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81화 (181/226)

<-- 7. 사신 파티 결성 -->

쥬얼이 이종족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엘릭과 같은 종족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은 없었던 나는 그 한마디로 어느 정도는 안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황은 내가 안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가 위험했다.

엘릭의 눈은 아까부터 점점 더 색이 옅어져갔다. 두려움이 일지는 않는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현상은 자연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엘릭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듯 했다. 내 바로 옆의 벽을 짚고 허리를 숙인 채 황금빛 눈동자를 꾹 움켜쥐듯 눌렀다.

“……너.”

“으, 응?”

“‘저것’, 더 이상 내 눈에 띄지 않게 해.”

조금 침착해진 목소리로 엘릭은 다시 말했다. 이번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의 엘릭 그대로였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자극하지 마.”

그런 식으로라니 뭘?

“위험하니까.”

마지막까지 그는 안대에 가려진 눈동자를 힘껏 눌러 쥐고 있었다.

***

“저를 그 사람에게 줄 건 아니죠?”

엘릭이 가고 나서 한참 후 쥬얼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쥬얼의 어깨를 쥐고 내게로 잡아당겼다. 쥬얼은 엘릭의 그 눈빛에 완전히 압도되어 두려움을 느낀 것 같다. 아직 마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할 어린 아이인데……. 그치만 나는 더 무섭다.

“주려고 했는데…….”

“했는데?”

만약 준다고 하면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엘릭 본인도 싫다고 말하는 선물을 어떻게 주겠는가.

“생각보다, ……많이 싫어하는 것 같지?”

쥬얼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 어쩔 수 없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할 일은 나중에 정해줄 테니 일단은 가서 쉬렴.”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나와 달리 쥬얼은 천국인 듯 했다.

“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말을 듣고도 선물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하인으로 막 부릴 수도 없다. 누가 뭐래도 일만 골드 짜리다. 일반 노예와는 다른 사치품인 것이다. 게다가 마족인 이상은 그만한 능력도 있겠지. 시종으로 키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후견인이 되어 여러 가지를 가르치며 투자하는 편이 훨씬 낫다. 그런데 대체 엘릭의 그 이상한 모습은 뭐였을까?

쥬얼은 내 밑에서 계속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금방이라도 기운이 넘쳐서 날아갈 것처럼 보인다. 나는 반대로 점점 한숨과 함께 가라앉았다. 엘릭이 좀 걱정되는데……. 역시 가 볼까?

나는 엘릭의 방이 어딘지 시녀들에게 물어 방 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리려고 했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나는 심장이 바닥까지 떨어질 뻔 했다. 엘릭은 소스라치게 놀란 나를 보고는 고요한 눈빛으로 응답했다.

“……들어와.”

생각보다 순순히 들여보내주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조마조마한 가슴으로 엘릭의 본거지에 들어섰다. 방은 깔끔했다. 핏자국 같은 것도 없었다. 어차피 빌린 방이다. 엘릭의 성격이 방에 고스란히 드러날 거라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대신 책상이나 침대 위에 이것저것 뭔가를 사용한 흔적이 정리되지 않고 너절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아직 어린 십대 소년의 방 같아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노트와 펜, 잉크 뚜껑. 깃털, 검집을 감는 린넨 천 조각……. 그러다가 나는 엘릭이 정말로 겨우 십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나와 같은 열 아홉 살이다.

엘릭은 그다지 청소를 잘 하는 성격 같지도 않았지만 밖에서의 그는 굉장히 빈틈없고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었기에 이것도 저것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게 용건을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 역시 용건에 대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방에는 시종이 한 명도 없었다. 아마 내보낸 거겠지. 게다가 원래 시종을 쓰는 타입도 아닐 것이다. 엘릭은 아무리 자신의 절대적인 시종이라고 해도 자신의 눈을 보여주지는 않을 성격이다. 그는 마족인걸. 인간을 믿는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엘릭이 나를 인간보다야 약간 더 신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1초정도 했다. 곧 지워버렸지만. 그러나 엘릭은 나를 정말로 인간 취급하는 것은 아닌 듯 했다.

“나는.”

난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바짝 세웠다. 엘릭은 내 쪽에 눈길을 주지 않고 마치 이 방에 혼자만 존재하는 듯 천천히, 그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스스럼없이 그의 안대를 풀어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머지 육체까지 마기(魔氣)에 물들어 가고 있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조금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금의 엘릭은 정말로 ‘마족’ 그 자체였으니까. 비통제성, 공격성, 잔학성, 오만함,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 내가 마물에게서 조금쯤 느낀 것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지성 정도일까. 이 상황에 지성 따위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그 자가 심어 놓은 눈동자부터 시작해서, 내 몸의 끄트머리까지 전부.”

그 다음 엘릭은 고개를 들어 내 눈동자를 응시했다. 꽃잎이 살짝 흔들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고 하던 나는 결국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밖에 느끼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전부 마족이 되겠지. ……인간이 아닌 기분은 어때?”

그가 그런 질문을 해도, 나는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었으니 이런 대답밖에 해줄 수는 없었다.

“꽤 괜찮아.”

엘릭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그가 한순간 웃은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런 것 같네.”

그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대를 꽉 맸다. 그 후에 나를 쳐다보았다.

“그 녀석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기 전까지는 내 눈에 띄지 않게 해. 아니면……, 사냥하고 싶은 것을 못 참을 테니까.”

“사냥?”

“그래, 사냥. 잡아먹는 거지. 동족을. 하물며 그런 어리고 약한 마족 혼혈이라면…….”

그의 까만 안대 아래에 어떤 표정이 숨어있는지, 형태만이라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건 좋은 현상일까 나쁜 현상일까?

그 사건 후부터 나는 조금쯤은 엘릭을 덜 꺼리게 되었다. 선물을 주려고 한 것은 완벽히 무산되어 버렸지만 그만큼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숫자로 표현하자면 내가 지금까지 느끼던 엘릭에게의 두려움이 4에서 3정도로 줄어든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엘릭과 기사들을 포함해 파벌이 다른 줄루인 남작까지, 이번 외교사절단에 동행했던 몇몇 귀족들을 불러 무사히 루페닌 왕국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의 축하 준비를 하려고 했다. 잘 되면 엘릭과 조금 더 친해질 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2가 될지도 모르지. 2라면 쌀나방 정도의 공포감과 비슷했다. 자, 그럼 어디로 가지? 술집? 아니면 식당을 예약하나? 제국이었다면 저택의 홀에서 디너 초대를 하거나 유명한 식당을 예약할 수 있었을 텐데 외국에서 축하 파티를 하려면 어디가 좋을지 잘 몰랐던 나는 루페닌 왕국에 대해 잘 아는 라키아네 백작에게 의논을 했다.

“그거라면 제가 전에 가자고 했던 레이디 바로 해요!”

“레이디 바?”

Lady-bar라니, 거긴 여자들만 마실 수 있는 술집이라는 의미 아니었던가? 남자도 갈 수 있어? 그런 질문을 하자 라키아네 백작은 후훗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본래 귀족 여성들을 접대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가게지만 분위기도 좋고 수입도 괜찮고, 인기도 무척 많아져서 남성 전용 가게도 지금은 꽤 있어요. 우리들은 남녀 공용으로 가면 되잖아요? 외국에서 일부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루페닌 왕국에서 ‘접대’라면 대부분 그쪽이라고 생각한다구요.”

어……, 그렇게 좋다면 거기로 해 볼까? 내가 귀를 팔락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라키아네 백작은 바로 그런 걸 기다렸다는 듯 곧장 말을 꺼냈다.

“좋아요! 그럼 제가 가장 유명한 곳으로 알아볼게요. 날짜는 언제? 내일 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며칠 내로 정하죠. 아, 술은 제가 산다고 해요.”

========== 작품 후기 ==========

그거 아세요?

지금 분량으로 치면 꽃의 여왕 4권의 첫 번째 챕터쯤입니다.

하지만 완결 분량에 따라 3권 후반에 이 내용이 들어갈 수도...

네이버에 제 아이디 blackbiii를 친다고 제 블로그가 나오진 않구요...

검색을 하려면 블로그 이름을 쳐야 해요. 블로그 이름은 같은게 워낙 많아서 생략하고;

1. 제 뜰에 가서 뜰 메인에 적어놓은 [블로그 주소]를 클릭한다.(링크 될지 안될지는 모르겠;;)

2. 공지글에 가셔서 맨 위에 적어놓은 블로그 주소를 드래그해 주소창에 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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