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A TWIN
침대에 누워 있는 임산부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반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그녀는 이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평범한 동양인 여성이었다.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이반은 침대 옆 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임산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반은 의자에 앉아 말을 건넸다.
대령은 임산부에게 이반이 경계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여주듯 뒤에 서 있었다. 연하는 들어온 그대로 침대 아래쪽에 있었다.
이반은 가벼운 대화거리를 찾아 그냥 서서 듣는 입장으로서는 지루할 만큼 한참 대화했다. 임산부는 어느새 긴장을 풀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조금 반한 것 같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이반은 처음처럼 웃으며 일어났다.
“다 된 건가요?”
“네.”
임산부는 못내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이반이 그렇다 하니 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반은 병실을 나섰다. 따라 나오던 연하가 임산부를 돌아보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순산하세요.”
“아, 감사…….”
임산부도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두 사람이 맞절하듯 어색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이반은 웃었다.
‘하여간 귀여운 녀석.’
이반과 연하는 밖으로 나왔다. 남자들은 무언가 대답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차로 돌아가도 될 것 같군.”
국장이 이곳에 오가는 일을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하나였다.
“니스타르가 아닌가보군요.”
도영은 말했다. 모두 그가 이상한 말이라도 한 것처럼 쳐다보았다. 대원 둘은 듣고 있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봐 얼른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사 기밀을 말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나?”
국장은 오히려 흥미롭다는 얼굴이었지만 물었다.
도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다들 평범한 대테러부대로 알고 있지만 사실 MCTC의 존재 목적이 특정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 말입니까?”
* * *
쨍그랑.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다들 돌아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상의를 벗은 양복 차림을 한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잔을 주우며 사과했다. 잔은 깨지지 않았지만 커피가 흥건하게 쏟아져, 그는 휴지를 잔뜩 뽑아 다급하게 닦았다.
회의실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이해하는지 별다른 기색은 없었다.
사람들은 대략 스무 명쯤 되었고, 모두 비슷한 양복 차림이었다. 다만 오래 회의를 한 것처럼 다들 조금씩 흐트러진 차림새였다.
“다들 아무렇지 않으시네요.”
겨우 정리하고 다시 자리에 앉은 남자는 조금 파리한 얼굴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봤다가,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앞쪽 패널에 떠있는 사진을 보았다.
다시 봐도 식은땀이 날 정도로 끔찍한 사진이었다.
“워낙 자주 봐서요.”
테이블 앞쪽에 앉은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자가 대답했다.
“물론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죠.”
여자는 쓰게 웃고 손에 들고 있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새로 팀에 합류하신 수사관님께도 말씀드리고 시작해야겠군요. 사실 이 사건 때문이었으니까요, 정부에서 모든 일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여자는 말하기 시작했다.
“2017년이었습니다. IS에게서 이라크 모술을 탈환하는 데 성공한 CJTF-OIR# 지상군은 공포에 질린 주민들에게서 묘한 이야기를 듣게 되죠. ‘구울’이 한 소년을 데려갔다는 겁니다.”
“구울이라면…… 아랍 신화에 등장하는 식인요괴 말씀입니까?”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종되었던 소년은 모술의 니네베 유적에서 발견되었죠.”
여자는 패널을 보았다.
“IS가 부순 이교의 우상, 고대 아시리아 조각상에 못 박혀 죽은 채.”
그곳에 떠있는 사진은 바로 그 장면이었다. 남자는 다시 봐도 식은땀이 올라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죽음과 파괴의 철퇴를 맞은 도시에서도 과히 끔찍한 광경이었으리라.
“신이 천벌을 내릴 것만 같은 풍경에 군인들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사건은 IS의 극악한 소행 중 하나로 치부되고 넘어갔습니다.”
여자는 무심히 말하고 고개를 다시 원위치 했다.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다기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대하려는 수사관다운 태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건을 주목한 한 FBI 수사관이 있었죠. 그 수사관은 오랜 미제 실종사건들을 수사 중이었거든요.”
MCTC 정보국 소속 조사 2과의 수석 수사관은 양손을 가볍게 맞잡고 물었다.
“수사관님, 혹시 근대적인 검경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최대 미제 사건이 뭔지 알고 계세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희가 여기 모여 있는 이유가 있으니 ‘쌍둥이들 실종사건’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전 세계에서도 최고 브레인들만 모인다는 MCTC 정보국, 그것도 기밀을 취급하는 제로팀과 연계된 조사 2과였다.
신입 수사관은 일반인이 봤다면 트라우마에 걸릴 사진을 보고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금세 침착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수석 수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문화권에서 쌍둥이는 불길한 존재였죠. 한 번에 한 명 이상의 아이를 낳는 건 동물 같다거나, 악령의 짓이라거나, 어머니가 간통을 저질러서 여러 아이가 생겼다고 여기거나#…….”
사람들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불길하게 여겨 죽이거나 내다버린 역사가 깊지만, 그런 역사와 별개로 치더라도 쌍둥이들은 계속해서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당시 비교적 최근 발생한 모술의 니네베 유적 사건 피해자 소년에게도 쌍둥이 형제가 있었던 거죠.”
수석 수사관은 펜 끝으로 패널을 가리켰다.
“살아남은 쌍둥이 형제의 행방은 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알 수 없었지만, 수사관은 당시 주민들이 언급한 ‘구울’이라는 단어에 집중했죠.”
악마, 좀비, 혹은 귀신이라 불리는 구울…….
수석 수사관은 쓰게 웃었다.
“그 수사관이 그때 뱀파이어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뭔가 달라졌을까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당시 사건들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고, 오랫동안 다시 그 난제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회의실에 모여 앉은 수사관들은 모두 그 뒷말을 알고 있었다.
“MCTC라고 불리는 대테러부대의 외형을 한 이 비밀결사를 창설하는, 한 의원 전에는 말이죠.”
* * *
“어차피 듣고 있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도영은 심상하게 말했다.
아까부터 소장이 살아 있는 음파탐지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점프하는 높이만 봐도 소장의 청력은 연하보다 훨씬 뛰어날 테니, 보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소령은.”
국장은 갑자기 말했다.
“키가 컸군.”
도영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무슨…….’
그런데 컸다, 고?
“뒤늦게 좀 컸습니다.”
일단 대답했지만 석연치 않아 떨떠름하게 물었다.
“절 알고 있으셨습니까?”
“소령이 나에 대해 아는 만큼은.”
“무슨…….”
“저번에 통화한 파리 지부 정보국 소속 니콜라 로헝 대위, 초등학교 동창이었지?”
도영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분명히 암호화된 라인이었는데.’
연하는 그에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소령님 무슨 짓을 한 거야?”
“아니, 그게…….”
도영은 변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초등학교 동창이었으면 소령의 가족을 잘 알 테고……. 로헝 대위가 MCTC에 입대한 것도 자네 삼촌과 관련 있겠군.”
도영은 그를 힘 있게 바라보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가 줄리앙 삼촌에 대해 모를 리도 없으니까.
“예의상으로라도 에둘러 말씀하시지 않는군요.”
“그렇게 예의를 챙기는 사람이 내 뒷조사부터 할 것 같진 않은데.”
아무래도 말로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도영은 오히려 국장을 똑바로 보았다.
“그날 삼촌과 함께 있었던 사람이 니콜라였습니다.”
그날─
통째로 소각로에 집어넣은 것처럼 타오르는 집과 울부짖으며 발작하는 자신, 모든 게 꿈같고 거짓말 같았던 그날.
“흡혈귀들이 제 삼촌을 죽인 날.”
2년 전 서울 지부로 전출 온 도영이 연하에게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는, 둘 다 흡혈귀에게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가족을, 연하는 목숨을.
그는 장학재단을 통해 공부한 뒤 입대하라는 제의라도 받았지, 이 모든 일에 자신의 의지라고는 없었던 연하를 도영은 차마 미워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그들이 소중한 것을 잃어야했던 이유─
“의인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은 죽어서 적어도 제7품 권천사에 봉해진다는군.”
도영은 고개를 들었다. 국장이 그를 보고 있었다. 삼촌 생각을 할 때면 늘 그렇듯, 또 잠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잊고 있었다.
“로헝 대위에게 천사가 될 거라고 전해줘.”
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천사 같은 소리한다고 페라르동(몽펠리에의 전통 염소 치즈)으로 처맞을걸요. 염소 같이 공격적인 녀석이거든요.”
국장은 나직이 웃었다. 하여간 도영은 그가 못마땅했다.
쓸데없이 멋진 남자 느낌을 풍기는 것도.
“소령의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하군.”
“뭘 상상하시는지 알 것 같은데, 딱 그 반대입니다.”
국장은 흥미롭다는 얼굴이었다.
“다 정의감에 불타는 의인 스타일은 아니라는 게 재밌는 점이지.”
발전한 테크놀로지 덕분에 진짜 눈 같은 푸른 눈동자가 태풍이 오기 전 하늘처럼 묘한 빛으로 소용돌이쳤다.
“니스타르라고 말이야.”
삼촌이 죽고 MCTC라는 듣도 보도 못한 조직에서 나온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줄리앙 삼촌이 니스타르라는 존재였다는 이야기부터.
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계의 존립을 정당화하는 정의로운 자들 말이죠.”
* * *
“전 따로 가도 될까요?”
로비로 내려왔을 때 연하가 묻자,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저도…….”
도영이 바로 말하려 하자, 국장은 그를 보았다.
“소령은 나 좀 보지.”
도영은 미간이 움찔했다.
“명령입니까?”
“명령이야.”
말하고 국장은 돌아서서 먼저 갔다. 명령이라면 거절할 방법이 없었기에 도영은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따라갔다.
‘국장님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네.’
연하는 생각했다.
그녀 같은 하급자도 신경 써주고 좋은 사람인데.
뭐, 그리 낯선 상황은 아니었다. 워낙 남성적인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남자들이 많은 바닥이라 서로 간에 기 싸움이 꽤나 거셌기 때문이다.
그녀가 보기에는 더 강해 보이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싶을 뿐이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때로 목숨보다도 중요한 문제 같았다.
그리고 국장이나 도영이나 타입은 다르지만 무리의 리더인 알파 스타일이니까.
어쨌든 가야 할 곳이 있었으므로 연하는 돌아섰다.
* * *
교실은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영화 스크린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복도 모퉁이를 돌아 규하가 나타났다. 그러자 복도에서 떠들고 있는 아이들이 소리치며 교실로 달려 들어갔다.
“마귀할멈 온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자리를 찾았다. 규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깐깐한 시선이 교실을 훑는 동안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규하는 중간의 비어 있는 자리에 시선을 멈추었다. 그리고 인상을 쓰고 물었다.
“박가연이 어디 있어?”
“안 나왔어요.”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규하는 바로 험악한 얼굴이 되었다.
“이런 간나 ㅅ…….”
“선생님 또 욕하신다.”
“시옷에서 멈췄다. 교감한테 이르기만 해봐, 아주.”
아이들이 우우우 야유했다. 연하는 희미하게 웃었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밝았다.
“시끄러. 책 펴.”
이내 교실은 조용해지고, 규하가 수업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연하는 걸터앉아 있는 나무 기둥에 머리를 기댔다. 사이로 햇빛이 바삭거리는 나뭇잎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선생님 같은 거 질색이었으면서.”
연하는 자신이 한 번 죽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마주한 어떤 진실도.
* * *
“당신의 쌍둥이는 조금 특별한 존재입니다.”
연하는 막 깨어나 머리가 멍했다. 하지만 손에 와 닿은 온기는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아랍인이었다. 젊었을 때는 제법 미남이었을 법한 세련된 중년 남자로, 자신을 ‘라디프 페인’이라고 소개했다.
영국 서민원의 의원이라 했지만, 그런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어 더 현실감이 없었다.
# Combined Joint Task Force - Operation Inherent Resolve, 연합 합동 특수임무부대-내재한 결단 작전.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 연합군이 IS를 퇴치하기 위해 실행한 작전. “Operation Inherent Resolve, Targeted Operations to Defeat ISIS”, U.S. Department of Defense, 2018년 8월 13일 접속. https://dod.defense.gov/OIR/
# “종교학대사전 쌍둥이”, 네이버 지식백과, 2018년 8월 13일 접속,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30163&cid=50766&categoryId=50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