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흡혈귀와 아이스크림 (3)
연하는 국장 관사를 나와 복도를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난 것처럼 모여 있는 동료 대원들과 마주쳤다.
도영이 가장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
“강연하.”
도영과 대원들은 웅성거리며 다가와 저마다 물었다.
“괜찮아?”
“괜찮으세요?”
연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연하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지 대원들은 서로를 보았다.
“청사 바로 앞에서 공격했다면서요?”
“대범하네요.”
“근데 누굴 노린 걸까요?”
한 대원이 한 말에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당연히 국장 아냐?”
“강 상사님이 표적이 될 이유가 없잖아요?”
잡아넣은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들이 있긴 하지만, 팀 단위로 움직였으니까 특별히 연하가 표적이 될 이유는 없었다.
종종 연하가 미끼 역할을 했을 때 유난히 집착하던 변태들을 빼면. 하지만 그들은 대개 뒷배가 없는 잡범에 지나지 않았고, 그나마도 감옥에서 잘 썩고 있었다.
그런데 연하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말이 없었다. 역시 저격을 당할 뻔했던 건 그녀에게도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충격이 컸겠지만…….”
도영이 위로해 주려고 어깨를 짚으며 말문을 텄을 때였다.
“있잖아.”
연하는 굉장히 심각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들었다.
“피를 만드는 음식이 뭐가 있지?”
도영을 포함해 대원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글쎄……. 멸치?”
도영이 대답했다.
“멸치…….”
연하는 중얼거리면서 걸어갔다. 뒤에 남은 대원들은 왜 저러느냐는 듯 서로를 보았지만, 답을 내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근데 멸치는 뼈에 좋은 거 아니에요?”
한 중사가 말했다. 도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몸에 좋은 거니까 아무렴 어때요.”
도영은 여전히 깊은 생각에 빠진 채 걸어가는 연하의 뒷모습을 보았다.
‘국장하고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고? 저 녀석 설마 진짜 국장을…….’
“저분이라면 정말 국장한테 멸치를 사다 줄지도 모른다고요.”
한 중사가 말해 도영은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았다.
“너무 가능성이 농후해서 할 말이 없네요.”
다른 대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뼈 튼튼해지고 좋겠죠, 뭐.”
도영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오랫동안 함께한 팀원들이지만, 그들은 아직 연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 * *
자동문이 열리고, 연하가 검은 봉지를 들고 들어섰다.
[다녀오셨습니까? 상사님.]
평소처럼 AI가 인사했다.
“응, 안녕. 블라인드 좀 걷어줄래?”
[네.]
지잉─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연하는 탁자에 앉았다. 그리고 들어올 때 가져온 검은 봉지를 올려놓고 안에서 빵빵한 봉지를 꺼냈다.
봉지를 따서 안에서 내용물을 한 줌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과자를 먹는가 싶었는데, 연하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겼다.
“……맛없어.”
봉지에는 쓰여 있었다.
<청정 볶음멸치 1kg>
* * *
하얀 가운을 입은 포렌식 센터 연구원은 깨끗하게 씻은 총알을 넣은 팩을 들어 보였다.
“어디에도 등록돼 있지 않은 물건입니다. 러시아제로 짐작되는데 확실하게 규격엔 맞지 않고요.”
연구원 뒤로 패널에는 총알을 확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들이 떠 있고, 앞에는 MCTC 서울 지부의 간부급 군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개중 가운데 앉은 것은 국장이었다.
어제 총격을 당했지만, 그는 오늘 아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근했다. 멀쩡하게 회의실로 걸어 들어오는 그를 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간부들 표정은 꽤 볼만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독자 개발한 모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어서 수색팀을 지휘하는 문 소령이 앞으로 나섰다.
패널에 버려진 자동차 사진과 이동 경로를 표시하는 지도가 떴다.
“저격수는 서울에서 개인 차량으로 부산항까지 이동했습니다. 해당 차량을 쫓아 부산 지부 ERU 팀이 긴급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21시 13분 체포하려 하자 총격전 끝에 맹독을 먹고 자살했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최종 목적지는 모로코 마라케시였다고 하는군요.”
“SN의 영향권입니다.”
한 간부가 말하자 다른 간부가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 거리를 쏠 수 있을 만큼 훈련받은 뱀파이어 저격수가 SN이 아니었겠습니까?”
브리핑이 끝나자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이반과 렉스만이 남았다.
이반은 팩에 들어 있는 총알을 보았다.
안 그래도 SN이 이번 테러를 주도했다는 점이 놀라운 게 아니었다.
“연하를 함부로 건들진 않을 거야. 날 화나게 할 뿐이라는 걸 알 테니까.”
굳이 그가 연하에게 감정이 없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의 클리엔테스니까. 함부로 누군가의 클리엔테스를 건드린다는 것은 그 클랜에 대한 전쟁선포였다.
“안 그래도 강 상사를 이용해 뭔가를 할 생각이었으면 지난 12년 안에 했을 테죠.”
렉스가 말했다.
이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이제 와서 진심으로 연하를 노렸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날 쏠 생각도 아니었겠지.”
역시 그를 쏠 생각이었다면, 연하가 오기 전 꽤 오랜 시간 혼자 앉아 있었을 때 쐈을 것이다.
SN은 연하와 그가 함께 있을 때 저격했다. 그전에는 페인을 암살했고.
이 팩트들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이반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몰아넣고 있다…….’
어쩐지 그런 느낌을 받았다. 지금 그들로서는 알 수 없는 어떤 심리적 지점으로.
지잉.
그때 문이 열리고 이 대위가 들어왔다. 이반은 손을 내리고 그를 보았다.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됩니까?”
이 대위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정말 일정을 그대로 소화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습니다.”
옆구리가 좀 뻐근하긴 했지만 심한 근육통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였다. 근육통보다는 많이 결리긴 하지만.
“다음 일정은 정기훈련 시찰입니다.”
이 대위는 말했다.
* * *
실전처럼 무장한 채인 도영은 흘긋 복도 쪽을 봤다가 손짓했다. 그러자 뒤로 늘어서 있는 대원들이 신속하게 앞서갔다.
연하도 그 사이에 있었다.
앞 대원을 따라가는데, 문득 위를 보니 훈련장을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2층에 만들어놓은 철제 가설물 위에 이반이 서 있었다.
정확하게는 김 중령을 포함해 꽤 많은 간부들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온 건 그 한 사람이었다.
연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갑자기 누군가가 강하게 등을 밀쳤다.
“움직여!”
도영이 말했다. 연하는 깜짝 놀라 움직였다.
한참 훈련용 레이저 총소리가 들리더니, 건물 하나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거대한 무대 같은 훈련장 ‘사일런트 하우스’의 천장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대원들은 넘어진 다른 팀 대원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연하는 훈련용 헬멧을 벗었다.
그때 가설물 위에서 김 중령이 소리쳤다.
“강 상사, 너 인마, 집중 안 해?”
다들 연하를 돌아보았다. 연하는 머쓱해졌다.
“어제 네가 총 맞은 것도 아닌데 왜 멍을 때려? 이제 짬 좀 찼다고 훈련 따위 그냥 날로 먹는다 이거야?”
“시정하겠습니다.”
김 중령은 마뜩찮은 것 같았지만 국장이 보고 있어서인지 더 말하진 않았다.
이반은 다른 장교가 하는 말을 들으며 사일런트 하우스의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장교가 사일런트 하우스의 구조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연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요즘 왜 이러지. 정신 차려야지.’
* * *
“집중하는 게 힘들어 보이네.”
문을 나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연하는 돌아보았다.
“국장님.”
이반은 복도에 혼자 서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설마…….’
생각하긴 했지만, 어쩐지 이상했다.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 같은 기분.
“상처는 어떠세요?”
묻자, 이반은 조금 웃었다.
“다 나았어.”
“괜찮다고 하지만 마시고요.”
“정말 다 나았어.”
이반은 갑자기 표정이 묘해졌다.
“그런데 강 상사,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아, 아직 샤워를 안 해서…….”
‘그렇게 땀 냄새가 심한가.’
연하는 민망해져 뒷목을 문질렀다. 이반은 잠깐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아니, 뭔가 좀 더 비린내 같은…….”
“아.”
연하는 뭔가 바로 짐작되는 것 같았다.
“아?”
이반은 의아해졌다.
“어제 멸치를 좀 많이 먹었거든요.”
“갑자기 멸치는 왜?”
이반은 정말 궁금해져 물었다. 다 좋은데, 멸치는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멸치가 피를 만드는 데 좋다고 해서요.”
이반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플로스를 마시는 편이 나았을 테지만…….
그는 연하를 물끄러미 보며 말했다.
“멸치는 뼈에 좋은 거 아냐?”
“그래요?”
정말 몰랐는지 연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더니, 미간을 좁혔다.
“한 봉지 다 먹었는데…….”
이반은 정말로 곤란했다. 이 아이를 어째야 할지.
“뼈는 튼튼해졌겠네.”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하는 살짝 그를 노려보았다.
“놀리지 마세요.”
백치미를 풍기다가도 순간 이렇게 명석해지는 구석이 있었다.
“국장님.”
뒤에서 이 대위가 불렀다. 이반은 한 번 돌아봤다가 연하를 보고 말했다.
“나중에 보자.”
연하는 거수경례했다. 이반은 돌아서서 복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나 참, 멸치라니.”
“네? 멸치요?”
이 대위는 의아하게 되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반은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그는 분명 결심을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이는 알면 알수록 사랑스러웠고, 이만큼 살고도 예측할 수 없는 엉뚱함까지 지니고 있었다.
“빨리 SN을 소탕해야겠군요.”
“네? 아, 네, 그렇죠.”
이반이 중얼거리자, 이 대위는 뜬금없는 이야기에 반문하다가 동의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래야죠.”
SN의 니스타르에 대한 테러는 현재 소강상태였다. 오히려 10여 년 전 대규모 학살 사태 이후에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한 것처럼 니스타르에 대한 테러가 잦지 않았다.
대공이 직접 조건부 암살 예고를 하지 않았다면 규하도 다른 니스타르들처럼 광역 경호팀 관할 내에 들어갔을 것이다.
대공이 사라져야 연하가 쌍둥이 자매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이반 그가 연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었다.
* * *
연하는 뜨거운 김을 뿜으며 샤워 칸 밖으로 나왔다. 탈의실에서 막 옷을 입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한 무리의 여성들이 들어왔다.
“상사님.”
여군 부대 부사관들이었다.
아직도 대테러부대의 전투원으로 일하는 인간 여성은 거의 없었지만-싸워야 하는 상대가 루아스가 되면서 오히려 예전보다 전투원 자격 요건의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군들의 기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그녀들의 피지컬은 비범하지 않았다.
“훈련 끝나셨어요?”
“네.”
그런데 한 부사관이 왠지 모르게 능글맞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강 상사님, 요즘 국장님하고 분위기가 묘하다던데요?”
“분위기가 묘해요?”
연하는 이해하지 못해 되물었다.
“네. 어제 일이 터졌을 때도 같이 계셨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을 뿐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멀뚱히 쳐다보자, 부사관은 연하가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두 분, 잘되고 있는 거 아니시냐고요.”
한 부사관이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연하는 깜짝 놀랐다.
요즘 국장하고 친하게 지낸 건 맞지만…….
이런 오해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서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국장님인데요……?”
전투원은 진급이 빨라서 그녀도 서른하나에 벌써 상사긴 하지만 어쨌든 일개 상사와 준장급인 국장이었다.
나란히 앉는다는 것 자체가 일반 군대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하물며 그런…… 사이라니?
“하지만 같은 루아스잖아요. 인간보다는 가망이 있지 않아요? 가망이라는 단어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부사관이 거들었다.
“안 그래도 민 소위님은 벌써 네 번째 인간 아내분하고 살고 계신다잖아요. 자기 딴에는 첫 번째 아내분이 계속 환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나?”
“그게 뭐예요.”
여자들은 조금 질색했다.
“그래서 자기는 순애보라고 꿋꿋이 주장한다지 뭐예요. 뭐, 인간하고 살려면 그 정도 멘탈은 갖춰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강 상사님은 오히려 잘된 거 아니에요?”
그러면서 뭔가 기대하는 것 같은 얼굴로 보는데, 연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입술만 달싹였다.
“어머, 부끄러워하시나 보다.”
“아니, 그게…….”
“괜찮아요. 다 안다고요.”
도대체 뭘 안다는 건지, 부사관들은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린 것처럼 웃으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연하는 변명할 타이밍을 놓쳐 버리고 멍하니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삐빅.
마침 밴드에 대기해제 코드가 떴다.
연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얼마 전에 새로 짠 미산가 팔찌를 꺼내 들었다.
‘일단 오늘 다녀올까.’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렉스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