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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화 (1/233)

< 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 >

1화. 프롤로그: 결혼, 할까요?

‘…죽을 뻔했어.’

정신이 들자마자 든 생각은 이거였다.

아직까지도 몸이 공중에 붕 떠서 부유하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배 속이 한껏 부풀었다가 오그라드는 것 같던, 그리고 이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그 느낌이 재생되자, 사이나의 몸이 다시금 떨려오기 시작했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공포감은,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이나.”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떨리는 몸을 꽉 안아오며 등을 토닥였다.

정신 차리고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한 남자의 얼굴.

“…콘스탄틴?”

“그래. 납니다. 정신이 좀 듭니까?”

그가 왜 여기?

순간 앞뒤가 맞아들지 않는 기억을 맞추려 사이나는 생각을 더듬었다.

보물찾기를 하던 중, 그 사람을 만났고…….

그녀를 노려보던 광기 어린 눈동자, 온몸으로 느껴지던 악의.

그건, 진짜였다. 정말로 사이나가 죽어버리길 원했던 것이다.

‘내가 대체 무얼 어쨌다고…….’

타인의 악의를 흠뻑 뒤집어쓰는 것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박히는 그런 기분. 쉽사리 잊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소름 돋는 감각만이 가득했다.

“…여긴.”

어딜까.

아. 나름 익숙한 곳이다. 공작부인의 방.

몇 번 누워봤던 그 쿠션 좋은 침대 위에서 또 신세를 진 모양이다.

“의식이 없어… 이리로 왔습니다. 의사가 곧 올 겁니다. 팔의 상처는 치료했습니다만, 다른 곳은 내가 볼 수가 없어서… 몸은, 괜찮습니까?”

그도 안색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꽤 놀란 모양이다.

“제 몸이요? 음….”

소매가 찢겨져 나가고 팔뚝 상처가 이미 아문 것이 보였다.

그 외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몸 전체를 천천히 관조해 보았지만, 딱히 아픈 곳은 느껴지지 않았다. 놀란 심장이 여전히 약하게 쿵쿵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픈 곳은… 없어요. 괜찮은 것 같아요.”

“정말입니까?”

“네.”

그가 작게 숨을 내쉬며 그녀의 볼을 연하게 쓸었다. 안도의 한숨인가.

‘정말… 걱정했나 보네.’

그 심각해 보이는 얼굴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이상한 남자….

앞뒤 정황을 보니 그가 자신을 구해준 것 같다. 대체 벌써 몇 번째 받는 도움인지.

두고두고 갚은 들, 다 갚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저… 구해주신 거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감사해요, 매번.”

“그런 말 마십시오.”

하지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처음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면모를 그는 자꾸 보여주고 있었다. 첫인상과 달리 이렇게 상냥하고, 배려 깊은 모습을 볼 때마다 놀랍기도 하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기도 하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 생각도 없으면서 완전히 그를 밀어내지도 못했고, 지금은…….

‘내가 나쁘네.’

결론을 내려야 할 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답은 없는 것 같다. 설사 다른 답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없었다.

“아니요. 감사해요. 너무 감사한데… 감사하기 때문에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뭐… 에 대해서입니까.”

약간, 굳어진 태도로 콘스탄틴이 물었다.

“저희, 여기까지만 해요.”

한숨처럼 사이나의 말이 내뱉어졌다.

꽤 오랫동안 그는 굳어진 채 침묵하다가, 나직하게 물었다.

“…왜인지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궁금하리라. 사이나는 속으로 내렸던 결론에 대해 말했다. 마음이 조금 약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단호하게 행동해야 하겠지. 그를 위해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저 결혼해야 할 것 같아요.”

“…….”

콘스탄틴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는 그인지라, 그 대조는 훨씬 더 극명했다.

사이나 자신도 이 현실이 아주 갑갑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전혀 떠오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비혼으로 살고 싶다.

그런데 죽을 뻔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쓸데없이 고집부리다가 또다시 불행의 구렁텅이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결혼이라면 차라리 얼른 마음을 먹고 최대한 점잖고 착한 남자를 빨리 찾아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난 남자 보는 눈이 없으니, 오라버니나 아버지께 부탁을 드리는 게 낫겠지?’

그리고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좋은 사람이지만 과분했다.

“결혼… 이라고 했습니까?”

“네.”

“비혼주의자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죠. 그러고 싶었고요. 근데… 상황이 도무지 허락을 하지 않네요.”

콘스탄틴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인내심을 가지고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할 거라고요?”

“음. 아마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콘스탄틴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데 왜, 나는 아닙니까?”

“네?”

“난, 후보에조차 들지 못하는 겁니까? 내가… 그리 형편없습니까?”

“…네에?”

아니, 그게 아니라…….

어찌 저런 결론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단 말인가. 평범한 백작 영애인 그녀와 달리 그는 제국의 4대 공작 중 한 명이자 지고한 맹약자가 아닌가.

“내 어디가 그렇게 별로입니까? 말해주면 고치도록 하지요.”

“……그게.”

“…역시 내가 너무 짐승처럼 느껴졌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요…….”

“더, 자제했어야 하는 건데…….”

그가 눈가를 손바닥으로 가리며 자괴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이나는 허둥지둥 변명했다.

“공작님이 문제가 아니고요! 개인적인 사정이…….”

그는 도무지 납득을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털어놓지 않고서는, 상황을 이해시킬 수가 없을 것 같다.

근데, 이걸 말해도 되는 걸까?

‘에라, 모르겠다.’

그가 어디 가서 이걸로 약점 삼을 사람도 아니고, 이 정도는 말해도 괜찮겠지.

사이나는 간략하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과연.”

“네. 그래서…….”

“결혼이 가장 빠른 답이긴 하군요.”

“네. 공작님의 매력과는 전혀 상관없어요. 공작님의 매력이야 넘치고 넘치시죠.”

그런데 콘스탄틴이 눈썹을 슬쩍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그건, 아무래도 동의하기 힘들군요.”

“…네? 왜요?”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내 매력이 넘쳤다면, 그대에게도 통했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 듯하여.”

그가 손을 들어 엄지로 사이나의 눈 밑 살을 가볍게 쓸며 자조하듯 말했다.

그의 손이 닿은 자리가 어쩐지, 파르르 떨렸다.

“아니…. 매력 충분하신데요…….”

가끔 너무 넘쳐서 사이나도 홀리고는 했으니, 저건 틀린 말이다.

“정말 그리 생각합니까?”

“그럼요!”

사이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콘스탄틴이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그녀의 고개를 잡아 시선 높이를 맞췄다.

“다른 남자 찾지 말아요.”

곧게 직시하는 그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져, 사이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로는… 안 됩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공작님께 너무 부족하니까요…….”

그래서 그런 건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만, 괜찮다면, 그 남자 내가 되고 싶습니다.”

파랗고 깊은 그의 눈동자가, 그녀를 옭아맬 듯이 집요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날, 선택해 줘요.”

그러나 목소리는 부드럽다 못해 그녀를 어르는 것처럼 애절했다.

“그대가 하는 고민, 어려움, 그 무엇이라도 나를 통해 해결해 주십시오.”

“…….”

“내가 해답이 되겠습니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걸까?

사이나가 의아할 정도로 그는 진심이었다.

“…방금 제가 결혼할 거라는 말, 들으신 거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공작인데…….

“정말 저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다마다요. 간절히 원합니다.”

“…결혼인데요?”

“그대가 허락하기만 한다면.”

사이나의 눈가를 쓸었던 그의 엄지가 볼을 타고 내려왔다.

“이 입술로, 얼른 허락을.”

엄지가 아랫입술을 매만지며 슬쩍 눌렀다. 자연스럽게 입 새가 슬쩍 벌어졌다.

“말해주기만 한다면.”

그 벌어진 틈새를 그가 짙어진 시야를 내려 응시했다.

“내일 당장에라도.”

결혼을 한다고요…?

곧이라도 입술 안으로 밀고 들어올 것 같은, 그의 손가락의 촉감을 느끼며 사이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사이나는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묘한 그 박력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파드득 다시 고개를 들었다.

“…허락한 겁니까?”

“…….”

“응? 허락한 거 아닙니까?”

음. 어쩌지.

사이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했다.

이 남자가 이럴 줄을 몰랐는데……. 대체 왜 나에게?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실 나도 급합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그녀를 보며 그가 설명을 덧붙인 것은 그때.

“네?”

실제로 그는 꽤 조급한 기색이었다.

“…결혼이 급하시다고요?”

“……그래요.”

사이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아, 혹시?’

이 남자는 전생에 계약 결혼을 했었다.

왜 그리했는지까지는 모르지만 꼭 결혼을 했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혹시 지금도 그런 거라면…? 그렇다면 서로에게 꽤 괜찮은 상황 아닌가?

사실 콘스탄틴이라면 일등 신랑감이다.

작위를 떠나 성품이 좋았다. 그는 여자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강제로 뭘 강요할 성향이 아니다. 부인으로 맞은 사람을 충분히 존중해줄 수 있는 매너와 교양을 갖춘 사람이다.

그게 다른 어떤 부분보다 사이나에게 장점으로 다가왔다.

괜스레 희망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그래도 기왕 하는 결혼. 좋은 사람과 하면 더 좋은 일 아닌가.

“그러면…….”

사이나는 눈을 몇 번 더 깜빡이고는, 천천히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결혼해요, 우리.”

“…정말입니까?”

“어, 네. 공작님께서, 괜찮으시다면요.”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그가 갑자기 그녀를 확, 끌어안았다.

“앗?!”

“하, 사이나….”

…그리 급했나.

오랫동안 고대해온 선물을 받고 감격한 것 같은 태도였다. 묘하게 안심한 것 같기도 했다.

‘안심이라니…….’

뭔가 말이 안 되지만 그랬다.

뭔가 이상한 위화감을 느낀 사이나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꽉 안아오는 그의 눈이 묘하게 빛나는 것을.

입가가 작게 말리는 것을…….

고개가 교차된 상태의 그녀는 당연하게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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