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채식 -->
***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침실에서 그가 내게 팔베개를 한 채 속삭였다.
“매일 이 시간이면 숲을 돌아다니며 열매를 채집했는데, 오늘은 플로라님과 함께 뒹굴뒹굴……. 기분 정말 최고에요.”
낮고도 아름답고,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무척이나 부드러운 목소리에 따끈거리는 체온, 말캉한 귀, 보들보들한 살결, 그리고 다정하게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나 역시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었다. 이불 위에서 나는 그의 귀를 다시 만지작거렸다. 발갛게 끝이 물든 귀가 귀여웠다. 슈는 작은 손놀림에도 흥분한 듯 하윽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엘프의 귀는 보통 사람의 두 배 이상 길고 뾰족한데, 인간의 귓바퀴처럼 연골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굉장히 부드러워서 손으로 주물거리면 말랑말랑한게 묘한 감촉이 끝내줬다. 게다가 귀에는 신경이 몰려 있어서 잘만 만져주면 금세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애원해오는 것이 너무 귀여웠다.
슈가 무방비하게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 귀 끝에 손을 가져다 대면 움찔하며 귀가 반쯤 아래로 접힌다. 그리고 손을 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계속 손댔다가 놓았다가를 반복하며 귀가 움찔거리는 걸 보는 것은 질리지가 않았다.
그가 참지 못하고 다시 나를 덮쳐오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슈는 이불로 쓰던 실크로 몸을 대충 감싼 후 문 밖으로 나갔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부부관계 후에 약간 퇴폐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옷차림이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가운 차림, 혹은 끈적거리는 땀에 젖은 피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가슴 아래만 이불로 가리거나 타월로 하반신을 감거나. 그러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은 이상하겠지만, 누군가 방문했을 때 이웃의 앞에 그 차림 그대로 나가도 둘 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당연히 사랑하니까 그 상대와 같이 자는 거고, 낮에도 하고 싶어지면 하는 거고, 하다가 누군가 방문하면 몸만 간단히 가리고 나가보는 거고, 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슈 역시 반문했다. 역시 엘프들이 개방적이라고 느낀 건 내 착각이 아니었다.
“플로라, 옷을 세탁해서 가져왔는데요…….”
“아버지!?”
깜짝 놀란 슈의 외침에 나는 원피스를 대충 걸치고 급히 내려가보았다. 세이지가 내 옷을 들고서는 알몸에 이불만 휘감은 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내려오자 세이지는 싱긋 웃으며 내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 옷 매듭짓는 게 어렵죠? 제가 해 드릴게요. 아아, 옷을 세탁해 왔으니 이걸 입으면 될까요.”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세이지에게서 깔끔히 세탁된 내 옷을 받아들었다. 내 옷은 깨끗하게 바싹 말라 있었다. 그리고 세이지는 나와 방금까지 무슨 짓을 하다 왔는지 분명히 말해 주는 슈의 옷차림을 다시 쳐다보았다.
“나보다 기분 좋았어요?”
“……응?”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해 반문하자 슈는 내 대답을 가로챘다.
“당연히 기분 좋았죠! 플로라 님도 기분 좋다고 했는걸!”
“몇 번 느꼈는지에 대한 대답은 입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란다. 슐츠.”
“어, ……어. 플로라 님, 몸으로 대답해 주세요!”
지금 어떻게 해!!
랄까 너 이해는 한 거야? 아마 못 했겠지. 내가 그렇게 꼭 조이는 게 가버리는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정없이 움직일 수 있었겠지. 가르쳐 줄 걸 그랬나. 세이지는 경험이 있는 데 반해 슈는 경험은커녕 간접경험도 전혀 하지 못했는걸! 섹스라는 단어는 알면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과정은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어디에 넣는지 모르는 경우야 가끔 있지만, 슈의 경우는 아예 넣는다는 과정 자체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그러면 어디 쓸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 버섯을?
세이지는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 빨래하러 나갔다가 좋은 걸 발견했는데, 플로라. 저희 집에 놀러오지 않으실래요?”
좋은 게 뭐지? 나는 당연히 호기심이 생겨 세이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슈는 나를 뒤에서 꼬옥 안고는 놔주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는데, 역시 아버지답게 슈를 한 마디로 꼬드겼다.
“슐츠, 너도 오렴. 같이 쓰게 해 줄 테니까.”
그렇게 세이지를 따라간 곳은 그의 집 욕조였다. 욕조에 가득찬 연한 녹색 물에 나는 의아해했다. 세이지가 별달리 말리지 않았기에 손가락을 살짝 넣어보았다. 잼 같기도 하고 젤리 덩어리 같기도 한 점도 있는 액체가 느껴졌다.
“앗! 이거군요!”
슈는 뭔가 알겠다는 듯 외쳤다.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슈가 설명했다.
“슬라임 목욕이에요.”
알고 보니 그 끈적한 물은 슬라임의 분비액이라고 한다. 슬라임이란 물기 많은 늪이나 얕은 강에 사는 젤리 느낌의 반투명한 동물이다. 슬라임의 약알칼리성 분비액은 피부를 곱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건 슬라임 분비액을 물과 섞은 것이라고 한다. 물에 슬라임을 잠시 담그면 그 물이 끈적한 젤리처럼 변하는데 그걸로 목욕이나 팩을 하면 피부가 매우 보드랍고 고와진다고 해서 엘프들 사이에 슬라임 목욕은 인기가 많다더라. 가끔 강에서 슬라임을 발견할 때마다 가지고 와서 물을 우려낸 후 반드시 다시 강변에 풀어준다. 여러 번 쓸 생각으로 계속 욕조에 놔두고 우리면 두 번째부터는 슬라임이 흐물흐물해지고 분비액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라임도 공격할때는 강한 염기액을 내뱉는다고 하는데, 녹아버리는 것까지는 아니라도 인간의 피부에 닿으면 따갑다. 슬라임을 위협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엘프들만 즐길 수 있는 미용법이다.
“같이 목욕할까 하고 불렀어요. 적당히 시원해서 기분 좋아요.”
세이지가 그렇게 말하며 상의를 탈의했다. 그나저나 셋이 같이? 욕조가 넓은 편이긴 했지만 나는 그렇다쳐도 이렇게 키가 큰 둘이 들어가면 꽉 찰텐데?
세이지는 머리를 묶어올린 후 옷을 전부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 그것만으로도 끈적한 슬라임 액이 아슬아슬하게 욕조 끝에 차올랐다. 그는 내게 손짓했지만, 내가 들어가면 넘칠 텐데.
망설이고 있던 내 원피스를 홀랑 벗긴 슈가 어느새 자신의 옷도 벗어버린 후 나를 안아들고 욕조에 들어갔다. 물이 반이나 넘쳐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은 물로는 바닥을 닦아도 깨끗해지니까 걱정 마세요. 그보다 기분 좋지 않아요?”
“으응. 말랑말랑해.”
나는 끈끈한 액체가 손 위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한동안 셋이 유유자적하게 욕조 안에서 즐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엉덩이 밑에 깔린 슈의 버섯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슈는 내 엉덩이를 꼭 잡아당겨 내 뺨에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플로라니임~. 기분 좋아요? 그쵸오?”
애교스럽게 말을 기일게 늘이며 내게 조금씩 달라붙어왔다. 가득 차 있는 끈끈한 액체에다가 좁은 욕조 안에서 내 몸과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흥분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내가 당황해서 세이지를 바라보니, 세이지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커져 있었다.
“자, 잠깐……. 둘다 정말!”
부자지간인데 거리낌 없이 나를 사이에 두고 그런……! 하지만 그렇고 그런 대화까지 하는 마당에 이런 짓이라고 못할 리는 없다.
세이지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쓴 맛이니까 핥지는 못하지만……. 다른 좋은 점이 있으니 괜찮죠? 슐츠에게 (삐---)를 가르쳐주고 싶은데 어때요?”
“아앗, 아버지 치사해요! 저야말로……!”
***
한낮인데도 5미터는 넘는 높은 활엽수가 얼마 거리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통칭 ‘어둠의 숲’은 무척이나 좁은 가시거리 덕분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각은 지금 무의미한 감각이다. 엘릭의 육체는 마기를 다루는 법을 저절로 터득해 갔다. 칸이 심어둔 왼쪽 눈동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칸이 마지막으로 그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그는 서슴없이 손을 휘저었다. 검은 쓸모가 없다. 새카만 페인트 같은 마기의 덩어리가 그의 몸에서 형상화되어 성인 셋이 겨우 둘러쌀 수 있는 굵기의 단단한 나무를 매끈하게 횡으로 베어버렸다. 잘린 나무는 한동안 그대로 붙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체가 하나.
나무 뒤에 있던 털투성이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맹수의 시체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 더, 더 필요하다.
이렇게까지 오랜 사냥을 하고서도 지치지 않은 적은 처음이며, 이렇게까지 많은 동물이나 몬스터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처음이다. 도대체 이 갈증은 언제서야 채워지는 걸까. 엘릭은 발로 나무를 걷어차 넘어뜨리며 무의미한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답답했다.
몇 시간이 지났던가. 어쩌면 하루가 지났을지도.
세이시아와 약속한 시간은 언제였지?
그는 가만히 검을 꺼내 날을 훑어보았다. 엘프의 집을 나오기 전에 발라두었던 기름이 그대로 날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손질해 둔 뒤로 한 번도 쓰지 않은 검. 그는 숲에서 오로지 육체 하나만으로 사냥을 해왔던 것이다. 지금껏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마기 그 자체를 무기로 사용하는 행위가.
그는 다시 검을 집어넣고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환영이 보이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을 직접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손처럼 다루던 마기의 덩어리였다. 오는 길에 강이 있었던가. 그는 오히려 불쾌할 정도로 개운한 기분에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지긋지긋한 푸른 이파리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면 조금 진정할 수 있을까?
아직 조금 더 인간이고 싶었다.
***
떠나기 전날, 나는 미르가 준 주머니 안쪽에서 내 가죽 파우치를 꺼냈다. 그리고 푸른 색과 연두색의 보석이 나란히 박힌 얇은 반지를 꺼냈다. 반지 안쪽에 쓰인 이상한 글씨는 분명 엘프의 글씨와는 약간 달랐지만 비슷해 보였다.
유렌이라면 내가 이걸 어느 엘프에게 줘야 하는지 알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엘프 마을에서 머무른 지 벌써 3일째인데 누구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인을 찾아달라고 하이엘프의 로드인 세이지에게 부탁하려는 생각이었다. 반지를 갖고 세이지에게 갔더니 세이지는 정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내 손에 들린 반지를 보더니, 눈을 커다랗게 떴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놀란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내 반지를 다시 한번 보고 심호흡을 했다.
“그, 그 반지…….”
세이지는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그다지 숨길 것도 없었고.
“내 연인 중 하나가 엘프와 인간 혼혈인데, 그 모친인 엘프 쪽의 유품이랬어. 나는 잠시 맡고 있던 것 뿐이야. 혹시 세이지가 주인을 찾아 줄 수 없을까 해서…….”
세이지는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탄식을 내뱉었다. 엘프는 종종 너무 작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알아듣기 힘들다.
“유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가 급격히 우울해진 것 같아서 나는 세이지에게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반지를 쥐어주었다. 그의 체온이 당혹감과 놀람으로 평소보다 낮아져 있었다. 그래 봤자 따뜻하지만 말이다.
“아는 엘프의 반지야?”
“……네. 에라렌 카르테인.”
세이지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그 반지의 주인이자 유렌의 어머니는 에라렌 카르테인. 바로 슈가 찾고 있던 그 엘프였던 것이다. 그녀는 슈의 고모이기도 하고 세이지의 나이 차 많이 나는 여동생이기도 했다.
수장으로서의 자질이 뛰어나서 다음 대 로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여러 곳에서 받고 있었고, 그녀 역시 로드가 될 생각이 있었는지 그만 로드 자리에서 물러나려는 그녀의 모친이자 세이지의 모친에게서 반지를 물려받아 마지막으로 숲의 밖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엘프에게 인간의 세상은 견문을 넓히는 데 무척 도움이 되기에 로드가 되기 전의 필수 경험 코스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한 번도 숲 밖을 나가 본 적 없는 에라렌에게는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다. 3년 안에는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20년이 넘도록 에라렌은 돌아오지 않았다.
리스피아같은 괴짜 엘프가 아니고서야 인간 세계에서의 경험은 5년이면 지긋지긋할 정도로 충분하다. 5년이 넘고 10년이 되면서 로드 자리를 계속 비워 둘 수 없었던 에라렌의 오빠인 세이지가 반지 없이 로드 자리에 올랐다.
몇 번이나 수색대를 보냈으나 성과 없이 포기. 에라렌의 흔적은 끊어진 지 오래였다.
“……에라렌……. 기일은 언제인가요?”
여동생의 죽음을 그는 생각보다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지 십수 년이 넘었다. 당연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기분은 그렇지 않다.
인간보다 죽음에 초연한 엘프지만, 아끼던 동생의 죽음 역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정확히 들은 적 없다. 연도만 알 뿐이다.
그러나 세이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듯 했다. 날짜까지는 알지 못해도 좋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낫다는 그의 대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라렌의 아들은 이름이 뭔가요?”
“유렌……. 유렌 카르테인.”
위스피닌이라는 인간의 성은 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생각난 그의 모친의 성을 붙였다. 세이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만나 보았으면 좋겠네요. 에라렌의 복수……, 를 하겠다고 그 아이는 말했다고 했죠. 엘프는 복수를 입에 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은 인간의 피가 섞인 그라면……. 저는 말릴 입장이 아니군요.”
나는 세이지의 그 너무나 맑고 투명한 눈빛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가 하는 말에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슈에게는 어떻게……?”
에라렌은 살아 있을 거라고,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까지 말했는데.
“그 아이는 성인입니다. 어떤 얘기를 듣고 어떤 판단을 하든, 무슨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제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하자면, 플로라께서 그 아이에게 직접 진실을 알려주고 달래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러면 그 반지는 이제 로드인 세이지의 것이구나. 대대로 엘프들에게 물려내려오는 반지라고 했던가. 아마 중요한 것이겠지. 하지만 세이지는 역사 있는 반지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당장의 쓸모는 없다고 말하며 다시 나에게 반지를 건네주었다.
“이건, 슐츠에게 전해주세요. 다음 대의 수장은 슐츠입니다. 그 아이 이외에는 없습니다. 본인이 거절하더라도 무조건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말해 주세요. 다음의 자질을 가진 엘프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엘프의 차기 로드는 너라고.”
왠지 슈의 반응이 눈에 보이는 듯 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지는 마지막 배웅 정도는 웃는 얼굴로 해 주고 싶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내 뺨에 키스했다.
“언제 또 와 주실 거에요?”
“글쎄, 30년 후쯤?”
그 때쯤이면 유희가 끝나고, 다시 엘프를 보고 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유렌도 데려와야지.
“기다릴게요.”
그는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이게 엘프들로 따지면 꽤 진한 행동이라는 것을 슈의 귀를 만지작거려 보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게 바로 장거리 연애일까요? 멀리 있어도 쭉 좋아할게요. 편지 써도 되죠?”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절하면서도 유혹적인 향이다. 어딜 봐서 저게 아들까지 있는 중년이란 말인가! 20대도 되어 보이지 않는 저 얼굴이!!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끼며 세이지의 배웅을 뒤로하고 슈의 집으로 향했다. 비슷비슷한 엘프 집에 있는 유일한 표식이자 명패 같은 각기 다른 집 앞 식물(엘프어로 뭔가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이 없어졌기 때문에 살짝 헤맬 뻔 했다. 슈의 집은 정말로 텅 비어 있었다. 나를 따라 아예 이사라도 갈 셈인 듯 했다.
그리고 슈는 연습용으로 짠 천조각을 이리저리 이어붙여 튼튼하게 만든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는 갖고 있던 물건을 죄다 금속과 보석으로 바꿔온 듯 했다.
“아는 엘프들한테 가구랑 씨앗, 옷을 주고 교환해 왔어요. 어차피 몇 년이나 집을 비우면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요. 다시 만들면 되고. 대신 보석이나 금속은 전에 인간계의 마케로 나갔을 때도 도움이 되었길래 최대한 많이 구해왔는데, 어때요?”
프리지어는? 하얀 색 프리지어 예뻤는데…….
“그건 아버지에게 맡겼는데, 올 때 못 보셨나요? 아버지라면 제가 돌아올 때까지 잘 보살펴 줄 거에요. 나중에 돌아왔을 때 다시 집 앞에 옮겨심으면 돼요. 그리고…….”
그는 마른 잎에 감싸인 자잘한 씨앗을 보여주었다.
“몇몇 아이들은 데려가니까 괜찮아요.”
이미 엘릭은 준비할 것도 없이 출발하려고 했고 약속했던 엘프 지원군도 마을 밖에서 대기중이었다. 이 정도 숫자라면 어떻게든 들키지 않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게 목표였다.
========== 작품 후기 ==========
한글 2007 이 개객기
왜 them를 them라고 치게 하지 못하니!!!! 왜 자꾸 영어로 바꿔버리니! 니가 뭔데!!!!!
나는 them마스터라는 단어를 써야 한단 말이야 이놈아!!!!
니가 왜 판타지의 정석을 무시하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