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마족의 습격 -->
그는 내 발을 핥으면서도 중얼거렸다.
“복숭아맛. 수액이랑 똑같은 맛이 나…….”
밖으로 흐르느냐 안에서 흐르느냐만 다를 뿐이고 성분은 둘 다 똑같은 수액이니까 당연히 맛도 같겠지.
거만한 마계의 2인자가 내 밑에 꿇어앉아 발을 핥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타고난 것 같은 감각이다. 나는 틀림없는 여왕이었다. 나는 바닥에 꿇어앉아 열심히 핥다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지자 발을 뗐다. 대신 침으로 발이 번들거렸다.
“타월로 닦아.”
유리는 바로 소환해낸 젖은 타월로 내 발을 깨끗이 닦았다. 나는 상처가 아물긴 했지만 여전히 아까 이빨이 박히던 감촉이 선명히 남아서 욱신거리는 목을 붙잡고 그에게 말했다.
“과일 가져와.”
“뭐? 여왕님, 그건…….”
“먹고 싶다고 했잖아. 과일.”
유리가 눈썹을 내린 표정을 처음 봤다. 나를 처음 납치해 왔을 때만 해도 그런 표정 죽어도 못 짓는 생물로 보였는데. 내가 여왕님 행세를 하며 그를 계속 쪼아댄 것이 이런 효과를 불러올 줄이야. 이 녀석 설마…….
아주, 무척이나 조금의 표정 변화였지만 그건 마공작 유리 칸 레일라에게 있어선 안 되는 변화이기도 하다.
나는 과일을 가지러 가려는 유리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리고 혹시나, 정말 혹시나의 경우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설마 M이냐?
“…….”
방금 유리의 얼굴이 아까 부하를 괴롭히며 즐거워하던 폭력적인 모습, 그리고 만사가 다 지루한 것 같은 첫 만남의 모습, 잔혹하게 명령하던 마족의 모습과도 오버랩되었다. 그런 주제에 마조라니?
그는 내가 붙인 호칭을 거부했다.
“아니야! 나는 남의 뒤치닥꺼리나 하는 걸 싫어해!”
꼭 그런 걸 두고 M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아? 자잘한 생활 전반을 돌봐주는 것은 M보다는 여왕 밑의 노예(sub)에 가깝고……. 마조히스트라고 한다면 다른 일보다는 성적인 학대 쪽에 특화되어 있다. 그것도 수치심이나 고통 쪽으로. 나는 발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내 말에 반항하지 마."
유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마족의 생각은 알기 힘들지만, 적어도 그 눈빛에 반항은 깃들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손가락을 깍지낀 채 턱을 괴고 그에게 손짓했다.
"나 또 화났어."
"……."
"벌을 줘야겠는데……."
한순간 유리의 눈빛이 흔들린 것과 같이 보였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자신만만하게 그에게 명령했다.
"꿇어앉아."
그는 뭔가 더 말하고 싶어했지만 허락받지 않은 말은 금지한다는 듯한 눈으로 내가 노려보자 입을 다물고 내 말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 나는 너무나 거만하게 보이는 자세를 변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말했다.
"그대로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와."
"……."
"걷지 못하는 개처럼 말이야."
그는 자신을 개에 비유한 것에 조금 흠칫했지만, 그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기어왔다. 길게 뻗은 다리와 팔이 더욱 돋보였다. 내 밑까지 기어온 그는 가만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등에 발을 얹었다. 발뒷꿈치가 그의 날개뼈 가운데에 툭 닿았다. 과일이 먹고 싶었지만 그는 이 짓을 조금 더 내가 강요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그가 내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정령여왕으로서의 지위를 내세워 우위에 서서 억지로 모든 것을 강요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리를 다시 꼬며 그대로 기지개를 폈다. 발에 약간 체중이 실렸으나 그가 무거워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무겁게 반응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무게로 그를 괴롭히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다른 쪽으로 혹사시키기로 했다.
"발깔개는 움직이지 않는 거야. 알지?"
그는 입을 움직이려다가 내가 말하라는 허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화를 내며 발가락을 그의 머리에 대고 콱 내리밟았다.
"움직이지 말랬잖아!"
그렇게 조금의 미동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둔 후 나는 다리를 쭉 편 채 손톱 손질을 했다. 역시 마계라 그런지 손 끝이 약간 거칠어졌다. 괜히 더 기분이 나빠져서 발로 그의 등을 툭툭 쳤다.
이렇게 아름다운 발깔개는 또 없을 것이다. 한참 후 나는 손톱 손질을 그만두고, 아직까지 움직임 없는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일어서 봐."
"……여왕님."
그의 목소리는 약간 쉬어 있었다. 무언가 기분에 변화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화나거나, 아니면 잔뜩 흥분한 것처럼.
난 아직 화내는 중이다. 허락받지 않았는데 말을 걸어 흐름을 끊은 것에 한 마디 해 주려다가 그가 다른 용무가 있어 보이자 그만뒀다.
"왜?"
"계약자가 부르는데 잠깐만 다녀오면 안 될까."
인간에게 소환되어 하는 계약은 마족에게 몇 배는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약을 마음대로 깰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발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유리는 광속으로 돌아왔다. 자존심 탓에 부디 해 달라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내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과 달리 꽤 강렬한 요구도 군말 없이 들어주고 있었고.
"너 말야……."
나는 괜히 그를 꿇어앉게 한 후 네 발로 선 유리의 등에 올라타서 그를 향해 물었다.
"실은 이렇게 명령받은 거 나한테가 처음이지?"
"말했잖아! 난 윗사람 같은 거 모셔본 적 없다고."
그런데 너 마계의 2인자라고 하지 않았나. 1인자도 있을 거 아냐.
"대마왕님은 대마왕님이야. 난 내 땅만 다스리면 되니까 별로 얘기한 적도 없어."
그러니까 인간으로 치면 공왕 같은 것 정도일까……. 마족은 직접적인 부하가 아닌 이상 서로 크게 관여하진 않는 것 같다. 이렇게 된 것은 나 같은 여왕님을 함부로 데려온 유리 잘못이다.
"나 생각해 봤어, 여왕님."
"응?"
내가 자리에서 내려오자 그는 바로 일어섰다. 길쭉하고 바싹 말라 뼈대가 드러난 가는 몸과는 달리 키는 컸다. 몸이 가늘어 키가 커 보인 것일지도.
"엘릭 칸을 죽이진 않을게. 대신 그가 내 시험에 불합격하면, 전 공작의 눈을 빼앗겠어."
칸의 황금빛 눈 말인가…….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칸의 눈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그 눈을 싫어하던 엘릭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뭐니뭐니해도 이 일은 형제간의 트러블이다. 마족도 아닌 내가 이 이상 관여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그래."
"……."
그는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고 얼굴도 포커페이스에 가까운데다가, 마족이라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힘들다. 유리는 조용히 내 밑에 깔려있다가 날 불렀다.
"여왕님."
왜 불러, 또?
"여왕님 말대로 해 줬잖아. 뭔가 없어?"
보상을 요구하는 그의 말에 나는 뭘 원하냐는 듯 건성으로 대꾸했다.
"뭘 원해? 엘릭을 죽이면 돕지 않겠다고 했지, 죽이지 않으면 따로 더 무언가 해 주겠다는 얘긴 안 했는데."
"뭐야, 해줄 것 같이 굴어놓고!!!"
아니, 내가 언제!!!? 너 진짜 현실왜곡적이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정말로 마족의 머릿속은 이해하기 힘들어!!
========== 작품 후기 ==========
님들 미르좀 찍어줘영...
미르 너무 인기없닼ㅋㅋㅋ 불쌍함;
전 그래서 미르에게 한표.
사실 지금은 세이지가 제일 마음에 들지만.
지금 가장 제 관심에서 멀어진 캐는 유리와 세르입니다.
애정은 돌고 도는 거니 나중에 좋아질거에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