통의 연속이었다. 다시 깨어난 지금, 달갑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하…….”
사이나는 빡빡한 눈을 뜨고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방이 이상했다.
‘여긴?’
사이나는 깜짝 놀라 이불을 걷었다. 허둥지둥 침대 바깥으로 발을 빼며 일어났다.
결혼 전에 살던 자신의 방이다.
‘…설마, 집에서 찾아와 날 데려온 건가?!’
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데려와 치료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무지 보여줄 만한 몰골이 아니었는데….’
바싹 말라 퀭하던 그녀의 몰골을 보고 가족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 상황을 가정하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죽을 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가족에게 알렸겠지만, 사이나 자신도 일이 그리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몸살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거니 싶었으니까.
조금 더 병세가 진행된 때에는 일부러 숨겼다. 그렇지 않아도 결혼 이후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터라 속상할 텐데, 아픈 모습까지 보이게 되면 얼마나 더 속상할까 싶어서 말이다.
이때까지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나는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는 젊은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병세는 호전되기는커녕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순식간에 펜 잡을 힘도 없을 만큼 심해져 버렸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접할지도 모를 가족들의 상심을 위해서 편지 한 장 쓸 정신도, 체력도 없었던 것이다.
결혼을 시작으로, 불행만이 지독하게 중첩되던 사이나의 말로(末路)는 그렇게, 괴이한 병으로 정점을 찍으며 바스러지는 듯했다.
‘망할 놈…….’
그녀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분명 들었을 텐데 황도에 간 남편은 찾아오지도 않았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차갑고 외로웠으며, 폐를 뜯어내는 듯한 고통은 길고도 독했다.
손 하나 잡아줄 사람 한 명 없이 사이나는 침대 위에서 홀로 그렇게 썩어가듯 죽음을 맞이했다.
아니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리 깨어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사이나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눈높이가 달라지자 어른거리는 움직임이 시야에 잡혔다. 반사적으로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나무?’
창밖으로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들이 사아아,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꽤 센 바람이 부는지 나뭇잎들이 가지에서 분리되어 창까지 날아오기도 했다.
탁탁 소리를 내며 유리창에 부딪혔다가 떨어지는 잎사귀들을, 사이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한데.’
이 위화감은 뭐지?
덜컹.
창문을 열자 모양이 예쁜 녹색의 나뭇잎 몇 개가 내부로 휘몰아쳐 들어왔다. 그것들은 사이나에게 달라붙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굽혀 사이나는 잎새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알 것 같다.
‘…겨울이었는데 어째서 계절이…….’
팔에 느껴지는 온도와 나뭇잎의 색으로 보아, 여름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기는 하지만 시원하다는 느낌이지, 춥지는 않았다.
여름이라니……? 병이 낫는 동안 몇 계절이 지나버린 걸까?
“-아, 아가씨?!”
“어머, 아가씨가! 아가씨가 깨어나셨어요!”
갑작스러운 외침에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창문 밖 풍경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었나 보다.
하녀들이 창가에 서 있는 사이나를 보고는 호들갑을 떨며 크게 소리쳐댔다. 한 명은 누군가를 부르러 갔고, 한 명은 사이나에게 다가와 다급하게 말했다.
“아가씨, 겨우 깨어나셨는데 찬 바람은 좋지 않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름에 바람이 차봐야 시원할 뿐이지, 뭐가 좋지 않다고 이럴까.
왜 이러나 싶게 하녀는 유난스러웠다.
“사야가 깨어났다고? 정말이냐?”
“네, 방금 깨어나 서 계셨어요!”
바깥에서 왁자한 소리와 함께 여러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사야! 딸아!”
사이나의 아버지, 드보프 백작이 화급한 표정을 얼굴 가득 짓고 있었다. 날 것처럼 뛰어온 그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
헙, 소리를 내며 품에 가둬진 사이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이리 반겨주실 줄이야. 생각도 못 했다. 죽다 살아난 딸이 안쓰러워서인가?
“사야! 사야아-!”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후다닥 달려온 남자가 이미 안고 있던 사이나와 아버지를 둘러 크게 안으며 몸을 부딪쳐 왔다.
“흐업!”
사이나의 몸이 크게 흔들릴 정도로 말이다.
“조심해라, 이 녀석!”
“하, 제가 너무 기뻐서 힘 조절이 안 되었습니다. 미안하다, 사야. 괜찮아?”
사이나의 큰 오라버니인 세이지였다. 눈 안에 놀라움과 반가움, 기쁨, 걱정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 애정 넘치는 표정에 그녀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일’ 이후, 세이지는 항상 화가 난 표정이었고, 본래 큰 오빠를 약간 어려워하던 사이나는 그와 눈도 잘 마주치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진 적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니? 정말이군요!”
누군가 또 갑자기 들어와 야단을 피웠다.
“……고디 남작님?”
“정말 깨어나셨어.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고디 남작은 드보프가의 주치의를 맡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사이나를 보고 다행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남작님께서 절 치료해 주신 건가요? 감사합니다.”
이리 멀쩡해진 몸은 당연히 그의 치료 덕분이겠지. 뛰어난 의사인 줄은 알았으나, 이 정도일 줄이야.
사이나는 새삼 놀라운 마음으로 고디 남작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예? 아닙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만, 저는 병명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네?”
그럼 자신이 어떻게 이렇게 쌩쌩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요 한 해만큼 제 무능함을 뼈저리게 깨달은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리 깨어나셨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디 남작은 침대 옆 협탁에 왕진 가방을 내려놓으며 자리 잡았다.
“백작님께도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이게 어디 자네 탓이겠나, 다른 어떤 누구도 알아내지 못한 것을.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나. 후우…….”
대화의 흐름이 좀 이상했다.
무언가 핀트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제가 아가씨 상태를 좀 진찰해 보아도 괜찮으실까요?”
“네.”
고디 남작은 본격적으로 사이나를 살폈다. 동공과 입 안을 살피고, 체온을 재고 관절의 반동 등을 검사했다. 팔을 들어 움직여 보고, 사이나의 손에 물건을 쥐어보게도 했다.
“아가씨, 이쪽으로 오셔서 좀 걸어 보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는 걸어보게끔 했다. 그리고 그 걷는 모습을 굉장히 이상한 표정으로 보았다.
“허참…. 대체 이게…….”
사이나는 방금 자신의 걸음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었나 되돌아보았다.
‘더 꼿꼿하게 걸었어야 했나?’
“아니, 거의 1년간 누워만 있었는데 근 손실 하나 없이 바로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고? 이게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인데…….”
“…네?”
거의 1년? 자신이 그렇게나 누워 있었단 말인가?
사이나는 깜짝 놀랐다.
누워 있으면서 병을 회복했고, 심지어 병에 걸리기 전보다 피부도 더 좋아졌단 말인가?
그녀는 아까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자신의 손이 굉장히 고와졌네, 하는 잡다한 감상에 빠져있었다. 몇 년 만에 가까이서 본 가족들이 묘하게 다들 젊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 이상하기도 했고 말이다.
“감기로 앓아누운 애가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져서 깨어나지 않으니,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세이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이나의 정수리를 쓸었다. 목소리에 약간 물기까지 어린 것이 진심 안도하는 듯했다.
“…감기요?”
“작년 감기는 유독 크게 앓는다 했더니, 이럴 줄이야.”
감기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병색이 완연한 제 모습은 어떻게 봐도 감기로는 안 보였을 텐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억울하겠지만, 너 누워서 한 살 먹었다. 이제 열아홉이야.”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던 사이나의 당황감이 더 커진 것은 이때.
“……뭐라고?”
“한 해가 지났거든, 이미.”
얼빠진 사이나의 표정을 보며 백작이 세이지를 나무랐다.
“방금 깨어난 애한테 뭣 하러 그런 소리를 해.”
“크흠, 그러게요. 저도 모르게.”
“얘야, 괜찮다. 데뷔든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저 건강하면 된다.”
“…데뷔요?”
산 넘어 산. 이 나이에 데뷔라니, 무슨 소리인가.
사이나는 허둥지둥 화장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 주저앉고 말았다.
“사야!”
“애가 몸이 허한가 보오, 남작!”
“예. 빈속에 부담 없는 것으로 제가 얼른 약을 지어 오겠습니다!”
쓰러진 그녀를 향해 백작과 세이지가 달려들며 난리 법석을 떨었으나, 사이나는 그저 멍했다. 방금 전 보았던 거울 속 모습이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에.
‘어려졌어…….’
살이 내려 뼈마디가 툭툭 불거져 보이던 모습이 아니었다.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볼은 복숭아처럼 보들보들하고 매끈했다. 싱그러운 피부는 소녀의 그것이었다.
다크서클도, 피곤한 기색도 없는, 맑고 보드라운 얼굴.
그랬다. 죽을병이 치료된 것이 아니라, 사이나는 그때 분명 죽은 것이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을 되돌아왔다.
열아홉의 여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