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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여왕-160화 (160/226)

<-- 7. 사신 파티 결성 -->

마족, 하면 딱 생각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엘릭 레이몬드, 아까까지도 논란의 대상이었던 그다. 엘릭이 대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무, 물론 엘릭은 무섭고, 나랑 정반대의 종족이다 보니 꺼려지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속으로 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는 나쁜 애는 아니란 말야!

내 작은 외침에 엘리아스 씨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를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지켜보던 유렌과 미르 역시 내가 자리를 옮기자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를 졸졸 따라왔다.

이쯤이면 들리지 않겠지, 하며 엘리아스 씨는 아까까지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나를 바라보았다.

"레인 역시 일로서 이번 일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긴 하지만, 나도 따로 케르타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 알아보고 있었네. 마족의 소행임을 처음 느낀 것은 바로 거기에서였어. 혹시 알고 있나? 있어서는 안 되는 괴물들이 있으면 안 되는 곳에 나타나게 되는 현상을."

에……. 당연히 알고 있지! 내가 그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인데!! 그것 때문에 케르타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런가? 그대도 케르타에 간 적이 있었나? 그 곳에서 무슨 괴물을 보았는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엘리아스 씨는 큰 흥미를 보이며 내게 부탁했다. 아니, 무슨 괴물이냐고 말해도……, 몬스터의 종류는 워낙 많은데다 같은 종류에 같은 성장환경을 가진 경우 상세한 명칭이 다르다 할지라도 구분하기 힘들고 전문가라고 해도 딱 보고 정확한 명칭은 알기 힘들다. 잡혀 죽게 생겼는데 무늬 관찰할 정신이 어디 있겠는가. 대충 크라켄 종류라면 크라켄 종류, 놀 종류라면 놀 종류, 그리핀 종류라면 그리핀 종류 같은 식으로 간단히 종을 칭할 뿐이다. 하지만 마나의 영향을 자주 받는 이형의 생명체가 바로 몬스터이기에 같은 명칭의 몬스터라고 해도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인간은 몬스터에 관한 지식이 많지 않다. 그들의 힘으로 쉽게 잡아 조사할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많기 때문이다. 대신 드래곤은 몬스터에 관한 지식이 무척 많다고 한다. 미르에게 들은 얘기다. 8000가지 종류의 몬스터 백과가 있다고 했었나. 그리고 각 몬스터로 할 수 있는 레시피도 수만 가지가 있다고 했었지.

"일단 귀가 컸고……, 아, 여우처럼 생겼어요! 하지만 사막여우라기엔 너무 크고 색도 검은 색 도는 회색이었구요. 그리고 발톱과 이빨이 날카로웠고……."

필사적으로 그 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데 내 말을 주의 깊게 듣던 엘리아스 씨가 한 마디 했다.

"몸집이 얼마나 컸지?"

"거대한 여우라고는 해도 큰 늑대 정도 사이즈였어요, 하긴 그러니 떼로 몰려다니겠지만."

뒤이어 생각난 것을 몇 가지 말하자 엘리아스 씨는 빙긋 웃었다.

"사신으로서 갔다고 했지? 기사들이 있을 텐데 밤도 아닌 낮에 습격을 했다?"

숲에서는 수가 적어서 간단히 싸워 이겼지만 사막에선 그렇지 않았나 보다. 사막의 습격현장때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몬스터와 낙타, 인간의 시체들로 보아 엄청난 아비규환이었음은 짐작이 간다.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장면이라 미간을 찌푸리자 엘리아스 씨가 덧붙였다.

"사막에 사는 생물의 털색이었나?"

"……?"

그러고 보니 사막에서 산다고 치기엔 너무 색이 검었다. 사막으로 진입하기 한참 전 숲에서 똑같은 녀석들에게 습격당한 적이 있어서 크게 신경쓰진 않았지만 사막 한가운데에서도 인상착의가 동일한 녀석들이 분포하다니……. 조금은 이상한데.

원래 몬스터란 동물보다 주변 환경과 마나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생물이다. 그 탓에 일부 지역에서 이상한 능력을 갖거나 난폭해지는 것이고. 사는 환경이 바뀌면 습성, 외모, 털 색까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산에 사는 오크와 들판에 사는 오크가 약간 다르게 생긴 것도 그 때문이다.

"모래 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어요. 애초에 검은 애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 몸집의 몬스터 치고는 아무리 무리라고 해도 너무 강했어요. 작은 것 몇 마리에 꽤 고생했으니까요. 애초에 몬스터가 출몰하면 안 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이상한 괴물이라는 건 이걸 말하는 거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개중의 일부지. 그건 아마도 마계의 여우일 걸세. 보통 여우보다 몸집이 크고 난폭하며 이빨이 날카롭다. 게다가 그 사냥방식은 명백히 마계의 생물의 방식. 목표물이 있으면 우선 무리의 소수로 실력을 시험해 보고 그 후 목표물이 방심할 때까지 따라다닌 후 죽이는 거지. 먹이가 부족한 마계에서는 그러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제아무리 강한 상대라 할지라도 사냥을 포기하면 죽으니 필사적이 될 수밖에."

마계의 생물이라……. 이거 아무래도 점점 위험해지는 것 같다.

마족인 엘릭이 여기에 있으니 마계 어쩌구 하는 것도 비교적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마계의 여우가 케르타 사막을 멋대로 돌아다니는 상황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내가 케르타의 국경에서 본 마계의 생물과 그대가 본 마계 여우……."

엘리아스 씨는 멍한 내 표정을 바라보더니 작게, 하지만 분명한 소리로 말했다.

"그건 최소한 한 번 이상 마계의 문이 열렸다는 증거일세."

그, 그럼 어떡해요!! 큰일이잖아? ……아니, 큰일인가? 마계의 문이 열리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정령계의 문을 자주 여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 정령계로의 문도 열면 안 되나? 엘릭도 여기 있으면 안 되나?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엘리아스 씨는 친절하고 상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엘리아스 씨는 마법사라고 했지. 오빠랑 미르도 마법을 쓰긴 하지만 내 정령술과 원리가 비슷해서 별로 대단하게 보이지는 않았는데, 엘리아스 씨의 마법은 그와 달리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지금 여장한 마법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나가 정교하게 얽혀 있고. 게다가 그에 더불어 설명 또한 구체적이며 전문적이었다. 인간의 마법이란 이런 걸까.

"그대 같은 자연의 주인이나 마나의 주인, 그리고 마계의 고위 마족은 이동할 때 게이트를 완벽히 통제하기 때문에 타 차원의 물질이 섞이지 않고 깨끗하게 닫히게 되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아. 하지만 일반 마법사들이나 하급 마족은 다르네. 차원의 문을 열 때의 범위 조절에 조금만 실패해도 차원의 게이트가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아 해당 차원의 물질과 이곳의 물질이 섞여버리지. 그것만으로는 그저 대기에 이질적인 기운이 당분간 남는 정도로 끝나지만 문제는 그 후일세. 제대로 맞물리지 않은 틈새로 이곳의 생물이 들어가버리거나 그 곳의 생물이 이 쪽으로 빠져나오게 된다네. 그 틈은 차원의 항상성으로 인해 몇 주만에 사라지겠지만, 그 때까지 여우나 새 한 무리 정도면 충분히 빠져나오고도 남지."

마계 생물이 사납고 위험하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럼…….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난 걸까?

"최근 이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라는 것은 그대 역시 알고 있을 걸세. 루페닌 왕국의 숲에 마계의 벌레가 갑자기 출현했으며, 마케 근방에 정체불명의 괴물이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 보고되었고, 또 이곳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다스 왕국과 아크샤 왕국 국경에 민간인을 습격하는 이종의 몬스터가 늘었다는 소식도 있었지."

한두 번 마계의 문이 열린 게 아닌가보네. 하지만 마계가 개입된 일은 정령인 나로서는 간섭할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 그 마계의 ㅂ, ……ㅂ으로 시작하는 무엇인가에 잡아먹힌 식물의 아픔만을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랄까 그거 마계의 벌레였어!? 어쩐지 독하다 했다. 얘길 들어보니 덩치도 힘도 만만찮다는 모양인데. 내가 갈 때는 부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황도와 흑림은 거리가 있기에 아마 ㅂ을 볼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한 세대에 한 번 열리는 것도 흔하지 않은 마계의 게이트가 수 번이나 열렸다는 것은 아마 마족의 소행일 확률이 높네. 강한 마족은 보통 이유 없이 중간계에 건너오지 않아. 하지만 계약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이 정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마족을 불러냈다는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닐세."

"그런데 마계의 문이 열렸다고 꼭 마족과 관련이 있으란 법은 없지 않나요?"

엘리아스 씨는 고개를 저었다. 무엇인가, 말할 수 없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는 듯 했다.

"단순한 마물 소환이 목적일 수도 있겠지. 허나 같은 금단의 마법을 배운 마법사의 입장에서 확실히 내게 이번 일은 의심할 만한 요소가 많네. 그 자는 나와는 다른 것을 목표하는 듯 하지만 그 수법의 목적 역시 어느정도는 짐작이 가. 인간의 부조리한 야망을 이루는 과정은 결국 전쟁 뿐일세."

그 말을 끝으로 엘리아스는 아직 확신하기는 이르니 조금 더 조사해 봐야겠다며 기둥 뒤를 떴다. 나는 괜히 초조해져서 엘릭 레이몬드를 눈으로 찾았다. 엘릭도 마족이니 혹시 관련이 있지 않을까?

========== 작품 후기 ==========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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