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사신 파티 결성 -->
무척이나 좋은 향이 나는 방의 한가운데에는 복숭아빛 쉬폰 장식이 달린 커다란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끝에는 하얀 양털 이불에 감싸인 가느다란 여자의 발이 나와 있었다.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있는 여자를 보고 루시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릴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작은 코와 입술, 분가루보다 더 뽀얀 뺨, 장미 향수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길다란 분홍빛 머리카락에 은구슬 같은 눈동자. 그로서는 처음으로 보는 굉장한 미인이었다.
“아…….”
그 미소녀가 움직였을 때 루시나는 방금까지 느끼던 두려움도 잊고 감탄을 내뱉었다. 마치 최고의 예술가가 만들어 장식해 놓은 것 같은 투명한 크리스탈 인형이 장미꽃으로부터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움직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기에 그 존재가 한 폭의 그림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물건이 규칙을 깨고 방금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그 누구도 다가가는 것이 금지된 장소에 자신이 몰래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그는 이유 모를 죄의식까지 느꼈다. 겨우 한숨을 들이킬 수 있는 정도의 시간, 단지 그 짧은 순간에 모든 마음을 전부 사로잡혔다.
여자의 새하얀 손이 뻗어나와 진주빛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내렸다. 금방이라도 물이 흘러내려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촉촉한 은홍빛 눈동자가 방금 방에 들어온 그들을 향했다.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열리고 부드러운 우유 크림 같은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루시나는 한껏 넋을 놓고 있었다.
“데려왔구나.”
그녀가 살풋 웃음지었을 때 루시나는 이유 없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의 웃는 얼굴이 이렇게나 예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눈부신 종아리를 가지런히 뻗어 침대 밑으로 걸친 그녀는 나른한 표정으로 앉아 이불을 끌어내렸다. 얇은 빨강 레이스 속옷의 끈이 살짝 보였다. 얼굴이 점점 새빨개지는 것을 들킬 것 같았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더더욱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이리 오렴.”
시아는 루시나에게 가볍게 손짓했다. 주춤주춤하며 시아의 발 앞까지 온 루시나를 그녀는 덥석 잡아당겨 뺨을 꼬집었다.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루시나의 표정이 정말 귀여워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너무 귀여워! 정말로 아젤 님이랑 꼭 닮았네. 너는 오늘 나랑 같이 자는 거야.”
“에…….”
루시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세요?”
“누구냐니, 너를 산 주인님이지.”
당연하다는 듯한 시아의 대답에도 그는 아직도 이해를 못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자인데……? 공작님이라고 들었는데…….”
“왜 날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네리아나 멜이 한 마디도 설명해주지 않았던가? 나는 하르아이나 제국의 여공작이야. 공작님이나 주인님이라고 불러. 아, 넌 귀여우니까 ‘주인님’이 낫겠다! 좋아. 주인님이라고 불러. 네 이름은?”
“루시나에요, 주인님.”
루시나는 방금까지 겁먹었던 것을 깔끔히 잊고 지조 없이 시아 앞에서 다소곳하게 굴었다. 시아는 싱긋 웃으며 루시나의 보들보들한 뺨을 문질렀다. 루시나가 살포시 얼굴을 붉히자 괴롭힘은 더 심해졌다.
“루시나는 이번 여행이 끝날 때까지 밤마다 내 전용 베개! 그리고 제국에 돌아가면 시종 일부터 배우기 시작할 거야. 물론 착하게 굴면 그 동안도 예뻐해 줄게. 알겠지?”
시아는 루시나의 뺨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속삭였다. 그리고 루시나의 목덜미를 껴안은 채 흑발의 소년을 쳐다보았다. 찰떡같은 둥근 가슴이 루시나의 밋밋한 등에 닿자 루시나가 으응, 하고 작게 신음을 흘렸다.
흑발 소년은 말 그대로 새카만 머리카락에 검은 색이라고 표현하긴 뭣하지만 어두운 피부색을 갖고 있었다. 표면은 매끄럽지만 핏기는 없어 보인다. 창백하면서도 검은 피부색. 어떤 감촉일지 만져보고 싶다고 느꼈지만 선물할 용도니까 함부로 망가뜨리면 안 된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미 확실히 모양이 잡힌 코도, 초점이 없는 듯 타인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마력의 자줏빛 눈동자도, 굉장한 미색이지만 한참 어려서 그런지 미완성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어깨를 살짝 덮는 윤기나는 검정 머리카락은 너무 새까매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숙련된 미용사가 아니라 투박한 가위질로 대충 자른 듯 끝이 들쑥날쑥했다. 게다가 그 눈은 결코 순종하지 않는 짐승의 것과 같았다. 루시나처럼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성노로 판매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선택되어 우리에서 잘 먹여지고 잘 씻겨지며 일률적으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틀림없다.
“너는 이름이 뭐니?”
“…….”
그 흑발 소년이 아무리 멜이나 루시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다고 해도 설마 절대 권력을 자신들에게 행사할 수 있는 주인님에게까지 묵비권을 행사할 줄은 몰랐기에 루시나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곧장 시아의 눈치를 살폈다. 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 못해?”
“…….”
시아는 말없이 루시나를 끌어안고 흑발 소년의 말을 기다렸다. 괜한 루시나만 몇 번 뒹굴며 기분 좋은 혹사를 당한 후에서야 소년은 조금씩 말을 꺼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살짝 시아의 얼굴을 보고는, 곧장 다시 얼굴을 푹 숙였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게 아니고, ……이름이 없어요.”
“없어?”
시아가 차분히 되묻자 소년은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네. ……저는 아버지도 누구인지 모르고, 어머니와도 전혀 닮지 않았고, 돌연변이라, ……이름도……, 없었고…….”
소년은 왠지 안심이 되었다.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인간이라는 생물을 겪어 보았지 않았는가. 그는 그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인간으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소년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는 시아를 향해 같은 이종족으로서의 동질감을 느꼈다.
그 소년이 갑자기 고개를 더더욱 숙이고 울기 시작하자 시아는 놀라서 루시나를 침대에 앉혀두고 그 소년에게 다가갔다. 아이가 울면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라서 곤란한데. 남자가 울면 달래는 법이야 알지만 어린아이는 영 다뤄본 일이 없어 곤란했다. 시아는 그 소년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었다.
“이름이 없어서 억울하다면 네가 스스로 이름을 지으면 되잖아?”
소년은 꾹 울음을 참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어차피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드는 거야. 자기 거지만 마음대로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유일한 게 이름인데, 자기 마음에 드는 이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니.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치만…….”
그는 멍하니 중얼거리며 시아를 쳐다보았다. 시아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네가 인간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정말로?”
“응. 당연하지! 왜냐하면 나도 인간이 아니니까.”
장난 같은 시아의 말에 소년은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훌쩍이며 시아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리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질감 따위가 아니다. 소년의 절반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다만 이것은.
“……그럼……, 이름 지어 주세요.”
“어?”
“그래도 혼자 짓기는 싫으니까 주인님께서 지어 주셨으면 해요.”
“내가? 후회 안 해? 나 네이밍 센스 없어.”
“절대로 후회 안 할게요.”
시아는 비장한 소년의 눈동자를 보더니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네 눈동자는 정말 예쁘구나. 투명하고 곧은 자수정의 결정 같아……."
소년은 약간 놀람의 표시로 눈을 깜박였다. 그녀는 동그란 그의 눈동자를 향해 미소지었다.
"네 이름은 쥬얼 아메티스트."
멍한 그 소년의 표정이 귀여운 것 같다고 시아는 생각했다.
========== 작품 후기 ==========
작품설정에 쥬얼 그림 올렸긔.
그리고 제 블로그 서로이웃신청 말인데요, ‘조아라에서 왔다고’ 적어주시지 않으면 거절할수밖에 없어요 ㅠㅠ 전에 안따지고 막 받았다가 별 이상한 음란광고 이웃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조아라 꽃의여왕 보고 왔다고 확실히 밝혀주시면 100% 서이추 받아드리니 기본멘트는 적지 않도록 양해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거절당하신 분은 조아라 적어서 재신청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