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215화 (215/226)

<-- 10. 마족의 습격 -->

***

“결국……, 이렇게 되는 거다 이거죠?”

약간 화가 난 듯한 유렌이 팔짱을 끼고 엘릭을 쳐다보며 물었다. 엘릭은 흐트러진 차림으로 내 어깨를 쥐고 말했다.

“역시 침대에서 조금 더 부드럽게 했어야…….”

“야외섹스를 문제삼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의외로 무척이나 로맨틱한 성격이었다. 섹스는 침대에서, 연애는 편지부터, 연심은 바라보는 것으로 키운다. 나는 그가 유리 같은 것의 밑에서 크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미르는 나를 빼내 가서 흐트러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혹했다. 나도 시아랑 밖에서 하고 싶어! 우리 지금이라도 나갈까?

“당신이 시아를 연모하고 있다는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 자리는 내줄 수 없습니다.”

뭐야, 유렌 알고 있었어!? 나만 몰랐던 거야? 미르는 고개를 끄덕끄덕끄덕였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셋을 쳐다보았다. 엘릭은 체액과 침, 그리고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 화향이 풀풀 나는 겉옷을 말아서 팔에 쥐고 셔츠 차림으로 서 있었다. 슬슬 겨울이 되어 가는 날씨인데 조금 추워 보였다. 엘릭은 나를 한번 쳐다보고,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랑은 상관없어.”

유렌은 그의 변함없는 반응에 울컥한 듯 했다. 엘릭은 내게 와서는 나의 손을 쥐고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풀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 첩이라도 좋아.”

나는 한동안 그런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내, 뭐가 좋다고? 내 첩? 아니,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듯 첩은 안된다니까! 엘릭이 백작인 이상 누군가의 첩으로 들어갈 수 없다.

“마족에게 인간의 작위는 필요없어. 백작위를 포기하고 네 쪽에 청혼서를 넣을게. 아직 성을 정하지 않아서 서류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았으니까 물리는 것도 가능해.”

나는 멍청히 그의 표정을 응시했다. 나를 위해서 백작위를 포기한다고? 그걸 내가 허락해줄 것 같아?

하지만 엘릭은 고개를 젓는 나를 무시하고 말했다.

“네가 받아들여 준다면 기쁘겠지. 하지만 네가 거절하더라도 더 이상 인간의 기사로 살 생각은 없어. 은퇴하겠어.”

은퇴? 모라구요?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소드 마스터가 되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으며 살 수 있는데 은퇴라구? 내가 장난치지 말라고 외치기도 전에 엘릭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키스했다.

“그래도 날 받아들여 주지 않을 거야?”

“……!”

그,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엘릭의 고개를 꽉 잡아 내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런 표정 아무한테나 보여주긴 아까웠다. 나는 그의 얼굴을 가슴팍에 묻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해, 해 줄게.”

그 날, 집에 돌아온 후 슈는 새 식구가 생겼다며 와아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유렌은 정말 싫은지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지만, 다음 날 아침 깨끗이 나았다. ‘시아가 원한다면……,’ 이라는 대답을 받아낸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듯한 미르와, 그 때 유리 사건으로 엘릭을 인정해버린 세르의 허락으로 그를 정식 첩으로 맞아들였다.

엘릭이 은퇴를 선언했을 때 기사계에 한바탕 반향이 일어났으나 엘릭 스스로 그렇게 선언하자 결국 그들은 기사직을 은퇴하되, 검의 발전에는 계속 힘써달라고 국가적 보물 중 하나인 엘릭에게 부탁했다. 한 국가에 소드 마스터가 한 명 늘어날수록 그 국가의 전투력은 배가된다. 기사가 아닌 유렌이 작위를 얻고 모든 기사들의 롤모델이 된 것처럼. 엘릭 역시 곧 소드마스터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와 있으니 억지로 기사직에 남게 하기보다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 탓이다.

엘릭의 가문인 레이몬드 가에서는 의외로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 엘릭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상대라는 이유가 큰 것 같았다. 제 앞가림 정도는 하겠지 하며 방관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칼릭은 엘릭을 잘 부탁한다며 내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쓸만한 남자는 다 데려간다고 여제에게 눈총을 받았지만 엘릭이 그렇게나 좋아 죽고 못사는 모습을 본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그리고 결혼 후 사라진 제국 2대 미녀라는 호칭 대신, 제국의 마성의 꽃이라는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호칭이 새로 붙었다.

엘릭이 정식으로 내 남첩이 되고 첫날 밤. 엘릭은 다정하게 웃으며 초를 꺼내들었다. 촛불 켜 놓고 분위기를 잡고 싶었나 보다. 엘릭은 의외로 너무 순수해서 같이 목욕하자는 말이나 후배위로 하자는 말은 못하겠다. 그는 승마위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게 싫어해버리면……, 묶어놓고 억지로 범해보고 싶어지는뎅.

내가 손가락을 빨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엘릭은 살풋 볼을 붉히며 내게 작게 말했다.

“조금 이른 저녁이지만……, 괜찮겠어?”

‘괜찮겠어?’ 가 아니지! 시도 때도 없이 ‘해 주세요, 할래!’를 연발하는 미르와 유렌 사이에서 지내왔던 터라 이런 소극적인 엘릭의 모습이 색달랐다. 그치만 미르랑 유렌이랑 슈 사이에서 이렇게 비적극적이면 밀려날지도 모르는데? 내가 좋아하니 상관없나, 뭐.

엘릭이 그렇게 구니까 나는 더 그의 눈 앞에서 자극적인 짓을 하고 싶어졌다. 한번쯤은 그가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다. 마족은 의외로 생식 행위에 무척 강했다. 느낄 것은 다 느끼되 웬만한 자극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초보라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는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페이스를 유지했다.

그런 시선도 좋지만, 짐승같은 욕망으로 가득한 그의 모습도 너무 보고 싶었다. 두근두근해.

엘릭 공략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나는 그의 눈앞에서 쨔안 하고 샤워 가운을 벗었다. 유렌과의 결혼 첫날밤에 입은 속옷이다. 망사 레이스로 되어 속이 다 비치는 내 옷차림을 본 그는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아래는 여전히 솔직하네.

“내 몸 보기 싫어?”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말하자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날 쳐다보고 있는 얇은 잠옷 바지 밑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앙, 무셔워~. 나는 다시 이불 사이로 기어들어가서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엘릭의 그거, 나를 공격하려고 해, 무서워잉♡”

그는 내가 도망가서 몸을 가리자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움찔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싫다면 공격하지 않아.”

나는 입을 벌렸다. 자, 잠깐! 이거 너무 순정적이지 않아? 이런 게 마족이야? 말도 안 돼. 내가 아는 마족이란, 내가 알던 엘릭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구!

무서워잉 하고 말하면 더욱 더 즐거워하며 달려드는 게 마족 아니었던가? 잠시, 나 뭔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순간 침대 옆에서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엘릭의 품으로 안겨들었고 엘릭은 나를 팔에 넣고 감싼 후 옆에 있던 검에 손을 뻗었다.

갑자기 신혼의 달콤한 분위기를 방해한 것은 길다란 은발머리였다. 나는 왜 그가 이 곳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유리와는 분명 그 때 다시는 볼 일 없을 거라고 헤어진 줄 알았는데……. 아니지, 엘릭을 동생으로 인정하겠다고 했으니 엘릭 보러 온 건가? 하지만 하필 지금!?

“여왕님, 오랜만~!”

침대 위에서 차원의 게이트를 열고 떨어진 그는 생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 밑에서 가지런히 무릎을 꿇었다. 완전히 기본 자세가 된 듯 했다.

“동생이랑 뭐 하는 중이었어?”

“누가 당신의 동생이라고……!!”

엘릭은 아무래도 유리의 동생이 되고 싶어하진 않는 것 같다. 하긴, 나라도 그렇겠지만. 유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히 내가 더 일찍 태어났으니까 네가 동생. 나는 형.”

“지금 그런 의미가……!!”

나는 엘릭이 화내는 것에 이어 나도 유리에게 외쳤다. 대체 왜 온 거야!? 그때 더 이상 이 일로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라며? 이상한 플레이 즐기고 싶다면 다른 여왕님 찾아봐!!

유리는 내 차림새를 보고 감탄했다. 그리고 무릎으로 꿇어앉은 채 좀더 저자세로 내게 말했다.

“내 동생 일로 만날 일은 없겠지만, 내 개인적인 일로는 만나게 될 거라는 얘기였지. 그리고 난 마계의 2인자야.”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나 이상의 여왕님은 여왕님 뿐이야.”

아, 머리 땡겨.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것도 엘릭이랑의 첫날밤에!! 그는 눈치가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엘릭 앞에서 나에게 조련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전에 하던 거 계속하자, 여왕님.”

그리고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엘릭이 다른 의미로 이성을 잃는 모습을 보았다.

========== 작품 후기 ==========

으힣 으히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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