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THE CALL (2)
궁금해진 연하가 귀를 기울이자, 도영은 그녀의 귀를 잡고 귓속에다가 왁 소리쳤다.
“잡소리다, 이 자식아!”
청력이 좋은 연하는 진저리를 치며 손을 휘저었다. 도영은 어쩐지 즐거워하며 몸을 젖혀 피했다.
“귀 아파.”
연하는 인상을 쓰고 꿍얼거렸다. 그런 연하를 보자니 도영은 아무래도 한 마디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손가락을 튀겨서 연하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너 이 오빠가 진지하게 조언해 주는데.”
연하는 의아해했다.
“소령님이 왜 오빠…….”
“쉿. 리슨 케어풀리.”
도영은 조용히 하라는 듯 허공에 손을 그었다.
“남자란 말이야, 자고로 흑심이 있지 않는 한 절대 잘해주질 않아요. 알아?”
‘아버지에 오빠에 난리 났군.’
뒤늦게 유리 너머로 지나가고 있는 렉스는 무심히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잘 들으랬다고 도영이 하는 말을 경청하고 있는 연하를 물끄러미 보았다. 하얗고 말간 소녀의 얼굴이었다.
‘역시 외모가 어려서 그런가.’
주변 남자들이 다 묘한 보호자 의식을 느끼는 건.
‘속까지 영원히 열아홉은 아닐 텐데.’
렉스는 다시 무심히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항상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알았어?”
도영은 당부하듯 말했다. 하지만 연하는 대수학 설명을 들은 초등학생처럼 미간과 입술을 모은, 묘하게 화장실을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이해 못했어?”
“아니…….”
연하가 말문을 뗐을 때였다.
삐잉. 삐잉. 삐잉.
출동 신호가 체육관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도영과 연하를 포함해 대원들은 흠칫 돌아보았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모두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 *
“이번 주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오랫동안 수배 중이던 녀석이 하나 더 나타났습니다.”
이반은 걸어가며 김 중령에게 패드를 건네받았다. 수배전단이 떠 있었다. 평범한 흰색 테두리가 아닌 붉은 테두리는 용의자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준비는 전부…….”
자동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 연하가 란제리 같은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무장한 대원들 사이에.
이반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자동문이 도로 닫혔다.
자신이 뭘 본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로 앞에 서 있는데, 김 중령이 말했다.
“아, 들어가셔도 됩니다.”
문이 다시 열리고, 멀리서 그를 발견한 연하가 거수경례했다. 다시 봐도 그 모습 그대로였다.
가슴가가 훤한 짧은 원피스에, 진한 화장, 싸구려 티가 나는 화려한 귀걸이를 한. 이건 차려입었다기보다…….
연하를 상대로 쓰기에는 미안한 단어지만 천박한 느낌이었다.
이반은 김 중령을 보았다.
“상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사회보장번호 LKEGS-M-0001242에 대한 체포 작전입니다. 11건의 흡혈혐의와 3건의 폭행혐의가 있는 질 나쁜 녀석입니다.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자주 출몰하는 곳이…….”
김 중령이 브리핑하는 동안 뒤쪽에서 연하는 부지런히 현장에 나갈 준비를 했다.
전투복에 장착된 디지털 시스템을 확인하는 대원들과 대화하면서 스타킹을 신고, 뭔가가 걸리는지 허벅지를 긁고, 바닥에 놓인 하이힐에 한 발씩 넣었다.
옆에서 전투복을 다 입은 도영이 왠지 그녀를 마뜩찮게 보다가,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서 강 상사가 매춘부 역할을 할 겁니다.”
이반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김 중령을 보았다. 김 중령은 패드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신호하면…….”
“이런 일은 거의 강 상사가 투입되는 것 같군요.”
말하자, 김 중령은 그를 한 번 보고 연하를 보았다. 별생각은 없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타깃들이 경계심을 가지지 않는 얼굴이어서요. 작전 성공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물론 작전 성공률을 생각하면 육체 능력이 월등한 루아스 대원을 앞세우는 게 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루아스 대원 한 명에게 기대는 방식은 권장할 수 없군요.”
“예?”
국장이 그렇게 말할 줄 몰랐는지 김 중령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사람들도 하나둘 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애초에 대루아스 CQC를 개발한 이유 자체가 루아스 팀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낮추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김 중령은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제 몸이 가장 튼튼하니까요.”
연하가 말했다.
“공격당했을 때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미끼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 특히 상대가 같은 뱀파이어일 때는요.”
분명히 그러라고 준 게 아닐 텐데, 튼튼한 몸을 엄한 데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여성성은 더욱.
이반은 미간에 심각한 빛이 고였다.
“이건 강 상사만을 위해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방식일 경우 루아스 대원 하나가 전투불능에 빠지면 작전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연하가 뭔가 말하려는데, 도영이 연하가 벗어놓은 옷을 집어다가 안겼다.
“갈아입어.”
연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안 그래도 나도 이런 방식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그제야 이반은 왜 도영이 연하를 마뜩찮은 얼굴로 보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아마 연하는 팀 리더인 그의 말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정보팀 프로그래머가 말했다.
“타깃이 이동 중입니다.”
이반은 대답하지 않았다.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작전을 다시 짜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김 중령이 말했다.
연하는 흔들리지 않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이러느라 시간이 지체돼 범인을 놓친다면 그를 미워할 것 같은 결의까지 엿보였다.
“가십시오.”
이반은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일단 오늘은.”
“출발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 * *
상황실 패널에 연하가 골목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비쳤다.
의외로 하이힐이 익숙해 보였다. 자주 신어본 것처럼.
‘항상 사내애처럼 하고 다니는 걸 보면 평소에 즐겨 신어서 그런 것 같진 않고.’
하이힐을 부딪치며 걸어가서 어떤 건물 앞에 섰다. 그곳에는 이미 오늘 밤 ‘영업 준비’를 끝낸 여자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는 이반은 무심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속은 뭉글하게 끓어올랐다.
그가 모르고 있는 동안 뭘 어쩌고 있었던 건지 보기나 하자 싶어 일단 허락했지만, 그래도 하필 매춘부 역할이라니.
화면 너머로 남자 하나가 연하에게 접근했다.
“타깃이 아닙니다.”
화면 너머 남자는 연하를 훑어보고 물었다.
[얼마야?]
연하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뭐?]
남자가 놀라자 연하는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남자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냐, 좋아.]
“어이구, 새끼야, 한 번 하려고 그 돈을…….”
상황실에 있는 좌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마음이 변했어요.]
타깃이 아니니 당연한 이야기지만, 연하는 손가락을 다섯 개 펼쳤다.
[뭐? 장사 하루 이틀 해?]
남자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연하는 어깨를 으쓱였다.
[싫으면 말고요.]
‘능숙하게 화대를 거래하는 방법 따위 배우게 하지 마.’
이반은 골치 아픈 듯 이마를 문질렀다. 진짜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았다.
“얼른 투입해.”
김 중령이 말하자, 이런 사태를 대비해 심어놓은 진짜 매춘부가 골목에서 나와 남자에게 다가갔다.
[어머, 오빠. 나라면 반은 싸게 해줄 수 있는데.]
남자는 진짜 매춘부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연하에게 욕하더니 그 매춘부와 함께 사라졌다. 가면서 매춘부는 웃으며 말했다.
[내버려 둬. 어린 걸로 장사할 수 있는 것도 다 한때인데.]
연하는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상황실에도 정적이 감돌았다.
카메라는 사방에서 그녀를 비추었다.
아직 풋내가 도는 가느다란 팔다리였다. 화려한 화장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머니 화장대를 습격해서 멋대로 바른 느낌이었다.
그런 아이는 천진난만하기라도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진한 화장을 한 어린 매춘부에게서는 섬뜩한 삶의 냄새가 났다.
물론 연하는 진짜 매춘부가 아니지만, 지금 그녀가 저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풍기는 느낌은 비슷했다.
이반은 불쾌감이 발끝에 스멀스멀했다.
“타깃 나타났습니다.”
화면 밖에서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겉보기에는 징병 연령대의 평범한 인간 남자였다.
그래봤자 멋 부린 건달이었지만, 아직 눈도 검은색이었고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존재가 드러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인간 사이에 숨어 살아야했기 때문에 그들은 겉보기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붉은 눈, 흰 피부, 큰 키 같은 게 특징적이긴 했지만, 눈이 붉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고 피부나 키는 개인차가 있어서 확실한 표식은 되지 않았다.
타깃은 여자들을 훑었다. 마트 선반 앞에 선 까다로운 주부처럼 정성들여 꼼꼼히. 그러다 연하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걸려라, 걸려라, 걸려라.’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 마음처럼 염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반면 이반은 저 쭉정이가 연하를 간본다는 사실이 매우 불쾌했지만, 그가 연하에게 다가가자…….
‘이건 또 이거대로 화가 나는군.’
이반은 미간 사이를 주물렀다. 평생 걱정한 적 없는 혈압이 위험한 것 같았다.
[얼마?]
타깃은 고개를 까딱이며 물었다. 연하는 그를 훑어보았다. 가늠하듯. 그리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타깃은 만족한 얼굴이었다.
[좋아.]
[따라와요.]
연하는 손짓했다. 두 사람은 뒤에 있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화면이 바뀌면서 계단을 올라가는 두 사람이 비쳤다.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는 대원 중 하나가 옆에 있는 대원에게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상사님이 동족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하는 얼굴이군요.”
“어린 여자 뱀파이어는 보기 힘드니까.”
상대 대원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요?”
“성염색체 조합으로 태어나는 종이 아니잖아. 특별히 여자가 필요할 리 없지.”
대원은 앞쪽에서 모니터를 지켜보는 이반과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벽에 붙어 서 있는 렉스를 고갯짓했다.
“다수가 건장한 성인 남성이지.”
그랬다. 우스갯소리로 ‘남탕’이라고 부르는 종이 보기에 암울하거나 말거나, 그들은 생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지닌 적자생존의 총아들이었다.
보호해야 할 노약자가 딸리지 않은, 젊고 건강한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종이 끝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가?
연하는 오로지 생존 가능성으로만 판단하는 냉혹한 선별자의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매춘부 역할 따위를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거지, 이건.’
이반은 원초적인 고민에 빠졌다.
역시 그의 어리고 순진한 클리엔테스를 인간들 사이에 살도록 내버려둔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화면 속 연하가 방문을 열자, 화면에 방이 비쳤다.
붉은 등이 비추는 5평 남짓한 방 한쪽에 정리된 침대가 있고, 침대 테이블에 크리넥스와 콘돔이 놓여 있었다.
전형적으로 매춘을 위한 방이었다.
타깃이 먼저 들어오고 연하가 문을 닫았다. 그녀가 문고리에서 손을 떼려 하자, 타깃이 돌아보고 말했다.
[문을 잠가.]
연하는 문을 잠갔다. 타깃은 바로 웃통을 벗어던져 버리고는 연하에게 다가왔다.
그가 키스하려는 듯하자 연하는 고개를 돌렸다. 키스하지 않으려는 매춘부가 드물지 않으니 이상한 기색은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입술을 목덜미로 내리고, 손은 엉덩이 쪽으로 돌렸다.
렉스는 흘긋 이반을 보았다. 이반은 견고한 무표정이었다.
연하가 눈을 치켜뜨고 똑바로 카메라를 본 순간이었다.
연하는 남자의 팔을 잡아 돌리며 벽에 밀어붙였다. 거의 파묻어 버리려는 듯이. 그때 충격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뭐……!]
타깃은 당황하는 것 같더니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넌 뭐야!]
남자는 입 밖으로 자라난 송곳니를 번뜩이며 거세게 몸을 들썩거렸다.
그러자 연하는 힘을 주고 남자를 더 밀어붙였다. 남자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연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회보장번호 LKEGS-M-0001242, 당신을…….]
연하가 거기까지 읊었을 때, 타깃이 울부짖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 소리만으로도 나자빠질 것 같은 괴성이었다. 그리고 타깃은 순간 근육이 팽창하더니 연하를 밀어냈다.
연하가 뒤로 튕겨져 나가자, 상황실에 있는 모두 눈을 크게 떴다.
“강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