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의여왕-171화 (171/226)

<-- 7. 사신 파티 결성 -->

나 역시 어서 제정신을 차리고 빛의 정령을 불러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드러난 주변은 처참했다. 막사의 반절 가까이가 부서져 있었고 사방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피로 번들거리는 땅 위에 축 늘어진 마물의 시체는 귀가 길쭉한 개와 토끼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모양이었는데, 크기가 늑대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였다. 토끼라 치면 엄청난 크기다. 마물들은 원래 다 기준 사이즈보다 큰가?

불이 켜지고 마침내 기사들은 자신이 지금껏 싸워온 마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크기에 비해 꽤 고전했다. 난생 처음으로 상대하는 마물과의 전투였던 점도 있겠지만, 작아서 날쌘 점과 그 발톱의 어마어마한 길이를 보면 무리도 아니다.

나는 마물이 전부 처리된 것 같으니 부하들에게 인원 점검과 필수 물량 점검을 하라고 소리쳤다. 막사들 안에서 곧바로 여러 명의 대답이 들려왔다.

마물들이 기사들의 팔 아래로 뛰어다니며 마구잡이로 날뛰어서 그런지 막사들의 겉은 많이 망가졌지만 의외로 큰 피해는 없었다. 부서진 물건의 갯수도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다만 30cm쯤은 되는 마물의 발톱에 스크래치가 난, ……아니 거의 채썰린 것과 다름없게 된 식량이나 막사 커튼, 마차의 보조 바퀴 등이 문제였다.

뭐니뭐니해도 발톱 때문에 생긴 피해가 가장 컸다. 마물의 독 때문에 기사들의 20%는 중독 상태를 보였다. 데려온 의사는 한 명, 약초사도 한 명이다. 마케에 도착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때까지는 지금 단 한명 뿐인 의사에게 응급처치 정도만 받고 해독약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갑옷 장비와 손에 든 검 덕분에 기사들이야 생명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다친 이는 없었다. 가장 허접한 갑옷이라도 마물의 발톱을 막는 데는 큰 도움이 된다.

크게 다친 것은 보호장비가 없던 하인 둘과 마부 한 명, 말 한 마리였다. 말은 즉사, 나머지는 중태다. 감염이 커지지만 않으면 다음 도시까지 무사하겠지만 아니라면 큰일이다.

사람들은 급하게 물품 정비에 들어갔다. 날이 밝으면 당장 출발할 것이다. 곧 국경. 그리고 국경을 지나면 중간 목적지인 마케에 도착한다. 난생 처음 본 강한 마물과의 전투에서 큰 충격을 받은 사람들을 추스르고 빠른 진행을 위해 나는 정신없이 돌아다녔고, 엘릭과의 일도 당분간은 다시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아쉽기 그지없었다.

***

마케. 세 개의 길드가 지배하는 대륙의 중간도시. 정보 길드인 검은 달 길드와 용병 길드인 붉은 태양, 마법 길드인 푸른 별 길드. 대부분의 정보와 재화가 일시적으로 머물렀다 가는 통로이자 중앙지이기도 하다. 마법의 중심지인만큼 마케의 이곳저곳은 상당히 번화해 있었다.

실제로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마치 촌놈처럼 마케의 분주한 거리를 정신없이 훑어보았다. 제국의 수도만큼이나 번화한 곳이다. 다른 점이라면 다양한 인종과 온갖 여행자, 부랑자, 떠돌이 용병으로 보이는 사람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다는 점과 마법사 로브를 걸친 사람이 종종 보인다는 점 정도? 카덴의 중심이라고 불릴 만했다.

이쯤 되면 하루 유동인구도 굉장할 것이다. 말 그대로 운동장 너비 정도의 큰길은 사람과 마차들로 북적북적했다. 그 넓은 거리가 물건 파는 소리와 호객소리로 시끌거릴 정도라니. 이렇게 정신없는 도시도 없을 것이다. 오른쪽을 보면 과일을 파는 소리, 왼쪽을 보면 자잘한 잡화를 파는 소리, 앞을 보면 말 울음소리, 뒤를 보면 사람 떠드는 소리. 머리가 띵할 정도로 번잡했다.

"아아, 정말 힘들었어요. 전 마물이라는 게 크기에 비해 그렇게 강한 줄 생전 처음 알았다니까요. 다시 돌아갈 때는 전부 마물이 없어진 후겠죠?"

이제야 살겠다는 듯 라키아네 백작은 파란 머리를 흩날리며 기지개를 쭉 폈다. 나는 마탑 지도를 들고 이리저리 주위를 살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루페닌 왕국은 마물이 가장 먼저 발견된 곳이잖아요? 제국에서 지원을 보내 어느정도 마물 퇴치를 했다고는 하지만……."

으으. 벌레 모양 마물을 생각하면 정말 싫어진다. 유렌이 너무 보고싶어졌다. 유렌은 벌레에게서 날 철저히 지켜줄 텐데……. 그나저나 마탑에 빨리 가서 텔레포트 예약과 치료 신청을 해야 하는데.

미리 예약해 둔 시트린 상회 계열 호텔에서 절차를 마치고 난 마란 후작이 드디어 이동용의 작은 마차를 몰고 우리 앞으로 왔다. 화려하지만 크기가 작은 사두마차였다. 그는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려 내 앞으로 걸어왔다. 원래대로라면 마탑에서 안내원이 나와야 하지만 날짜를 맞추기 힘들어 일부러 우리가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자, 출발하죠, 공작님."

후작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탑에는 저와 마란 후작님이 텔레포트 등록을 하러 갈 테니 나머지 분들은 오늘 묵을 호텔에서 쉬고 계세요."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호텔이라는 그 단어에 행복해졌다. 그래, 드디어 편한 곳에서 묵을 수 있지. 게다가 마란 후작이 특별히 마케에 오픈한 고급 호텔이 있다면서 제공해준 숙소였다. 저번 르팔에서의 호텔보다 훨씬 호화롭다고 은근히 자랑을 해 왔기에 기대가 된다. 그리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서 루페닌 왕국의 수도에 도착하면 그 때부턴 자그마치 국빈 대접이다. 오늘부터는 고생 끝, 당분간은 편히 쉴 수 있다!

낼름 마차에 탑승하려는 나를 엘릭이 갑자기 붙잡았다. 나는 괜히 그날 밤이 생각나 엘릭의 체온에 화들짝 놀라며 과민반응을 보였다. 마란 후작은 친절하게 싱긋 웃으며 엘릭에게도 권했다.

“공작님의 호위를 맡으셨으니 당연히 함께 가시겠죠?”

“…….”

“출발하죠.”

나는 바들바들 떨며 몸을 사렸지만 엘릭은 당연하다는 듯 내 맞은편의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내가 눈을 슬쩍 피하자 그는 굳이 나와 눈을 마주치려 들지는 않았지만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도 않았다.

그, 그, 그치만!!! 그 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머리랑 가슴이 한꺼번에 두근두근 날뛰어서 어쩔 줄 모르겠단 말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엘릭을 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그 날처럼 자연스럽게 그를 한번 더 끌어안아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엘릭은 그 날 이래로 한 번도 나를 다시 껴안거나 화나지 않은 말투로 말을 건 적이 없다. 마치 그는 그 날 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 마물이 한 번도 우리 파티를 습격한 적이 없는 것처럼. 혹은 그 날의 엘릭은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당시에는 워낙 당황스러워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때의 엘릭의 행동에 가슴이 왠지모르게 저려왔다. 유렌에게 안길 때만큼 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것이다. 분명 유렌이나 미르에게와 동일한 반응이지만, 하지만 나는 그것을 욕정이나 애정의 현상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나와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마계의 생명체. 나와 그 사이에 생물학적, 또는 감정적인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식물의 본능이다. 역시 이건 남자 부족 현상인 것 같다. 일이 끝나고 시간이 나면 정령계의 게이트로 바로 유렌에게 달려가 봐야겠다.

셋이서 마차에 타자 언제나 도란도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는 후작이 먼저 말을 꺼냈다. 마탑에 가본 적 있냐는 얘기였다. 마란 후작은 마탑에 방문한 적이 몇 번인가 있다고 했다. 사실상 이 파티에서 마탑에 첫 방문인 것은 오직 나 뿐이었다. 마법의 중심지이며 장거리 텔레포트가 가능한 거대 게이트가 장치된 유일한 곳인 만큼 대부분의 여행은 마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마법과 특별히 관계도 없고 특정 아카데미도 나오지 않았으며 나이 역시 스무 살도 채 안 되었으니까.

마차를 타니 마탑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마케는 넓지 않다. 도시로 치면 중소 도시 정도쯤 되지만 다른 곳과 달리 마케의 경계선 안쪽부터는 정말 알차게 복잡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좁은 곳에 대륙의 기둥인 세 길드. 그리고 모여드는 사람들. 전부 수용하려 치면 넓은 땅이 필요할 텐데 생각보다 마케는 넓지 않다. 머무르는 사람들보다 잠시 왔다 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회색과 푸른 색이 섞인 거대한 돌로 한 번에 깎아낸 것 같은 웅장한 마탑, 푸른 별이 그려진 깃발이 드높은 건물은 내가 처음 보는 양식으로 지어져 있어 나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이런 식의 건물은 처음이다. 전생에 갖가지 건물을 접해봤지만 마탑의 건물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마치 미래형 건물 같았다.

“전부 이음매가 하나도 안 보이네.”

건물의 표면은 까슬까슬하다. 일반적인 고층 건물과 닮았는데 전체적인 형태는 무척 심플하면서도 건물의 끝 부분이나 창문 부근 등 조각이나 장식이 들어가는 부분은 고전적인 옛날의 성처럼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마란 후작은 싱긋 웃으며 내 호기심에 답해주었다.

“굉장히 높죠? 아마 카덴에서 가장 높이 지어진 건물일겁니다. 건물 자체는 드워프족에게 수주했지만 설계도와 마무리 작업은 마법사들이 직접 했다고 하네요.”

정문으로 들어와서 바로 로비로 안내받았다. 보통 귀족 손님들이라면 2층 접대실로 바로 안내받는 것이 정석이지만 우리는 마케에 도착해서 바로 방문했기 때문에 예약이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신으로서 방문하겠다고 연락은 넣어 뒀기 때문에 여기서 요청을 하면 바로 마탑의 상위 책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엘릭의 눈치를 힐끔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별다른 말이 없었다. 나는 넓은 1층 로비를 신기한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엘릭이야 국제 아카데미 출신이라 마탑에는 어릴 때부터 자주 다녔겠지만 나는 식물로서 생전 처음이란 말야.

1층은 우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예약하고 들어온 귀족들이 처음부터 2층으로 안내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탑 정문의 유리문은 자그마치 1초에 한번씩 드나드는 사람들로 인해 열리고 닫힐 정도였다. 접수표를 받고 대기하는 방문자가 절반이고 의외로 제국에서 보기 힘들던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도 많이 보였다. 이곳저곳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 속에서 마란 후작은 줄이 서 있지 않은 테이블에 키가 작고 마른 남자 마법사한테 가서 명패와 황제의 인장 사본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하르아이나 제국 황제 폐하의 명으로 왔습니다. 루페닌 왕국 수도까지 텔레포트 게이트 이용을 허가받고 싶습니다만.”

========== 작품 후기 ==========

노블레스는 8월 7일 딱 하루 무료이벤트였습니다. 이미 지났죠 ㅠㅠ

앞으로 언제 마나 모아서 봐주세요. 마나 모으는 법은 제 뜰로 오시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번엔 제 뜰에 오는 방법을 질문하시지 마시구요,...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