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흡혈귀와 아이스크림 (2)
이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일반 총기가 아니군.”
일반 총알은 그의 살갗을 뚫을 수 없었다.
연하를 포함해 사람들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마치 경고등이 켜진 것처럼.
“국장님!”
“국장님이 총에 맞으셨습니다!”
“메딕!”
로비는 달려오고 달려가는 사람들도 아비규환 같았다.
“진정하십시오.”
국장은 한 손을 들고 말했다. 그 어조가 너무 평이해서, 사람들은 주춤거렸다.
“죽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국장은 총에 맞은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크게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똑바로 서 있음은 물론이고.
그제야 사람들은 그들의 국장이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때 막 복도 너머에서 의료팀이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국장님은……!”
국장은 그들을 보고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가죠. 총알은 빼야겠으니.”
“네?”
뭘 뺀다고?
의료팀은 자신들이 제대로 들었나 의심하듯 반문했다. 그리고 멀쩡하게 걸어가는 국장을 보고,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총에 맞으신 거 맞죠?”
* * *
간호장교가 스툴에 앉은 국장이 코트를 벗는 걸 도와주었다. 양복 상의까지 벗자, 오른쪽 옆구리 쪽 와이셔츠가 피로 젖어 있었다.
와이셔츠는 잘라내고, 총상 전문의로 급하게 호출되어 온 군의관 소령이 상처 부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료용 마스크를 끼고 있는 소령은 흘긋 국장을 보았다.
“아프지 않으십니까?”
국장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소령을 보았다.
“뱀파이어도 통증은 느낍니다만.”
“몸에 총알이 박혀 있는 분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서요.”
“참는 거죠. 어른이니까.”
소령은 기가 막힌 것 같았다.
“총상을 말이죠.”
총상 전문의라고는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총기가 규제된 나라인 데다 루아스가 많지 않은 지부 소속이어서 루아스 총상 환자는 다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루아스도 상처를 입으면 인간만큼이나 고통을 느낀다는 것만은 잘 알았다. 중상을 입으면 죽는 건 물론이고.
국장은 조금 웃었다.
“좋은 세상이죠. 옛날엔 다리를 절단할 때도 술 마시고 목덜미 한 방 맞는 게 마취였는데.”
소령은 그제야 국장이 마취제도 개발되기 전 세상을 살아나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산뜻한 얼굴로 하시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마취가 된 것 같으니 빼겠습니다.”
핀셋이 상처 깊숙이에 들어갔다. 이물감이 느껴지는지 이반은 미간을 조금 좁혔다.
“나옵니다.”
달칵.
소령은 일그러진 총알을 작은 쟁반에 내려놓았다.
“좀 보죠.”
국장이 말해, 쟁반 채로 국장에게 건네주었다.
국장은 핏물에 젖은 총알을 유심히 보았다. 역시 막 제 몸에서 나온 총알을 보는 사람이라고는 볼 수 없는 태도로.
이내 쟁반을 대기하고 있는 한 대원에게 건네주었다.
“포렌식 센터에 가져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원은 쟁반을 받아 인사하고 돌아섰다.
그때 총알을 받아간 대원이 나가면서 열린 문 너머에 서 있는 연하가 그를 보고 파랗게 질렸다.
“강 상사, 들어와.”
다시 문이 열리고 연하가 들어왔다.
“괜찮아.”
연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괜찮아요. 어떻게…….”
“드레싱만 잘하면 금방 나을 테니까.”
소령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종이에 베인 게 아니라 총상입니다만…….”
소령은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네일건 같이 생긴 슈처 기계로 간단하게 봉합할 수 있는 인간 환자와 달리 손가락으로 피부 결을 더듬어가면서 방향을 맞추어 한 땀 한 땀 수작업해야 하는 작업이라 제법 오래 걸렸다.
마지막으로 파스 같은 방수 패드를 상처 주변으로 크게 붙였다.
“그래도 검사는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소령은 라텍스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루아스는 항생제도 필요 없는 몸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루아스의 피부를 뚫은 물건이니까요.”
“그러죠.”
소령의 말에는 동의하는지 국장은 순순히 대답했다.
간호장교가 수술복 같은 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국장은 구멍 난 왼쪽 옆구리가 결리는지 팔을 드는 데 조금 어색해 보였다.
소령은 그 모습을 보며 벗은 라텍스 장갑을 카트에 내려놓고 말했다.
“루아스들의 육체 능력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놀랍군요.”
“국장님을 기준으로 삼으시면 안 되죠.”
리웨이가 말했다. 모두가 자신을 보자, 리웨이는 자신이 너무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고 깨달았는지 덧붙였다.
“눈이 붉으시니까……?”
국장은 검사를 받으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웨이를 빤히 보며.
리웨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국장은 시선을 돌리고 안내를 받아 방을 나섰다.
“뭐야?”
리웨이는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하여간 괜히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니까.”
* * *
문이 열리고 초록색 수술복 같은 옷 위에 코트를 걸친 이반이 관사로 들어섰다. 제 발로 걷고 있긴 했지만 연하가 부축해 주고 있었다.
도저히 막 총에 맞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조금 힘들어 보이기는 했다.
뒤따라 렉스가 들어왔다.
“좀 앉아야겠군.”
거실 소파에 앉자, 연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물 드릴까요?”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렉스가 말하고 복도 건너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연하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부산스럽게 물었다.
“안 추우세요? 담요 좀 갖다드릴까요?”
“그건 괜찮을 것 같아.”
그때 렉스가 물을 가지고 와 이반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옆에 내려놓았다.
렉스가 말했다.
“탄환이 날아온 건물을 수색한 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야기 좀 듣고 오겠습니다.”
“그래.”
렉스는 밖으로 나가고, 연하는 다시 부산하게 물었다.
“뭐 필요한 건 없으세요? 플로스 팩이라도…….”
연하가 그를 돌봐주려고 부산을 떠는 건 귀여웠지만, 왠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불렀다.
“강 상사.”
연하는 전원을 끈 로봇처럼 시무룩해져 멈추었다.
“죄송해요. 제가 그때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만 안 했어도…….”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한 사람은 나였잖아. 기억 안 나?”
“하지만…… 제가 나서지만 않았으면 피하실 수 있었던 거죠?”
건물 위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봤다고 생각했을 때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반을 보호하려던 그녀를 다시 그가 보호하려 하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혼자 피하거나 렉스가 막았을 것이다.
“음…….”
이반은 거짓말은 할 수 없는지 조금 웃을 따름이었다. 연하는 기운이 빠진 듯이 바닥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보호해 주려고 했잖아. 고마웠어.”
“인간이었으면 목숨이 위험하셨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반은 빙긋이 웃었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니까. 다행이지.”
연하는 말을 멈추고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이반은 ‘응?’ 하고 묻듯이 고개를 조금 젖혔다.
갑자기 연하가 제 남방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이반은 놀랐다.
“강 상사?”
연하는 계속 단추를 풀었다.
“뭐 하는…….”
그리고 연하는 헐크마냥 옷을 양옆으로 찢듯이 열어젖히고 외쳤다.
“제 피를 드세요!”
이반은 눈을 크게 떴다.
“뭐?”
연하는 단호한 표정이었다.
“저도 국장님 피를 마셨잖아요. 리웨이가 같은 혈액형을 가진 루아스들끼리는 수혈하는 것처럼 피를 공유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국장님도 처음에 피를 주셨던 거죠? 그러니까 제 피를 드세요.”
확실히 피를 마실 수 있다면 상처는 더 금방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연하는 속옷에 정말 ‘속에 입는 옷’ 의미 이상을 부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 때라면 그도 그랬겠지만, 길가에 떨어진 단순한 돌멩이도 이성적인 의미가 있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실용성 외에 다른 기능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검은색 민무늬지만 속옷이 다 보이도록 옷을 열어젖히고 제 피를 마셔달라며 눈을 빛내는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몹시 난감했다.
다른 어떤 걸 참을 수 없게 될 것 같아서, 그는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괜찮…….”
“거절하지 마세요.”
그가 거절하려 하는 것을 알았는지 연하는 벌떡 일어나 소파에 무릎을 짚었다.
“이렇게라도 국장님이 낫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흔히 제 주장을 밀어붙일 때 그렇듯이, 연하는 소파 팔걸이를 짚고 점차 몸을 기울여왔다.
당연히 이반은 조금씩 뒤로 몸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등받이에 등이 닿아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지만.
“그러니까 제발 거절하지 마세요.”
이반은 제 위를 거의 덮다시피 한 연하를 보고 난감한 웃음을 지었다.
“강 상사? 지금 자세가 좀…….”
그러거나 말거나, 연하는 물러설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의외로 고집이 셌지.’
하지만 살짝 숙인 자세 때문에 거의 가슴이 드러날 것 같은 모습으로, 그것도 간절해서인지 물기가 어린 것처럼 보이는 눈으로 애원하다니…….
이건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그녀가 도와줬으면 하는 건 그쪽이 아닌데 말이다.
지잉.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인심 좋은 대감댁 대문처럼 열려 있는 연하의 앞섶을, 이반은 당장 한 손으로 잡아 닫았다. 그리고 소파 등받이 너머를 보자, 렉스가 현관에 멈춰 서 있었다.
“조금 있다 올까요?”
렉스는 별로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처음부터 딸 타령을 믿지 않았다고 말하듯이.
“진정해. 그런 거 아니니까.”
이반은 연하를 돌아보았다.
“그럼 이렇게 하자. 생각보다 잘 낫지 않으면 그땐 네 도움을 받기로.”
연하는 영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가 제안한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기에, 이반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렉스를 보고 물었다.
“그래서 수색한 결과는?”
“역시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군요. 저격을 끝내자마자 현장을 벗어난 것 같습니다. 주변으로 갑자기 움직인 차량이나 이동수단이 있는지 수색하고 있습니다.”
이반은 연하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돌아가서 쉬어.”
연하가 바로 반박하려는 얼굴이기에 이반은 바로 덧붙였다.
“나도 좀 쉬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럼 침실로 모셔다드릴까요?”
그것 역시 거절하려 했지만, 연하가 워낙 애원하는 눈이어서 이반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
연하가 부축해 주려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이반은 손을 잡고 일어나 그대로 2층에 있는 침실로 올라갔다.
손녀에게 부축을 받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연하가 부축하는 것에도 워낙 열심이라서 불평할 수가 없었다.
연하는 그가 침대에 앉을 때까지 부축해 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
연하는 거수경례했다.
“그럼 편히 쉬세요.”
연하는 문을 나섰다. 밖에서 렉스와 인사하는 소리가 나고, 1층 거실을 지나 문을 나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어서 렉스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냥 피를 마셔도 될 텐데요.”
이반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지 마. 안 어울리니까.”
“제 피라도 나눠 드릴까요?”
이반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제발 좀 봐줘. 이래 봬도 환자라고.”
렉스는 더 할 말이 없는지 살짝 목례하고 나갔다.
“쉬십시오.”
이반은 확실히 좀 누워야 할 것 같아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웠다. 구멍 난 옆구리가 뻐근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한순간의 쾌락이나, 어느 기간 지속되다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변해가는 단순한 연애감정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가족을 원했다.
언제나.
다른 흡혈귀들이 들으면 돌덩이가 될 만큼 살고도 그 심장 한 번 말랑하다며 코웃음 칠 일이지만, 세상을 전부 가져도 결국 죽어서 누울 자리는 한 뼘의 땅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쏟아지는 금과 지평선까지 이어진 땅, 세상을 제 발밑에 가져다줄 군대 같은 건 더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연하는 고작 서른한 살이지.’
인간 기준으로는 ‘고작’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쌍둥이 자매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이 그 나이가 되었다.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허락받은 그녀에게 벌써부터 한 남자에게 매이라는 건 잔인한 일일 것이다.
수십 년 전에만 만났더라도 몸과 마음이 끌리는 상황에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알량한 호감이나 충동적인 호기심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것은 충분히 겪었다.
하나라고 생각되는 순간 그는 놓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