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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202화 (202/226)

<-- 9. 전쟁 -->

***

그 미소녀가 한 말대로 곧 제국의 압승으로 전쟁은 끝났다. 아크샤 왕국은 우리 편으로 돌아섰고 젤타 왕국은 항복문서를 보냈다.

그러나 제국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밝지 않았다. 우리가 이겼고 전쟁이 끝났다는 전언을 받은 후 뮴뮴 성에서 승리의 축배를 들고 파티를 벌였지만 나 역시 마족이 아직 남아있다는 말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황실 또한 즐거운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당연할 것이다. 황실 일원 중 하나가 배신을 했다는데.

3황자인 페트로 하르아이나 크라이덴은 성 밖의 높은 탑에 임시로 유폐되었다고 한다. 나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에 제국의 수도로 돌아가는 내내 엘릭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엘릭과 같은 마족……. 노블레스급이라면 마족 중에서도 꽤 서열이 높은 귀족급이다. 고위 마족이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실제로 고위 마족의 범위는 노블레스보다 더 넓고 추상적이라 노블레스와 고위 마족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일정 클래스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한 마족은 고위 마족이다. 개중에는 변신을 할 수 있는 마족은 다 고위 마족의 범위에 넣기도 한다. 노블레스 역시 고위 마족에 속한다. 그러나 고위 마족이 되었다고 무조건 노블레스인 것은 아니다. 노블레스란 말 그대로 ‘작위’가 있는 귀족 마족. 마족들 중에서도 마왕에게서 정당한 이름을 받은 순혈에 가까운 마족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엘릭의 부친인 칸이라는 마족도 그 급이라고 했다.

중요한 건, 노블레스는 그만큼 마력이 강하고, 또 잔인하다는 것이다. 그런 마족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할 지도 모르는데 잠이 오겠는가?

마계에는 식물도 없다더라. 식물처럼 보이는 것은 있는데, 단순히 식물의 형태를 한 동물일 뿐이다고 한다. 소화 기관과 내부기관이 동물의 것과 동일하다. 잎은 사실 손이나 비늘이고 꽃은 입이다. 으으, 역시 마계는 무서워. 최고로 무서워. 마물도 무섭고 검을 든 엘릭도 지금은 덜하지만 여전히 무섭고, 농약도 무섭지만 지금 가장 무서운 건 그 마족이다.

“괜찮아요, 마족은 시아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할 거에요. 그들이 관심있는 것은 피를 흘리는 생물 뿐이니까.”

유렌은 나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해왔다. 아직 슈와 친해지는 것은 조금 시간을 두고 봐야 알겠지만 나를 봐서인지 대놓고 싸우지는 않았다. 나는 유렌이 달래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마음껏 느끼다가 그가 기분이 좋아진 것 같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렌은, 어째서 슈만 그렇게 싫어해?”

그는 멈칫했다.

“……알고 계셨나요?”

모를 리가 없잖아! 대놓고 오직 슈만, 딱 슈만 그렇게 적대하고 시비를 거는데!

하지만 그 이유로 질책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다만,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었다. 유렌은 뜨거운 양손으로 내 얼굴을 쥐고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은 후 깊은 키스를 했다. 혀를 가만히 받아들이던 내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자 유렌은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다시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불안했어요.”

“……뭐가?”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딱 거기까지 말해놓고 입을 다문 유렌을 재촉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기다렸다.

“엘프한테는 이길 수 없으니까.”

그는 하프엘프다. 나와 가장 깊이 교감하고 있던 존재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 엘프가 나타났다. 엘프와 식물은 거의 일체나 다름없다. 일상적으로 함께 살아간다. 그것 때문에 나를 혹시나 더 빼앗길까 걱정한 것이다.

내가 질투하는 걸 막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에 유렌은 나에게 불안감을 완전히 내보였다. 엘프에게 나를 빼앗기면 그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후후후 웃으며 유렌의 가슴팍에 안겨들었다. 새로운 남자가 생길 때마다 그가 질투하는 것을 나는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행복하니까. 그에게는 미안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미르 사건은 내 의도와 전혀 관계 없이 진행되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가 슈를 보고 질투해 주는 것도 좋고 내게 불필요하게 소유욕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좋았다. 물론 슈도 좋았다.

나는 유렌의 가슴에 폭 안겨 그의 탄탄한 흉근을 손톱 끝으로 살짝 긁어내렸다. 그의 체온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손길 하나하나에 내 몸 밑에서는 익숙한 열기가 타올랐다. 그를 조작하는 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눈을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유렌은 반쯤 녹은 채, 반 정도 당황한 채 나를 바라본다. 저런 표정, 마치 숫총각 같아서 마음에 든다.

“나……. 유렌이랑, 슈랑, 같이 하고 싶어.”

그는, 거절하지 않았다.

***

나는 슈의 옷을 아직도 어떻게 벗기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그가 매일 밤 스스로 옷을 홀랑 벗고 나를 쭉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습이었다. 나는 슈의 허리춤에 얼굴을 묻고 이리저리 매듭을 당겨보았다.

슈는 아찔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저, 거기……, 거기 잡아당기면 풀려요……. ……빨리이.”

이미 그의 (노블중략) 아아앙 하고 기절할 듯한 신음을 내가 다시 내뱉는 것을 보고 슈는 괜히 뺨을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흥분하면 저절로 나오는 말과 진짜 쉬고 싶다는 말 정도는 구분해야지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이제부터? 에? 정말로?”

“보아하니 이 쯤에서 한두 번 놔준 모양인데 그래선 시아를 정말로 기절하기 직전까지 만족시키는 건 무리였겠네요.”

정말로, 아직, 테크닉은 유렌이 더 우위였다. 슈는 너무 자극이 강해서 가버리는 거야 많지만 그래서인지 한번도 유렌처럼 육체의 한계까지 가 본 적은 없었다.

유렌은 조금 풀린 목소리로 친절하게 슈에게 말해 주었다.

“제대로 하는 걸 보여 줄 테니까 어디 놓치지 않고 관찰해 보십시오.”

“우, 우왓…….”

슈는 부끄러운 척은 입으로 혼자 다 하더니 눈을 돌릴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유렌의 슈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쯤은 사라진 모양이지만, 그치만, 이제부터, 나는……?

========== 작품 후기 ==========

노블노블 열매

예고없어서 죄송합니당 ㅠㅠ 이건 이미 한참 전에 써 놓은 건데 비축 확인도 못할 정도로 바빴음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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