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사신 파티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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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제대로 먹지 못한 것과 반대로, 이제 슬슬 무성한 나무 사이를 벗어나자 다른 의미로 불안해졌다. 저번 달에 출발했을 즈음부터 내가 걱정했던 바로 그 장소에 들어선 것이다. 주변은 고요한게 분명 깊은 숲 속임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러운 바위 투성이였다. 돌 틈새에 종종 발견되는 식물은 불필요하게 생기가 돌고 있었다.
많은 상단이 실종된 위험한 장소니까 신경을 기울이라는 말은 이미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누누이 강조해왔던 말이지만 또 한번 더 말한다고 해서 잘못될 일은 없겠지.
"가능하면 여기서 야숙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장기 사신행에는 말을 제때 쉬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필요 이상으로 지쳐서 위급 상황에 대처하지 못할 수가 있다. 나를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는 줄루인 남작은 내가 그렇게 이 곳이 위험하다고 강조해도 별로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내 경고가 조금쯤은 먹혀들었는지 다른 때보다 훨씬 긴장하고 있는 것이 분위기로 느껴졌다.
오늘 나는 잠을 자지 않는 게 좋겠다. 마물 문제도 있지만, 혹시 나를 싫어하는 엘릭이 자는 동안 마물 틈새로 나를 던져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불안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다치지도 않을 리는 없다. 전에 엘릭이 말한 그대로.
……그러고 보니 전의 그 대사. 설마 경고는 아니었겠지? 설마 진짜로 나를 마물에게 몰아넣을 셈은 아니겠지?
"맞잖아!!!!"
나야, 눈치 없는 나야! 그건 경고였어! 확실히 그걸 예고했던 거라구!! 그게 아니라면 대체 엘릭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왜 했겠어? 마치 나를 살짝 걱정하는 것 같은 소리를?!
밤의 마술일까. 내 머릿속에선 어느새 그 때의 신중했던 엘릭의 표정이, 나를 마물들 틈새로 던져버리는 것을 상상하며 히죽히죽 위협하는 두려운 악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그 이상한 행동과 표정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딱 맞아떨어졌다. 이상하게 평소와 달라 보이던 것은 나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으으으……. 겁에 질린 나는 일단 오늘 밤은 대타를 마물에게 해를 입지 않는 실프에게 부탁해 놓고 정령계로 대피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잎과 줄기는 소중하니깐. 그리고 오늘 밤 내 막사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를 전하기 위해 네리아를 부르려고 물끄러미 밖을 내다보았다.
"……!"
"뭐야?"
나는 순간 심장이 멎을 뻔 했다. 바로 코 앞에 엘릭의 얼굴이 보였던 것이다! 엘릭은 갑자기 튀어나온 내 얼굴을 보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지만, 아니, 대체 엘릭이 왜 여기 있어!? 원래라면 기사들이 망보는 가장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오늘 같은 위험한 날에! 물론 평소에도 내가 자는 앞을 지키고 있긴 했지만…….
"어……, 망 보러 안 가?"
"이 쪽이 우선이야."
그는 당연하게 대답한다. 핫, 설마? 나는 이윽고 그가 갑자기 같잖은 내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여제의 명령 따위로 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때, 내게 살초(殺草) 예고를 한 후 내가 혹시나 도망가지나 않을까 바로 앞에서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그 날부터 매일 밤을!! 그, 엘릭 레이몬드는 죽이겠다는 예고를 해 놓고 피해초(草)를 수 일간 감금, 상시 협박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매일을 지내도록 하는 악질 살인마였던 것이다. 역시 마족 따윈 건드리는 게 아니었어. 마족과 정령이 함께 있어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나를 지킨다니, 어째 안 하던 짓을 한댔어! 그나저나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냐? 나 정말 위험한 거 아냐!? 초식동물도 아닌 마물에게 던져지면 평범하게 먹히는 게 아니라 발톱에 찢겨버릴 텐데.
엘릭은 내가 하얗게 굳은 얼굴로 입구 커튼 사이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자, 나를 다시 힐끔 보더니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눈치챘나? 마물……."
으아아아악!!!!
"……이 근처까지 와 있다는 것……."
나는 커튼을 홱 닫고 방 안에서 놀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뒷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내, 내가 그의 살초 계획을 눈치챘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눈치챘냐고 물었어! 이,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난 역시 오늘 밤은 정령계로 피신해 있을래!!
흥분해선 가장 중요한 미르의 주머니를 홱 집어들고 정령계로의 게이트를 열어 반쯤 몸이 넘어가고 있는데, 멀리에서 마부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낮은 공기가 쨍쨍 울렸다. 아니, 내가 우선적으로 감지한 것은 바람의 흐름 변화였다. 대기가 급격한 긴장상태가 되자마자 내 귀로도 외침이 전달되었다.
"뭐야, 이건……!?"
"허윽!!"
"스, 스, 습격! 습격입니다!!"
"이쪽이다, 대열 정비하라! 침착하도록!!!!"
그에 0.5초도 지나지 않아 기사들을 통솔하는 조장의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원래대로라면 엘릭도 달려나가야만 했다. 하필 이럴 때에 습격해 오다니. 밤이 깊어서야 행동하던 그 때의 마물들과 달리 이쪽 마물은 꽤 초조했나보다. 하긴, 이 근방은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는 곳이니 꽤나 굶주려 있었던 것 같다.
대장으로서 이런 위기 상황에 일신의 안전만을 위해 도망칠 생각만을 하고 있을 수는 없기에 나는 처음에 대비한 대로 모든 인원이 잘 움직여주고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전에 마물 때문에 된통 당했던 내가 이번에도 마물이 출몰할 것에 대비하여 모든 정비를 철저히 해왔으니 그만큼 대처도 여유로웠고 사람들도 잘 따라주었다.
당황해서 예전처럼 호들갑을 떨며 내 막사로 달려온 네리아를 달랜 후 마란 후작에게는 아랫사람들이 각자의 막사에서 나오지 않도록 명해 달라고 지시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들과 조를 짜 마물과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엘리아스 씨한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마물 역시 익숙치 않은 마계 이외의 세계에서는 제대로 된 감각을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물론 종류별로 다르긴 하지만 땅 위에서 사는 마물의 경우 시각에 거의 모든 사냥을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그렇기에 사냥감, 즉 전투인원이 아닌 약자들을 마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분산시켜 두면 장기적으로 피해를 꽤 줄일 수 있다. 마물과 싸울 작전이라기보다는 뭔가 대량의 군사를 다루는 병법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나는 일단 엘리아스 씨가 말해 준 대로 해봤다.
혹시나 해서 선택한 그 방법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효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상보다 너무나 수가 많은 마물들이 기사들의 바리게이트를 넘어 사람들과 짐들이 있는 막사를 길다란 발톱으로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다.
"공작님! 공작님은 정령사잖아요? 어떻게 전력에 합세해서 도울 수 없을까요?"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었어도 마물을 보는 것은 당연히 난생 처음일 라키아네 여백작은 여제가 직접 골라낸 정예인 황실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우리 막사 쪽으로까지 다가오며 난전을 펼치자 불안해져서 내게 보챘지만 나는 애초에 전투용으로 리더를 맡은 게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싸우는 정령사가 아니다. 여제는 조난 상황이나 급한 전달사항이 있을 때만을 대비해 정령사인 나를 보낸 거고 다른 기사들 역시 싸움 경험이 전무한 일반 정령사가 끼어들어 봐야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리더로서 지시만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어두운 건 확실히 불편했다. 빛의 정령을 쓰면 주변을 밝힐 수 있긴 한데……. 내가 고민하는 동안 마란 후작은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혹시나 후퇴하게 될 경우 사용할 지리도를 다시 살펴보겠다며 마법 등에 손을 댔다.
"불이라도 좀 켜면……."
"잠깐, 이 쪽의 위치를 들키게 돼요. 저 마물들은 지금 보이는 것 없이 마구잡이로 습격하고 있잖아요. 저 쪽도 별로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증거지요. 지금 우리 위치를 들키게 되면 지킬 것이 있는 우리 기사들이 불리해져요."
지금 당장 불을 밝힐 수는 없다. 막사 안에 불이 들어오면 확실히 저 발톱에 쓸리는 것은 우리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어두운 상황에서 오히려 점점 우리 쪽이 더 불리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인간보다는 짐승의 시력이 더 나을 테니까.
어두운 건 둘째치고 어렴풋한 별빛과 반사광에 비쳐 보이는 바깥의 전투 현장을 막사의 조그만 구멍 하나로 보는 것도 힘들다. 그렇다고 여기서 빛을 비출 수는 없으니 나는 마란 후작과 네리아, 라키아네 백작에게 숨 죽이고 절대 소리치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막사의 뒷문으로 살그머니 나섰다.
후작은 캄캄한 와중 내가 무얼 하는지 눈치채지 못하다가 뒤늦게서야 깜짝 놀라 나를 말리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최소한 마물의 발톱에 죽지는 않으니 내가 나가야 한다. 이대로 모두 전멸하는 것보다야, 도움이 되고 잎을 찢기는 게 낫다. 가장 실력이 출중하다는 이유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을 엘릭을 위해서도.
========== 작품 후기 ==========
빨리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