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 짐승-89화 (89/104)

89화. 폭음

쾅.

문이 폭발했다.

예거들은 재빠르게 돌입했다. 하지만 건물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운데 감옥 같은 것을 제외하고. 감옥 안에는 침상이 있고, 생명유지 장치가 작동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침대는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누웠던 흔적은 있지만, 감옥이 부서져 열려 있는 걸 보면 탈주한 모양이었다.

“정말 먼저 탈출하셨군요.”

한 예거가 감탄조로 말했다. 타우가 중령은 새삼스럽게 중얼거렸다.

“하긴, 자기 몸은 돌볼 줄 아는 분이시지.”

천 년쯤 살아남는 건 운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런 걸 보면 천 년을 살아남는 깜냥은 확실히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었다.

“근데 그럼 어디로 가신…….”

예거들은 동시에 천장을 보았다. 건물 바로 위를 날아가는 헬기 소리가 들렸다. 몰래 잠입하기 위해 멀리서 강하했기 때문에 아군일 리는 없었다.

모두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두운 하늘 저 멀리, 피아식별(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되지 않는 헬기 하나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예거 하나가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뭐가 저렇게 급해서 저희와 합류할 틈도 없이 가시는 거랍니까? 구출하러 온 사람 민망하게.”

타우가 중령은 심각한 미간을 펴지 않았다.

“감이 좋지 않아.”

* * *

“괜찮아?”

연하가 물었다. 규하는 엄지손톱을 물고 있다가 흠칫 돌아보았다.

“괜찮아. 근데…….”

연하는 조용히 뒷말을 기다렸다. 규하는 주저하다가 결국 말했다.

“불안해.”

“뭐가?”

“그냥. 뭔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도대체 넌 이런 중압감을 어떻게 견뎠나 모르겠어. 내가 총 들고 싸우러 간 것도 아닌데.”

규하는 흘긋 뒤를 보았다.

아예 그들에게 들러붙은 것처럼 밀착 경호하고 있는 이 많은 예거들을 보면, 정말 쓸데없는 걱정인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들 한 몸집 하는 데다가, 방에 인구 밀도가 어찌나 높은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연하는 예거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길 바랐지만, 이반은 단호했다. 다시 연하가 위험에 처하는 가능성이라도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내 말 들어.”

딱 한마디 하는데, 솔직히 그 순간엔 좀 멋있어 보였다.

“닥치니까 되더라고.”

연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절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냥 막상 그 상황이 되니까 하게 됐어. 세상 일이 다 그렇지, 뭐.”

옆에서 듣고 있던 셀레나가 피식 웃었다.

“추 씨!”

그때였다. 한 직원이 자동문이 다 열리기도 기다리지 못하고 문 틈 사이로 몸을 우겨넣으며 들어왔다. 예거들이 경계태세를 갖출 정도로 다급하게.

남자가 외쳤다. 셀레나, 규하, 연하, 모두의 눈이 팽창했다.

셀레나는 뛰쳐나갔다. 규하가 실성한 것처럼 달려 나가려는 것을, 연하가 붙잡았다. 그리고 안으로 밀어 넣고 대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규하에게 여기 있으라고 말하듯 손짓하며.

하지만 규하는 바로 따라 나가려고 했다. 예거들이 막아섰지만, 규하는 미친 듯이 그들을 밀치며 소리쳤다.

힘 때문이 아니라 박력에 밀려 예거들은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온 힘을 다해 달려가는 규하를 재빨리 따랐다.

군부대 입구 같은 정문은 이미 통제되어 있었다.

아니, 그냥 아무도 없었다.

늘 정문을 지키는 경비조차. 모두들 다급하게 대피한 것 같은 모양으로 안쪽으로 몰려 있었다. 그리고 정문 앞에는, 가연이 서 있었다.

“오지 마세요!”

셀레나가 소리쳤다. 연하는 규하를 붙잡으며 멈춰 섰다.

규하는 입을 감싸 쥐며 울고 말았다.

“세상에……!”

가연은 이 거리에서도 눈에 보일 만큼 온몸을 떨고 있었다.

과호흡 환자처럼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이 온 얼굴을 적시며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온몸에, 폭탄이 둘러져 있었다.

‘아무리 너희들이라도 모두를 지킬 순 없어.’

입이라고는 없는 폭탄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방폭복을 입은 EOD(폭발물 처리반)#팀이 달려갔다.

그들이 폭탄을 해체하기 위해 집중하는 동안 아무도 감히 말하지 않고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규하는 몸이 떨려왔다.

정반합의 세계.

다음에 올 통합의 시대.

저 아이는 그 시대로 가야 해. 그 시대로 갈 사람은 나보다, 저 아이야. 제발…… 제발 데려가지마.

‘차라리 날 데려가.’

이 개 같은 신 새끼야.

분노가 너무 커, 북받쳐 오르는 마음으로 생각한 순간이었다.

“가짜입니다!”

EOD 대원이 벌컥 고개를 들고 외쳤다. 규하는 안도감에 주저앉을 뻔했다. 너무 어지러워 비틀거렸는지, 한 예거가 부축해 주었다.

그럼 설마─

연하와 셀레나는 놀라 규하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예거들이 틈 없이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가연을 보았다. EOD 대원들이 가연에게서 가짜 폭탄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연하는 그 모습을 심각한 눈으로 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뇨.”

셀레나가 돌아보았다.

“네?”

“이런 눈속임으로 넘어갈 녀석이 아니에요.”

역시 그렇게 생각한 셀레나는 가연에게 다가갔다. 연하에겐 오지 말라고 손짓하고.

“혹시 몸에 뭔가를 넣었나요? 주사하거나.”

“네? 아, 아뇨…….”

가짜라는 말을 듣고 그나마 안심하던 가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정신을 잃은 적이 있어요?”

가연은 뭔지는 몰라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충격받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셀레나는 가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옆에 있는 EOD 대원에게 물었다.

“혈액을 타고 흐를 수 있을 정도로 소형화된 비금속 폭탄이 가능할까요?”

“아직은……. 하지만 비금속 IED(사제폭탄)#는 이미 IS부터 쓴 적이 있습니다.”

SN은 조병창을 따로 운용할 정도였으니 그런 걸 개발하지 못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수술로 개봉해서 꺼낼 시간 따위도 없었다. 지금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셀레나는 한 예거에게 손짓했다.

“꺼낼 수 있겠어?”

예거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아뇨, 저희도 그런 건…….”

“제가 할게요.”

모두 돌아보았다. 연하가 이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셀레나는 바로 손을 내밀었다.

“다가오지 마세요.”

“전 이바노프니까요.”

연하는 결연했다. 셀레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이 자리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 유일한 루아스라면 이바노프 혈통뿐이었다.

‘하지만 상사님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생각하는데, 연하는 더 생각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어보이고는 앞을 지나갔다. 왠지 모를 위엄에 셀레나는 말문이 막혔다.

연하가 다가가자, 가연은 떨면서 그녀를 보았다.

“선생…… 선생님……?”

규하를 닮은 얼굴에 가연은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버스 테러 때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둘이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연하는 손을 뻗어, 흠칫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기세 좋게 말하긴 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혈액을 타고 흐르는 이물질의 소리는 들으려고 해본 적도, 들린 적도 없으니까.

하지만─

“‘인간이었으니까 이만큼밖에 뛸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언젠가 렉스가 했던 말이 그녀의 등을 밀어주었다.

연하는 가연의 어깨를 잡아 부드럽게 바닥에 꿇어앉게 하고, 자신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눈을 감았다.

1초, 2초, 3초…….

시간은 영원처럼 흘렀다. 연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주변 사람들은 움찔거렸다.

어느 순간, 몇몇 사람이 어떤 소린가 들은 것처럼 하늘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지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연하를 보고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연하는 번쩍 눈을 떴다.

“들었어요.”

심장 근처를 지나가는 이물질 소리. 혈관에 몰아치는 혈액에 섞여 있는, 미세한 잡음.

“조금만, 참아줘요.”

“아플…… 아플까요?”

가연은 무언가 느꼈는지 눈에 띄게 떨었다.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연하는 웃었다.

“아프지 않아요.”

말을 끝맺는 순간에, 손을 내질렀다. 배가 뚫린 가연은 눈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연하는 이를 악 물었다.

잡아 뽑았다. 그대로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일어나며, 하늘을 향해 던졌다. 찰나에 예거가 연하를 몸으로 덮어 보호하고, 셀레나는 가연을 보호했다.

쿠웅.

콰아아아아앙.

공중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었다.

공기가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돌풍이 일고, 폭발 에너지에 지상의 물건들이 맥없이 날아가고 넘어졌다.

“ER!”

피부가 저릿저릿한 느낌이 가실 새도 없이 셀레나는 일어나며 소리쳤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의료팀이 달려왔다. 홈을 향해 달리는 야구선수보다 긴박하게 미끄러져 들어와, 가연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리서 폭풍 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건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소리였다. 엄청난 속도로.

셀레나는 홱 돌아보았다.

“젠장, 또 뭐야!”

바로 시야에 들어온 헬기는 이미 거의 땅에 가까워졌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미사일에 맞았는지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건 동체착륙 감이었다.

“피해! 다들 피해! 달려!”

모두들 미친 듯이 소리치며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의료팀은 들것에 실린 가연을 보호하며 달렸다.

‘꼭 월급을 올려줘야겠어.’

그들의 가공할 만한 직업 정신에 감탄하며, 셀레나는 돌아보고 외쳤다.

“상사님!”

바로 머리 위를 날아가는 헬리콥터가 일으킨 모래와 바람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다행히 예거들이 살아 있는 밸리스틱 실드처럼 그녀를 몸으로 덮고 있었다. 예거들의 몸 사이로 연하의 팔이 얼핏 보였다.

헬리콥터는 굉음을 내며 동체로 착륙했다.

연기와 소리가 잦아들 틈도 없었다. 찌그러진 문짝이 폭발하듯 터져나가고, 연기 사이로 인영이 나왔다.

규하는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예거들 사이로 눈을 크게 떴다. 목소리가 목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렉스-!”

렉스는 바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여전히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저런 다리로 어떻게 버티고 서있나 싶을 정도였지만, 타오르는 붉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가 외쳤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리였다.

연하를 보호하느라 반수 이상 뛰쳐나간 상태인 예거들이 흠칫 고개를 돌렸다.

탕.

총소리가 울렸다.

규하는 천천히, 돌아보았다.

혼란한 와중에 옆을 지나가는 줄도 몰랐던, 방폭복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EOD 대원이 그녀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다음으로 어떤 생각도 하기 전에, EOD 대원은 방폭복째 머리가 날아갔다.

서걱.

촥.

피가 튀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예거의 검 아래로 EOD 대원의 몸이 쿵 쓰러졌다.

규하는 멀리서 연하가 울부짖듯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규하는 왈칵 핏물을 토해냈다. 그녀가 무너지는 순간에 예거가 검을 거두며 다급하게 받아 안았다.

“목을 맞았습니다!”

규하가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을 노렸다는 건 정말로, 죽일 셈이었던 것이다.

렉스가 예거들을 헤치고 달려 들어왔다.

“규하!”

“렉, ㄹ…….”

목을 맞아서인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무사하구나, 하고 말하듯이.

이런 와중에도 그를 보니 좋아서 정말 웃음이 났다.

‘누가 들으면 미친년이라고 하겠지.’

크루즈가 폭발하고, 호수에 뛰어내리고, ISLE로 온 지, 그러니까 그를 보지 못한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생을 건너 만난 기분이었다.

너무 반가워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 Explosive Ordnance Disposal

# Improvised Explosive De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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