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THE KING (3)
“전 싫어요.”
연하는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반의 딸 따위 되고 싶지 않아요.”
이반, 이라고…….
이반은 쓰게 웃고 말았다.
“그만둬, 이런 남자.”
그가 말하는 바를 깨달은 연하는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용기를 내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반이 어때서요?”
“아내가 있었어. 더 정확하게는 아내들이.”
연하는 애써 충격을 숨기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반은 정말 단념하라고 말할 셈이었다면 덧붙일 필요가 없는 말을, 무표정하게나마 덧붙이고 말았다.
“옛날 사람이었으니까.”
연하는 한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사랑, 했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어. 더 넓은 땅, 더 많은 금, 더한 명예…….”
그늘에 잠겨 검붉게 보이는 눈동자에 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어도 그의 과거들이란 점은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신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쏟아지는 금, 그 금보다도 값진 향신료, 위대한 건축물들, 빛나는 창끝, 콧김을 뿜어내는 군마들, 그리고 오로지 정복할 일만 남아 있는 저 땅들…….
그는 신의 아들이라 칭송받았고, 다음으로 정복할 곳은 하늘 위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이반은 연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서 벌을 받았는지도.”
* * *
철퍽.
늪지의 걸쭉한 땅이 밟혔다.
“전하.”
그는 돌아보았다. 횃불이 내뿜는 빛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내가 배에서 내려 뒤따라왔다.
“또 그렇게 앞서 가시는군요.”
“미안하군.”
곁에 다가온 친위대원은 난감해하는 웃음을 지었다.
“사과를 듣고자 한 게 아니라…… 저번에 워낙 가슴을 졸였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혼자 성벽을 타고 올라가셔서 정말 전하를 잃는 줄 알았으니 말입니다.”
그날도 그는 어김없이 최선전의 병사들 사이에 섞여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올라갔다. 보병 부대가 급히 뒤따라오려고 했지만 사다리가 부러져, 그는 고작 아군 세 명과 적군들 사이에 고립되고 말았다.
옆구리에 화살을 맞았을 때는 그로서도 정말 딱 죽는 줄 알았으니, 친위대원이 이렇게 불평하는 것도 이해했다.
“갈 땐 가더라도 준비한 원정은 끝내야지.”
“전하.”
그는 친위대원의 어깨를 짚었다.
“진정하라고. 그렇게 쉽게 죽지 않으니까.”
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까마귀들이 서로 싸우며 짖어댄 일을 여전히 불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예언자라는 것들이 불길한 징조니 뭐니 떠들어대니 문제였다.
그는 횃불을 건네받아 주변을 비춰보았다.
도시 외곽에 홍수 방비가 제대로 되어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참이었다. 워낙 수로가 잘 되어있는 도시긴 하지만 갑자기 물이 불어나서…….
그때 한 친위대원이 날카롭게 돌아보고 외쳤다.
“거기 누구냐?”
누군가가 어두운 늪 앞에 앉아있었다. 친위대원들이 모두 허리에 찬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긴장했다. 어둠 속에 떠오른 형체는 현지인 복장을 한 남자였다. 꽤 왜소한…….
남자가 천천히 돌아보자, 그를 포함한 모두 말을 잃었다.
붉은 눈동자였다.
마치 어둠속에서 불타오르는 횃불 같은.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남자는 울고 있었다. 이십대 중반쯤 돼 보였는데, 그 외에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지?”
친위대 사이에서 그가 묻자, 물기에 젖어 윤기를 발하는 것 같은 붉은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당신은…….”
남자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잔뜩 쉰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음인지 말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붉은 눈동자라니, 희한하군요.”
한 친위대원이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친위대원이 들고 있는 횃불이 옆에서 몸을 비틀며 일렁거렸다.
“별의별 것을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붉은 눈동자를 가진 자는 또 처음이군요.”
“아무튼 이런 곳에 왜 혼자…….”
친위대원들이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계속 말이 없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래, 당신이라면…….”
의미 모를 중얼거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위대는 단번에 무언가 수상한 기색을 눈치챘다.
“첩자다!”
친위대원들이 한 몸처럼 금속성을 울리며 검을 내뽑은 찰나였다.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제치고 그를 덮쳐왔다.
그는 놀랐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수없이 사지를 헤쳐 나온 반사 신경으로 남자의 옷을 틀어잡으며 검을 겨누었다.
“뭐냐.”
생면부지의 남자는 그를 원망하듯이 노려보였다.
“전하, 물러서십시오!”
남자는 턱, 그의 팔을 잡았다. 평소라면 고작 그 정도에 그가 당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힘에 손을 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의 손을 깨물었다.
“……!”
그야말로 짐승 같은 턱 힘이었다. 무엇보다 손을 깨물기 직전 남자의 입안에서 빛나는 짐승 같은 이빨을 보았다.
손이 바스라질 것 같았다.
친위대원이 당장 남자의 등을 베었다.
하지만 퍽 소리가 나며 검은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바위를 친 것처럼. 남자도 그의 손을 물고 있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피를 빨기 시작했다.
남자가 그대로 그를 밀어붙여, 그는 바닥에 디딘 다리에 힘을 주며 버텼다. 하지만 남자는 기이하리만치 힘이 셌다.
그는 압도적인 힘에 밀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친위대원들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남자를 떼여놓으려고 발길질까지 했지만 남자는 그의 위로 굴러 떨어진 거대한 바위덩어리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자가 피를 마실 때마다 목에 울대가 꿀럭꿀럭 요동쳤다.
그는 당장 허리춤에 꽂아둔 단검을 뽑아들었다. 남자는 역시 엄청난 힘으로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제 목을 찔렀다.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에 그는 눈을 크게 떴다.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검을 옆으로 그었다.
툭, 투둑, 투두둑…….
목을 가로지르는 검을 따라 검붉은 액체가 그의 얼굴로 쏟아졌다. 피가 온 입안에 퍼져 비릿한 맛이 났다.
“왕이시여.”
그런데도 남자는 말을 했다. 잘린 목 너머 덜컥거리는 성대에서 바람이 새는 끔찍한 목소리로.
“세상을 모두 가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 피로 물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신을 기다리는 앙그라 마이뉴#는 자비가 없는 신입니다.”
그는 이를 악 물었다.
“아래서 위로 찔러!”
전사의 본능이라고 할지, 남자를 찌른 게 본의는 아니었어도 검이 살갗을 뚫고 들어갈 때 힘과 각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게 그 뱀파이어 피부의 ‘결’에 맞는 방향이었던 것이다.
콰직.
뒤에서 검이 남자의 얼굴을 뚫고 나왔다.
그의 얼굴에 살점과 핏물이 튀었다. 남자는 푸르륵 경련하더니 마침내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지나치게 무거운 남자를 옆으로 밀쳐 냈다. 남자는 무른 땅에 거의 쿵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전하!”
친위대가 호들갑을 떨며 그를 불렀다.
그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간담이 서늘했다. 아마 난생처음으로.
손에 물어뜯긴 자국이 욱신거렸다.
“괜찮으십니까?”
친위대원들이 부축하려하는 것을, 그는 손을 들어 막고 일어났다.
그리고 얼굴에 진득한 피를 닦아내고, 피인지 침인지 모를 것을 한 번 뱉었다. 얼마간은 남자가 쏟아낸 피를 마신 것 같았다.
“괜찮아. 손을 좀 물렸을 뿐이야.”
“상처가 심각해보입니다.”
손을 쥐었다 펴보자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술이나 한 잔하면 나아지겠지.”
친위대원은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정말 전하는 무슨 간담이…….”
갑자기 침묵이 흐르고, 모두 바닥에 늘어진 남자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사라진 것은 돌덩이만큼이나 차갑게 식어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실성한 자일까요?”
아무리 봐도 인간의 형태를 한 것이 정말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를 포함해서.
“첩자인지 광인인지 알아보면 되겠지. 시신을 챙겨.”
친위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는 응급처치를 받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남자가 자살하려했다고.
친위대원들이 이상하게 무거운 시신을 겨우 배에 싣고, 그도 배에 올라섰다. 손이 욱신거렸지만, 화살에 허파가 뚫렸던 통증에 비하면 사소했다.
늪지를 뒹군 모습으로 상처를 입고 돌아온 그를 보고 왕궁은 발칵 뒤집혔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고대해온 원정을 앞두고 성문 앞에 진지를 세운 군사들 사이에 불안감이 퍼지기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 명령했다.
친위대원들에게도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함구시켰다. 남자가 단순히 첩자였다면 오히려 첩자에게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밤이었다. 측근들과 소소하게 가진 연회에서 그는 원인 모를 열병으로 쓰러졌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원들은 하나 같이 소생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꿈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몽롱한 경계 속에서 밤낮을 앓았다.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건 그의 특기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잔재주에 불과했다. 아마 반쯤은 그도 살아나는 일을 포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달이 뜨지 않아 사방이 검은 물을 부어놓은 것처럼 깜깜한 어느 흐린 날 밤─
눈을 떴을 때, 몸이 아주 가벼웠다. 그 어느 때보다.
* * *
“벌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연하는 슬퍼하는 눈으로 물었다. 이반은 고개를 들었다.
“한때는 기회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 어쨌든 불로불사……. 어떤 위대한 왕도 얻지 못했던 걸 얻었으니까.”
하지만 점차 그런 생각이 들었다.
대체 무엇을 위한 기회인가?
흡혈귀 군단을 모아 세계 정복이라도 하라고? 그리고 인간을 지배하며 그들의 피를 빠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끔찍했다.
그가 정복하고 싶었던 것은 오히려 그 자신이었다. 이 육체와 정신이 무엇까지 해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곁에 사랑하는 자들이 없는 모습은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괴물이다!”
“가짜야!”
“죽여!”
왕의 껍질을 뒤집어쓴 가짜라며,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를 위해 싸웠던 창끝들이 그를 향했다.
인간으로서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던 육체로도 불가사의에 가까운 힘을 이용해 탈출하고 나서야 알았다.
그의 죽음을 기정사실화하고 모든 걸 나눌 준비를 한 자들에게, 그가 소생하는 일은 아주 곤란했다고.
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건 사실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기묘하게 밝아진 귀에 모든 소리가 들려왔다.
비밀, 음모, 불평, 한숨, 그리고 신실하다 믿었던 아내의 부정…….
그녀의 뱃속에 있는 유일한 자식마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는 실소하고 말았다.
세상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다음 생으로 가져갈 것이 단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길을 택했다.
분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형제였다. 형제와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함께 웃고, 마시고, 말을 달렸다.
사랑하고 신뢰하고, 사랑받고 신뢰받고, 그것이 얼마나 근사한 감각인지, 더 위대한 일을 해내게 하는 원동력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차갑고 예리한 깨달음은 되살아난 심장에 내리꽂히는 비수였다.
연하는 이 모든 이야기에 지독한 우울감을 느끼는 얼굴이었다. 이반은 그녀가 그러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입을 다물자, 연하는 물었다.
“그 사람…… 그 흡혈귀는 누구였어요? 이반을 감염시킨.”
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시신은 그냥 시신일 뿐이었지.”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썩어 없어져버린.
게다가 주민들 중에는 남자를 아는 자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대개 주민들은 ‘여기 사람인 것 같긴 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지금 생각하면 현지인은 맞았던 것 같았다. 다만 그를 아는 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옛날 사람이었을 뿐.
어쨌든 그의 파트로네스라고 할 수 있는 자였지만 지금까지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야말로 기증을 받은 ‘수혜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옛날에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거든. 흡혈귀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실수로 감염되는 게.”
그래서 자신이 무엇이 되었는지 몰라 혼란 속에서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피를 마셔야 하는 생물이 된 것을 버티지 못하고 절벽에서 뛰어내리기를 선택한 이들…….
생각보다 긴 시간을 살아남은 흡혈귀가 적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그가 이렇게 된 의미를 찾기 위해서 부단히 남자의 흔적을 쫓았지만,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다고 깨달았다.
그건 단순한 정이었으니까. 그가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고체라고 믿은 삶에 박아 넣어져 균열을 일으킨 정.
연하에게도 그는 단순한 정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네가 정말로 감염을 이길 거라고 믿진 않았어.”
연구소의 유리벽 너머에 누운 연하는 나흘간 감염을 버텼다.
이반은 그동안 자리를 지켰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지켜봐 주는 것이 감염시킨 사람으로서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렉스나 필립만 아니라,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한 모두에게 그랬듯이.
어쨌든 그들은 대체로 무덤을 만들어줄 사람이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흘이 지나도 아이는 숨을 거두지 않았다.
감염을 버티는 기간은 개인차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지나면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 정도는 알 수 있기 마련이었다. 감염이 성공하면 몸이 재조직되기 시작하니까.
그런데 아이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상태로 무한정 버티고 있었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제불능일 정도로 착한 아이.’
그렇게 생각했다.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가도 신경이 쓰여서 계속 거기서 주저하고 있는 것이리라.
어쨌든 위쪽에서도, 물론 위쪽이 있다면 말이지만, 섭섭하게 대하진 않을 텐데.
“마침내 바이털사인이 멈췄을 때도, ‘드디어 가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지.”
의사들이 달려 들어가 숨이 멎은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유리 너머 아이는 차갑고 푸르렀다.
모든 생명의 기운이 탈색된 한겨울 같은 색이었다.
삐─
바이털사인은 오랫동안 무표정했다.
의사들도 포기하고 하나둘 손을 떼는 기색이었다.
그때쯤엔 이반도 아이가 정말 살아날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기대했지만, 실망은 하지 않았다. 세상의 일이란 것들이 원래 그렇게 기대에 어긋나기 마련이니까.
그는 그걸 배울 정도로는 충분히 살았다.
의사들이 그녀의 얼굴에 흰 천을 덮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이반의 말에 의사들은 멈칫했다.
그는 아이를 빤히 보았다. 그녀를 비춘 빛 속에서 먼지가 반짝이며 헤엄쳤다. 먼지가 조금 내려앉았다.
뜀박질 소리…….
그는 정말 계단을 돌아서서 뛰어 내려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마 그건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박동 소리였겠지만.
갑자기 바이털사인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놀라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인간보다 훨씬 느린 그건, 뱀파이어의 심장박동 수였다.
연하는 아직 의식은 없었지만 빠르게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마치 꽃이 피듯이……. 혹한의 끝에 봄이 돌아오듯이.
“저는, 이반이 좋아요.”
유리벽 너머 겨울 같은 연하가 사라지고, 봄 전부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화사한 연하가 말했다.
#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악의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