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사신 파티 결성 -->
"미르나 세르나 폴리모프한 모습만 봤으니까 드래곤일 때 모습은 한번도 본 적 없어."
"그렇군요. 지금 유희 중이라고 하셨으니……."
리스피아는 말하다 갑자기 흠칫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당황한 그는 손을 꿈틀거렸지만 내가 쥔 팔목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나는 덥석 입에 넣은 그의 손가락을 혀로 휘감아 핥았다. 엘프의 손가락은 인간 수컷의 손가락과 달리 촉촉한 맛이 났다. 무심결에 끝을 조금 아삭하고 깨물었다. 사과맛이다. 충동적이었지만 정말 행복했다.
맛있어……. 좀더 먹고 싶어.
손가락을 강하게 쪼옥 빨자 리스피아는 손끝을 움찔했다. 이런 걸 엘프 맛이라고 하는구나. 좀더 손가락을 깊숙히 물었다. 두 번째 마디를 핥을 수 있을 정도로.
"플로라 님……?"
"맛있어어♥"
리스피아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시선 정도는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엘프 시식하는 데 정신이 팔려 그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를……, 드실 건가요?"
"응."
그럴 생각으로 여기에 붙잡아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잡아놓은 거 뿌리까지 핥아먹어주마. 그렇게 유혹적으로 생긴 네 잘못이야! 그런 눈으로 자꾸 쳐다보면 내가 참을 수가 없잖아!
그나저나 내가 당당히 덮치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순종적인 육체다. 그는 1mm도 반항하지 않고 있다. 핥던 것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얇고 부드러운 살결이라 그런지 뺨이 붉어지는 것이 눈에 확 띈다. 가을의 사과만큼이나 새빨갛다. 조금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듯 한데. 그는 손가락을 가늘게 떨며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싫어?"
나는 핥던 손가락을 입에서 빼내고 물었다.
리스피아는 방금까지 먹히고 있었던 자신의 끈적끈적한 검지손가락을 바라보더니 거리낌없이 자기 입에 넣었다. 혀를 움직여 삭삭 전부 핥았다. 금세라도 느껴버릴 듯한 표정이다. 멍한 눈빛으로 그렇게 내 타액을 핥던 그는 손에 묻은 걸 전부 빨아먹은 듯하자 테이블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왔다.
키가 큰 리스피아가 허리를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니 저절로 내 쪽엔 그늘이 지게 된다. 빨개진 뺨을 하고서 몽롱한 시선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는 그의 뒤로 눈부시게 역광이 비쳤다.
어느샌가 앞에 서 있나 했더니 단숨에 입술을 밀어붙였다. 그의 체온은 백색에 가까운 옅은 머리색에서 연상되는 것보다 훨씬 뜨거웠다. 발갛게 달아오른 살갗 표면은 상당히 높은 열을 품고 있다. 혼혈인 유렌의 체온이 평균보다 높은 것도 아마 엘프의 피 때문인 듯 했다.
끈적끈적하고 미끌거리는 혀가 대놓고 내 입술을 핥다가 입 안으로 짓쳐들어온다. 허우적거리는 듯한 서툰 움직임은 그의 열기에 파묻혀버렸다. 뜨겁고 굵은 손가락이 내 목덜미와 허리를 움켜쥐었다. 혀를 섞는다는 것보다 혀로 탐색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두 명의 체중을 감당하는 의자가 삐걱거리며 몸이 점점 뒤로 젖혀지고 있었다. 더이상은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살며시 상체를 들고 내 몸을 바로앉혔다.
"인간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엘프는 싫은 상대에게는 서지 않아요."
그럼 싫지 않…….
"좋아해요."
뜨거운 숨결이 뺨에 닿았다. 라이트그린의 그 눈동자는 극도로 옅어지며 푸른 기운까지 살짝 돌았다.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어떤 감정인지, 얇은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샅샅히 훑는 것만큼이나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직설적으로……."
"좋아하니까 좋다고 말하는 건데요. 그게 잘못된 건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튕길 것처럼 생겼으면서 너무 당당히 좋아한다고 말하니까 의외였다. 미르와는 다르다. 미르는 좋아한다고 생각없이 외치는 순간마저도 맨 밑에는 한 겹의 불투명함을 감추고 있었다. 그 아래에 깔린 것이 두려울 만큼 진득하고 어두운 소유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애정의 호소라 할지라도 그 아래엔 누구나 감추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리스피아는 달랐다. 그가 말한 좋아함 아래에는 아무 숨김도 없다. 한 장의 거짓 없는 진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케이스보다 더 부담된다.
"……진짜?"
뻔한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 확인차 물었다.
"네, 좋아해요, 플로라님. 제가 드시고 싶으신 거죠?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기뻐요."
으, 으으……! 윽, 이런 직구가!! 이건 너무 강하다.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간 유렌이나 미르 상대로는 꽤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리스피아와는 몇 번 만나지도 못한 사이인데다 갑작스런 고백이다. 게다가 범접키 힘든 쿨 뷰티. 순수 엘프에다가 차가운 벽을 쌓고 있는 분위기의 키 큰 냉미남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 없다. 그 수줍음 없는 미르에게 듣는 것과도 느낌이 꽤 다르다.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을 말하는 미르의 성격상 그런 말을 한다고 해도 언제나처럼 똑같이 가볍게 들릴 뿐이다. 그 반대로 유렌이라면 죽어도 어느 선 이상은 입으로 내어 말하지 않을 테고.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런 대사를 하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리스피아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것도 빨개진 채 그대로 말했다. 나는 괜히 그 뜨거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살포시 고개를 돌리며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홍차를 입에 머금었다.
"네, 확실히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라 부끄럽습니다만, 그래도 플로라 님께 말하고 싶어요. 절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너무 기뻤어요. 플로라 님의 (삐-)를 핥고 (삐-)에 (삐-)를 넣는 것 너무 기대돼요."
"푸핰!!"
순간 나는 홍차를 뿜어버렸다. 잠깐, 최소한 '거기'라던지 '그곳' 같이 조금 돌려서 말하란 말야! 미르처럼 케이크라고 말해도 되고 유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아들으니까!!
"제가 한번 (삐-)하고 버려지는 입장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플로라 님이 많이 기분좋아질 수 있게 노력할게요."
이미 재기불능인 나는 테이블에 그대로 머리를 박았다. 안돼, 이건 안 된다. 이렇게 순수한 과일을 무슨 수로 따서 먹는단 말인가.
"저기, 리스피아……. 나이는 몇 살?"
떨리는 목소리로 나이를 묻자 그는 옷의 단추를 풀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잠시만, 단추 아직 풀지 마! 여기서 할 생각이야?
"이제 551살이에요. 엘프 나이로 따져서 결혼 적령기는 지났지만 전 하이엘프니까 별로 상관없죠?"
잠깐, 그렇게 나이를 먹었는데 그런 대사를 그런 기분으로 해? 것보다 단추 풀지 말라니까!!
"저기, 이미 제 (삐-)가 너무 딱딱해져서 걷기 힘든데 이대로 괜찮은가요?"
내가 테이블에 엎어진 그대로 리스피아는 내 등을 살며시 감싸안았다. 따뜻한 숨결과 말 그대로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흠칫하자 리스피아는 손바닥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쥐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들게 했다. 그는 약간 걱정스러운 듯 했다.
"……제 나이 때문에 놀란 건가요?"
아니, 놀란 건 나이 탓이 아니고…….
"나이가 많지만 그간 식물에만 빠져서 거의 한 것은 없어요. (삐-) 하는 것도 처음이라……, 어떡하면 되는지……."
"아무리 그래도 잔디밭은 안 돼."
옷 좀 다시 입어. 일찌감치 흥분해서 상의를 지금 거의 벗다시피 한 그는 새하얀 살결과 가슴팍을 대놓고 내보이고 있었다. 아직 봄이고 올해는 약간 계절이 늦어 여기의 잔디는 생각만큼 촘촘하지 않다. 도톰한 담요를 깔면 가능하겠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나는 리스피아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 내 손이 닿자 그의 어깨가 수줍게 움찔했으나 곧 내 허리를 받쳐들고 안았다. 안방은 곤란하다. 바로 옆에 유렌이 있으니까. 미르도 '장난감과 노는 것은 다른 방에서'라고 말했다.
"3층 복도 지나서 안쪽 방……, 거의 다 빈 방이니까 그곳으로 갈 수 있어?"
3층의 복도 방은 대체로 손님방이었다. 일반적으로 손님 방은 조금 떨어진 별채에 있지만 친분이 있거나 중요한 손님은 본채에 모시게 된다.
리스피아는 2층 난간을 한 번 밟고 바로 3층으로 매달렸다. 그것도 나를 안은 그대로.
움직임이 아까만큼 재빠르진 않지만 필요없는 동작 없이 3층으로 순식간에 올라가는데 전혀 흔들림을 느낄 수 없었다. 키가 커서 그런지 안정감 있게 나를 꼭 안고 있다.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균 체격에 속하는 미르나 세르가 나를 한 손으로 간단히 끌어안고 매일 놀았기에 나도 어느샌가 그걸 당연시 여겼지만 사실은 굉장한 힘이 필요한 것이다.
"이쪽 방이에요?"
나는 그가 가리킨 방향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리스피아는 침입한 3층 창고의 문을 안쪽에서 열고 나와 바로 맞은편의 방으로 들어갔다. 현재 머무는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빈 손님방인 게 당연했다. 나는 그의 팔에서 내려와 문을 걸어잠그고 반대쪽의 창문에 커튼을 쳤다.
"그런데 커튼은 왜 치는 거에요?"
리스피아는 꼼꼼하게 커튼을 치는 날 보고서 물었다. 나는 그의 상체를 양팔로 꼬옥 껴안고 침대로 이끌며 말했다.
"그래야 둘만 있는 밀폐된 공간이 되니까."
========== 작품 후기 ==========
다음편 여기 올렸사옵니다.
엘프는 이래야 제맛이긔.
참고로 저기 (삐-)는 비속어가 아니라 생물학적 정식 명칭입니다. 흔히 노블레스 소설에 주로 이용되는 자극적인 비속어처럼 과격한 낱말을 대입하시면 곤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