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사신 파티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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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시나를 잘근잘근 씹다가 잠들어 버렸다. 이튿날 아침 일어났을 때 어깨가 새빨갛게 물든 루시나가 얼굴을 붉히며 내 잠옷차림에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어리니까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이불을 걷었다. 침대 기둥에 찰싹 달라붙어서 흑발의 소년이 색색 잠들어 있었다.
"어젯 밤에 방에서 자라고 했는데 아직도 안 갔어?"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그를 침대에 올려놓기 위해 흔들어 깨웠다. 노예에게 내가 너무 무르게 대하는 건지……. 분명 하인 대하듯이 하는데 어째서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걸까. 몇 번씩이나 방에 가서 자라고 말했었는데. 역시 몸으로 굴복시켜야 충성스러워질까,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다.
"으응……."
소년은 내 손이 닿자마자 눈을 깜박이며 일어났다.
"잠들어 버렸……, 앗, 죄송해요!"
그가 필요 이상으로 깜짝 놀라며 사과했기에 나는 잔소리를 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괜찮으니까 방에 돌아가서 세수하고 멜한테 아침식사 달라고 하렴. 미용사를 불러서 머리 끝을 조금 다듬는 게 좋겠어. 멜에게 시키면 해 줄거야.”
쥬얼은 조심스럽게 침대 뒤로 물러서서 아직도 자고 있는 루시나에게 다가갔다.
“루시나는 깨울 필요 없어. 내 베개니깐.”
“저기, 저랑 이 녀석의 대우가 다른 이유는 뭔가요?”
쥬얼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내게 물었다. 나는 루시나를 저택의 하인으로 쓰겠다고 그에게 밝혔다. 당분간은 밤의 장난감으로도 쓰겠다는 얘기를 은유적으로 했었다. 착하게 굴면(마음에 들면) 그 후에도 침실로 불러주겠다고도 말했다. 뻔한 노예의 쓰임새였다.
하지만 쥬얼에게는 아무런 언급도 한 적 없다. 루시나가 실수한 적이 있어서 지적받는다면 쥬얼을 지적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명령해 두었으니까. 아무리 건방지게 굴어도 그 점에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쥬얼은 루시나와 멜, 심지어 시녀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네리아보다도 높게 취급되고 있다. 그 이하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너는 아주 중요한 사람에게 선물될 거니까.”
“네!?”
쥬얼은 당황해서 소리쳤다. 어째서,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이다. 그리고 곧 내 발목에 매달렸다.
“그, 그러지 말아요! 저 다른 사람에게 가고 싶진 않아요. 저 일도 잘 해요! 말도 잘 들을게요,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나는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이상한 사람에게 보내는 거 아니야. 아마 그 사람은 나보다는 너한테 잘 해 줄거야. ……너랑 같은 사람이니까.”
“같은……, 사람?”
나는 엘릭을 천천히 떠올려보며 말했다. 그는 언제나 이질적으로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같은 반마족을 만나면 아마 기뻐할지도 몰라. 선물을 준 나에게도 좀 더 잘해주겠지? 적어도 죽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 그렇지. 지금 만나러 가 보자. 옷 갈아입고 오렴.”
나는 그 말 한 마디만 남긴 채 욕실로 들어갔다.
멜에게 억지로 치장당해 말끔한 모습으로 나온 쥬얼은 그래도 안 가겠다고 버텼다.
“말 잘 듣는다고 말했잖아?”
“……저를 버리지 않는다면요.”
“안 버릴 테니까 어서 그 사람한테 가자.”
“그게 버리러 가는 거잖아요! 싫어요!”
“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니까.”
어째서 이렇게까지 싫다고 버티는 거지? 나는 엘릭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나라도 싫겠다. 하지만 나는 식물, 그는 마족이다. 동족이라면 입장이 다를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노예 입장에서 떼를 쓰는 쥬얼이 당연히 가당치도 않겠지만 내가 쥬얼에게 원한 것은 엘릭과 비슷할 정도의 자존감과 마족으로서의 긍지였다. 그걸 위해서는 나부터가 그를 하인 이상으로 취급해야 한다.
“왜 그렇게 싫은 건데?”
하아, 하고 한숨을 쉬는 내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쥬얼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내 다리를 꼬옥 껴안고 있었다. 정말 비장하게.
“나……, 나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이렇게라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어제는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뭐? 나!?”
그는 얼굴을 붉히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너무 귀엽게 보이잖아!!! 엘릭하고는 완전히 달라! 당연하지! 엘릭보다 너무 너무 귀여운걸!!!
정말 골치 아픈 상황이네. 나는 일단 한 번 엘릭과 만나보기라도 하자며 그를 달래서 복도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하필이면 방에서 나오는 그 순간을 엘릭에게 캡쳐당했다.
“…….”
나는 천천히 엘릭을 돌아보았다. 엘릭은 팔짱을 낀 채 내 방 옆의 벽에 기대서서 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거야! 나오자마자 엘릭을 만나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그는 내가 쥬얼과 함께 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 좋은 아침.”
“너야말로…….”
나는 엘릭이 내 떨떠름한 인사를 낮게 되받아주자 웬일이냐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너야말로 그런 꼬맹이랑 어젯 밤은 즐겁게 잘 놀았나 보지?”
“!”
내용은 평이했지만 말투는 금방이라도 씹어죽일 듯한 느낌이었다. 어째서인지 오늘의 엘릭은 다른 때보다 더 공격적이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엘릭의 시선을 피하려고 했다. 아, 그때 마침 나는 내가 왜 엘릭을 찾으려 했던 것인지 떠올렸다. 그치만 지금 줘도 괜찮을까? 아니야, 차라리 기분나쁠 때 선물을 줘버리면 엘릭의 기분이 조금쯤은 풀릴 수도 있어!
“있지, 엘, 아니, 레이몬드 자작님. 이 애 말인데…….”
엘릭은 팔짱을 풀고 내가 있는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엘릭이 가까이 올수록 그의 덩치에 위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해야 세르와 비슷한 수준인데 말이다. 거대한 말은 길들여서 올라탔을 때에나 정복감이 들지만 내가 말 밑에 깔리고 보면 말이 맹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녀석이 뭐?”
“아니, 그게, 엘릭과 같은…….”
종족이잖아? 기쁘지 않아? 나는 풀이 한 포기도 없는 곳에서 겨우 한 송이의 꽃을 만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그러나 그 생각은 나 혼자만의 엄청난 오산이었나 보다. 엘릭은 조금도 기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영역에 다른 녀석이 침입한 것처럼 무척이나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와 같은? 흥, 웃기는군. 이런 약해 빠진 녀석이…….”
그렇게 말하는 엘릭의 목소리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소름끼칠 정도의 높낮이가 없는 어조. 마치 깔보는 듯한, 아니, 자신이 이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이 거만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평소의 엘릭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유렌과 싸웠을 때, 내게 화낼 때, 내 정체를 밝히라며 협박할 때도 그는 분명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뿐이었다. 지금 같은 목소리는…….
“동족이라고?”
‘동족’. 그는 분명히 그렇게 표현했다. 자기 자신의 입으로.
========== 작품 후기 ==========
으으 엘릭 빡침.
요새 회귀물이 대 유행인듯 한데, 저는 회귀물의 초반의 어두운 분위기를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접는 경우가 많아서ㅠ 작품소개는 재밌어보이길래 읽어보고는 싶은데 꼭 초반에서 걸린다니까요...ㄷ
초반 생략된 회귀물 혹시 추천해주실 분?
p.s. 저는 회귀물 쓸 예정이 없으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욬!! 제 필체나 성격상 제가 쓸 수 있는건 오리지날 판타지나 퓨전물 정도 뿐이라는 건 저도 압니다 네. 무거운 분위기는 절대 못 써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