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210화 (210/226)

<-- 10. 마족의 습격 -->

***

미르는 불같이 화를 내며 슈를 붙잡았다. 슈는 미르의 손을 토닥이며 나한테 화내 봤자 소용없다고 달랬다.

"시아가, 지금 마계에, 있다구!! 아오 빡쳐! 그 마족놈 잡히기만 하면 모가지를 따버릴 거야!! 감히 우리 시아를, 시아를 마계 따위로 데려가다니!! 분명 섬세하지 못한 마족놈들은 시아를 막대할 거야, 골방에 가두고 흙 한 숟갈 주지 않을 거라구!! 그 여리고 귀엽고 부드럽고 약한 시아, 나의 시아를!!!"

"진정해요. 화내봤자 되는 건 없어요."

미르가 화난 척은 했지만 그 눈동자는 누구보다도 냉정했다. 그걸 아는 슈는 적당히 맞장구쳐 주다가 어느 정도 그가 진정되었다 싶다 미르에게 물었다.

"어디부터 갈 거에요?"

"카이세르님이 있는 수도로 가자. 그 마족이 정말로 마공작급이며 황자와 계약했다면, 아마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철저하게 준비를 해서 황궁을 기습할 거야."

방금까지 화내며 펄펄 뛰었던 것이 마치 환상 속 일인 듯 미르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에 팔짱을 끼고 있던 유렌이 아까부터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더듬으며 되물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정령계에 무슨 일이 생겼나 했더니, 설마 납치였을 줄이야! 그것도 마족이. 그는 지금 당장 마계에 쳐들어가고 싶은 생각이었다.

"마계로 먼저 가는 게 아니구요?"

그는 오히려 미르보다도 호전적인 유렌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마계로 갔다간 오히려 이 쪽에 제약이 걸려. 비록 나와 성향이 정반대긴 하지만, 블랙 드래곤인 하르아이나가 마법을 걸어 둔 인간의 황성에서 대기하다가 잡아 족치는 편이 더 완벽한 계획이야."

계획이라는 미르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유렌이 소리쳤다.

"나는, 나는 시아가 지금 무슨 일을 당하고 있을지 걱정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봬도 정령왕이야. 마공작이라고 해도 함부로 손쓸 수 없어. 아마 강제보다는 협조해 달라고 회유책을 썼을 게 뻔하지. 너무 걱정만 하다간 아무것도 안돼. 지금 중요한 것은 성공 확률이다. 어떻게 해야 그 놈을 붙잡고 시아를 구해낼 수 있을지."

"……."

침묵하는 유렌의 뒤로, 까만 머리칼이 빼꼼 드러났다. 시아가 데려온 쥬얼이라는 반마족이다. 그는 꼭 양손을 쥐고 조심스럽게 유렌의 옷을 톡 건드렸다.

"저도 데려가주시면 안 되나요?"

"……?"

미르는 뭐냐는 듯 쳐다보았지만 유렌은 자신보다 반이나 작은 쥬얼의 쥔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좋습니다. 함께 가도록 하죠. 당신도 마족이니 비상시에 도움이 될 겁니다."

미르는 중얼거렸다. 아니, 저런 어리고 약한 마족이 도움이 될 리가……. 유렌도 당황하니 판단력이 많이 상실되었구나. 하지만 굳이 말리진 않았다. 저렇게 의욕이 넘치니 데려가서 자잘한 심부름 정도 시키면 되겠지, 뭐.

"자, 그럼 출발한다. 잘 붙잡아. ……워프!"

주의하라고 말한 후 미르는 유렌과 슈, 그리고 쥬얼을 데리고 이동했다. 곧바로 황성 앞이었다. 경계 투성이의 황성 앞에서 갑자기 미르를 비롯한 수상해 보이는 인물이 나타나자 곧장 경계경보가 발동되고 멀리서 위협용 화살이 날아왔다. 어차피 위협용이라 맞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간단히 매직 실드로 화살을 막아낸 미르가 한 손을 들었다. 제국민을 증명하는 패였다. 그치만 그 거리에서 글씨가 보일 리 없다. 다시 한번 화살이 날아왔다. 잔뜩 경계하며 병사들이 창을 겨누고 이 쪽으로 몰려들었다.

"조심해서 등장할 것이지……. 이거 민폐군요."

유렌이 주위를 둘러보며 미르를 향해 쯧쯧 혀를 찼다. 슈는 화살을 간단히 막아내는 미르에게 감탄했다.

"우와아, 이 거리를 한 번만에 이동하다니! 게다가 마법 실행도 빨라요!! 역시 드래곤의 마법은 다른가 봐요."

"다르지, 아암. 난 천재 드래곤이니까!"

그거 드래곤이라면 다 할 수 있잖아. 못하면 드래곤이 아니고 도마뱀이지. 핀잔에는 대답하지 않고 오직 칭찬만 귀로 들이는 것을 허락하는 미르의 행태에 유렌은 어이없어했다. 가까이 와서 셋의 정체를 알아챈 병사들이 그제서야 길을 비켜주었다. 유렌의 얼굴은 기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그 소란을 들었는지 멀리서 세리안이 달려왔다. 기사단을 은퇴한다고 인수인계 작업을 하기 위해 수도로 돌아갔는데, 마족 사건이 터져서 그대로 황성에 잡혀있었던 것이다.

"너희, 대체 무슨 일이지? 왜 갑자기 대놓고 마법까지 써 가며 여기로……."

"아, 카이세르! 그게, 시아가아~~."

미르는 아까까지의 태도는 어디 가고 세르를 보자마자 달려가 어떻게든 해 달라며 부탁했다. 윗사람한테 귀찮은 것은 다 떠맡기고 시아를 구출해서 짜잔, 하는 히어로 역만 차지할 셈이겠지, 속이 다 보였다. 유렌은 미르를 멀리 밀어내고 세르 앞에서 객관적으로 사정을 설명했다. 실프에게 부탁한 슈와, 실프가 엘레스트라님께 들었다며 전해 준 얘기들. 그리고 마족과의 관련성. 그 말에 얼굴이 살짝 굳어진 세르는 황성의 문을 열라고 지시한 후 다시 성 안으로 그들을 들였다.

"마족이라……. 대체 무슨 목적일까?"

세르의 의문에 유렌은 멈칫했다. 단순히 시아가 납치당했고 범인이 마족이라는 것만 알지 무슨 목적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마족이 정령왕을 납치해서 무엇을 이루려는 걸까? 마족이? 식물을 뭐하러??

"맞아요, 마족! 어, 그러고 보니 전에 플로라 님과 함께 있던 그 검은 머리의 엘릭 레이몬드라는 분도 마족이잖아요? 혹시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요?"

“레이몬드 백작이……?”

이번 전쟁으로 자작에서 백작으로 출세한 엘릭 레이몬드. 그가 이 일에 관련이 있다고? 그저 같은 마족이라는 연관성만으로 해낸 추측일 뿐이다. 실제로 마족은 엘릭 뿐 아니라 바로 옆의 쥬얼도 있지 않은가. 비록 쥬얼은 어렸고, 마기를 다루는 법조차 모르지만.

세르는 살짝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린 후 중얼거렸다.

“신경 써 보는 게 좋겠군. 지금 엘릭 레이몬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겠어. 너희는 대기하도록. 황성 안의 모두는 잔뜩 긴장하고 있으니 괜히 쓸데없는 사고 쳐서 쫓겨나지 말고.”

“네.”

세리안이 방에서 나간 후 그들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르가 손을 내밀었다.

“누구 갈래?”

당연히 셋 모두 손을 들었다.

셋은 세리안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세리안은 왜 따라오냐는 듯 흠칫했지만, 역시 시아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분은 똑같았다. 그들은 비공식적으로 레이몬드 백작가에 엘릭 레이몬드의 알현을 요청했다.

이번 사건으로 엘릭도 백작 작위를 얻었지만 아직 서류가 제대로 수리되지 않아 레이몬드 백작이라 하면 현 레이몬드 백작, 즉 엘릭과 칼릭의 부친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엘릭이 백작이 되기 위해서는 물려받는 성 외에 또 하나의 성을 지어야 한다. 그 과정이 계속 미뤄졌기 때문에 엘릭은 아직 레이몬드 ‘자작’ 이었다.

“레이몬드 자작은?”

“아마 거처에 계실 겁니다.”

기사단의 관리장에게 묻자 그는 세리안을 보고 꾸벅 인사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아마 엘릭은 오늘 출근하지 않은 것 같다. 세리안은 여동생에게 일이 생겼다고 말한 뒤 아이서스 경에게 일처리를 잠시 맡긴 후 말을 타고 황성을 급히 나갔다. 슈는 쥬얼을 앞에 태우고 말을 탔다. 셋은 수도 근방의 레이몬드 백작 저택에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백작 저택은 황성과 무척이나 가까웠으니 따로 워프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도련님께서는 도서실에 계십니다. 손님들께서 오셨다고 말씀 전하겠습니다.”

한참 후 엘릭이 책먼지를 날리며 나왔다. 그리고 새침한 얼굴로 왜 왔냐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세르는 빙긋 웃으며 엘릭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신가, 레이몬드 자작.”

세르와 엘릭은 사이가 좋지 않다. 세르는 마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엘릭 역시 그것을 아는지 세르를 꽤 적대했다. 그리고 비꼬듯이 중얼거렸다.

“바쁘니까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우리 쪽도 중요한 일이라서 말야.”

별 일도 아닌데 찾아온 거라고 단정짓기라도 하는 듯한 엘릭의 말에 세르 역시 그렇게 대꾸했다. 용건이 있는건 그들이었기 때문에 세르는 평소보다 약간 저자세로 나섰다. 뒤에서 유일하게 엘릭에게 호감이 있는, 아니,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호감이 있는 슈가 외쳤다.

“플로라 님이 마족에게 납치당했어요! 도와주세요, 엘릭 씨!”

“……뭐?”

엘릭은 어이가 없다는 듯 되물었다. 누가 납치를 당해? 엘릭의 표정을 보고 슈는 지금 한창 제국에서 난리가 난 원인인 3황자라는 분과 계약한 마족이 플로라 님을 납치한 것 같다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엘릭은 한참 뭐 어쩌라는 듯 그들을 쳐다보다가,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돌아가 검과 한 종이조각을 가지고 나왔다.

“……어쩔 수 없으니까 네녀석들도 데리고 가 주지.”

미르는 중얼거렸다. 시아가 걱정되니까 구하러 가긴 가야겠고, 혼자서 가면 발릴 것 같으니까 우리랑 같이 가겠다는 거겠지, 라면서. 엘릭은 듣지 않고 종이조각을 내밀었다.

“며칠 전부터, 이런 게 매달 집으로 배달되더군. 처음 보는 단어라서 해석할 수 없는데 이걸 해석해 주는 게 대가야.”

“사랑해서 구하러 가는 데 대가가 필요해요?”

슈가 사랑을 외쳤으나 엘릭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지, 내가 너희들을 돕는 대가라는 거다. 나 없이 마족을 상대로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설마 그 약해빠진 반마족 꼬맹이한테 시킬 것은 아니겠지?”

세르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미르나 유렌은 시아가 우선이니 토 달 것 없었다. 슈는 금세 넘어가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세르는 일단 지금은 협조가 우선이라 판단했기에 그의 손에 들린 종이쪽지를 빼앗아 한자 한자 읽어내려갔다. 다행히 그가 알고 있는 언어였다.

“이거 마족의 언어잖아. 네 사랑은 내가 데리고 있다. 내 저택으로 혼자 오지 않으면 뒷일은 책임질 수 없다. 마공작 칸 레일라.”

“…….”

순간 그들은 침묵 속에 뒤덮혔다. 그 때, 큰 소리로 허겁지겁 기사단의 전령이 도착했다.

“에, 엘릭 레이몬드 경, 세리안 시렌느 경! 구, 구, 궁에 마족이 침입했습니다!! 지금 당장 황궁으로! 어서!!”

그들은 뭐라 말할 것도 없이 급히 궁으로 달려갔다.

========== 작품 후기 ==========

전편 ㅋㅋ 올리고 얼마 안되어서 보신 분들 안 놀라셨나요?ㅋㅋㅋㅋ

노블 들어가야 할 부분을 실수로 그대로 넣었는데;; 댓글이 너무 평범해서 한동안 실수를 몰랐다는 ㅠㅠ

지금은 짤랐답니다. 한번만 더 걸리면 이거 노블행 ㅠㅠ 협조해주세여류ㅠ

p.s.코멘 40개 달리면 연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