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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212화 (212/226)

<-- 10. 마족의 습격 -->

혹시 전편 너무 일찍 봐버리신 분은 지금 전편 추가된 부분 보고 와주떼여~〉〈

***

유렌을 비롯한 다섯 명이 황성으로 달려갔을 때 이미 황성의 절반은 마족에게 침략당해 있었다. 그들은 벌써 소환된 마물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마족을 우선 찾기로 했다. 설마 결계를 뚫는 것이 이렇게 빠를 줄이야. 하르아이나 황성의 결계 속에는 마치 여기 있으니 죽이러 오라는 듯 마족의 기운이 푹 퍼져 있었다. 그 중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마족의 기운은 본궁 쪽이었다.

세르가 먼저 본궁으로 달려갔다. 궁 안에는 배신자 적의 대공의 병사들과 흑의 대공 쪽 기사들이 맞붙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궁 내는 난장판이었고 상황은 아비규환에 가까웠다. 적의 대공의 둘째 딸 플라니아 공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자매들을 데리고 흑의 대공측에 서 있었다. 아마 부친의 배신을 알고 이 쪽에 밀고했기에 흑의 대공이 빨리 기사들을 대비시킬 수 있었겠지. 처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가장 먼저 쥬얼과 엘릭이 같은 마족의 위치를 알고 황성의 계단 위로 올라갔다. 꼭대기층이다. 그 뒤를 미르와 유렌이 따랐다. 세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먼저 가, 아래층 정리하고 적군이 못 올라가게 막고 있을 테니’ 라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엘릭은 아무도 없는 황실의 꼭대기층의 문을 열고 자박자박 걸어들어갔다. 그 쪽에는 길다란 은발을 늘어뜨린 미형의 마족이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투명하고 차가운 인상이다. 가느다란 눈을 하고 있는 그 마족의 오른쪽은 엘릭과 같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엘릭은 잠시 흠칫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리고 검을 쥔 손에 팔을 올려놓고 그를 향해 말했다.

“세이시아를 데려간 것, 너냐?”

뻔히 알면서 왜 묻는지. 유리는 생글생글 웃었다. 표정 변화가 자유롭지만, 엘릭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쥬얼은 그 정도로 표정 없는 웃음을 짓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늦었구나. 나의 동생.”

방긋 웃는 그 마족의 동문서답에, 으잉 하는 표정의 미르가 엘릭을 쳐다보았다. 누가 동생이야? 엘릭은 스륵 검을 빼들고 그를 겨누었다. 검? 유리는 엘릭의 손에 들린 쇳덩어리를 보더니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나한테 뭘 겨누는 거지? 그 장식품 쪼가리?”

그리고 한순간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장난하는 건가? 마족 주제에 검을?”

쨍그랑, 하고 가벼운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산산조각난 것은 검이었다. 날카로운 금속 파편이 엘릭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리는 그걸 보더니 스윽 입술을 혀로 핥았다. 엘릭은 아랑곳않고 검 손잡이를 던졌다. 그리고 말했다.

“세이시아를 데려간 게 너냐고 묻잖아.”

그리고 옆에 있던 미르도 빽 소리쳤다.

“맞아, 맞아! 시아를 내놔, 이 마족새끼!!”

유리는 표정을 굳혔다. 쥬얼은 사실 그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무표정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유리는 느긋하게 팔을 늘어뜨리고 그들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흐응? 드래곤까지? 좋아, 플로라를 데려간 건 내가 맞아. 하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야, 너 시아한테 손가락 하나 댔다간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드래곤 씨는 좀 빠져 줬으면 해. 일만 끝나면 돌려줄 테니.”

유리는 방방 뛰는 미르에게 입꼬리만 살짝 올려 웃었다. 잔혹한 웃음이다. 쥬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런 거랑 맞먹으며 외치는 미르의 존재가 새삼 거대하게 느껴졌다. 인간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익!!!”

미르가 화를 내며 마법을 날리려고 하자 유렌이 이번에는 침착하게 미르의 팔을 쥐었다. 우선 협상부터 해 보죠. 그는 천천히 유리 앞으로 다가왔다. 유리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남자가 다가오는데도 오만한 시선으로 그를 뻔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유렌은 신사적으로 싱긋 웃었다.

“어째서 제가 당신에게 저의 아내를 빼앗겨야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조금 듣고 싶은데요.”

“……설명 듣고 싶다지 않았어?”

유리는 바로 검을 가로로 휘두르는 유렌을 피해 공중으로 높이 점프했다. 오리하르콘 검이다. 저건 위험했다. 유리가 쏙쏙 잘도 피하자 유렌은 더욱 검에 힘을 힘껏 실었다.

“입만 남기면 설명을 들을 수 있겠죠. 안 그렇습니까?”

이성을 잃고 달려들려는 유렌을 이번에는 미르가 막았다. 야야, 좀 참아. 우리한텐 멀쩡히 돌려 준다잖아. 일단 받고 나서 족치는 게 나아.

유리는 그 둘을 악당같은 시선으로 흘깃 보더니, 쿡 하고 냉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팔을 벌려 거대한 얼음덩이의 비를 내렸다. 황궁 기물이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가볍게 그 얼음덩이를 피했지만 예고 없는 공격에 화가 난 미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셋은 좀 버거운데.”

큭큭 웃는 유리의 뒤로 단검을 쥔 쥬얼이 팔을 휘둘렀다. 가볍게 쥬얼의 팔을 낚아챈 그가 어라, 하며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쳐다보았다.

“이거, 자세히 보니까 실패작인데 살아있네?”

“무, 무슨 소리를.”

“너 말야, 너.”

유리가 쥬얼을 한 손으로 든 채 툭툭 건드렸다. 쥬얼은 붙잡혀 바동거리다가 화가 나 그에게 발길질을 했지만 그의 다리 길이보다 유리의 팔이 더 길어서 전혀 소용없었다.

“잘 됐네. 아마 늦게 부화해서 칸이 손을 채 쓰지 못한 것 같은데, 내가 대신 죽여줄게.”

잔인한 그의 시선에 쥬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팔을 베어버리려는 유렌의 검이 없었더라면 그는 그 순간 정말로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 굳어버린 쥬얼을 데리고 유렌은 뒤로 물러섰다. 유리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내 일이라고. 방해하지 마.”

그 말에 미르가 되받아쳤다. 사실 그 쥬얼이라는 어린 반마족이 죽으나 마나 나와 상관은 없지만 죽으면 시아가 싫어할테고, 또 저 재수없는 마족 뜻대로 되는 건 두고 볼 수 없으니까.

“너나 내 시아를 내놔!”

“시끄럽네, 정말. 나는 엘릭 칸 혼자만 부르려고 했는데 왜 이런 것들까지 함께 와서는. 그 꼬맹이를 데려온 것만은 칭찬해 줄게. 죽여야 하니 넘겨……, 윽.”

유리는 급히 몸을 틀었다. 등에 세로로 얕고 붉은 선이 그어졌다. 아까부터 손에 마기를 모으던 엘릭이 공격한 것이다. 그는 상처가 나 기분이 나빴지만, 반대로 희열을 느꼈다. 이 녀석, 역시 내 동생으로 칸이 선택할 만 하다. 꽤나 하잖아?

보통 마족 중에서는 그의 몸에 상처를 낼 만한 녀석은 없다. 유리는 드물게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끼며 엘릭에게 긴 손톱 같은 형태의 마기 덩어리로 공격했다.

엘릭은 다급히 그의 공격을 피했다. 그 뒤로 몇 차례나 그가 감당하기 힘든 공격이 쏟아졌다.

저 녀석,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내가 엘릭, 칸이라고? 동생? 엘릭은 육체적인 고통 외에도 정신적 압박감 역시 받고 있었다. 만약 그의 말대로 저런 마족이랑 내가 형제라면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다. 저런 게, 저런 게 형? 차라리 칼릭이 훨씬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엘릭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황금색 눈동자, 자신의 것과 같았다. 그는 틀림없는 엘릭의 형제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칸의 아들. 엘릭은 눈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 역시 ‘성공작’인 모양이다…….

그 마족은 마기 외에도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인간의 마법과 달랐다. 엘릭이 모르는 마법이다. 엘릭은 자신이 요 몇 달 간 마물과 몬스터들을 죽여 흡수해서 배로 강해지지 않았더라면 분명 저 자에겐 손끝 하나 대 보지 못하고 죽었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 더욱 더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마족의 눈에 엘릭이 들어찰 리는 없었다. 엘릭은 벌써 절반이 넘게 지친 상태인데 마족은 단순히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엘릭의 앞에서 비웃었다.

“마족을 버리고 얻은 게 겨우 같잖은 쇳조각을 휘두르는 실력과 약해빠진 체력 뿐인 건가? 네 사랑이 어떻게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엘릭의 오른쪽 눈이 기이하게 빛났다.

“세이시아는 무관하잖아!!”

“왜 무관해? 네가 좋아하는 상대잖아? 너 같은 것 때문에 인질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어? 하긴 너 말고 다른 지켜줄 기사님들이 저기 계시니까, 너 하나 정도는 약해도 되겠지.”

“…….”

비웃음 섞인 그의 말을 들은 엘릭은 가만히 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유리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다시 너덜해진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벌써 끝이야?”

엘릭은 생각했다. 인간이라서 내가 약하다고?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세이시아가 인질이 되게 해 놓고 구해주지도 못한다고?

그는 가만히 서서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을 풀었다. 그리고 벗어던졌다. 그 행위는 기사인 그에게 있어 검 자체를 버리는 행위이기도 했다. 유리는 뭐냐는 듯 비웃음을 띄웠다. 엘릭은 그에게 걸어갔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나는 인간을 버리겠어.

호오, 이제야 할 생각이 든 건가? 유리는 생각했다.

엘릭은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아까 사용했던 유리의 마법을 떠올려 보았다. 그 흐름을 그대로 재생시키자 손 위에 조금 불안하지만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유리는 그 불꽃을 흠칫하며 피했다. 뭐야, 설마 아까 내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한 거야? 그 사이에?? 말도 안 돼!

그는 지금까지 마치 어린 마족처럼 단순한 마기만을 이용해서 공격해 왔다. 패턴 역시 다양하지 못했다. 전투 경험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초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마족으로서의 전투 경험은 단순 사냥밖에 없는 엘릭은 완전한 초보자 중의 초보자였다. 그 사이에 중급 기술인 마기를 이용한 마법을 배운 건가? 설마…….

마기를 이용한 공격과, 마법 공격은 효율 면에서도 차이가 난다. 공중에 흩뿌려지며 낭비되는 마기 없이 완벽한 수식으로 증폭된 적은 양의 마력만으로 강한 효과를 내는 것이 마법이다. 고위 마족들이 어릴 때부터 쭉 봐 오다가 어느 순간 한번에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두번 봐서는 따라할 수 없다.

그는 힘껏 불꽃을 피워 유리에게 꼭 찍어주려고 하다가 직접 공격으로는 무리라는 것을 알고 그대로 여러 개의 검은 불꽃을 던져내서 이리저리 도망치던 유리의 퇴로를 막았다. 그리고 긴 칼날을 소환해 그의 몸을 베었다.

야만스러운 마족의 싸움이라며 미르는 유렌에게 귓속말로 속닥였다. 슈는 초조하게 둘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엘릭은 거대한 진주 같은 폭탄을 위로 던지고, 아까의 공격을 막느라 실드를 친 그의 앞까지 다가가 디스펠과 함께 강한 일격을 날렸다. 제대로 한 방 먹어버린 유리가 콜록거리며 옆구리를 붙잡고 일어섰다.

“설마 그 사이에…….”

엘릭은 남은 힘을 모조리 마검에 실었다. 그리고 아래로 내리쳤다. 지금까지 중에서 이렇게 강한 힘을 일격에 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유리창의 깨진 조각과 카펫의 먼지, 바닥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당황했다. 공격은 들어가지 않고 완전히 무산되었다.

========== 작품 후기 ==========

엘릭 광렙

유리 : 헐ㅋ 님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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