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72화 (172/226)

<-- 7. 사신 파티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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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구불거리는지 알 수 없는 통로를 지나 그 마법사는 우리를 윗층의 한 방으로 안내했다. 미미하지만 약품 특유의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1층 로비같은 접대용 공간이 아니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왔나보다. 마탑은 높은 사람을 모시는 공간일수록 더 윗층에 있으며, 중요한 실험실 역시 윗층에 있다고 하니 아마 국가적 방문으로서 가능한한 이것이 극진한 대접일 터였다.

“신청서 수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잠시만’은 말 그대로의 ‘잠시만’이었다. 옆방에서 무언가 바스락대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그 마법사는 푸른 벨벳에 감싸여진 영수증서를 마란 후작에게 내밀며 말했다. 내가 리더다보니 마란 후작이 심부름꾼으로 오인받은 듯하다. 시종이나 시녀를 데리고 오지 않은 내 탓이지만 마란 후작은 별 말 없이 기꺼이 자잘한 뒤치다꺼리를 받아들였다. 재차 생각하는 거지만 여제의 사람 고르는 능력은 정말 타고났다. 마란 후작을 부 리더로 만들어주다니. 그는 후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지만 상인으로서 돈을 번 케이스라 자잘한 일에 무척 꼼꼼하고 일처리가 확실했다. 이거 굉장히 편리하다.

“이틀 후 오전 9시 45분에 루페닌 왕국의 왕도 바세로 가는 텔레포트 게이트 이용 증서입니다. 해당 날짜에 사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국에서 마탑에 엄청난 지원을 매년 해 준다고 하니 제국 사신단에 대한 대접 역시 여타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느리다고 소문난 마법사들이 이렇게나 일을 빨리 처리하고 사람까지 보내겠다고 전적으로 알아서 처리해줬으니, 내가 할 일 없이 얼마나 편한가.

하긴 요즘의 마탑은 비마법사들을 간단한 서류 관리와 손님 접대에 고용해서 예전보다는 일처리가 빨라졌다고들 하지만, 고액의 텔레포트 이용 접수나 기밀 정보 관리 등 마법이 필요한 경우에는 여전히 아날로그식으로 느리기 그지없다니까.

“직행이네요.”

마란 후작은 표와 영수증을 받아들고 중얼거렸다.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한 곳은 마케를 포함한 각국의 수도 혹은 주요 도시였다. 물론 우리 제국에도 게이트가 있긴 하다. 게이트를 작동시킬 만한 마법사가 없으니 문제지만. 그만한 마법사가 있는 곳은 아크샤 왕국의 수도와 이곳 마케 뿐이었다. 마란 후작은 마케에서 중간 지역인 아크샤 왕국을 거쳐 루페닌으로 갈 줄 알았던 것이다. 그 편이 마력이 더 적게 드니까.

“그럼 수장께서?”

마탑의 수장이 직접 마법을 써 주냐는 의미였다. 그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분께서는 하르아이나의 전령분들에게 마탑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긴 우리 나라가 마탑에 일 년에 쏟아붓는 지원금이 얼마냐. 정작 우리 나라에는 텔레포트 써 주는 마법사도 없는데 말야.

원래 우리 나라가 마법사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세기에 이름을 올릴 만한 뛰어난 마법사, 흑의 대공 엘리아스 이트리샤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엘리아스 이트리샤가 30년 전 은거에 들어간 순간부터 우리 나라는 마법 강국이 아닌 단순히 북쪽나라 먼 제국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케르타에 갈 때도 느꼈지만 우리 나라 북쪽 수도에서 외국 한번 갈라 치면 마법 스크롤 없이 죽어라 걸어야 한다. 그나마 지금 루페닌 왕국으로 갈 때는 마케를 통해서 시간을 반으로 단축시킬 수 있지만 케르타는 마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에 텔레포트는 꿈도 못 꿨다.

혼자 힘으로 텔레포트 게이트를 작동시킬 만큼의 마법사는 카덴에 딱 여섯 명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한 명이 아크샤 왕국에 있고 한 명은 은거중, 나머지 넷은 마케에 거주중이다. 만약 마케의 네 명이 전부 부재중이라면 마케에 있는 나머지의 거의 모든 고위 클래스 마법사들이 힘을 합해야 겨우 게이트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정기적으로 게이트를 사용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장소는 현재 마케와 아크샤 왕국 뿐이다.

“그럼 이제 돌아갈까요.”

후작은 문 앞까지 바래다주겠다는 마법사의 안내를 거절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세이시아는 마케가 처음이라고 하셨죠? 피곤하지 않으신다면 내일은 경매장에 가 보는 게 어떨까요?”

“경매장?!”

나는 구불구불한 길을 되돌아 내려오는 동안 마란 후작이 경매장 얘기를 꺼내자 눈을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엘릭의 발걸음이 탁, 하고 멈추었다. 귓가에 스치는 소리 정도였기에 나는 엘릭의 반응을 신경쓸 수가 없었다.

“네에, 마케의 귀중품 경매는 무척 유명하답니다. 게다가 여기의 노예 경매는 반 합법이거든요.”

마지막 말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후작은 내 귀에 속삭였다. 반 합법이라는 말은 경우에 따라서 합법도, 불법도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즉 잘 하면 노예를 살 수도 있다.

오기 전에 라키아네 백작에게서도 들은 얘기지만 노예 경매라……. 가 보고 싶다.

노예 거래가 합법인 나라는 루페닌 왕국, 케르타 왕국, 인다스 왕국 등 카덴의 동남쪽 국가들이다. 대체로 남쪽 국가는 날씨가 적당히 따뜻하고 식용 열매가 많이 열려서 생물의 사망률이 적다. 그렇기에 동물과 사람이 흔하며 노예가 싸긴 한데, 아무래도 양이 많아서 노예를 막 대하다 보니 속된 말로 표현하자면 질적으로 떨어진달까. 반대로 최상등품은 경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마케나 아크샤 왕국 같은 중간도시의 뒷거래에서 가장 구하기 쉽다.

식물이 식물을 파는 현상은 없다. 노예 경매 역시 식물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대신 필요한 제도가 있으면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제인 역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었고…….

“나 가고 싶어요. 백작님도 노예 경매에 가 보고 싶다고 말했고…….”

“그럼 제가 시간과 장소를 알아봐둘까요. 상단의 연줄을 이용하면 쉬운 일이거든요. 기대해 주세요, 공작님.”

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하며 마탑을 나오는데, 나는 이윽고 엘릭의 반응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 말없이 옆에 있었던데다가 이계의 종족이라 내가 생물의 기척조차 느낄 수 없으니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마란 후작은 걸음을 늦추고 내 시선을 따라 엘릭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엘릭은 내 팔을 덥석 잡더니 나를 질질 끌고가다시피 했다.

“어? 에, 엘릭? 왜 그래? ……자, 잠시만!”

“레이몬드 자작?”

의아한 듯 나와 엘릭을 따라오던 마란 후작은 끌려가며 넘어질 뻔한 내 몸을 받쳐주려 했지만 엘릭이 내 팔뚝을 휙 끌어올려 나를 일으켜 세웠다. 헛손질을 한 후작에게 엘릭은 싸늘하게 통보했다.

“공작에게는 개인적으로 전할 말이 있어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으니 먼저 들어가시지요, 후작.”

“그런가요? 그럼 저는 먼저 가볼 테니까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 세이시아, 너무 늦지는 말아요. 기다릴게요. 아, 마차 두고 갈까요?”

“필요없습니다.”

마란 후작은 대충 엘릭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생긋 웃으며 호텔로 돌아가 있겠다고 말했다.

엥? 에에엥? 잠깐, 후작님 날 버리고 가지 마아! 단 둘이라니! 나랑 엘릭 단 둘의 시간이라니, 아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어져 가는 마란 후작과 내 팔을 잡은 엘릭 사이에서 쩔쩔매는 것을 하찮다는 눈으로 힐끔 쳐다본 엘릭은 나를 그대로 끌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 엘릭!”

“저 녀석도야?!”

“뭐?”

“저 녀석도 그거냐고!”

나는 엘릭의 꾹 눌러 참고 있지만 화난 듯한 묘한 목소리에 무슨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마란 후작도 ‘그거’냐니, 대체 뭐라는 걸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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